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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 장면 1.

 

"아휴…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불쑥 오시면… . 대본이라도 주셔야… . 어찌됐든 해봅시다!"

 

2002년 9월, KBS TV <개그콘서트> '봉숭아 학당' 선생님으로 출연 중이었던 김미화씨를 찾아가 참여연대 홍보영상 촬영을 부탁했다. 찾아가겠노라고 미리 전화 한 통을 넣어둔 게 준비의 전부였다.  

 

<개콘> 연습장으로 찾아갔을 때, 당시 김미화씨는 후배 개그맨들과 녹화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지금은 연극연출가로 더 잘 알려진 백재현씨가 곁에 있다가 던진 말이 상당히 인상적이어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다.

 

백 : "누나는 참 대단해. 별거 다 하셔."

김 : "그래 잘 됐다! 이번엔 네가 좀 해봐." 

백 : "어우, 누나. 우린 돈 안 되는 건 절대! 안 해요. 음하하하하."

 

연습장은 곧 웃음바다가 됐고 김미화씨는 준비해간 대본을 한두 번 읽어본 뒤 곧바로 6mm 카메라 앞에 섰다. 환한 표정으로 그는 왜 참여연대 같은 시민단체가 중요한지 피력했다. 출연료는 당연히 0원이었고, 감사하다는 인사 이외에는 아무런 대가가 없었다.

(http://blog.peoplepower21.org/PeopleTV/6992)

 

# 장면 2.

 

"자, 이제 우리 한번 외쳐봅시다! 일본은 우리 할머니들에게 공식 사과하라!"

 

2005년 8월 10일 김미화씨는 서울 종로 일본대사관 앞에 섰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광복 60주년을 맞이해 주최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는 전 세계 10개국 동시다발 집회의 사회를 당시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홍보대사인 그가 맡은 것이다.

 

제669차 수요 집회이기도 했던 이 집회엔 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비롯 일본 오키나와에서 온 학생들까지 500여명이 참석했다. 대스타였지만 그는 공익을 위해서라면 작은 무대도 마다하지 않았다. 기꺼이 어디든 가줬다. 그때 김씨가 이 집회의 사회를 봐준 대가로 무엇인가 받았다는 얘기는 일체 듣지 못했다.

 

# 장면 3.

 

"아으 그러게. <오마이뉴스>에서 1주일에 한번씩, 에? 정기적으루다가, 에? 김미화를 불러주시면 으뜰까요? 그럼 참 좋겠는데, 하하. 불러만 주시면야 뭐, 감사하지요. 하하하."

 

2008년 4월 30일, 나는 서울 여의도 MBC 7층 휴게공간에서 김미화(46)씨를 인터뷰했다. 노동절을 앞두고 있던 터라 상당히 시끄러워 조용한 공간을 찾아가는데 그가 먼저 촬영 장비를 번쩍 들어올렸다. 그의 성품을 직감하고 있긴 했지만 이렇게 털털할 줄은 몰랐다.

 

그때 김씨를 만난 건 그가 2년 6개월간 진행했던 SBS TV <김미화의 U> 토크쇼 프로그램에서 돌연 하차했고, 성본 변경 허가신청에서 승소했기 때문이었다. '한국의 오프라 윈프리'를 꿈꾸던 그가 갑자기 토크쇼에서 하차하게 돼 섭섭한 마음이 묻어나는 것 같은 인상이었다. 그때 그가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 연예인들은요, 1주일 만에도 잘리고, 1개월 만에도 잘리고 그래요. 비정규직이잖아요. 그런 일은 비일비재하죠. 속으로는 아픔이 있지만, 겉으로는 잘린 사람이 뭔 말을 하겠습니까. 그저…. 예전에는 '오늘부로 관두세요' 이러면 진짜 눈물이 났어요. 그런데 오늘은 뿌듯한 느낌이 드네요. 내가 늙었나? 헤헤. 아주 만족해요."

 

별로 웃고 싶지 않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그는 웃음거리를 찾고 있는 것 같았다. 뭐랄까, 뼛속 깊이 '개그 본성'이 자리 잡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MBC 라디오의 간판프로그램이 된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MC로 그는 '시사평론가' 반열에도 올랐다. 그렇지만 그는 늘 자신이 코미디언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현재는 '시사프로'의 무대에 서 있지만, 언젠가는 '코미디'의 무대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안 불러주네!"라며 허허롭게 웃기도 했었다.

 

심지어 김미화씨는 자신의 묘비에 '웃기고 자빠졌네'라고 쓰고 싶다고 했었다. 묘를 만들 생각은 없지만 평생 무대 위에서 사람들을 웃기다 쓰러지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쁘게 들으면 나쁘게 들릴 수 있는 말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참 마음에 와 닿는 말이라고 말이다.

 

평생 무대 위에서 사람들을 웃기고 싶댔는데...

 

그런 그가 최근 KBS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마침내 19일 서울 영등포경찰서로 출두해 조사까지 받았다. 화근은 트위터였다. 트위터에 올린 푸념성 글 하나가 문제였다.

 

지난 4월 5일 김인규 KBS 사장이 직접 주재한 임원회의에서 "일부 프로그램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내레이터가 잇따라 출연해 게이트키핑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의문"이라는 의견이 제기됐고, KBS는 이를 계기로 '내레이터 선정위원회'를 만들었다.

 

김인규 사장이 직접 한 발언인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일부 프로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내레이터'는 김미화씨를 겨냥한 것이었다. 4월 3일 방영된 <다큐멘터리 3일> '장사동 기계공구 골목' 편의 내레이션을 김씨가 맡은 게 부적절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씨는 KBS에서 상반된 평가를 받았다. 2009년 12월 2일 방송된 <환경스페셜>의 내레이터를 맡은 김미화씨는 당시 KBS 심의위원으로부터 '정감 있는 따뜻한 목소리로 효과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그런데 불과 몇 개월만에 전혀 다른 평가를 받게 된 터라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본부장 엄경철)는 자기 조직의 이율배반을 지적했다. 그리고 노보를 통해 사내에 '블랙리스트'가 존재하는 게 아니냐고 문제제기를 했었다.

 

이 같은 소동이 있었지만 김씨는 묵묵히 자기 길을 걸어왔다. 한동안 말을 아꼈던 김씨는 얼마 전 불현듯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 그는 지난 6일 "어제 KBS에서 들려온 이야기가 충격적이라 참담한 마음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라며 "KBS 내부에 '출연금지 문건'이 존재하고 돌고 있기 때문에 (내가) 출연이 안 된답니다, KBS에 근무하시는 분이 이 글을 보신다면, 처음 그 말이 언론에 나왔을 때 제가 믿지 않았던, 정말 한심하다고 생각했던 '블랙리스트'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고 돌아다니고 있는 것인지 밝혀주십시오"라고 남겼다.

 

블랙리스트의 내막이 궁금하다는 소리였다. 그런데, KBS는 이 발언에 발끈했고, 조대현 KBS 부사장은 <9시뉴스>에 출연해 "목격한 것도 아니고 들었다는 이야기를 유포하는 행위에 대해 개탄을 금치 않을 수 없다"며 "근거 없는 추측성 발언으로 KBS의 명예를 훼손한 데 대해 경찰에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코미디언을 슬프게 하는 한국사회

 

김씨는 출두에 앞서 기자회견을 통해 "코미디언을 슬프게 하는 사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물었다. 답답한 심경을 일기처럼 트위터에 올린 짤막한 글이 문제가 됐다면 기꺼이 수갑을 차겠노라 격정적으로 말했다.

 

그는 "내게 있어 KBS는 친정"이라며 "친정집에서 고소당한 딸의 심정"이라고 개탄했다.  오랜 시간 정열과 청춘을 바친 대가가 명예훼손 고소냐고 한탄했다.

 

일부 언론에서 김씨를 '폴리테이너'라고 규정한 것과 관련 그는 "제가 정치하는 것 보신 분 있습니까"라고 묻고 "코미디언이 좌파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SBS 사장님 확인서를 받고 인터넷기자협회, 총선시민연대, 녹색연합 여러 곳에서 확인서를 받으러 다녀야 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단연코 한 번도 정치권에 기웃댄 적이 없다"며 "한나라당이 집권을 하든 민주당이 집권을 하든 이 나라의 코미디언으로 행사에 가서 대통령 모시고 웃겨드렸다"고 말했다.

 

코미디언인 것이 자랑스럽고, 제발 코미디언으로 살게 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제 꿈은, 평생 코미디언으로 사는 것, 그리고 어려운 이웃들과 나누며 사는 것, 이 두 가지"라고 호소했다. 제발 자신을 잃지 말아달라고, 코미디언 하나 이렇게 키우기 어렵다고 말하면서 서러움에 복받쳤다.

 

그는 "앞으로 저 뿐만이 아니라 후배 연기자들이 앞으로 이런 일을 당하지 않도록 끝까지 싸우고자 결심했다"며 "제 모습을 똑똑히 보시고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코미디언을 슬프게 하는 사회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절규였다. 코미디언을 코미디언으로 보지 않고 정치적 잣대로 구분하고 출연하지 못하도록 하는 비운의 한국사회에 대한 성토였다. MC 김제동씨가, 가수 윤도현씨가 이명박 정부 이후 알 수 없는 이유로 교체되는 상황을 도저히 묵과할 수 없었던지 폭포수처럼 말문이 터졌다.

 

뒤늦게 "지못미" 타령 말고, 그녀를 위해 국민이 나서야

 

많은 연예인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아온 게 사실이다. 김제동씨도 한동안 방송에서 얼굴을 볼 수 없다가 최근에야 MBC <7일간의 기적>으로 만날 수 있게 됐다.

 

보수세력의 집단적 린치를 개별 연예인이 이겨낼 재간은 없다고 생각한다. 한바탕 소란이 벌어지기는 했지만 결국 김미화씨는 거대한 방송권력과 싸워 질 게 뻔하다고들 한다.  

 

이제 한국사회가 김미화씨에게 답할 차례다. 코미디언을 코미디프로에서 볼 수 있도록, 코미디에는 좌도 없고 우도 없다는 것을, 정치적 잣대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구시대적 발상이며 촌스러운 짓이라는 점을 말해야 한다.

 

십수 년간 봉사활동은 물론이며 돈 안 되는 환경단체와 시민단체, 여성문제에 적극적으로 활동해온 그의 노력이 헛된 것이 아니라면 이제는 김미화씨가 코미디 프로를 할 수 있도록 놔줘야 한다.

 

김미화씨가 국민을 믿고 나선 만큼 국민도 김씨를 위해 나서야 한다. 그가 방송에서 떠난 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지못미 타령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나.


태그:#김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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