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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세종시 수정안이 국회에서 최종 폐기됨에 따라 정운찬 국무총리의 거취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해 9월 3일, 국무총리에 지명되자마자 그는 "행정복합도시는 비효율적 계획"이라는 첫 마디 말로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그 뒤부터 9개월여 동안, 대한민국은 '세종시'를 놓고 격랑에 휩싸였다. 정 총리의 말이 곧 세종시 전쟁에 돌입한다는 대국민 선전포고였던 셈이다. 그가 '대한민국 총리'가 아닌 '세종시 총리'로 불리는 이유다.

 

이 대통령 "갈등 넘어 선진화로"... '걸림돌' 전락한 정운찬 총리  

 

하지만 9개월 만에 세종시 전쟁은 정 총리의 '패전'으로 막을 내렸다. 실제로는 그를 총리로 발탁해 대리전을 치르게 만든 이명박 대통령의 패배일 수밖에 없다. 29일 표 대결에서, 한나라당 내 '이명박당'을 제외한 나머지 정치인들은 정 총리에게 등을 돌렸다. 정 총리를 지원사격한 국회의원은 105명에 불과했다.

 

해외 순방 중 파나마에 들러 '운하'를 연구하던 이 대통령은 세종시 수정안 부결 소식에 "심히 유감"이라고 밝혔다. 여의도 정치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셈이다. 그는 또 "이제 평가는 역사에 맡기고, 세종시 갈등을 넘어 국가선진화를 위해 나가자"고 덧붙였다.

 

그러나 패전 직후 "세종시 갈등을 넘자"며 수습에 나선 이 대통령에게는 정운찬 총리는 큰 걸림돌이다. 그는 재임 9개월 만에 야당뿐 아니라 여당 내 친박계의 '공적'이 된 상태다. 오죽했으면 을사오적에 버금간다는 '세종시 3적'(정운찬·윤진식·정종환)이라는 표현마저 나올 정도다.

 

정 총리가 이 대통령의 집권 후반기 국정운영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점은 야당의 반응에서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6·2 지방선거 뒤부터 "정운찬만은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해 온 야당의 공격은 세종시 수정안 폐기 후 더욱 날카로워졌다.

 

민주당은 이날 표결 뒤 "정운찬 총리와 정종환 국토부장관, 윤진식 전 경제수석은 정치적 책임을 지고 모든 공직에서 즉각 사임하라"(노영민 대변인)고 공세 수위를 높였다. 자유선진당도 "정 총리는 이제 무겁게 자신의 거취를 결정하라, 이 눈치 저 눈치 보지 말라"(이회창 총재)고 압박하고 나섰다. 국민참여당은 "정치도박에 대한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양순필 대변인)며 경질을 요구하기도 했다.

 

일주일 만에 떨어졌던 '정운찬 총리 환영' 펼침막... 그의 선택은?  

 

 
남은 것은 이 대통령의 결단과 정 총리의 선택뿐이다. 그동안 정 총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지겠다"며 야당의 공세에 맞서 왔다.

 

정 총리의 선택은 두 가지밖에 없어 보인다. 첫째는 세종시 수정안 부결의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조만간 정 총리가 입장 발표를 통해 자진 사퇴를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벌써 한 차례 '사퇴 파동'(6·2 재보선 직후)을 겪은 것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정 총리로서도 자진 사퇴가 오히려 깨끗한 선택일 수 있다.

 

둘째로 사퇴 요구를 거절하고 자리를 지키는 방법이다. 이럴 경우,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극심한 후폭풍에 시달릴 것으로 보인다. 7·28 재보선 전후로 청와대와 내각의 대대적인 개편이 이뤄지더라도, 정 총리가 물러나지 않을 경우 야당은 물론 여당 내에서조차 개각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7·28 재보선까지 여당이 패배한다면, 정 총리는 재임 기간 내내 사퇴 압박에 시달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정 총리가 지명 직후 뱉어낸 세종시 수정론 발언이 알려지자, 그의 고향인 충남 공주시 주민들은 곳곳에 걸었던 '공주 만세, 정운찬 국무총리' 축하 펼침막을 일주일 만에 모두 떼냈다고 한다. '세종시 총리'는 취임하기도 전에 고향에서부터 냉대를 받았던 셈이다.

 

만약 정 총리가 자리에 연연한다면, 그의 처지는 고향에서 거둬진 펼침막 같은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국민들의 눈이 온통 정 총리의 입에 모아지고 있다.


태그:#세종시, #정운찬, #국무총리, #이명박, #한나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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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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