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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에 들어서자 여름이 거침없이 본색을 드러내 한낮에는 기온이 30도를 넘나드는 숨막히는 날씨다. 이런 날 산행을 한다면, 더구나 피서를 위한 산행이라면 어디 강원도의 심심유곡 계곡물이 흐르는 산속을 찾아가나 보다 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찾아간 곳은 다름 아닌 서울의 북악산이다. 이 산을 오르는 길은 다양한데 여름에 걸어 오르기 좋은 산행길은 딱 한 코스뿐이다.

숨숨 턱턱 막히는 더운 여름날, 시원한 얼음방석 같은 바위에 주저앉아 상쾌한 계곡물에 발을 담가가며 쉬엄쉬엄 오르는 산행의 즐거움. 날씨가 무더울수록 햇살이 뜨거울수록 쾌감이 커지는 이런 느낌은 미천골, 아침가리골 같은 멀리 강원도 오지 산골에 가야만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북악산의 맑고 깨끗한 냇물이 흘러 내리는 동네 종로구 홍지동의 세검정에서 출발하여 믿기 힘들게 청정한 백사실 계곡을 거쳐 북악산 팔각정이 있는 하늘길을 걷는 산행길이 그런 곳이다. 명색이 산행이지만 물을 가득 채운 수통과 김밥 두 줄, 교통카드 한 장만 있으면 되는 발걸음이 가볍기만 한 길이다.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텃밭이 있는 푸근한 동네가 종로구 북악산 자락에 있다.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텃밭이 있는 푸근한 동네가 종로구 북악산 자락에 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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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이 따로 필요없는 동네에서 아이들은 마땅한 놀이 기구 없이도 마냥 즐겁게 뛰놀고 있다.
 공원이 따로 필요없는 동네에서 아이들은 마땅한 놀이 기구 없이도 마냥 즐겁게 뛰놀고 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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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화 수퍼'가 있는 동네

버스를 타고 세검정 정류장에서 내려 가까이에 있는 세검정(洗劍亭) 정자를 향해 걸어간다. '칼을 씻는 정자'라는 뜻의 한자 이름을 보니 평범한 정자가 아니다. 이곳은 조선 영조 24년(1748년)에 세운 것으로, 인조 반정 때 거사 동지인 이귀·김유 등이 이곳에 모여 광해군 폐위 결의를 하고 칼을 씻었다 하여 이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세검정이 보이고 북악산 자락의 작은 동네로 들어서자 발아래로 냇물이 흘러간다. '인간을 구제한다'는 뜻을 지닌 홍제천의 상류다. 내가 사는 동네의 불광천과는 차원이 다른 맑은 물이 흐르는데 서울이 아닌 멀리 시골 마을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 옆에 나란히 서있는 지붕 낮은 집들 또한 번잡한 도심 종로구에서는 느낄 수 없는 수수함이 묻어나 좋다. 어느 동네에나 있을 법한 작은 수퍼와 마주쳤는데 가게 이름이 '근대화 수퍼'다. 현대화의 상징인 도시 서울에서 만난 근대화 수퍼가 왠지 반가워 가게 안에 들어가 주인 아주머니에게 북악산 길을 여쭤보기도 하고 간식으로 먹을 삶은 계란 한 줄도 샀다.   

동네의 또 다른 작은 가게인 자하슈퍼를 지나면 길 오른쪽 골목 입구에 '불암(佛岩)'이라는 글자가 한자로 새겨진 바위가 있다. 이 부처님 바위를 끼고 골목길 위로 올라가면 부암 어린이 집이 보이고 비로소 골목을 벗어나 북악산으로 오르게 된다. 매끈하고 커다란 바위와 그 위로 미끄러지듯 콸콸 흐르는 물소리가 곧이어 계곡이 나타날 것임을 알려준다. 세검정 버스 정류장에서 채 30분도 걷지 않았는데 이런 풍경을 만나다니 '여기가 서울시 종로구 맞나?' 혼잣말로 짧은 우문을 던지게 한다.  

어디서 강아지와 아이들이 떼지어 노는 소리가 들려와 보니 대여섯 살의 동네 아이들이 모여 자기들끼리 혹은 강아지와 함께 뛰어다니며 새들처럼 지저귀고 있다. 서울 여느 동네에 있는 공원은 없지만 동네의 자연적인 공원에서 아이들이 티없이 떠들고 노니는 모습을 참 오랜만에 본다.

도심속의 두메 산골은 무더운 여름날에 찾아가니 더욱 상쾌하고 시원하다.
 도심속의 두메 산골은 무더운 여름날에 찾아가니 더욱 상쾌하고 시원하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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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계곡물에 맨발을 담는 순간 폭염도 높은 불쾌지수의 날씨도 모두 용서가 된다.
 시원한 계곡물에 맨발을 담는 순간 폭염도 높은 불쾌지수의 날씨도 모두 용서가 된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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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가 사는 두메 산골

집들과 절이 있는 동네를 벗어나 작은 오솔길 같은 산 들머리에 들어서자 나무에 붙여 놓은 안내 팻말이 맞아준다. '산에 멧돼지가 살고 있으니 주의 바람' 300여미터의 높지 않은 산에 무슨 멧돼지가 살까? 했으나 수백 년된 나무들로 울창한 초록의 숲속에 들어서자 멧돼지보다 더한 짐승도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장마 전이라 가물었을 텐데도 계곡물이 끊기지 않고 숲속 가득히 맑은 물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다. 더운날 등산화 속에서 힘들었을 발을 꺼내 흐르는 물속에 담그니 모두들 혀를 내두르던 폭염과 뜨거운 햇살이 그만 스르르 용서가 된다. 물속에는 작은 송사리들이 단체로 돌아다니고 올챙이 같기도 하고 도롱뇽 같기도 한 작은 발이 달린 귀여운 물짐승이 신기해 가만히 관찰하며 1급수 물이 흐르는 계곡에 앉아 쉬어간다.

이곳은 '백석동천(白石洞天)'으로 불리는 곳인데 '백석'은 '백악' 즉 '북악산'을 말한다. '동천'이란 경치가 아주 뛰어난 곳에 붙이는 자구로 이곳이 옛부터 알아주던 절경이었다는 표시다. 그러니 '백석동천'은 '북악산에 있는 경치 좋은 곳'이 되겠다. 주민들 사이에는 옛부터 '백사실 계곡'이라 불리는 곳이기도 하다.

처음 온 사람은 길이 없는 줄 알고 돌아가는 그런 울창한 숲과 계곡에 작은 오솔길이 희미하게 나있다.
 처음 온 사람은 길이 없는 줄 알고 돌아가는 그런 울창한 숲과 계곡에 작은 오솔길이 희미하게 나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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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강원도의 어느 두메 산골에 들어온 것 같은 깊은 숲과 계곡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별 노력도 없이 이런 숲속에 들어오니 괜히 미안하고 심신이 호강하는 기분이다. 숲속의 옹달샘 같은 아담한 연못가에 서서 연못속에 잠긴 고요한 산속 풍경을 감상해 본다. 들리는 건 물소리와 새소리, 살랑살랑 불어오는 싱그러운 바람소리뿐이다.

요즘 같은 때엔 숲이 초록의 수풀로 더욱 풍성해져 북악산을 향해 오르는 작은 오솔길이 묻힐 듯이 희미하게 보인다. 처음 온 사람들은 더 이상 길이 없는 줄 알고 돌아가기도 한다. 길 옆으로 무성하게 자란 갖가지 풀들이 반바지 차림의 다리를 간지럽히기도 하고 따끔거리게도 한다.  

한 사람이 걸어가기 딱 좋은 오솔길을 걷다보면 시골 민가집 같은 수수한 집들이 나온다. 소박한 비닐하우스도 보이고 돌담너머 텃밭에는 호박, 옥수수, 고추 등이 정성스레 심어져 있다. 이제 길은 계곡을 벗어나려는 듯 오른쪽으로 나있고 이 길을 따라 올라가면 북악산 팔각정을 향하는 능선길인 북악 하늘길을 만나게 된다.

북악산 꼭대기의 능선길 쉼터마다 주민들이 애용하는 운동기구가 갖춰져 있어 힘들게 오른 내 체력을 부끄럽게 한다.
 북악산 꼭대기의 능선길 쉼터마다 주민들이 애용하는 운동기구가 갖춰져 있어 힘들게 오른 내 체력을 부끄럽게 한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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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 하늘길에도 푸르른 수목이 그늘을 드리워주니 따가운 햇볕이 힘을 못쓴다.
 북악 하늘길에도 푸르른 수목이 그늘을 드리워주니 따가운 햇볕이 힘을 못쓴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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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 곁에 다가온 북악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북악 하늘길은 북악 스카이웨이라 불리며 갓길도 없는 자동차 전용의 유명한 드라이브 코스였다. 세상이 점점 좋아져 차길 옆에 북악 하늘길이라는 산책로가 생기면서 성곽길도 나고 북악산은 시민들에게 친근한 산이 되고 있다. 북악산길 곳곳에 있는 군부대들도 예전처럼 두렵게 느껴지지 않는게, 산행 중에 물이 떨어졌다고 물을 좀 부탁하면 수통을 가득 채워주는 대민봉사(?)도 기꺼이 해준다.

흙길과 나무데크길로 잘 닦인 북악 하늘길은 차길 옆과 숲길 속을 오르락 내리락 하며 나있는데 그리 힘들지 않고 걸을 수 있는 산책길 같다. 다행히도 산책로가 짙푸른 나뭇잎에 가려 한 여름 따가운 햇볕이 힘을 못쓰니 이런 날씨에 나무 그늘이 고맙기만 하다.

북악산 팔각정을 지나면 산책길은 종로구에서 성북구로 넘어가게 된다. 성북구 구민회관까지 이르는 3.4km의 산책로는 숲속 오솔길을 걷는 듯한 포근함이 느껴지며 곳곳에 놓인 전망대와 운동기구들이 있는 쉼터가 있어 아기자기한 재미와 탁 트인 서울의 하늘을 감상하기 좋은 길이다. 북악 하늘길의 끝인 성북구민회관까지 가서 마을버스를 타고 5분 거리에 있는 4호선 전철 한성대 입구역에서 내리면 된다.

북악 하늘길에서는 북한산 형제봉 가는 길이나 서울 성곽길도 교차하니, 다음번엔 북악산에서 북한산까지 두개의 산 등정에 도전해 봐야겠다.

세검정 버스 정류장에서 백사실 계곡 - 북악산 하늘길 - 팔각정 - 성북구민회관 까지의 북악산 여름 산행코스
 세검정 버스 정류장에서 백사실 계곡 - 북악산 하늘길 - 팔각정 - 성북구민회관 까지의 북악산 여름 산행코스
ⓒ N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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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2010 이 여름을 화끈하게! 응모'
- 수도권 전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로 나와 1711, 1020, 0212번 버스를 타고 세검정에서 하차



태그:#북악산, #백사실계곡, #북악하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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