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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3, 14일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일제고사)를 앞두고 교육현장의 파행현상이 극에 달하고 있다. 일제고사를 반대한다는 경기교육청 산하 초등학교에서 시험봐서 때리거나 목숨걸고 일제고사 대비하자는 펼침막이 백주대낮에 등장했다.

충북 지역의 일제고사와 보충수업에 대한 의견을 묻는 판에 많은 시민들이 호응해주었습니다. 심지어 대체 어떤 사람이 찬성을 했냐고 와서 묻는 초등학생들도 있었습니다
 충북 지역의 일제고사와 보충수업에 대한 의견을 묻는 판에 많은 시민들이 호응해주었습니다. 심지어 대체 어떤 사람이 찬성을 했냐고 와서 묻는 초등학생들도 있었습니다
ⓒ 시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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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니 일찍이 교육과정 파행에 '모범'을 보여 교과부에서 우수교육청으로 칭찬받고 일제고사 점수가 올랐다고 선거 때 자랑하고 재선까지 된 충북은 말할 것도 없다. 거의 모든 학교에서 보충수업과 문제풀이는 기본이고 심한 학교에서는 야간자율학습, 학력상 부활, 놀토 등교가 성행하고 있다.

시험 지옥에서 우리 아이 구출하기 위한 부모 선언 나서

이런 현상을 보다 못한 충북 시민들이 "시험지옥으로부터 우리 아이 구출하기 충북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을 만들어서 직접 행동에 나서고 있다. 지난 주말부터는 "시험지옥에서 우리 아이 구출하기 부모선언" 거리서명운동도 진행하고 있다. 시민모임은 7월 6일까지 서명을 받아 도교육청에 시정을 요구할 계획이다.

6월 27일 청주성안길에서 시민모임이 서명을 받고 있다. 학부모는 서명하고 초등학생들도 와서 이야기하는 등 호응이 너무 좋아서 그만큼 일제고사에 고통받는 시민과 학생들이 많다는 걸 알 수 있었다.
 6월 27일 청주성안길에서 시민모임이 서명을 받고 있다. 학부모는 서명하고 초등학생들도 와서 이야기하는 등 호응이 너무 좋아서 그만큼 일제고사에 고통받는 시민과 학생들이 많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충북시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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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일제고사 문제를 다룰 때 교사나 학생들은 싫어하지만 학부모 중에서는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고들 이야기한다. 하지만 속내를 보면 학생들이 무한경쟁에 눌리고 단순무식하게 문제풀이만 하는 파행현상을 반대하는 학부모들도 많다. 지방선거에서 6개 지역에 진보교육감이 당선된 밑바탕에는 일제고사를 비롯해 MB교육에 대한 심판 성격이 짙다.

충북에서도 일제고사 폐지를 내건 김병우 후보가 30%가 넘는 지지율을 얻었고, 특히 청주 지역에서는 폭발적인 지지를 얻었다. 이 때문에 도교육청에서조차 시민들의 싸늘한 반응을 알고 있고, 앞으로는 그렇게 안할 거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하지만 정작 학교에서는 날마다 교육과정 파행이 이루어지고 있다. 도교육청이나 군교육청에서 겉으로는 공문을 통해 교육과정 파행을 하지 말라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일제고사 점수 순위표를 만들어 돌리고 학교마다 다니면서 학력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초등학생이 1년에 11번 시험?

이 시민모임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모두가 아이를 키우는 부모면서 교사, 시민단체 활동가, 노조 활동가이기도 하다. 괴산의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서모 교사가 학교의 월말고사를 거부하자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모이면서 모임이 만들어졌다.

작년에는 충북도교육청이 직접 나서서 학교마다 보충수업을 강요하고 모의고사 문제지를 내려보내 문제를 푼 실적을 공문으로 직접 보고하게 했다. 시군교육청을 직접 달달 볶아 점수 올리기 좋은 체제를 만들어 놓았다. 청주교육청은 점수가 낮은 학교장을 불러다 질책을 하고 파행현상으로 점수 올린 학교사례를 우수사례라고 벤치마킹하라고 했다. 교사들은 "학교장이 교육청 가서 조인트 까인 거네"하면서 씁쓸해 했다.

올해는 학교에서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현상도 강하다. 작년에 심각한 교육과정 파행으로 일제고사 점수를 올렸을 때 교사들은 교육이 아니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교과부에서 우수교육청이라 하고 올해부터는 정보공시제를 통해 학교의 점수향상도가 나오고 학교평가에 반영한다고 하기 때문에 그야말로 학교 차원에서는 목숨 걸고 점수를 올리려고 한다. 

괴산의 모초등학교 6학년과 고3의 시험일정을 비교하기 위해 서모교사가마든 표이다.
 괴산의 모초등학교 6학년과 고3의 시험일정을 비교하기 위해 서모교사가마든 표이다.
ⓒ 신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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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시험이 늘어난 현상이 당장 생겨났다. 월말고사가 생겨 다달이 시험 보고 결과를 학부모에게 알리거나 학력상을 줘서 경쟁을 시키고 있다. 횟수를 비교하니 기본이 11회이니 고등학생과 비슷하다. 여기에 도교육청에서 제공한 모의고사 시험지까지 보면 아이들은 그야말로 시험지옥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셈이다.

게다가 많은 학교에서 2학년부터 시험을 보기 시작했다. 시험점수를 보고하라고 하니 학급에서는 점수를 올리기 위해 학교 공식 시험 말고도 단원평가를 더 자주 하게 된다. 수업할 시간도 없는데 시험만 계속 보는 것이다. 여기에 학력상까지 주게 되니 경쟁은 극에 치닫고 있다.

평소 생태교육과 학교폭력 해결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서아무개 교사는 이런 상황에서 정상적인 교육과정운영이 어려운 데다 월말고사를 보는 것이 아이들을 더 경쟁으로 몰아넣고 폭력이나 마찬가지라는 고민 끝에 월말고사를 거부하기로 하고 학부모에게 알렸다. 20명이 넘는 학부모가 여기에 동의했고, 월말고사는 보지 않고 중간, 기말고사만 보기로 의논했다.

그러면서 시험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구해보자고 시민사회에 보내는 호소문을 아고라에도 올리고 일제고사 파행현상을 조사하고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시골에 있는 학교이지만 학부모모임을 통해 아이들 교육을 고민하고 교사들과도 협력학습을 같이 고민해나가자고 한다.

<아고라 주소- 시험 지옥에서 아이들을 구해주세요>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sortKey=depth&bbsId=D102&searchValue=&searchKey=&articleId=136740&pageIndex=1

학생들이 변하는 것도 중요하다

시민모임에 나오는 한 아버지는 중학생 딸이 시험을 한 달 앞둔 상태에서도 가족모임을 하지 않고 시험이 중요하다고 하는 데 놀랐다고 했다. 남과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해도 가만히 있다 보면 저절로 사회의 경쟁교육관에 젖어드는 것 같고, 딸과 시험점수만이 아니라 더 소중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모임에 나온다고 했다.

특히 시험이나 점수 경쟁에서 학생들이 스스로 경쟁교육을 내면화하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라고 보고, 교사나 학부모가 나서서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생들 스스로 문제를 깨닫고 다른 가치관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분들도 새삼 학교에서 이렇게 심한 일이 일어나는 것은 몰랐다고 놀라워한다. 그간 교육을 바꾸기 위해 대안교육도 고민하고 실험도 해보고 그랬는데 시민모임을 통해 학교를 정상으로 돌리고, 새로운 교육의 상에 대해서 직접 만들어가자고 하였다. 

엄마, 친구가 점수로 보여

초등학교 교사이자 2학년 학부모인 이모 교사는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학부모에게 알리거나 동의도 받지 않고 2학년부터 보충수업을 시작해서 당황했다고 한다. 학부모총회에서 학교장이 학력향상중점학교라서 보충수업을 할 거라고 해서 학부모들이 교장실에 찾아가 반대의견을 말했다.

한 초등학교의 평가계획이다. 2학년부터 1년에 8번 시험보고, 기말고사때는 전과목을 본다고 한다. 1학년도 2학기부터는 달마다 시험을 봐야 한다. 이런 상태에서는 교육과정 재구성은 커녕 수업도 제대로 안된다. 학생들의 스트레스와 교사의 부담도 매우 클 수밖에 없다.
 한 초등학교의 평가계획이다. 2학년부터 1년에 8번 시험보고, 기말고사때는 전과목을 본다고 한다. 1학년도 2학기부터는 달마다 시험을 봐야 한다. 이런 상태에서는 교육과정 재구성은 커녕 수업도 제대로 안된다. 학생들의 스트레스와 교사의 부담도 매우 클 수밖에 없다.
ⓒ 신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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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학교는 사전 조사도 없이 학급담임들이 알림장으로 보충수업을 알려주고 일방적으로 시작했다. 학부모들이 1인 시위를 하고 항의하니 학교 홈페이지에 올려놓았다고 하는데 그나마 공지사항도 아니어서 찾기가 어렵다 보니 조회수가 50명도 되지 않는다(7월 1일 현재). 청주교육청에 항의하니 열심히 하는 학교장이 훌륭하다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한다.

이 학교의 학력상 기준이다. 모든 과목에서 90%이상 성취해서 과목별로 준다고 한다. 현재 교육과정에서는 초등학생에게 점수를 통지하는 것도 하지 말라고 하는데 거기에 상까지 주고 있다.
 이 학교의 학력상 기준이다. 모든 과목에서 90%이상 성취해서 과목별로 준다고 한다. 현재 교육과정에서는 초등학생에게 점수를 통지하는 것도 하지 말라고 하는데 거기에 상까지 주고 있다.
ⓒ 신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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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심각한 것은 학력상이다. 90점 넘는 아이들에게 상장을 주니 이제 친구들의 점수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2학년밖에 안된 아이가 친한 친구 이야기를 하면서 "엄마 00는 왜 공부를 못하지?"하면서 친구 얼굴을 보니 자꾸 점수가 생각난다고 했단다.

2학년이면 기본적인 내용 중심이라 점수가 높은 편이다. 그래서 반에 90점 안 되는 아이들이 몇 명 되지 않는데 대부분 나이가 아직 어리거나 조금 이해가 느린 아이들이다. 사실 아이들이 시험지 낱말 뜻도 제대로 모르고 문제를 풀 나이인데 점수로 상을 주니 받지 못하는 아이들에겐 얼마나 상처가 크겠는가? 부모로서나 교사로서나 아이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보충수업 해주니 학부모들은 무조건 고마운 줄 알아라?

지난 6월 24일 시민모임에는 앞의 학교 학부모 중에 장애인인 어머니가 오셨다. 2학년인 아이가 보충수업을 받는 것이 안쓰러워 담임에게 인성교육이 더 중요하니 보충수업을 안받았으면 좋겠다고 했다가 좋지 못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나중에 사과를 해서 그래도 괜찮다고 하는데, 더 참을 수 없는 건 학교의 행태이다.

보충수업에 대해 학교장에게 항의를 하려고 전화했는데 통화가 안 된다는 것이다. 전화하면 자꾸 없다고 하고 전화 달라고 하면 바빠서 못할 것이라고 하고. 게다가 학부모총회 때 학교장이 이 학교는 한부모나 장애인 학부모가 많아 학교가 이렇게 애를 쓰면 고마워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장애인 학부모를 가진 아이들에게 시혜를 베푸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무시하는 것에 인간적 모멸감까지 느꼈다고 한다. 대체 이런 건 어디에 가서 이야기해야 하느냐고 답답해하는 모습에 모두 말을 하기가 어려웠다.

다른 학부모들도 학교의 이런 태도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 1인 시위를 하면 학교에서 나와 학부모에게 뭐라 하고 학교운영위에 있는 부모들과 이간질을 시키고 있다는 지역언론의 기사도 있었다. 교육복지투자학교인데 그 돈을 다 점수올리는 보충수업비로 쓰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시험 꼭 봐야 하는 건 아니었군요

모임에 나오는 학부모들은 교육과정에 대한 여러 정보를 얻다 보니 국가수준 일제고사뿐 아니라 아이가 학교에서 보는 다른 시험에도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초등학교는 수행평가를 보고 생활기록부에도 서술식으로 기록하는데 시험점수가 어디에 쓰이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그런데도 자꾸 시험만 보니 문제풀이에 집착하고 창의적인 수업이 되지 않는다는 것에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 시험을 볼 필요가 없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해서도 여러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학력상을 주는 것도 잘못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초등학교는 수행평가를 하고 평가결과를 서술식으로 쓰게 되어 있는데 점수를 통지하고 학력상까지 주는 건 교육과정 취지에 어긋나는 것이다. 이런 사례를 같이 알게 되니 학부모들도 일제고사나 학교의 교육과정 파행에 대처하기가 쉬워졌다고 한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왜 우리 사회가 이렇게 시험과 점수에 매달리는가에 대해서도 같이 고민하고 있다. 정부가 일제고사를 자꾸 보게 되는 것은 학부모와 학교의 소통방식, 가정안에서의 소통방식에도 문제가 있었던 것이고, 이런 건 진보교육감에게만 맡길 일이 아니라는 결론을 얻었다. 그렇다면 정말 교육적으로 소통을 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에 대해서도 경험을 나누고 주변 상황도 알아보고 있다. 

시민모임은 당장은 시험지옥으로부터 아이를 구출하자는 부모 선언도 하고 7월 일제고사를 앞두고 아이들과 가정에서부터 토론을 하고 체험학습에 가는 것에 집중하기로 하였다. 충북교육계의 교육과정 파행현상을 수집하고 바로잡는 활동도 지속적으로 하기로 했다. 우리가 바라는 교육에 대해서도 근본적으로 고민하고 시민사회와 같이 만들어가자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

내 아이만의 교육에 머물기 쉬운 학부모가  일제고사 반대를 넘어 진정한 교육을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MB정부가 가장 무서워 하는 게 바로 이런 것 아닐까?
첨부파일
부모선언지.hwp

덧붙이는 글 | 충북의 시민이라면 부모선언에 함께 해주세요. 7월 6일까지 받습니다.



태그:#일제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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