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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일 오후 2시 강원도교육청 6층 대강당. 취임식 연단에 선 민병희 강원도교육감(56)의 첫 마디는 다음과 같았다.

 

"강원교육을 바꾸라는 벅찬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민 교육감이 선거기간에 내놓은 4대 공약은 ▲ 친환경 무상급식 ▲ 고교 평준화 추진 ▲ 혁신학교 설립 ▲ 학생인권조례 제정이었다.

 

강원교육에 일대 변혁이 예고되고 있다. 낙오자 없는 '모두를 위한 교육'을 펼치려는 해방 후 첫 시도다. 키를 잡은 선장은 전교조의 핵심 인물로 알려졌던 민병희 신임 강원도교육감.

 

74년 정선여중 수학교사로 교직에 첫 발을 뗀 그는 전교조 강원지역 대표인 지부장을 2, 3, 6대에 걸쳐 3번이나 맡은 해직교사 출신 교육운동가다. 2002년부터 8년에 걸쳐 강원도 교육위원을 맡으면서 교육 관료들로부터 '민병희 입만 틀어막으면 돼'란 뒷말을 남길 정도로 맹활약했다. 이 기간은 이번에 낙마한 전임 한장수 교육감의 재직기간과 일치한다.

 

민 교육감이 펼치려는 강원교육의 신세계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취임식을 5일 앞둔 지난 6월 26일 그는 "강원교육 슬로건과 교육지표인 '모두를 위한 교육', '행복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 고교 평준화와 혁신학교를 실현하고 일제고사를 폐지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특히 그는 오는 7월 13, 14일 실시를 앞두고 지나친 시험 준비교육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일제고사(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에 대해 "정부에서 법규를 만들어 치르는 시험이라 당장 없앨 수는 없지만 학생과 학부모의 시험 선택권을 보장할 것"이라고 약속해 교과부와 충돌이 예상된다. 실제로 현 정부 들어 일제고사 선택권 등을 보장해 해직당한 교사가 강원도에서만 4명을 비롯해 12명에 이른다.

 

그는 또 "일제고사로 해직된 교사 4명에 대해 항소를 포기하고 9월 1일자로 재심을 열어서 바로 복직시키겠다"고 말했다. 민 교육감과의 인터뷰는 1일 오전 11시 40분부터 춘천시 청소년수련관에서 진행됐다.

 

6월 2일, 그가 덩실덩실 춤춘 이유

 

- 당선이 확정되었을 때 점잖은 교육감답지 않게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왜 그랬나?

"아이들과 선생님, 학부형 이렇게 교육 3주체를 위해서 교육다운 교육을 해볼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어깨춤이 나왔다.(웃음)"

 

선거 다음 날인 6월 3일 민 교육감은 '강원도민과 강원교육가족들에게 보내는 글'에서 "강원교육을 바꾸라는, 이 가슴 벅차고 위대한 변화를 저에게 맡겨주신 점,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면서 "도민여러분들에게 새로운 강원교육으로 보답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사실 예비후보 시절에 그만두려고도 하지 않았나.

"돈이 문제였다. 선거조직 꾸리기도 쉽지 않았고… 떨어지면 나를 도와준 여러 선생님들 앞에 많은 누를 끼치는 건데. 잠을 못 자고 고민을 많이 했다."

 

- 결국 선거전에 뛰어들어 이겼다. 이긴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준비된 교육수장에 대한 도민들의 믿음 때문이었다. 물론 교육감이 되려고 준비한 것은 아니었다. 올바른 교육을 위한 염원으로 해직되고 복직되고 교육위원 활동하고. 이런 20년 이상의 교육운동 속에서 도민들에게 다가가는 교육정책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내가 이긴 요인은 진정성이었다. 6번의 방송 토론을 통해 '저 후보가 아이들을 사랑한다', '현재 잘못된 교육을 혁신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 취임식을 앞두고 화분을 보내지 말라는 공문을 각 학교로 보냈는데.

"당선되고 나니 화분이 꽤 많이 들어왔다. 한 100개 이상일 것이다. 이광재 강원도지사 당선자 것이랑 합쳐서 아름다운가게에 보냈다. 경매를 해서 그 돈을 갖고 좋은 곳에 쓰라고 했다. 취임식 날 오실 분들이 오셔서 축하한다는 말만 하면 되는 것이지 화분까지 갖고 올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것들은 낭비 문화다."

 

"7월 일제고사, 학생 학부모 선택권 보장할 것"

 

- 당장 눈앞에 다가온 7월 초중고 일제고사 얘기부터 해보자. 이번 일제고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

"초등학교부터 한 차례 시험으로 등수를 매기는 순간 교육은 죽는다. 모두가 이기는 교육을 하는 것이 나의 꿈이다. 하지만 불필요한 마찰은 피하려고 한다. 일제고사는 없애고 표집평가(모든 학교가 아니라 표본으로 뽑은 학교만 평가하는 방식)로 해야 한다는 게 공약이었다. 그런데 법규를 검토해보니 이번 일제고사는 국가수준이라 (교육청 차원에서) 거부할 수 없는 것으로 나왔다. 앞으로 교육감협의회를 통해 교과부장관에게 폐지를 건의할 것이다."

 

- 마찰을 피하기 위해 일제고사 폐지라는 공약을 처음부터 어기겠다는 말인가.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하려고 한다. 우선 외국처럼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권을 존중하겠다. 이런 것을 교과부 장관도 막으면 안 될 것이다. 학생이 시험 기간에 체험학습이나 수업을 하든지, 시험을 보든지 원하는 대로 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교과부에서 성적을 발표하더라도 교육청별 학교별 비교해서 문책하거나 교원의 근무평정에 반영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 체험학습을 안내하는 등 선택권을 준 교사 12명이 해직된 사례가 있다. 이번에 학교나 교사 차원에서 선택권 안내문을 보내도 된다는 얘긴가.

"체험학습 안내문을 보내도 된다, 안 된다 차원의 것이 아니다. 강원도교육청 차원에서 선택권을 주는 것이다."

 

- 내년 3월 또 다른 일제고사인 교과학습진단평가는 어떻게 할 것인가?

"3월 진단평가는 시도교육청 연합 시험이다. 일제고사 방식은 폐지할 것이다."

 

- 일제고사로 해직된 교사가 강원도에서 4명이나 된다.

"동해에서 해직된 교사 중 한 명이 내 제자다. 춘천여고에서 해직될 때 눈물로 나를 보낸 그 제자가 교사가 된 뒤, 일제고사 때문에 해직을 당했다. 1심 판결도 나와 있는 만큼 내가 취임하면 바로 항소를 포기할 것이다. 교육청에서 재심을 열어서 결정하겠다. 법원 판결 취지대로 9월 1일자로 복직시킬 것이다. 해직사유가 아니었으니까 밀린 임금 지급하고…."

 

- 민주노동당 후원 의혹 건으로 이 지역 교사 1명도 징계위에 회부된 상태인데.

"교육청이 징계위원회에 징계의결을 요청한 상태인 걸로 안다. 공소시효가 지난 것에 대해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징계 결정을 연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 교사의 정치활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개인적인 생각은… 정치적 중립이라고 하는 것은 정치권력이 개입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로 시작된 것이었다. 정치활동은 교사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갖는 권리다. 대학교수는 인정을 해서 맘대로 정치활동하게 하고 초중등교사는 못하게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물론 어떤 내용이든 간에 학생들에게 자기 정치적 목적을 설파하는 행위는 안 된다. 옛날엔 교사들이 여당 찍으라고(하면서) 다니곤 했지 않았나.(웃음)"

 

"부끄러운 교복, '똥통학교'란 업신여김 없앨 것"

 

 

- 평준화를 요구하며 단식투쟁하던 분이 교육감이 되었다.

"정확히 얘기하면 고입선발고사를 막기 위해서 2005년 10월에 13일 동안 단식했다. 결국강원도교육위원회 차원에서 총의를 모아 한장수 당시 교육감의 행동을 막았다."

 

- 춘천, 원주, 강릉지역에 2012년부터 고교 평준화를 실시하겠다고 공약했는데.

"취임하자마자 평준화추진위 바로 꾸려서 타당성 조사를 할 것이다. 공청회와 설문조사 작업을 공정하게 벌인 뒤 과반수가 찬성하면 바로 제도 개선작업에 착수할 것이다. 이전 조사결과를 볼 때 2/3 이상이 찬성할 것이라 보고 있다. 평준화는 교육감 고유권한이라 올해 안에 판단해서 1년 예고를 거친 뒤 2012년에 적용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 일부 명문고교 동문들이 반대운동을 펼칠 것으로 보이는데.

"반발이라? '평준화 실시'를 명확히 하고 주민 직선으로 당선되었기 때문에 이 분들 명분이 약할 것이다. 반발하면 그분들한테 텔레비전 토론 등을 제안해서 주민들이 판단하도록 하고 수긍하게 할 것이다. 심한 반발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민 당선자 스스로 명문고라는 춘천고 출신인데 평준화해서 모교 망가뜨린다는 얘기 나오지 않겠나.

"얼마 전 춘고 동문회 기수별 테니스대회 갔는데 한 임원이 공개 석상에서 '민 당선자가 평준화 한다는데 큰일났다'는 발언을 하더라. 참석자들이 다 웃었다. 그 웃음의 의미는 평준화에 대한 이해를 나타낸 것이라고 생각했다."

 

- 최근 삼성전자 고문이란 분이 '평준화로 인재를 기를 수 없다'고 말하고, 일부 언론이 이를 대서특필했다.

"인재란 말에 대해 재조명해야 한다. 성적 높고 출세가도만 달린 자가 인재인가. 자기 희생 속에서 여러 사람을 위하는 사람들이 인재인가. 자기 몸만 생각하는 인재는 해악을 가져온다. 한 명의 인재가 10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말이 있는 모양인데, 10만 명을 착취할 수도 있다. 명문고를 망가뜨리는 것이 평준화가 아니라 명문고도 살고 다른 고교도 살리는 게 평준화다. 자기 학교 교복이 부끄러워 밖에서 입지 못하는 아이들, '똥통학교'라고 업신여김을 당하는 학생들의 마음을 이해한다면 평준화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사교육 여건 불리가 오히려 장점이란 것 보일 것"

 

- 특수목적고인 양구외고, 자립형사립고인 민족사관고와 같은 특수한 학교들도 있다. 이들 학교를 어떻게 보고 있나.

"올해 개교한 양구외국어고는 이미 설립된 것이다. 하지만 입시위주 교육만 한다면 설립 취지에 맞지 않다. 이에 대해 주시하고 적절한 지도를 할 것이다. 민족사관고는 강원도 학교로 치지도 않고 있다. 강원도 학생도 거의 없고 이전에도 지도감독도 해오지 못한 것 같다. 이에 대해서는 더 연구 검토할 것이다."

 

- 강원도가 대체로 교육에서도 보수적인데...

"걱정하지 않고 있다. 태클 들어오면 토론하고 소통하려고 한다. 무엇보다 화합의 장을 많이 마련할 것이다."

 

- 마지막으로 취임하면 어떤 자세로 일할 것인지 말해 달라.

"우리교육청 슬로건이 '모두를 위한 교육'이다. 뒤떨어진 학생들도 보듬어서 행복한 학교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점수만을 위해 진행하는 문제풀이식 반복학습은 학습능력과 수월성을 심각하게 침해한다. 공교육을 통해서도 창의성과 협동능력을 키울 수 있는 혁신학교를 만들어나갈 것이다. 사교육 여건이 불리한 것이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드리겠다. 친환경 무상급식은 물론 무상교육을 확대해서 '강원도에서 교육받는 것이 행복하다'는 말이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태그:#민병희, #강원도교육감, #참교육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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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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