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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래마을은 서울 서초구 반포4동에 위치한 서울의 '쁘띠프랑스(작은 프랑스)'입니다. 한남동에 있던 서울프랑스학교가 1985년 이곳으로 옮기면서 그 학생들의 부모들이 학교 근처로 주거지를 함께 옮겨 오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프랑스인 집단 거주지가 되었습니다. 현재 이곳에 거주하고 있는 프랑스인 수는 대략 600여 명. 이 숫자는 대한민국 거주 프랑스인의 약 절반 정도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원래 이 마을을 흐르는 도랑이 굽은 새끼줄처럼 서린 모양으로 흐른다하여 붙여진, 한국적인 이름의 '서래마을'은 이제 뚜렷하게 차별된 외국인 마을 이름이 되었습니다.

서울시는 이 다문화마을을 '글로벌 존'으로 지정하고 서초구는 서래로를 '프랑스문화특화거리'로 조성해서 프랑스인뿐만 아니라 국내외 관광객을 위한 서울의 특화 거리로 만들기 위해 힘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불어를 병기한 교통표지판이 설치되고, 프랑스 삼색국기가 도로에 깔렸습니다. 서울시에서도 외국인 전용 주민센터인 '서래글로벌빌리지센터'를 설치하여 이곳 거주 외국인들에게 생활정보를 제공하고 타국 삶에서 느끼는 불편사항을 적극적으로 해결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노력으로 이 서울 속의 작은 프랑스는 외국인뿐만 아니라 그윽한 프랑스 분위기를 체험하고자 하는 내국인도 즐겨 찾는 곳이 되었습니다. 거리를 걷고 골목을 따라 즐비한 프랑스 음식점에서 허기를 달래고 노천카페에서의 차 한 잔으로 이국을 느끼는 것입니다.

개구쟁이 프랑스 어린이 40명과 수학여행을 떠나다

Lycee francais de Seoul의 CE1 학생들의 안동 수학여행에 저와 함께 보조교사로 참여한 친구, 프레드
▲ . Lycee francais de Seoul의 CE1 학생들의 안동 수학여행에 저와 함께 보조교사로 참여한 친구, 프레드
ⓒ 이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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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래마을을 프랑스인 거주 지역으로 만든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던 서울프랑스학교. 그 정식 명칭은 Lycee francais de Seoul. 한국에 살고 있는 프랑스 아이들을 위한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아기자기한 흰색 건물에 다 들어 있습니다. 프랑스 외무부 산하의 프랑스 학교로 교육과정도 프랑스 현지와 동일하게 운영됩니다. 학사 일정도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9월에 신학기가 시작되고 이듬해 6월에 끝이 납니다.

소매가 없는 옷을 입어도 어색하지 않을 5월 31일부터 4박 5일 동안 이 프랑스 학교에 다니는 초등학교 2학년(CE1) 학생들이 긴 여름방학에 앞서 안동 하회마을로 수학여행을 떠났습니다.

이 초등학교 2학년은 한 반에 20명씩 두 반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개성강한 아이들. 담임 선생님 두 분이 이 아이들의 4박5일 수학여행 일정을 소화하기는 무리입니다. 그래서 제게 보조교사로 이 수학여행에 동행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저는 기말고사를 2주 앞둔 터라 가느냐 마느냐를 두고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외국친구들의 '한국 어디가 여행하기 좋아?'라는 질문에 항상 '흠… 나도 서울에만 있어 봐서…'라고 말을 줄이며 대답을 제대로 해주지 못한 저로서는 종갓집 한옥과 찜닭으로만 알고 있는 안동에 꼭 가보고 싶다는 간절함과 4박5일 동안 무슨 짓을 해도 귀여울 프랑스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말고사에 대한 걱정은 잠시 제 머릿속 뒤편으로 밀쳐두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교환학생 온 친구 프레드도 부추겨서 함께 프랑스 초등학교학생들의 수학여행에 합류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서로의 문화를 이해해주는 아이들

다양한 인종적 배경을 가진 어린이 들이 함께 섞이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문화의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다름'을 인정하는 관용을 가진 아이들로 커갈 수 있습니다.
 다양한 인종적 배경을 가진 어린이 들이 함께 섞이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문화의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다름'을 인정하는 관용을 가진 아이들로 커갈 수 있습니다.
ⓒ 이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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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아이들을 만나는 출발 날! 다양한 인종이 어울린 다문화의 프랑스답게 이 교실의 아이들도 크리스털 화채볼 속 형형색색의 각기 다른 과일들처럼, 프랑스인부터 한국계, 캄보디아계, 벨기에계, 영국계, 튀니지계까지 다양했습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검정머리에 검정 눈인 한국인 친구들만 있었고, 대학교에 와서 가끔 교환학생으로 온 친구들과 같은 수업을 들었던 저에게는 이 다양성 자체가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휘둥그레진 저의 눈을 보고 옆에 있던 프레드가 말했습니다.

"내 23년 인생 동안 술 먹으면서 친구들이 모두 백인이었던 적은 한국에 처음 와서 교환학생끼리 다 같이 술자리를 가졌을 때가 처음이란다."

파리의 차이나타운이라고 부르는 13구역에 사는 프레드는 친구들이 다 중국계 프랑스 친구들입니다. 초록 눈에 갈색머리, 마치 햇빛이라고는 받아보지 못한 것처럼 하얀 피부를 가진 파리지앵 프레드가 항상 '내 안에는 아시안의 피가 흐르고 있어'라고 했던 이유를 그제야 알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 어린이들이 자연스럽게 친구들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모습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보았습니다. 한 아이가 휴게소 음식 주문 카운터 앞에서 음식 사진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저게 내가 지난번에 부모님과 외식하면서 먹어본 자장면이라는 건데 진~짜 맛있어."

이 친구의 말에 몇몇 아이들이 자장면을 시켰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끼리 자장면이 한국 음식인지, 중국 음식인지, 일본 음식인지에 대한 토론을 벌이다가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아이가 '저기 봐, 중국 음식이라고 쓰여 있잖아'라고 말하자 토론이 끝났습니다. 마침내 자장면이 나오고 아이들이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그때 소스를 섞지 않고 먹는 아이가 제 눈에 띄었습니다. 저는 자장면을 먹어본 적이 없을지도 모를 그 아이에게 자장면을 바르게 먹는 방법을 알려줄 요량으로 옆으로 다가가 말했습니다.

"자장면은 소스랑 면이랑 비벼 먹어야 맛있는 거야."

옆에 있던 친구가 제 말을 받았습니다.

"이 친구의 나라에서는 고기를 먹지 않는데요. 그래서 소스에 고기가 들어 있어서 비빌 수가 없데요."

다른 친구가 그 아이의 말을 고쳐주었습니다.

"'나라' 때문이 아니라 '종교' 때문이야."

마침내 소스 없이 자장면을 먹고 있던 무슬림 아이가 친구들의 말을 정리해주었습니다.

"무슬림도 고기를 먹어. 단지 알라신께 기도하지 않고 잡은 고기를 먹지 않는 거야. 양고기, 쇠고기, 닭고기를 특히 좋아해. 하지만 돼지고기나 개고기 그리고 동물의 피는 먹지 않아. 그래서 고기를 잡을 때도 피를 다 빼낸단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할랄halal'이라고 하고 먹지 못하는 것은 '하람haram'이라고 해."

8살(아니, 아이들 말로는 7살 반인 이 친구들)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서로의 문화를 알아 간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습니다. 고등학교까지 검정 머리, 검정 눈의 한국인이 아닌 친구는 교실에서 본 적이 없는 저는 어떻게 프랑스 사람들이 이런 다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할 수 있는지, 이 한 장면을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한지공예, 고추장 만들기... 안동에 빠진 아이들

하회마을에서의 4박5일은 한국의 전통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활동들로 꽉 채워져 있었습니다. 제일 먼저 아이들이 방문한 곳은 한지 만드는 과정을 볼 수 있는 한지공장과 한지로 하회탈을 만들 수 있는 체험장이었습니다.

닥나무가 한지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고 한지로 만든 여러 가지 작품들을 본 아이들은 저마다 '신기하고 예쁘다'를 연발했습니다. 한 아이가 만든 한지 탈이 너무 예쁘다고 칭찬해주니, 서로 "선생님, 제 거는요?", "제 거는요~?"하며 망설임 없이 자기가 만든 하회탈을 높이 들며 솜씨를 자랑합니다.

하회마을에 있는 동안 우리가 묵는 곳은 전통 가옥 중 하나였습니다. 집 가운데 마당이 있는 ㅁ자 모양의 한옥이었습니다. 인상 좋으신 아주머니 두 분이 고추장을 만드는 과정도 보여주셨습니다. 유리문을 가진 침대 방에서 지내던 아이들이었지만 창호지문의 온돌 바닥에서의 첫날밤에 대해 어느 아이도 잠자리 투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낙동강이 마을을 두르고 있는 하회마을은 전통 가옥뿐만 아니라, 낙동강과 부용대가 어우러진 경치 또한 절경이었습니다. 아이들과 누각에 올라가 하회마을 정경을 그림으로 그리고, 마을을 산책하면서 전통가옥들을 스케치했습니다. 프랑스 아이들에게 이제 더 이상 한국의 전통가옥들은 엽서에만 나오는 사진의 풍경이 아니었습니다.

강가에서는 씨름 한판으로 아이들의 열기가 후끈해 졌습니다. 아이들은 더운 날씨에 모래가 뜨거워진 것도 모르고 자기편 친구를 응원하느라 정신없었습니다. 더위와 허기는 안동찜닭으로 한 번에 다스렸습니다.

6월 2일, 한국의 지방선거 투표일에는 이장님의 '동민 여러분, 빠짐없이 투표합시다'라는 마을 방송 때문에 모두가 일찍 잠에서 깨었습니다. 트로트를 개사해 유세음악으로 쓴 후보들 트럭이 지나가자 아이들은 "선생님 저건 뭐하는 트럭이에요?"라고 묻더군요. "선거에 나온 후보들이 자신을 알리고자하는 트럭이야"라고 대답하니 고개를 끄덕이고 트로트를 따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날은 투표 후 하회마을로 나들이 온 관광객들로 마을이 북적였습니다. 하회탈 공연을 보기로 한 아이들은 공연장에 들어서자마자 사람들로 꽉꽉 채워져 있는 공연장을 보고 들떠했습니다.

학교에서 일 주일에 한 번씩 사물놀이를 배우는 아이들은 북·장구·징·꽹과리 소리에 이미 익숙해 있었습니다. 공연을 알리는 꽹과리 소리가 울려 퍼지자 여기저기서 학교에서 배운 가락을 직접 흉내내며 따라했습니다. 공연 중에 탈을 쓴 공연자들의 춤사위에 흥겨워하며 어깨를 들썩이는 아이들은 보면서 '이들은 이미 반은 한국인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박5일의 수학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한 아이에게 "안동이 좋아? 서울이 좋아?"라고 질문을 던지자 한창 고민을 하더니, 안동도 좋지만 엄마가 있는 서울이 좋다고 대답했습니다. 4박5일 동안 부모님도 많이 보고 싶었을 텐데 우는 아이 한명 없었던 게 대견스러웠습니다.

더 이상 '살색'은 없습니다

이제 한국에서도 살색이라는 '살구빛' 피부를 가진 사람들과만 살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유구한 값진 문화를 당당히 세계로 발신하고 다른 나라의 다양한 문화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한국에서도 살색이라는 '살구빛' 피부를 가진 사람들과만 살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유구한 값진 문화를 당당히 세계로 발신하고 다른 나라의 다양한 문화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 이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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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한 수학여행에서 저도 많은 걸 배웠습니다. 특히 자연에 순응한 한국의 아름다운 반가 한옥과 그 풍습을 눈으로 볼 수 있어 좋았고, 이제 세계가 한 가족으로 살아가야 하는 시대가 왔구나, 라는 걸 아이들의 모습에서 배울 수 있었습니다.

서울은 이미 국제화된 도시입니다. 검은 머리에 검은 눈만 모여살 수는 없습니다. 한때 크레파스에 '살색'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우리민족은 모두 살구빛 피부색이었으므로 그림을 그리면서 사람의 피부에는 당연한 듯 그 살색 크레파스를 칠했었지요. 하지만 이제는 어느 크레파스 통에도 그 살색은 없습니다. 인종차별적인 용어로 분류되어 살구색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서래마을 아이들이 한국을 더 잘 알기 위해 이렇듯 노력하는 만큼 우리도 그들을 진정한 우리의 이웃임을 재인식하고 그들을 더 잘 알기 위한 노력을 기울어야할 것입니다. 이미 서울은, 아니 어느 농촌을 가도 이제 '살구색 '피부빛을 가진 사람만이 사는 마을이 아닙니다. 베트남에서, 필리핀에서, 카자흐스탄에서 그리고 러시아에서 시집 온 각기 다른 피부의 사람들이 우리의 아내와 며느리로 살고 있습니다.

서울에 도착하고 안동이 어땠냐는 부모님의 질문에 "너무 재밌었어!"라고 대답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이들이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서도 분명 한국문화의 전도사가 되리라고 확신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 관련 홈페이지 바로가기
Lycee francais de Seoul | www.lfseoul.org
서래글로벌빌리지센터 | http://global.seoul.go.kr/seorae



태그:#서래마을, #서울프랑스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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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행복한 만큼 다른사람도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세계의 모든사람이 행복해 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세계에 사람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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