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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권익위가 요구한 학교운영위원 보고 양식.
 국민권익위가 요구한 학교운영위원 보고 양식.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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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권익위가 요구한 운동부 소속 학생과 학부모 개인정보.
 국민권익위가 요구한 운동부 소속 학생과 학부모 개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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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K초에서 학교운영위원회 학부모위원을 맡고 있는 H씨는 최근 학교로부터 다음과 같은 핸드폰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교육청에서 필요하다고 하니 전자메일을 알려주세요."

교육청에서 학교운영위원회 안내 자료를 보내주려는 것이라고 짐작한 H씨는 자신의 전자메일을 순순히 알려줬다.

'전자메일' 알려줬더니 남몰래 국민권익위로 들어가

하지만 이 전자메일은 K초에서 다른 7명의 학부모위원 주소와 함께 남몰래 가공됐다. '일련번호, 위원구분, 전화번호(휴대전화), 이메일주소'를 적은 국민권익위위원회 송달용 엑셀파일이 그것이다.

이렇게 가공된 정보는 서울시교육청을 거쳐 국민권익위원회에 오는 23일까지 도착할 예정이다. 이 학교 70여 명의 교직원 정보도 비슷한 방법으로 수집되었다. 교직원들에게도 특별한 개인정보 수집에 대한 안내와 사전 동의 절차가 없었다.

국민권익위가 이처럼 학부모와 교직원의 개인정보 수집을 전국 16개 시도교육청에 요구한 까닭은 오는 8월부터 교육기관에 대한 청렴도를 측정하기 위해서다. 이 측정은 2002년부터 벌였지만 올해와 같은 대규모 개인정보를 수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전 조사와 달리 올해부터는 180개 지역교육청까지 조사 대상에 포함했기 때문이다.

국민권익위 중견 관리는 "올해 처음 적용된 지역교육청 청렴도 측정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 측정대상자 명부를 충분하게 수집할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정보수집 대상 학부모 3만 명, 교직원 20만 명으로 추정

국민권익위가 이렇게 교직원과 학부모의 개인정보를 요구한 초중고 학교 수는 지역 교육청마다 50개씩. 11개 지역교육청이 있는 서울은 600개 초중고(고교 50개 추가 포함)가 조사대상에 포함됐다. 180개 지역교육청이 있는 전국으로 보면 조사 대상은 9000여 개교다. 하지만 표본에서 제외토록 한 사립학교를 빼면 해당 학교는 6000여 개교 정도일 것으로 보인다.

학교마다 학부모위원이 평균 5명인 점에 비춰보면 3만여 명의 학부모 개인정보가 흘러들어간 셈이다. 운동부가 있는 학교의 경우 학생 명단과 함께 학부모 전화번호(휴대전화)와 전자메일을 요구한 점을 감안하면 해당 학부모 수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20여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 교직원 정보도 마찬가지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개인정보 수집에 관한 기본 안내를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 지역 4개교를 무작위로 뽑아 살펴본 결과 안내와 동의 절차를 모두 거친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이에 따라 공공기관의개인정보보호에관한법률(개인정보 보호법) 제4조 제2항에 대한 위반 논란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김영준 변호사(법무법인 나우)는 "법률에서는 공공기관의 장이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경우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의 법적 근거, 목적 및 이용범위, 정보주체의 권리 등에 관하여 문서 등을 통하여 정보주체가 그 내용을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안내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면서 "이런 점에 비춰봤을 때 일부 학교에서는 개인정보 보호법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사실을 뒤늦게 안 일부 학부모와 교사들은 국민권익위와 시도교육청에 항의전화를 걸고 있다고 서울시교육청과 국민권익위 관계자가 15, 16일 말했다.

학부모위원인 H씨는 "내 개인정보가 국민권익위로 넘어간다는 사실을 안내받지 못했다"면서 "가뜩이나 민간사찰 때문에 불안한데 학부모 정보를 이렇게 빼돌릴 수 있는지 화가 치밀어 오른다"고 하소연했다.

서울 G고 이아무개 교사도 "아무리 공무원인 교사더라도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이유라도 알아야 하는데 우리 학교도 그런 설명 과정은 없었다"면서 "이 문제 때문에 몇몇 교사들은 학교 측과 마찰을 빚고 명단 제출을 거부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국민권익위가 16개 시도교육청에 보낸 청렴도 측정 실시계획(안)
 국민권익위가 16개 시도교육청에 보낸 청렴도 측정 실시계획(안)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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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의가 계속되자 국민권익위는 지난 13일 뒤늦게 서울시교육청 등에 전화로 '개인정보 동의절차를 거치되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수집 대상에서 뺄 것'을 통보했다. 하지만 서울시교육청은 이 같은 사실을 학교에 전달하지 않았다. '명단 수합에 차질이 생길 것을 걱정'한 탓이다.

국민권익위 시인 "안내와 동의 절차 못 거친 학교 있는 듯"

국민권익위 중견 관리는 "교육계 비리가 창궐하는 상황에서 부패방지법 등에 따라 청렴도 측정을 지역교육청까지 처음 늘린 과정에서 빚어진 일"이라면서도 "교육청과 학교에서 편의적으로 정보를 수합하다보니 개인정보 보호법에 따라 사전 동의와 안내 등의 절차를 지키지 못한 사례가 있는 것 같다"고 해명했다.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 소지에 대한 책임을 시도교육청과 일선 학교로 돌린 것이다.

하지만 국민권익위가 시도교육청에 보낸 2010년도 공공기관 청렴도 측정 실시계획을 보면 부패방지법에 대한 언급만 있을 뿐 개인정보 보호법에 대한 설명은 들어있지 않았다.

서울시교육청 감사담당관실 중견 관리는 "작년까지 별문제 없어서 그랬는지 우리 교육청은 국민권익위로부터 개인정보 보호법에 대한 안내를 제대로 받지는 않았다"면서 "개인정보에 대한 깊은 고려가 부족했던 만큼 내년 시행부터는 이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각 학교에 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태그:#국민권익위, #개인정보 보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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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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