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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의 국가권력은 전쟁 상황을 이용하여 마을 주민들에게 어느 한쪽을 분명히 선택하도록 함으로서 충성도를 높이고자 했다고 볼 수 있다. 남북의 국가권력이 마을 주민들을 동원하여 직접 학살에 나서도록 몰아간 것은 주민들로 하여금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도록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어느 한쪽 편에 서서 다른 쪽을 학살하는 행위는 곧 자신의 목숨을 어느 한쪽에 맡기는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책 속에서)

 

한국전쟁 60년. 아직도 전쟁의 상흔은 도처에 남아 있다. 살아 있는 이들의 가슴엔 씻을 수 없는 멍울이 남고, 죽은 이들의 영혼은 안식처를 찾지 못한 채 구천을 떠돌고 있다. 한국전쟁동안 한반도 전역에서 민간인 학살은 광풍처럼 자행되었다. 국가 권력에 의해서, 국가권력과 직, 간접적으로 개입된 민간인들에 의해서.

 

한국전쟁 당시였던 1951년 피카소는 <한국에서의 학살>이란 그림을 통해 한국전쟁의 참상을 고발했다. 스페인의 게르니카에서 벌어진 나치 학살극을 고발한 <게르니카>의 배경이 되었던 학살이 1500명 정도였다. 최소 10만에서 최대 수십만으로 추정되는 한국전쟁 당시의 민간인 학살에 비한다면 게르니카의 학살은 한반도의 숱한 민간인 학살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왜 이런 엄청난 일이 벌어졌을까. 한 마을 또는 이웃 마을에 살면서 동고동락하던 보통 사람들조차 학살에 가담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배경이 무엇이었을까. 전쟁의 최전선이 아닌 후방 마을에서 벌어졌던 수많은 학살의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이런 의문을 풀기 위해 저자는 마을로 들어갔다. 그리고 마을 주민들의 구술 증언을 모았다.

 

국가권력의 개입과 복합적 갈등 구조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 과정에서 드러나는 마을 사람들의 갈등 구조는 이념과 좌우대립이라는 단순한 도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도 많다. 양반과 평민으로 구별되던 신분 갈등, 지주와 소작인(혹은 머슴)으로 구별되던 계급 갈등, 친족 내부의 갈등, 마을 간의 갈등, 기독교도와 사회주의자 사이의 종교 또는 이념 갈등, 독립운동 세력과 친일 세력의 갈등 등 다양한 갈등 구조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복합적 갈등구조 중에 어떤 요인이 민간인 학살에 더 직접적 영향을 주었는지는 지역에 따라 처한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르다. 갈등은 있었지만 학살로 이어지지 않은 곳도 있고, 마을 주민들끼리, 심지어는 일가 친족끼리 죽고 죽이는 학살로 이어진 곳도 있다.

 

이런 갈등은 왜 극단적 민간인 학살로 이어졌을까. 남북한 국가권력의 강제가 큰 역할을 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해방 후 수립된 남북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충성도는 높지 않았다. 둘 다 분단정부라는 한계가 있었고, 남과 북 모두 좌우 대립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 속에서 한국전쟁 중 남북의 국가 권력은 직, 간접적으로 민간인 학살에 개입했다고 설명한다. 이런 배경 속에서 마을 주민들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강요당했다.

 

구술을 통한 역사의 복원

 

구술에 의한 역사 연구는 한계가 있다. 구술 자체가 주관적일 수밖에 없고, 왜곡된 기억으로 남아 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주관적이고 왜곡된 형태로 기억될 수밖에 없었던 배경까지 관심 영역을 넓혀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극한의 대립 속에 기록조차 남기기 어려웠던 참혹한 시절의 역사를 복원하기 위해서 구술의 채록을 통한 역사 연구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국전쟁 연구도 마찬가지다. 전쟁 당시 20세였던 분들이 80세가 된 현실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덧붙이는 글 | 박찬승/돌베개/2010.6/17,000원


마을로 간 한국전쟁 - 한국전쟁기 마을에서 벌어진 작은 전쟁들

박찬승 지음, 돌베개(2010)


태그:#한국전쟁, #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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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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