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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정통성에 의문이 가다

 

저는 2004년 일선 교단에서 물러난 뒤 지금은 원주에 사는 전직 훈장입니다. 강원도에 사는 촌사람이 감히 대통령에게 붓을 든 것은 곧 있을 예정이라는 개각 때 제발 안병만 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꼭 바꿔달라는 청원을 드리고자 함입니다.

 

저는 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과는 일면식도 없고, 개인적으로 전혀 사감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공개적으로 이런 청원을 드리는가 하면, 30여 년 교육계에 몸담았던 사람으로, 이 나라 어린 세대의 영혼이 더럽혀지고 있는 현실을 더 이상 차마 두 눈 뜨고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안병만 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임명될 때부터 그분 선친이 일제강점기 때 순사주임이었다는 전력이 드러나 바로 장관 임명이 취소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2년이 지나도록 그 자리를 보전하는 것은 이명박 정권과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의심치 않을 수 없습니다. 한 백성으로서 그를 천거한 자나 그를 임명한 자의 양식을 만천하에 공개적으로 묻고 싶습니다.

 

물론 우리나라 헌법에 연좌제가 사라지고 부모가 순사부장을 하고 독립투사를 밀고하거나 생명을 뺏은 일제 군경의 자녀일지라도 새로운 대한민국의 성실한 국민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 자녀가 기업인도 될 수도 있고, 군인도 될 수 있고, 공무원도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2세 교육의 가장 우두머리가 된다는 것은 나라도, 정권도, 본인도, 국민도, 자라나는 2세도 대단히 불행한 것입니다. 학생들이 이 사실을 알면 교육부 장관을, 이명박 정권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겠습니까?

 

 

'정의'란 무엇입니까

 

'정의(正義)'란 무엇입니까? 굳이 성경에서 인용하자면 '뿌린 자가 거두는 것'이 정의입니다. 일제강점기 때 순사부장 역할이 무엇입니까? 자신들의 관할지역에 불령선인(不逞鮮人)을 잡아들이는 게 그 첫째 임무가 아니었습니까? 그들은 광복의 씨앗을 뿌리지도 않았거니와 오히려 씨앗 뿌리는 일을 방해하거나, 뿌린 씨앗의 싹을 뽑은 자들이 아닙니까? 이런 사람의 자식을 교육부 장관에 임명해 놓고, 학생들에게 어찌 '정의'를 가르칩니까?

 

정의가 없는 사회나 나라는 망하는 게 역사가 가르치는 교훈입니다.

 

한국인으로 일제강점기에 순사에다 순사부장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일제에게 충성을 다했으며, 일본관리들에게 얼마나 아부를 했겠습니까? 총칼을 지니고 다니는 그들이 얼마나 무서웠으면 순사 온다는 말에 우는 아이도 울음을 덜컥 그쳤겠습니까? 저도 어려서 그런 얘기를 듣고 자랐는데 아마 이명박 대통령께서는 그러지 않았나 봅니다.

 

아직도 이 땅에는 망국의 한과 일제강점기의 치욕의 한을 가슴에 안고 사시는 분이 많습니다. 이미 고인이 된 조문기 의사는 아직도 우리나라는 일본으로부터 해방되지 않았다고, 청와대에서 독립유공자 초청도 거절하고 1인 시위를 한 것을 보도로 본 적이 있습니다.

 

몇 해 전 생전에 그 분을 만났더니 "아직도 우리나라는 일제로부터 해방이 되지 않고 친일파만 신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놈을 상전으로 모시느라 눈치라도 살폈는데, 지금은 그럴 필요도 없는 저희들 세상 아닙니까?"라고 반문했습니다. 그분 말씀이 틀렸다면 서훈을 취소하시고, 저를 허위사실 유포 죄로 교도소로 보내주십시오.

 

하늘에 계신 선열께서 일제강점기 때 순사부장 아들이 교육과학기술부 장관하는 세상에 당신 후손을 학교에 보내는 심정을 대통령께서는 헤아려서 선처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인사가 아니라, 일제 때 조선총독도 한국인의 눈치를 살피느라 이런 인사를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동안 대통령을 욕보인 인사참모를 지금이라도 나라의 기틀을 무너뜨린 국사범으로 엄하게 징계하시고, 임명권자는 독립지사나 선열에게 고개 숙여 사죄하십시오.

 

정권은 짧고 역사는 영원하다

 

저는 10여 년 전부터 항일 또는 의병유적지를 답사하면서 이런저런 의병이나 독립군 이야기와 그 후손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책으로 펴내고 있습니다. 왜 하필 그런 책을 펴내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거룩한 선열과 그 후손들을 찾아가는 기쁨 때문이라고 답하겠습니다.

 

길림성 우거진 수풀에 싸인 청산리전적비 목비(木碑,나무 비)를 찾았을 때의 그 짜릿함(지금은 우람한 청산리대첩비로 없어짐), 뤼순 일본 관동법원 재판정에 갔을 때 재판장이 안중근 장군에게 사형을 선고하자 "이보다 더 극형이 없느냐?"고 일갈하던 그 장면을 떠올릴 때는 황홀한 기쁨이 있었습니다. 전남 고흥반도의 도화면 당오리 마을에 사는 한 의사(기산도) 후손을 찾아갔을 때, 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한 무지렁이 아들은 아버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아주 독한 사람이었어요. 왜놈 순사들이 우리 아버지를 잡아다가 손가락마다 못질을 해도 항복하지 않았고, 당신 이빨로 셰(혀)를 잘라 벙어리가 되어서까지도 동지들을 불지 않았어요."

 

그 아버지는 을사오적의 하나인 군부대신 이근택을 유혈이 낭자하도록 응징한 기산도 의사입니다.

 

또, 한 의병장(전해산) 후손은 의병장 아버지를 둔 소감을 묻는 질문에 긴 한숨 뒤 이렇게 답했습니다.

 

"목숨 하나 이어 온 것만도 다행이었어요."

 

그 아들은 학교 문 앞은커녕 평생 머슴살이로 소작인으로 보냈습니다. 그분들이 당신들은 거지로, 머슴으로, 소작인으로, 연명에 급급할 때, 순사 아들로 호사하며 많이 배웠다는 이유로 독립된 나라에서 교육부 장관을 하는 현 정권을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누가 나라를 지키고자 목숨을 바치겠습니까?

 

정권을 짧고 역사는 영원합니다. 한 서생의 간곡한 청원이오니 제발 교육부 장관을 경질해 주시고, 더 이상 교육계 수장만은 친일파 후손 논쟁을 피해 주시기를 거듭 부탁 올립니다.


태그:#교육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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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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