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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서울대 교수의 법 고전읽기'가 6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리고 있다.
 '조국 서울대 교수의 법 고전읽기'가 6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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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에 한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시민이 공중전화기에 5원짜리 동전을 넣고 전화를 하려고 했는데 전화기가 돈만 삼킨 채 통화가 되지 않았어요. 그러자 이 시민은 5원을 물어 내라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합니다. 개인적으로는 5원을 받기 위해 들어간 소송비가 더 많았던 비합리적인 소송이었지만 이 사람의 소송 이후 국가기관 전체가 시민의 요구에 대해 긴장하게 됐습니다. 결국 시민 전체가 더 나은 서비스를 받게 됐지요."

만약 당신이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경찰서에 잡혀가 팔을 꺾이는 고문을 당하며 거짓 자백을 요구받았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옳을까. 조국 서울대 교수는 지난 6일 오후 7시 30분에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법 고전읽기' 특강에서 "우리의 권리는 누군가 베풀어 주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시민이 스스로의 권리를 인식하고 그것이 침해되면 싸워야 지킬 수 있다"며 "그래야 공동체와 사회 전체의 권리가 신장된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루돌프 폰 예링의 <권리를 위한 투쟁>을 교재로 진행된 이날 강의에서 "국가 기관이 저지르는 불법행위가 가장 질이 낮은 것"이라고 설명하며 한국의 각종 사법살인 사례들을 예로 들었다. 조 교수는 "고대 로마나 페르시아는 물론이고 현대 독일 형법에도 사법 왜곡죄가 따로 있어서 법을 집행하는 자가 법을 어겼을 때는 따로 처벌한다"며 "왜 이런 법들이 따로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철저한 권리의식이 정치 발전 만들어

루돌프 폰 예링의 <권리를 위한 투쟁>
 루돌프 폰 예링의 <권리를 위한 투쟁>
ⓒ 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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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를 위한 투쟁>은 19세기 최고 법학자 중 하나인 독일의 예링이 법을 '사회적 목적을 위해 창조된 것', 권리를 '법적으로 보호되는 이익'이라 정의한 책이다. 그는 모든 법이 사회의 생존 조건을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법과 당대의 사회적 요구는 깊은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 예링은 이 책에서 소송을 통한 분쟁의 해결을 강조하며 권리를 찾기 위한 투쟁은 자신에 대한 의무인 동시에 사회 공동체에 대한 의무임을 지적하고 있다.

이 책은 2010년 한국 사회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조국 교수는 "예링이 법에 보장되는 당연한 권리를 찾기 위해 소송 등의 극단적인 수단을 강조, 종용했던 이유를 알아둘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책에서 예링은 영국인과 오스트리아인, 독일인을 비교합니다. 영국인은 여행 중 바가지요금을 요구받으면 단호하게 싸운다고 합니다. 필요하면 바가지요금보다 열 배나 많은 비용을 들이면서 바가지요금을 안 내겠다고 싸운다는 거죠.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이런 경우는 1/10도 안 되는데 그 이유는 말다툼을 해야 하는 불쾌감, 사람들의 이목, 오해의 가능성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예링은 이 얘기를 통해 독일인과 오스트리아인이 권리의식이 약하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영국인이 집요하게 다투는 몇 푼의 돈 속에 영국의 정치적 발전이 깃들어있다고 설명합니다."

예링은 당시 영국이 가진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가 시민들의 권리의식 때문에 발달할 수 있었다는 것을 포착했다. 그리고 그는 개인의 권리도 제대로 찾지 못하는 사람이 헌법파괴나 외적의 침략 등 국민 전체의 권리가 침해당하는 상황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할 수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법을 통한 개인의 권리 찾기가 공동체의 권리를 지켜내는 것과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분석이다.

조 교수는 "한국에도 개인의 권리를 찾는 것이 공동체에 이익을 줬던 사례들이 있다"고 말했다. 1980년 어느 백화점에서는 숙녀복 가격을 시중의 2배로 높게 책정한 뒤 50%할인이라고 선전하며 사실상 시중가격과 같게 판매했다. 이에 소비자 단체가 소비자 52명과 함께 백화점을 사기 혐의로 고발했고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진행한 결과 법원은 사기죄를 인정하고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일을 통해 국가기관에서는 백화점들의 공정 거래를 주시하는 움직임을 보였고 백화점에서는 사기죄로 처벌받는 것을 알게 되어 이런 일을 못 하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참여연대의 소액주주운동도 좋은 예입니다. 보통 주주의 대표소송에 필요한 지분은 0.05%이고 1% 지분만 모으면 장부 열람도 할 수 있습니다. 장부열람을 하는 사람이 없으면 기업은 자산을 조작하는 분식회계를 하기 쉽습니다. 막상 소액 주주에게는 별 이익이 되지 않지만 재벌을 견제하는 기능을 했지요. 권리를 위한 투쟁을 하게 되면 이렇게 여러 가지가 바뀝니다."

'가죽 벗기기' 해도 '날개꺾기' 계속할까?

조 교수는 "한국 사회의 권리 의식은 아직 빈약한 수준"이라며 얼마 전 양철경찰서에서 벌어진 '날개꺾기' 고문이 작동했던 원리를 묵비권을 통해 설명했다.

"우리에게는 진술하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보통 누군가 묵비권을 행사하면 사람들은 '뭔가 켕기는 게 있다', '유죄니까 묵비권 행사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그 사람을 비난합니다. 이런 행동은 권리의식이 약해서 일어납니다. 누군가 법에 보장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을 가로막으면 안 됩니다."

조 교수는 "보통 사람들이 피고로 재판정에 가면 검찰로 대표되는 국가 전체와 맞닥뜨리게 된다"며 "여기서 묵비권이 보장되지 않으면 국가 기관은 자백을 강요할 수 있게 되고 여기서 더 나아가면 고문도 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피의자의 권리를 무시해도 무방한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양천경찰서에서 군사 독재정권을 방불케 하는 '날개꺾기' 고문이 가능했다는 얘기다.

'권리의 화신' 예링은 일선 경찰서에서 '날개꺾기' 고문이 행해진 최근 한국의 풍경을 어떻게 보았을까. 조 교수는 "예링은 책에서 "관헌에 의한 법의 파괴는 시민에 의한 법의 파괴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했다"며 "고대 로마에서는 뇌물을 받은 재판관을 사형에 처했다"고 말했다.

"페르시아 왕 캄비세스는 재판관인 시암네스가 부패하고 판결을 잘못하자 그의 껍질을 벗기고 그의 가죽을 의자에 씌웠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에게 아버지 가죽의자에 앉아서 아버지가 하던 판결을 하게 만들었지요. 로마시대든 페르시아든 간에 법관의 불법은 훨씬 참혹하게 처리했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렇게 못하겠죠. 검사가 성접대를 받았다고 해서 껍질을 벗기고 이렇게는 못하겠지만 왜 고대시대에 이렇게 했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조국 서울대 교수의 법 고전읽기'가 6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리고 있다.
 '조국 서울대 교수의 법 고전읽기'가 6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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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 위한 투쟁 없이 법은 없다"

국민의 권리의식이 약해져서 국가의 폭력을 견제하지 못하면 멀쩡한 시민이 법에 의해 목숨을 잃거나 누명을 쓰기도 한다. 조 교수는 이러한 사법살인의 대표적인 사건으로 조봉암 사건과 수지 김 사건을 꼽았다.

조봉암 사건은 지난 1959년 7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정적이었던 죽산 조봉암이 대법원 재심신청이 기각 당한 지 18시간 만에 사형된 일을 말한다. 간첩죄로 구속된 조봉암은 1심에서 간첩혐의 무죄, 국가보안법 위반 유죄를 선고받았으나 검찰은 즉각 항소하며 동시에 조봉암의 변호인단을 구속했고, 조봉암은 2심에서 간첩죄가 인정돼 사형을 선고받았다. 

"최근 과거의 조작 간첩사건들이 계속 재평가 받고 있습니다. 수지 김 사건은 남편이 아내를 때려 죽여 놓고 간첩이라고 신고했더니 안기부에서 아내가 간첩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간첩으로 조작해 남편을 반공투사로 대접했던 사건입니다. 나중에 사실이 드러났지만 수지 김 집안은 이미 풍비박산이 난 후였습니다. 사법살인의 대표적인 예 중 하나죠."

조 교수는 마지막으로 "권리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예링의 말을 인용하며 "권리를 위해 투쟁하라"고 말했다. 

"독일어에서 '법'은 'Recht'이라고 씁니다. 하지만 이 단어는 권리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법과 권리는 떨어질 수 없는 겁니다. 법치 사회는 시민에게 권리가 있고 그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사회입니다. (권리를 위한) 투쟁 없이 법은 없습니다."


태그:#조국, #법 고전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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