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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가 수신료 인상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지난 23일 KBS 이사회는 현재 월 2500원인 수신료를 최소 4600원에서 최대 6500원으로 올리는 안을 상정했습니다.

그러나 시민사회단체들과 누리꾼은 수신료 인상에 반발하고 있습니다. 500여개 시민사회단체와 야당, 네티즌단체들이 수신료 인상 강행에 대응하기 위해 결성, 29일 발족할 'KBS 수신료 인상저지 범국민행동'과 <오마이뉴스>는 KBS가 추진하는 수신료 인상의 타당성을 따져보고, 시민사회단체들과 네티즌이 수신료 인상을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짚어보는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편집자말]
23일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 'KBS 수신료 인상, 쟁점과 해법을 모색한다' 토론회가 열렸다.
 23일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 'KBS 수신료 인상, 쟁점과 해법을 모색한다' 토론회가 열렸다.
ⓒ 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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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방통위 "수신료 6500원 인상안"의 검은 냄새

KBS와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수신료 인상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지난 23일 KBS 이사회는 ▲수신료를 4600원으로 올리고 2TV의 광고비중을 19.7%로 줄이는 방안 ▲수신료를 6500원으로 올리고 2TV의 광고를 전면 폐지하는 방안 등 두 가지를 상정했다. 그러나 야당 추천 이사들은 여당의 일방적인 수신료 인상 강행에 격렬하게 반대하며 퇴장했으며, 28일에는 수신료 인상의 전제조건으로 ▲수신료 인상의 민주적 법적 절차 준수 ▲KBS 프로그램 공정성 및 신뢰도 제고 ▲ KBS 구조조정과 조직 운영의 효율성 강화 ▲수신료 인상에 대한 사회적 합의 도출 등 4가지를 제시했다.

이처럼 수신료 인상을 둘러싸고 KBS 이사회 내부의 논란이 커지고 있으며, 다수를 차지한 여당 추천 이사들의 강행처리가 예견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올해 1월초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KBS 수신료 인상을 전격적으로 천명한 바 있다. 최시중 위원장은 수신료 인상폭에 대해 "시청자와 KBS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상식적인 수준에서 결정될 것"이라며 "월 5000~6000원이 상식적인 수준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지난 25일, 최 위원장은 "종합편성채널 사업자 선정 과정에 '특혜는 없다'고 밝혔지만 쉽게 믿어지지 않는 부분이다.

헌법재판소가 이미 판단했듯이 KBS 수신료는 준조세의 성격을 띤다. 따라서 수신료 인상은 일종의 세금 인상과도 같다. 세상에 세금을 더 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정당한 곳에 올바르게 쓰인다면, 세금 인상을 무조건 반대만 하는 것은 민주시민의 자세가 아니다. 납세는 말 그대로 국민의 의무가 아닌가.

KBS 수신료 인상을 통해서 방송 프로그램의 질이 뚜렷이 향상되고, 나아가 우리 방송문화가 발전한다면, 소주 한 잔 덜 마시고 담배 한 갑 덜 피울 수도 있는 것이다. 시청자 복지 향상을 위해서 수신료 인상을 한다면 말이다.

그러나 수신료 인상이 시청자 복지 향상이 아니라 특정 사기업의 이윤 추구 도구로 쓰인다면,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막연한 가정이나 근거 없는 비난이 아니다. 최시중 방통위원장 스스로 "KBS가 수신료를 인상하면 7000~8000억 원 규모의 광고가 민간시장으로 이전되는 효과를 낼 것이고 이는 미디어업계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털어놓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KBS 수신료 인상이 공영방송의 개선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조선·중앙·동아일보가 진출을 준비하고 있는 종합편성PP에 대한 특혜 차원의 '퍼주기'로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이다.

왜 KBS 수신료 인상이 공영방송 발전이 아니라 '조중동 퍼주기'로 귀결될 수밖에 없을까?

수신료 인상은 공영방송 발전 아닌 '조중동 퍼주기'

시민단체들은 수신료를 올리려는 수상한 삼형제로 이명박 대통령, 김인규 KBS 사장,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을 꼽았다. 사진은 시민단체들이 마련한 팻말.
 시민단체들은 수신료를 올리려는 수상한 삼형제로 이명박 대통령, 김인규 KBS 사장,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을 꼽았다. 사진은 시민단체들이 마련한 팻말.
ⓒ 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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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료 인상이 방송시장에 가져올 변화를 보다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서 먼저 우리의 현실을 짚어보자. 방통위가 발간한 <2009년 방송산업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 기준으로 지상파방송과 유료방송 모두를 합친 방송사업자 총 매출액은 11조 원 수준이다. 같은 해 기준으로 통신기업 KT의 매출액이 11조 8000억 원, SK텔레콤의 매출액이 11조 3000억 원이니 한국의 방송시장 전체 규모는 통신 대기업 1개사의 규모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다. 방송이 가지는 사회적 영향력이 비해 경제적인 규모는 그리 대단치 않다고도 볼 수 있다.

같은 해 기준으로 지상파방송의 총 매출액은 3조 8178억 원이다. 매출액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광고수입으로 2조 1998억 원(67.6%)이고, 그 다음으로 큰 것은 공영방송 수신료 5646억 원(14.8%)다. 지상파방송 3사의 경우, 수신료를 받는 KBS만이 총 매출액 1조 2741억 원 중에서 수신료의 비중이 5468억 원(42.9%)으로 광고의 5326억 원(41.8%)보다 근소하게 클 뿐이고, MBC와 SBS는 압도적으로 광고수입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그렇다면 직접 시청자로부터 요금을 받는 유료방송 시장은 어떠할까? 유료방송에서 종합편성PP가 속한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 시장의 매출액을 살펴보자. 2008년 기준으로 모든 PP의 총 매출액은 4조 1998억 원이다. 이는 국내 방송산업 부문 중에서 가장 큰 매출 규모로 지상파방송의 총 매출액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그러나 PP의 경우에는 5개 홈쇼핑방송의 매출이 1조 5331억 원으로 전체의 절반에 가깝기 때문에 '전통적인' 방송 시장의 영역만으로 제한해서 볼 필요가 있다.

홈쇼핑을 제외한 일반 PP 전체의 총 매출액은 2조 978억 원이다. 이 중에서 광고수입이 8747억 원(41.7%)으로 가장 크고, 기타 사업수익 6502억 원(31%), 수신료 2984억 원(14.2%) 순이다. PP는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를 통해 시청자로부터 수신료를 받는 유료방송이다. 그럼에도 광고수입의 비중이 제일 크고 수신료 비중은 이에 크게 못 미치는 현실이다.

결국 우리 방송시장에서 가장 큰 재원은 광고수입이다. 따라서 방송산업을 말 그대로 '활성화'하려면 광고수입을 증대하면 가장 간단하다. 그러나 이는 방송산업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광고를 집행하는 광고주의 몫이며, 보다 큰 차원에서 보자면 국가 경제의 규모와 성장에 달려 있는 문제다. 영국의 미디어경제학자 도일(G. Doyle)의 말처럼, 광고시장의 규모는 국가경제의 규모와 비례한다. 거의 모든 나라에서 광고시장의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1% 수준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자면, 이명박 정부가 시시때때로 강조해 온 '방송산업의 활성화를 통한 경제성장'은 앞과 뒤가 바뀐 황당한 소리다. 방송산업을 활성화시키면 경제가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 일반을 성장시켜야 방송산업도 활성화되는 것이다. 물론, 방송산업도 경제의 한 부문이기에 성장시키는 것이 당연하고 필요하겠지만,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할 뿐만 아니라 광고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방송산업을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경제 일반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선결 과제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성적이 오르는 것이지, 성적을 올려야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말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수신료 인상은 조중동 방송의 장사밑천 규탄 미디어행동 기자회견.
▲ 수신료 2500원->6500원으로 인상 수신료 인상은 조중동 방송의 장사밑천 규탄 미디어행동 기자회견.
ⓒ 언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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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 종편, 그 많은 광고를 어디에서 가져올 건가

물론, 광고수입에 의존하지 않는 방식으로 방송산업을 활성화하는 게 불가능 한 것은 아니다. 시청자들이 유료방송의 콘텐츠에 만족해서 더 높은 시청료를 기꺼이 지불하면 된다. 실제로 국책연구기관인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에서는 "방송 부문의 저성장은 양질의 콘텐츠 부족"에 기인하며, "신규 종합편성PP의 등장과 보도전문PP의 추가 진입으로 새로운 시장이 창출"될 수 있고, "국내 유료방송의 수신료가 선진국에 비해 낮은 것은 근본적으로 현재의 낙후된 방송콘텐츠로는 시청자의 지불의사를 높일 수 없기 때문"이라고 보고서를 통해 주장한 바 있다.

안타깝게도 종합편성PP 도입의 근거로도 작동하고 있는 이러한 주장은 매우 비현실적이다. 우리 방송의 저성장 원인이 '양질의 콘텐츠 부족'이라는 진단부터가 미심쩍다. 미국을 비롯한 해외 선진국의 평균적인 방송 프로그램 수준과 비교할 때, 적어도 우리 지상파방송 프로그램의 평균 수준이 뒤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블록버스터 수준의 엄청난 자본을 쏟아 붓은 일부 '미드'(미국 드라마)만큼의 볼거리를 제공하지는 못하지만, 이는 시장 규모 차이의 결과일 따름이며 모든 '미드'가 국내 드라마의 수준을 압도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위와 같은 주장의 더욱 큰 문제점은, 백 번 양보하여 우리 방송 프로그램의 질이 낮다고 가정하더라도, 그 질을 높이면 곧바로 시청자의 지불의사가 높아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최근 국내 유료방송 채널에서 방송했던 '미드' <스파르타쿠스>와 같은 블록버스터급 프로그램을 지금보다 2배로 많이 방송한다면, 과연 시청자들이 기꺼이 지갑을 열고 더 많은 시청료를 지불할 것인가? 또한 신규 종합편성PP가 기존 지상파방송보다 양질의 프로그램을 제작하기도 쉽지 않은데다가, 일부 킬러 콘텐츠의 시청자 반응이 뜨겁다 치더라도 그것 때문에 시청료를 두 말 없이 선선히 올려 주리라고 기대하기는 매우 어렵다.

이제 정작 중요한 문제인 KBS 수신료 인상과 그에 따르는 방송시장의 변화를 따져보자. 정부여당은 침체된 방송산업 활성화를 명분으로 종합편성PP 도입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종합편성PP의 위상은 방송법과 제도의 각종 편파적 특혜에 힘입어 지상파방송에 준하는 경쟁사업자로 상정하고 있다.

만약 종합편성PP가 지상파방송과 매우 유사한 성격이라면, 재원구조 또한 유사할 수밖에 없다. MBC와 SBS의 광고수입이 전체 매출액의 75~80%를 차지하고 있기에, 종합편성PP 또한 광고수입 의존도가 매우 높다고 예상할 수 있다.

혹은 지상파방송보다 PP의 재원구조에 보다 가까울 수도 있을 것이다. 종합편성PP 역시 이름처럼 PP이기 때문이다. PP 중에서 가장 매출 규모가 큰 것은 CJ 계열과 온미디어 계열의 MPP(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다. 이 중 종합편성PP는 온미디어 계열 MPP와 보다 유사한 성격을 가질 것으로 여겨진다. CJ는 홈쇼핑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재원구조가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온미디어 계열의 2008년 총 매출액은 2938억 원이다. 그 중 광고가 1602억 원(54.5%)으로 가장 비중이 높았고, 수신료 602억 원(20.5%), 기타 방송사업 수익 354억 원(12%) 순이다.

 KBS수신료거부, TV안보기, TV수거 퍼포먼스. 모두 70여대 수거
 KBS수신료거부, TV안보기, TV수거 퍼포먼스. 모두 70여대 수거
ⓒ 임순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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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수 늘어도 광고시장 규모 불변...KBS 수신료 인상 꼼수

MPP와 보다 유사한 재원구조를 갖든, 아니면 지상파방송과 보다 유사하든 간에 한 가지는 분명하다. 종합편성PP는 광고수입에 가장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광고시장은 비탄력적 시장이다. 채널수가 늘어난다고 해도 전체 광고시장 규모는 변화가 없다. 그렇다면 결과는 '파괴적 경쟁'이다.

시장 규모는 변화가 없는데, 경쟁자 수만 늘었다. 당연하게도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게 된다. 문제는 방송시장에서의 경쟁이 소비자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벌어지기보다는 종종 약탈적이고 파괴적인 방식으로 벌어져서 시청자의 복지를 저해한다는 것이다. 경제학 용어로 '가치재(merit good)'인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방송시장에서 이러한 부작용의 개연성은 매우 높다.

광고수입의 보증수표인 시청률 경쟁이 격화되지만, 편당 프로그램 제작비는 전체 시장 규모의 변화가 없으니 줄어들게 된다. 이럴 경우, 제작비는 주시청시간대의 드라마 등 인기 장르 프로그램에 편중될 수밖에 없다. 또한 방송 프로그램은 시청자의 눈길을 끌기 위해  더욱 선정성과 폭력성을 띠게 된다. 다큐멘터리나 토론 프로그램 등 사회적으로 훌륭한 가치를 지니지만, 돈벌이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장르의 프로그램은 더욱 제작비가 줄어들고 위축되고 만다. 정부여당이 강조했던 종합편성PP의 도입을 통한 방송시장 활성화의 결과는 아마도 이럴 가능성이 높다.

최시중 위원장이 말하는 수신료 인상은 바로 이런 결과를 타개하려는 시도의 일환이다. 현재 월 2500원인 공영방송 수신료를 5000원으로 인상하면, 단순 계산상으로 수신료 총액이 5646억 원에서 1조1292억 원으로 늘어난다. 6000원으로 인상하면, 1조3550억 원으로 커진다. 수신료 인상액만큼 KBS가 광고를 축소하고 광고주는 현재의 방송광고 규모를 유지한다면, 최 위원장의 말처럼 7000~8000억 원 규모의 광고가 KBS가 아닌 방송광고시장으로 흘러 들어가게 된다. 매우 단순하게 말하자면, 새롭게 등장할 지상파방송과 유사한 성격의 종합편성PP가 KBS가 축소한 만큼의 광고를 차지할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다.

참으로 묘한 방식으로 방송시장이 성장하게 되는 셈이다. 앞서 말했듯이 KBS 수신료는 준조세 성격을 지닌다. 따라서 수신료 인상은 일종의 세금 인상이라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세금 인상을 통해서 방송시장의 규모가 딱 그만큼 활성화되는 것이다. 국민의 주머니를 직접적으로 털어서 방송시장을 성장시키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산업 활성화가 될 수 있을까? 종합편성PP는 무엇보다도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이다. 그 사기업의 안정적인 이윤 창출을 위해서 국민들의 혈세를 인상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인가?

공영방송 수신료의 역설 : 최우선은 저널리즘·프로그램 질적 향상

그럼에도 공영방송 KBS의 수신료 인상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공영방송의 가장 안정적인 재원은 수신료이며, 현재의 KBS는 광고수입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크다는 것이 그러한 주장이다. 광고수입에 대한 의존도가 높으면 공영방송 프로그램의 상업화를 막을 길이 없기 때문에, 광고를 통한 경제권력의 부당한 영향력을 막고 공영방송다운 양질의 프로그램을 시청하기 위해서는 29년이나 동결되었던 수신료를 인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원론적으로' 올바르다. 수신료 인상은 양질의 방송문화와 시청자 복지 증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훌륭한 수단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수신료 인상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보다 양질의 방송 문화를 국민들이 향유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수신료를 인상했으나 시청자 복지와 방송문화 향상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그런 수신료 인상은 불필요하다.

최근 언론학계 일각에서는 '수신료의 역설'에 주목하고 있다. 수신료를 가장 안정적인 공영방송의 재원으로 삼는 이유는 그것이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부당한 간섭을 벗어나서 방송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해주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정치권력은 법적으로 수신료 인상 권한을 틀어쥐고 있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방통위원회와 국회의 다수당이 수신료 인상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영방송은 수신료 인상을 위해서 더욱 정치권력의 입맛에 맞추어야 한다. 이는 수신료가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을 보장해주기는커녕, 거꾸로 정치적 예속의 심화를 빚어내는 역설적인 현상을 자아낸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덧붙인다. 지난 2007년의 공영방송 수신료 인상 논쟁 때에는 이른바 '보수세력'이 KBS 보도의 좌편향 운운하면서 수신료 인상에 반대했다. 그렇다면 오늘에는 이른바 '진보진영'이 KBS 보도의 보수성을 지적하면서 수신료 인상에 반대하는 것인가? 이런 식으로 수신료 문제에 접근하면, 공영방송 수신료는 영원히 인상할 수 없다. 문제 설정이 잘못됐다.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KBS의 저널리즘 기능이 심각하게 추락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수신료 인상은 이른바 '공정성'의 문제설정만으로 바라볼 문제가 아니다. 수신료 인상은 국민들의 주머니를 턴 결과가 공영방송의 프로그램을 질적으로 향상시키고, 이를 통해 수신료가 재원이 아닌 다른 방송사의 프로그램에게도 긍정적인 질적 경쟁을 촉진시켜서 방송문화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가의 문제다.

그런데 최시중 위원장이 솔직하게 털어놓았듯, 수신료 인상이 '광고의 민간시장으로의 이전'을 통해 새롭게 등장할 종합편성PP의 재원 확보를 위해서라면, 시청자가 얻을 수 있는 긍정적 변화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쨌든 채널수가 늘어나니까 선택권이 증가할 것이라는 기대는 섣부르고 비현실적이다. 만약 수신료가 실제로 인상된다면, 그리고 복수의 종합편성PP가 등장한다면, 낙관적인 기대와는 거꾸로 '경쟁의 역설'이 현실화될 수 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비관적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지난 2월, 누리꾼들이 조계사에서 열기로 한 'KBS 수신료 거부 퍼포먼스'가 국정원의 압력으로 무산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여의도 KBS본관앞에서 민언련, 언론소비자주권캠페인, 참여연대, 미디어행동, 진보연대 등 시민언론단체 회원들이 '국정원·KBS의 외압 행위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 2월, 누리꾼들이 조계사에서 열기로 한 'KBS 수신료 거부 퍼포먼스'가 국정원의 압력으로 무산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여의도 KBS본관앞에서 민언련, 언론소비자주권캠페인, 참여연대, 미디어행동, 진보연대 등 시민언론단체 회원들이 '국정원·KBS의 외압 행위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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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중 생각대로 간다면? 최악의 상황

KBS는 수신료 인상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에 따르는 광고 축소로 매출은 별반 바뀐 것이 없다. 어쨌든 KBS 프로그램의 상업성은 일부 줄어들었으나 제작비가 늘어난 것은 아니어서 시청자들이 기대했던 프로그램의 품질 개선은 두드러지지 않고 있다. 그나저나 수신료 인상 과정에서 심화된 정치적 예속으로 인해 저널리즘의 품질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MBC와 SBS는 수신료 인상으로 인한 광고 이전의 효과를 잠시 동안 맛보지만, 곧 새롭게 등장한 여러 종편PP와 치열한 시청률 경쟁에 나서게 된다. 수신료 인상으로 숨통이 트인 종합편성PP는 광고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법이 보장해 준 '편성과 심의 특혜'를 마음껏 누리면서 노골적인 상업적 편성에 나선다.

이 와중에서 방송 저널리즘의 진실 추구는 낡은 깃발이 되고 비인기 장르의 프로그램은 끝도 없이 소외되어 간다. 경쟁자의 증가로 인기 연예인의 출연료는 더욱 솟구치고 제작비 부담은 커져만 간다.

방송의 상업화가 '블록버스터급 미드같은 국내 방송프로그램의 제작 활성화'인 줄로 착각했던 시청자들은 주시청시간대를 제외한 시간대의 싸구려 저가 프로그램의 노골적인 선정성에 당혹스럽고 신물이 난다. 시청자들이 조중동 종합편성PP의 뉴스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종합편성PP의 등장이 더 멋지고 훌륭한 볼거리를 제공해 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는 점차 사그라지고 있다. 이 와중에 할리우드산 영상물의 공세와 시장 지배력은 더욱 거세지기 시작했다.

이 모든 당혹스런 변화는 마치 나비효과처럼 시청자인 국민들의 주머니를 턴 수신료 인상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이남표는 언론학 박사이며, 민언련 정책위원입니다. 위 글은 계간 [시민과언론](2010년 봄호)에 게재한 것을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태그:#KBS 수신료 인상, #조중동 종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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