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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에 무얼 먹을까 하다가 얼마 전에 알게 된 국수집으로 가 보았습니다. 시장 뒷길에 노부부가 17년째 운영하는 정감 있는 국수집이 있다는 말에 호기심이 발동한 거죠. 찾아가 는 길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골목이네요. 아이들이 막 뛰어 놀고, 비릿한 냄새도 풍겨오고, 간판도 정리가 안 되어 있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동네 시장의 뒷골목 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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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장골목 .
ⓒ 조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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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와 죽을 주로 판매 하시는지 입구에 풍선형 간판을 내놓으셨군요. 예전엔 무심코 지나치기 일쑤였는데, 이 일대에서는 젊은 사람들도 많이 찾는 국수집이라고 하더군요. 남편, 아이와 함께 들러서 먹고 가던 새댁이 그 국수 맛이 간절한데 애 돌보느라 못올 때는 남편 시켜서 한그릇 사오라고 하기도 한다는 그 맛, 궁금해지더군요.

주로 아저씨와 한창 혈기 왕성한 젊은 남자 손님들이 많은 탓에 혹여 국수 양이 부족할까봐 특별히 더 많이 주시기에 주머니 사정 변변찮은 학생들도 많이 찾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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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수집 간판 .
ⓒ 조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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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들어섰을 땐 가게 안이 한산했는데, 아저씨 한 분이 곧 들어와서 음식을 청하십니다.
바깥 쪽으로 음식을 만드는 주방이 보이네요. 호박 범벅, 동지 팥죽처럼 집에서 한 번 해 먹자면 큰 마음 먹고 난장판을 만들어야 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여기선 판매도 하고 포장도 해주시는군요. 원래는 할머니가 일하시는 저 곳에서 손님들이 좌판을 벌이고 먹었는데, 찾아오는 손님들로 자리가 부족해지자 맞은 편 점포 두 개를 얻어서 식당으로 쓰고 있다고 합니다. 식탁마다 잡지책과 신문까지 비치해 놓으셔서 혼자 오신 분들도 어색하지 않게 식사를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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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수집 풍경 .
ⓒ 조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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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가 많이 굽으시고 혈색이 좋지 못한 할머니가 국수를 삶으시는 바깥쪽 주방입니다. 곁에 있던 가게에서 주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계시던 할아버지는 주문이 하나 둘씩 밀려들자 얼른 주방으로 들어서서 국수를 삶고 간장을 그릇에 옮겨 담습니다. 할머니가 이리저리 거동이 불편하게 움직이시니 할아버지는 극구 앉아있으라고 말리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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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수 삶은 주방 .
ⓒ 조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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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장 안 국수집1 .
ⓒ 조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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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치국수 .
ⓒ 조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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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이 가까워 보이는 할아버지가 다 차려진 상을 힘들게 들고 가게 안으로 오십니다. 할머니도 뒤따라서 주전자를 들고 오십니다. 송구스러워서 얼른 받아들고 보니 국수의 양이 제법 많네요.

주전자에 담긴 국물을 국수에 부어서 먹기 시작합니다. 눅진한 국물로 보아 멸치와 돼지고기를 섞어서 끓인 후 기름은 걷어내신 것 같습니다. 이 더위에 육수를 고느라 얼마나 힘드셨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짠하네요.

앞에 앉으신 아저씨와 얘기를 나누시는 할머니는 아저씨가 무슨 일을 하는 분인지 물으십니다. 수퍼를 한다고 하시니까 곁에 계시던 할아버지가 만면에 웃음을 띄며, 자신들도 20 여 년 전에 86평 짜리 대형 슈퍼 체인을 했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당시 체인형 슈퍼가 한국에 처음으로 생겼을 때인데, 그런 낯선 시스템을 이용해서 물건을 훔쳐가는 경우도 많았다고 하네요. 하나씩 슬쩍 가져가는 사람도 있지만 큰 맘 먹고 자루를 들고 와서 물건을 싹쓸이 해 가는 사람도 있었는데, 전지분유와 커피를 제일 많이 잃어버렸다고 하십니다.

지금처럼 CCTV가 있을 때도 아니니 캐셔 직원들이 아무리 많아도 앞에서 계산하느라 정신 없다보면 그런 손님들을 감시할 겨를이 없었단 거죠. 하지만 노부부는 '그 만큼 그 물건이 필요했던 사람이 많았던 게지' 하시며 허허 웃으십니다.

그렇게 그럭저럭 슈퍼를 접고 이 국수집을 하시며 6남매를 키워오셨다는군요. 대학까지 다 보내고, 더 공부할 놈들은 대학원까지도 보내면서요. 자신들의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일이 바로 그거라고 너무나 푸근한 얼굴로 말씀을 하십니다. 더는 욕심이 없다고 하시는군요. 노부부는 단골 손님들이 국수를 드실 동안 옆에 앉아서 이야기 하는 즐거움에 얼굴이 밝아지십니다.

3500원짜리 국수를 맛있게 드신 손님들은 모두들 한결 같이 바깥 주방의 할머니께로 그릇을 내다 놓고 갑니다. 허리가 반쯤 굽고 힘이 별로 없어 보이시는 할머니께 국수를 받아먹는 것도 죄송스러운데 일부로 또 그릇을 치우러 건너오시도록 하기가 미안해서지요. 때마침 갓 스무살이 된 듯한 커플이 들어와서 자리를 잡고 앉네요. 오빠는 이런 데를 어찌 알았냐면서 아가씨가 애교를 부립니다.

국수를 좋아하지 않는 제게, 사실 썩 입맛에 맞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푸근한 이야기와 욕심없는 두 노부부의 인생 이야기를 살짝 들으며 음식이란 것이 맛으로만 먹는 것이 아니라 그 음식을 만든 사람의 정과 먹는 사람의 정이 합쳐져서 기억에 남는 맛이 된다는 걸 알게 된 듯합니다.


태그:#잔치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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