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그 아이의 아빠 형제 세 명에게서 태어난 자녀는 모두 다섯 명으로 딸 넷에 아들 하나. 아이는 그 중 네 번째 딸. 아이의 친할머니 기준으로 보면 첫째와 둘째 아들에게서 연년생으로 손녀 넷이 태어났고, 조금 터울이 지게 막내 아들에게서 손자가 태어난 것.

아무리 세상이 달라졌다고는 해도 네 번째 손녀인 그 아이와 유일한 손자인 사촌 남동생에 대한 할머니의 태도가 어떨지는 짐작이 갔다. 세배를 할 때도 아들이라고 가장 나이가 어린데도 사촌 누나 넷 앞에 세우는 것은 물론이고, 온가족이 둘러앉는 명절 밥상에서도 상석에 앉히기 일쑤.

내게 그 이야기를 털어놓는 아이의 눈에는 억울함과 속상함이 넘칠듯 고여있었다. 만약 할머니께 여쭤보면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어디 있냐'며 손자녀에 대한 편애를 인정하지 않으실 것 같다. 아니면 딸과 아들의 자리가 엄연히 다르다고 하시려나.

내 자식 기를 때는 정말 아무 것도 몰랐다며, 그 때와 달리 손자녀는 무조건 예쁘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많이 만난다. 그런데 과연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당신들 가슴 속에 차고 넘치는 사랑과 관심을 손자녀들에게 제대로 전하고 있을까? 또 손자녀들에게 당신들이 원하는 만큼의 사랑을 받고 있을까?

표지
▲ 책 <인생의 오후, 사랑할 시간입니다> 표지
ⓒ 리더스북

관련사진보기

책 <인생의 오후, 사랑할 시간입니다>는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인연'인 할머니 할아버지와 손자녀들의 관계를 노인의 처지에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차례로 짚어나간다.

나 역시 노인복지 현장에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관계 맺기'에 대한 강의를 할 때면 손자녀와의 관계를 빼놓지 않고 이야기하는데,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손자녀 세대의 중간에 위치한 나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구체적이고 세밀한 부분에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저자가 네 아들에게서 얻은 여러 명의 손자녀를 둔 할머니로 직접 체험하고 경험한 것을 고스란히 담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중간 자리에서 양쪽 세대를 보며 객관적으로 보고 느낀 것도 의미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당사자로 긴 시간 동안 시행착오를 거쳐 도달하게 된 지점은 엄연히 다를 것이다.

책은 '할머니 할아버지로 사는 즐거움'으로 시작해 손자녀와 특별한 관계를 맺기 위한 방법, 할아버지 할머니가 꼭 지켜야 할 규칙, 자녀 세대와 겪게 되는 민감한 문제에 대한 대응방식, 손자녀와 행복하게 놀아주기, 젊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기 위해 해야 할 일들에 이르기까지 손자녀들 둔 어르신들이 알아두면 좋을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여기에 더해 손자녀와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는 법, 아이가 편애를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한 방법, 아기가 좋아하는 행동, 손자녀와 장볼 때 유의 사항, 아기나 어린아이와 여행할 때 확인해야 할 것 등을 따로 모아 팁으로 제공해 주고 있어 유용하다.

또한 자녀를 둔 어르신들만이 아니라 나같이 위로는 부모님이 계시고 아래로는 아이들을 기르고 있는 중간 세대들에게는 손자녀에 대한 부모님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동안 눈에 보이게 보이지 않게 부모님들과의 사이에서 겪은 문제와 갈등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알게 해준다.

예를 들어, 아이 양육 방법에 대해 갈등이 있을 경우 저자는 '부모로 사는 것과 할머니 할아버지로 사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며 할머니 할아버지는 부모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아이를 칭찬하거나 보상하고 나쁜 습관을 버리도록 도울 수는 있지만, 자신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자식들에 대한 태도에도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는데 친구의 마음은 다치지 않게 하려고 애를 쓰면서 왜 '할아버지 할머니는 자신이 자식, 며느리, 사위에게 막말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느냐고 묻는다. 그러면서 그 결과는 '자식과의 불화, 소외로 돌아올 뿐'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들으면 서운하기도 할 이야기를 냉정하게 하면서 현실을 똑바로 보고 인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이 책이 지닌 커다란 장점이다.

책을 읽으면서 신기했던 것은 부모님과 나, 부모님과 손녀인 내 아이들을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내가 이 다음에 할머니가 된다면...'하는데 썼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그 까닭은 아이들이 평범한 나이에 결혼을 한다면 10년 안에 내가 할머니가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것이 첫째이겠고, 그 다음은 아이들 기를 때 제대로 해준 게 없다는 죄책감과 열등감 탓인 것 같다. 아이들이 아이들을 낳으면 잘 돌봐주고 싶다는, 어찌 보면 소박하고 천진난만한 꿈 같은 것 말이다. 소박하고 천진난만하다고 표현한 것은 어르신들께 이런 소리를 하도 많이 들어서이다.

"자식 기르느라 그만큼 고생했으면 됐지, 손자 손녀까지 돌보라고? 난 싫어!"
"다 늙어서 힘들게 손자 손녀 보는 게 뭐 좋아? 힘만 들지."
"다른 건 다해도 난 손자 손녀는 안 길러 준다고 아예 선언했어!"
"손자 손녀 길러주는 사람은 자기 시간 하나도 없이 지레 늙더라고..."

저자도 이런 소리를 많이 들은 모양이다. 이에 대한 답으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명확한 선 긋기', 즉 부모도 자기 생활이 있으며 자식과 손자녀에게 시간을 할애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희생이 따른다는 것, 그래서 자식들이 부모를 쉬운 상대로 여겨 과도한 요구를 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손자녀 돌보기를 통해 할머니 할아버지로 사는 즐거움과 기쁨을 누리라고 권하고 있다.

나는 책에 나오는 문장들로 그 답을 대신하겠다.

- 내 자식에게 충분히 주지 못한 후회되는 사랑과 시간을, 손자 손녀에게 줄 수 있다.
- 양육의 책임은 부모가, 무조건적인 사랑 전달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 자식과 손자 손녀에게 초대받지 못하는 한 가족의 일원이 될 수 없다  
- 자식에게 초대받았다고 해서 진짜 손님처럼 굴어서는 곤란하다
- 교훈과 훈계 따위는 이미 부모나 학교 선생님이 충분히 하고 있다
- 우리의 장점은 무엇인가? 그들보다 더 오래 살았고, 더 현명한 것이다
- 손자 손녀는 내 아이가 아닌, 내 자식의 아이이다
- 항상 공정하게 사랑하라
- 할아버지 할머니는 조력자이지 선생님은 아니다
- 부모 자식의 관계는 대결구도가 아닌 부모가 먼저 자식에게 베푸는 관계임을 잊지 말자

덧붙이는 글 | <인생의 오후, 사랑할 시간입니다 The Grandparents' Book> (미리엄 스토퍼드 지음, 장병혜, 양혜경 옮김 / 리더스북, 2009)



인생의 오후, 사랑할 시간입니다 -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인연, 할머니와 손주

미리엄 스토퍼드 지음, 양혜경, 장병혜 옮김, 리더스북(2009)


태그:#인생의 오후, 사랑할 시간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 #노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