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매일 오전 9시. 동물자유연대 사무실로의 출근은 개 짖는 소리를 막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이어 급히 환기를 시키고 밤새 개들이 눈 용변을 치운다. 40여 마리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것만으로도 매일 아침은 전쟁에 가깝다.

주말에는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당직을 서야 한다. 그나마 최근에는 개들을 돌봐주던 할머니마저 병환으로 그만두었다. 40여 마리의 개들의 배설물을 치우고 질환이 있는 개들에게 약을 먹이고, 청소하고, 밥을 주고, 신선한 물로 갈아주고… 혼자 근무하는 당직날 아침에는 이 일을 하는데에만 꼬박 세 시간이 걸린다. 돌아서면 다시 똥을 싸고, 치우고, 걸레를 빨고….

한 달에 한 번 꼴로 사무실로 찾아오는 사람들도 고정적이다. 이웃집의 민원. 이제 동물들을 그만 받고 싶지만 학대받는 동물을 구하는 것이 직업인 사람들에게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보람있는 일이라고? 아침저녁으로 치뤄야 하는 끝이없는 전쟁. 이것이 우리의 일상이다.
 보람있는 일이라고? 아침저녁으로 치뤄야 하는 끝이없는 전쟁. 이것이 우리의 일상이다.
ⓒ 동물자유연대

관련사진보기


"옆집에서 개를 때리는 것 같아요. 도와주세요."
"다친 개가 있어요. 제가 데리고 있는데 더 이상 보호할 수가 없어요."
"누가 개를 너무 방치해서 키워요. 냄새도 심하고 줄도 너무 짧고 지붕도 없어서 비를 다 맞고 살아요. 불쌍해서 더 이상 못보겠어요."
"누가 개를 더 이상 못 키우겠다고 개장수에게 팔았어요. 구해주세요."

동물들의 고통을 더 이상 볼 수 없어 이 직업을 택한 나 같은 사람에게 이는 거절할 수 없는 부탁들이다. 그러나 모든 구조요청에 다 응할 수는 없다. 원칙이 있다. 보호소가 없는 동물단체가 직접 바로 출동해야 하는 경우는 대체적으로 이렇다. '해당 동물을 급하게 구조하지 않으면 생명에 위협이 닥칠 것이 자명한 경우.'

최소한의 출동, 구조라는 원칙으로 제한하고 있지만 사무실은 늘 터져 나갈 것 같다. 이런 속사정도 모른 채 "동물단체라면서요? 도대체 뭐 하는 거죠?", "월급 받아먹고 뭐하는 거야?", "이것도 구조 못하면서 무슨…쯧쯧쯧"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야속하다.

"비가 오는데 비를 맞고 살아야 하는 개"나 "너무 짧은 끈으로 묶어놓고 키우는 개" 정도는  '급한' 축에 해당되지도 않는다. 순번으로 치면 거의 아래다. 이런 동물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의 복지적 조건조차 허락되지 않은 동물들이 수십 만 수백 만일진데 그들을 무슨 수로 구조한다는 것인가. 고작 6명의 직원들이 어떻게? 해당 동물을 급하게 구조하기 않으면 생명에 위협이 닥칠 것이 자명하다는 것은 예를 들어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견주는 개를 수시로 묶어놓고 쇠파이프로 가격하여 시도 때도 없이 피가 낭자하며 이웃이 이를 말리는 데도 해결이 되지 않는 경우.'

왼쪽은 식용으로 키워졌던 메리. 삽으로 눈을 맞은 이후 구조되었다. 오른쪽은 철사로 입이 꽁꽁 묶인채 구조되었던 주디. 학대범이 남자였는지 남자만 보면 입질을 하곤 했다.
 왼쪽은 식용으로 키워졌던 메리. 삽으로 눈을 맞은 이후 구조되었다. 오른쪽은 철사로 입이 꽁꽁 묶인채 구조되었던 주디. 학대범이 남자였는지 남자만 보면 입질을 하곤 했다.
ⓒ 동물자유연대

관련사진보기


동물보호활동가는 제보를 듣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해 결론을 빠르게 내려야 한다. 출동해 구조할 사건인가, 학대자는 어떤 성향을 가진 사람인가, 시정조치만으로 가능한가, 강하게 말을 해야 하나, 설득을 해야 하나, 경찰이나 공무원의 도움이 필요한가, 제보자에게 약간의 팁이나 방법만 알려주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인가.

단체의 인력과 재정, 사건을 해결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 그 사건이 단체의 전체적인 동물보호활동에서 차지하는 역할, 향후 미칠 영향 등등…. 우리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명확한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부드러움과 단호함, 약속한 것을 지키려는 신뢰성과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정확하고 정직한 답변.

모든 동물을 다 구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인간이 아닌 신이거나 사기꾼일 가능성이 있다. 천사라고 자처하며 수천 마리의 개들을 받아 '안락사를 하지 않는 천사들의 고아원'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보호소는 뚜껑을 열어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내가 이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

"누가 교통사고 당한 개를 동물병원에 버리려고 했는데 병원에서 안 받아주니까 개농장에 버렸어요… 구해주세요, 도와주세요."

지난 7일 밤 구조요청이 왔다. 구조 관련건에 있어서는 냉정하고 신중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내가 이 요청에 바로 응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그 개에게는 3가지의 고통이 한꺼번에 찾아왔기 때문이다. ▲ 교통사고를 당해 몸이 고통스러운데 치료조차 받지 못했다 ▲ 주인에게 버림받았다 ▲ 그 장소가 식용으로 개를 도살해 파는 농장이다.

개를 도살해 파는 농장에서는 개들에게 인도적인 죽음이나 배려를 하지 않는다. 동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옆에서 봐야 하고 그 고통에 찬 신음소리를 들어야 하고 발이 빠지는 뜬장에서 발바닥이 갈라지는 고통을 감수해야 하며 짜고 매운 잔반에 속이 타들어가는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무엇보다 언제 도살될지 모를 일이다. 동료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직감적으로 느끼는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공포.

다음날 아침에 그 개가 아직 농장에 있는지만 확인해 달라고 전화를 걸었다. 제보자는 그 개를 버린 주인이 자기가 동물을 학대한 것으로 고발당할까봐 걱정되어 연락처나 개의 상황을 잘 알려주지 않으려 한다고 전했다. 이런 경우 당사자를 고발하는 것보다 개의 안전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절대 보복을 하거나 고발하지 않을 것이며 그 개는 우리가 데려갈 것이고 치료도 하고 좋은 주인을 찾아 입양보내겠다고 전했다.

차를 타고 주소지를 찾아 근처까지 왔다. 그 농장을 알고 있다는 이웃 주민에게 물으니 "거기 좋은 개 없는데…"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사람이 말하는 좋은 개란 도살해 먹기 좋은 개를 의미한다.

농장에 접근하면서. 항상 현장에 접근할때면 긴장, 두려움..
 농장에 접근하면서. 항상 현장에 접근할때면 긴장, 두려움..
ⓒ 동물자유연대

관련사진보기


농장에 접근했다. 누렁이부터 발발이, 작은개, 큰 개 등 다양한 개들이 우리를 향해 짖어댔다. 개들이 짖자 주인이 나왔고 나는 개에 대한 설명을 했다. "그 개가 원래 우리 개였는데 잠시 맏겨놓은 분이 함부로 주어서 다시 찾으러 온 것이고 어쩌구저쩌구…." 그 개를 데려오기 위한 긴 변명을 쏟아냈다. 그런데 의외로 툭 나온 한 마디. 그냥 가져가라는 거다. "누가 교통사고 당한 개를 주워서 데려왔더라구요." "판게 아니구요?" "공짜로 주던데요." 본주인은 개가 교통사고를 당해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개장수에게 주면서 자신이 주인이라고 말하지 못한 것이다.

그 곳은 개를 식용목적으로 키우는 개농장이었다.
 그 곳은 개를 식용목적으로 키우는 개농장이었다.
ⓒ 동물자유연대

관련사진보기


어차피 업자의 입장에서도 이 개는 상업성이 없을 것이다. 몸을 다쳐 바짝 마르고 아직 어린 개는 당장 도살감은 아니다. 질병에 시름시름 앓다 어느 날 그냥 죽을 수도 있고, 좀 더 커져서 근수가 나오면 도살될 수도 있고, 어느 시점이든 그 개의 운명은 100% 개고기이다.

그 개를 발견했다. 첫눈에 알아본 두려움과 공포.
 그 개를 발견했다. 첫눈에 알아본 두려움과 공포.
ⓒ 동물자유연대

관련사진보기


길게 늘어선 견사안에서 녀석을 발견했다. 한눈에도 공포와 겁에 질려 움츠러든 개를 차에 태웠다. 생전 차는 타보았을까. 다행히 외상은 심하지 않았으나 뒷다리를 거의 쓰지 못하는 듯했다. 낯선 차 안에서 어리둥절 왔다갔다 하던 녀석은 어느 새 내 무릎에 턱을 괴고 엎드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 수많은 심리적 갈등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일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이 뜨거운 감동 때문이다. 상처받은 영혼과 영혼, 생명과 생명이 만나는 순간.

무릎에 턱을 괴고 쉬는 모습. 안전한 곳으로 가고 있음을 감지한 개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한다.
 무릎에 턱을 괴고 쉬는 모습. 안전한 곳으로 가고 있음을 감지한 개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한다.
ⓒ 동물자유연대

관련사진보기


         
세상에 고깃덩어리로 버림받은 너, 그러나 나에게는 영원한 왕자님

주인에게 버림받아 몸의 고통과 마음의 공포에 휩싸여 세상의 벼랑 끝으로 몰려있던 녀석에게 나는 왕자님의 이름을 지어주었다. 찰스. 세상은 아무 쓸모없는 고깃덩어리로 녀석을 버렸으나 나에게는 가장 존귀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개가 사람보다 더 좋아서도 아니고 동물이 인간보다 소중해서도 아니다. 동물이 인간보다 약자이기 때문이고 인간의 행동에 따라 결정지어지는 동물의 운명 때문이다. 태어난 모든 생명에게는 운명과 팔자가 있을지 모르나 그 운명이 인간에 의해 의도적으로 좌지우지 되고 그것이 고통과 학대로만 점철되어 마감된다고 하면 그 운명의 지침을 돌려줄 수 있는 것도 인간이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운명을 바꿀 수 없다. 우리 인간의 위대함은 바로 그 지점에 있다.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 약자를 향한 무한한 자비와 사랑을 베풀 수 있다는 것.

사람들은 간혹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정작 고마워해야 할 대상은 동물들이다. 사람들은 내가 동물을 구한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동물들이 나 같은 사람들을 구하는 것이다. 세상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무능력한 인간에게 삶의 의미를 주었다는 것.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바보 같은 인간이지만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누가 이 행복감을 상상이나 할까?

찰스는 총 6군데가 부러진 복합골절된 상태이다. 수술 후 경과를 보고 2차 수술까지 해야 한다. 그 이후 얼마나 회생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찰스는 총 6군데가 부러진 복합골절된 상태이다. 수술 후 경과를 보고 2차 수술까지 해야 한다. 그 이후 얼마나 회생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 동물자유연대

관련사진보기



태그:#동물보호운동, #동물구조, #동물학대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48,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동물을 위한 행동 Action for Animals(http://www.actionforanimals.or.kr)을 설립하였습니다. 동물을 위한 행동은 산업적으로 이용되는 감금된 동물(captive animals)의 복지를 위한 국내 최초의 전문단체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