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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6울 30일 어제까지 마산 시민이었지만, 법에 따라 하룻밤새 제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창원 시민이 되었습니다. 창원으로 이사를 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마산, 창원, 진해를 합치는 행정구역 통합을 묻는 주민투표조차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과 행정안전부 관료들 그리고 한나라당 국회의원들과 마산시의원들의 뜻에 따라 7월 1일부터 창원시민이 되었습니다.

저희집 주소는 '마산시 산호동 OO아파트'에서 '창원시 마산합포구 산호동 OO아파트'로 바뀌었습니다. 여러 지역에서 사람들이 모이거나 다른 지역에 가면 "어디서 왔냐?"는 질문을 많이 받게 되는데, "창원에서 왔습니다"라는 대답이 선뜻 나올지 자신이 없습니다.

마산시청 홈페이지입니다. 부지런한 관리자가 벌써 창원시로 바꿔놓았습니다. 중요한 자료는 통합창원시 홈페이지로 옮겨가고, 옛 마산시청 홈페지는 마지막 모습 그대로 인터넷 박물관(혹은 기록관)으로 남기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마산시청 홈페이지입니다. 부지런한 관리자가 벌써 창원시로 바꿔놓았습니다. 중요한 자료는 통합창원시 홈페이지로 옮겨가고, 옛 마산시청 홈페지는 마지막 모습 그대로 인터넷 박물관(혹은 기록관)으로 남기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 이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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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마산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모두 마산에서 다녔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 지금 일하는 단체에서 20년가까이 일하고 있어 군대 기간을 제외하면 마산을 오랫동안 떠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그러고 보니 우물안 개구리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오랫동안 마산에 살았지만 마산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대학생이 되고 난 후부터 입니다. 소위 운동권 학생이 된 후에 3·15와 10·18을 자랑스러운 역사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지역운동 하면서 마산시민으로 정체성 생겨

아울러 본격적으로 마산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 것은 시민운동을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지방자치가 시작되고 시민운동이 본격적으로 '지역'이라는 과제를 놓고 고민하면서 저도 제가 사는 지역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당시 YMCA 활동가들은 미국 시애틀 지역운동 사례를 공부하면서 '살기 좋은 지역사회 만들기'를 중요한 운동과제로 삼았습니다. 제가 일하는 단체 회원들과 함께 제가 살고 있는 지역을 놓고 고민을 쌓아갔습니다.

"마산 앞바다가 깨끗해졌으면 좋겠다."
"21세기에는 마산도 이런 도시가 되었으면 좋겠다."(21세기는 생각보다 참 빨리 왔습니다)
"마산에도 도심지에 공원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바닷가를 산책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더 이상 바다를 매립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무 높은 고층 아파트는 짓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학산 꼭대기에 철탑을 세워 바다 조망을 막지 않았으면 좋겠다."
"옛 한국은행 터에 멋진 도심공원을 만들면 좋겠다."
"임항선 철길을 잘 활용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공장을 그만 짓고 근대 역사와 문화유산을 지역 자원으로 개발하면 좋겠다"
"아파트를 그만 짓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도시개발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도심을 흐르는 하천이 깨끗해졌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시민운동을 하는 동안 마산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더 깊어진 것 같습니다. 이렇게 관심과 애정이 깊어졌기 때문에 '마산'이라는 지명이 없어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남들보다 더 컸던 모양입니다.

7월 1일부터 새로 출범한 (통합)창원시 지도입니다.
 7월 1일부터 새로 출범한 (통합)창원시 지도입니다.
ⓒ 이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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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아버지는 사십대 중반에 고향을 떠나 마산으로 오셨습니다.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마산을 고향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마흔 중반이 된 저는 마산을 고향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마산시라는 이름이 없어지고 창원시민이 되어도 앞으로도 마산을 고향으로 기억할 것 입니다.

그러나, 지금 십 대인 제 아이들 고향은 창원이 될 것 입니다. 지금 당장은 제 아이들도 어색하겠지만, 제가 초등학교 시절 마산으로 이사와 마산을 고향으로 여기게 된 것처럼, 제 아이들은 창원을 고향으로 두게 될 것 입니다.

오랜만에 결론도 없는 글을 주저리 주저리 써봅니다. 내 마음의 '고향'이 없어지는 것 같은 허전함이 참 크기 때문입니다. 바다도 산도 건물도 사람들도 모두 그대로이지만 주소 첫 머리가 '창원시'로 바뀐 것 뿐인데도 아쉬움과 허전함을 쉽게 지울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나면 제 스스로 자연스럽게 '창원 시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제 기억으로 제가 태어난 도시에서 살았던 햇수보다 마산에서 살았던 햇수가 많아졌을 때, 마산을 고향으로 여기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고향에 대한 정체성이 바뀌려면 물리적으로 그만큼 긴 시간을 그 도시에서 살아야 가능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한 사십 년 가까이 마산시민으로 살았으니 앞으로 한 사십 년쯤 창원시민으로 살아가면 자연스럽게 창원을 고향으로 여기게 될까요?

창원시민이된 첫 날, 통합시 출범을 축하하는 각종 행사가 열리는 모양인데, 저는 조금도 기쁘지 않습니다. 앞으로 창원 시민으로 사는 것이 저에게도 그리고 저와 함께 같은 날 창원시민이 된 옛 마산 시민들에게도 기쁜 일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창원, #마산, #진해, #행정구역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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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YMCA 사무총장으로 일하며 대안교육, 주민자치, 시민운동, 소비자운동, 자연의학, 공동체 운동에 관심 많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2월 22일상(2007), 뉴스게릴라상(2008)수상, 시민기자 명예의 숲 으뜸상(2009. 10), 시민기자 명예의 숲 오름상(2013..2)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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