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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인데요. 주민센터에서 화장실을 가려고 하는데 여자화장실이 2층에 있더라고요. 근데 엘리베이터가 없는 거예요. 그럼 누군가 저를 짐짝처럼 들고 화장실로 옮겨야 하는데… 저는 짐짝처럼 들려서 화장실로 가야 하나요?"

 

지체장애인 김아무개씨의 말이다. 장애인들은 화장실을 가고 싶어도, 버스를 타려해도,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으려 해도 '장애'에 부딪힌다. 장애인 화장실은 보통 집기 창고가 돼 있고, 버스 정류장에는 점자 노선 안내판이 없으며, 주민 센터에서는 점자서류를 발급하지 않는다.

 

이러한 불편 요소들이 서울 곳곳에 얼마나 존재하는지 파악하기 위해 장애인권리보장을위한 지역사회네트워크(이하 네트워크)는 지난 4월부터 6월 초까지 서울지역 공공근린장소의 편의 상태를 조사했다.

 

네트워크는 이 기간 동안 625곳을 조사했고, 그 결과 드러난 차별 사항을 모아 25일 오전 국가인권위원회에 집단 진정을 냈다. 조사한 서울시 공공시설 625곳 중 96%인 597곳이 시각·청각·지체 장애인들에게 불편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 장애인 행복도시 프로젝트? "행복과 거리 멀다"

 

서울시의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장애인 행복도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서울시에 대해 "장애인이 행복한 도시와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시는 2008년부터 5개년 계획으로 '장애인 행복도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은 "장애인이 편리하면 모두가 편리한 도시다"라며 '무장애 도시'를 만들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현재 서울시는 행복도시 프로젝트 중 하나인 '장애인 편의시설 살피미'를 통해 도시 곳곳의 시설물과 보행환경 등 각종 불편사항을 개선하고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597건에 달하는 진정이 증명하듯, 장애인들이 피부로 느끼는 변화는 크지 않아 보인다.

 

이에 대해 장애인 행복도시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서울시 관계자는 "시설물이 엄청 많아서 일부에 편의시설 설치가 미약한 곳이 있을 수 있다"며 "편의 시설 설치에는 예산이 필요해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서재경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활동가는 "서울시는 예산 타령하면서 '예산 없는데 어떻게 하냐'고 뒤로 미루는 등 장애인 생활 개선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또 '무장애 도시'를 만든다는 행복도시 프로젝트와 서울시의 다른 정책이 모순된다는 문제제기도 있다. 서울시는 디자인 서울을 위한다며 도시 미관을 강조해 황색 점자 블록 대신 회색 점자 블록을 설치했는데 이에 대해 비판이 일고 있다.   

 

서 활동가는 "저시력 장애인들은 점자 블록 색깔이 선명해야만 길을 따라갈 수 있다"며 "서울시는 미관을 해치거나 외적인 모습에서 아름답지 않다는 이유로 저시력 장애인들은 고려하지 않은 채 유도블록을 교체했다"고 꼬집었다.

  

그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르면 장애인에게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고 편의시설이 구축되어야 함에도 서울시부터 이 법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며 "서울시가 공공시설을 제대로 갖추어야 다른 곳에도 그런 문화가 퍼질 텐데 도리어 서울시가 법을 어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죽을 각오로 가로질러 버스 정류장 이용"

 

서울시의 이러한 태도 때문에 생기는 불편을 장애인들은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네트워크의 조사에 따르면 효창공원, 동대문역사문화공원, 독립 공원 어느 곳에도 유도 블록이 설치되어 있지 않아 시각장애인 혼자서는 공원 산책이 어려운 상황이다.

 

버스 정류소는 조사 장소 54곳 중 10곳에만 전자문자안내판이 설치돼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날 네트워크의 진정서 제출 자리에 참석한 김민정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활동가는 "모니터링을 하면서 광진구 용마초등학교 앞 버스정류장을 찾았는데 도로 중앙에 있는 정류장까지 가려면 육교를 이용해야 했다"며 "죽을 각오로 도로를 가로질러 버스 정류장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김 활동가는 "오늘 진정할 곳이 서울지역 공공 근린시설의 96%라고 하는데, 이것은 모두 장애인 차별 사례"라며 "앞으로는 0.1%의 불편도 느끼지 않도록 더 열심히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태그:#서울시 , #행복도시, #장애인,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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