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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작은 항공기들의 저렴한 비행기 삯 덕분에 제주도 여행가기가 더욱 쉬워져 많은 사람들이 이 섬을 다녀오고 있다. 몇 해 전부터는 제주도 주민들과 여러 사람들의 노력으로 올레길이 조성되면서 제주에 좀 가봤다 하는 사람들도 다시 한 번 지도를 펼쳐보게 하는 매력이 많은 섬이 됐다. 한국 사람에게 제주도는 하루키가 '둥둥둥' 북소리를 듣고 멀리 떠났던 것처럼 도무지 떠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만드는 그런 곳이 됐다.

오랫동안 살아온 도시, 그 도시 안에 갇힌 내 삶이 문득 버거워질 때마다 찾아가곤 했던 제주도. 자전거를 타고도 3박 4일이면 섬 해안가를 넉넉히 일주할 수 있는 그리 크지 않은 섬이지만, 이상하게 해마다 또 가고 싶게 하는 섬이다. 제주의 풍광은 계절에 따라 다르고, 같은 계절이라도 날씨에 따라 어제오늘이 다르고, 아침과 저녁이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제주도만의 그런 매력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아마 이 섬을 여러 번 여행해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자주 찾는 제주도를 여행책자나 TV에 나오는 관광지로만 돌아본다면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할 터.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던 <제주도 비밀코스 여행>(최상희, 웅진리빙하우스)의 저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온몸을 들썩이게 하는 제주의 아름다움을 찾아 아예 2년 동안 카메라를 친구 삼아 섬의 곳곳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사는 것도, 여행하는 것도 아닌 '중간 여행자'의 시선으로 보고 느낀 제주의 매력은 과연 어떤 것들일까?

'중간 여행자'의 시선으로 본 제주

제주도 비밀코스 여행 - 최상희 지음
 제주도 비밀코스 여행 - 최상희 지음
ⓒ 웅진리빙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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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여름, 가을, 겨울을 이 섬에서 보낸다는 건 참 부러운 일이다. 늦기 전에 나도 꼭 해보고 싶은 꿈이기도 하다. '중간 여행자'라 함은 적어도 이렇게 한 여행지에서 사계절을 보내봐야 들을 수 있는 호칭 같다. 1년 예정으로 떠났다가 2년을 살게 된 이 책의 저자는 아직도 제주도를 잘 모르겠단다. 볼수록, 살수록, 알아갈수록 섬은 더 많은 매력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겠지.

"사실 제주의 참다운 맛과 멋은 유명 관광 명소에 있지 않다. 바닷가 작은 마을과 동네 사람들이 들르는 소박한 식당, 내비게이션의 실수로 우연히 접어든 한적한 오솔길이야말로 제주의 아름다움을 오롯이 간직한 곳이다."- 본문 중      

이렇듯 저자가 섬에서 주로 만난 곳은 많이 알려진 관광지가 아니라 지극히 '비관광지'인 곳들이 많다. '수월봉과 자구내 포구', '제주마 방목지', '행원리 바닷가 마을' 등은 중간 여행자의 감성이 묻어나는 비관광지로 밑줄을 쳐놓거나 메모해 놓았다가 찾아가보고 싶게 한다.    

저자는 섬에서 중간 여행자로 살면서 없어진 습관 하나가 카페에 가는 것라고 한다. 아침에 보온병에 담아 온 커피를 섬을 둘러보다 풍광 좋은 곳에 앉아 한잔 마신다. 그 커피가 다 떨어질 때쯤 집에 돌아오곤 하던 그에게 섬은 어디나 좋은 카페가 되어주었다고 하니 생각만 해도 낭만적이다.

중간 여행자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지금은 돌아가신 사진가 김영갑씨다. 요즘엔 김영갑 갤러리가 제주의 명소가 되었지만, 그의 사진을 보고 제주 사람들은 "당신이 찍은 것은 제주도가 아니"라고 했단다. 그건 아마도 (제주 사람들에게는) 평범한 것이 중간여행자에게는 예사롭게 보이지 않아서 일 것이다. 여염집의 돌담 하나도, 그 돌담 너머 빨랫줄에서 춤을 추는 빨래 하나도.

섬사람의 일상이 내겐 특별하다

파도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 드는 제주의 밤도 아름답지만, 모처럼 여행으로 설레는 마음에 잠 못 드는 저녁이라면 제주도민의 일상을 마주해보는 것도 좋겠다. 제주는 낮에도 아름답지만 해질녘에야 비로소 섬의 본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특히나 주민들이 주로 가는 식당에 들어가 육지에서는 맛보기 힘든 '고기국수'나 '갈치국'을 먹으며 섬사람들의 일상을 경험해보는 것도 여행의 좋은 추억이 된다.

여행지에서 주민들의 삶과 가장 가까이 만날 수 있는 곳은 뭐니뭐니해도 시장이다. 제주에는 지역별로 날짜가 다른 오일장이 열린다. 이 밖에도 포구의 느낌이 나는 작은 항구들, 도회적이고 예술적인 갤러리와 미술관, 주민들이 애용하는 소박한 간판을 단 동네 골목의 맛집 등은 섬사람들의 일상이 묻어나는 소박하고도 특별한 추억이 될 수 있는 여행지이다.

"제주도 사람을 제일 많이 만나볼 수 있는 큰 시장 동문시장, 울창한 나무 사이 길로 주민들의 산책로이기도 한 삼성혈, 돌과 바람과 물을 형상화한 독특하고도 멋진 건축물이 돋보이는 이타미 준의 미술관, 육지에서는 절대 맛볼 수 없는 고기국수집들..."

내게도 섬사람들과의 잊기 힘든 추억이 있는데, 그건 바로 신비하고 애달픈 숨비소리를 내며 물질을 하는 해녀 할망들과의 만남이었다. 제주 해안가나 우도를 지나가다가 해녀들을 마주친다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가만히 앉아서 그녀들의 삶을 바라보자. 보통은 60이 넘은 해녀 할망들이 힘들게 딴 꿈틀꿈틀 살아 있는 전복과 소라를 맛볼 수도 있다. 그녀들이 말할 때 들려오는 이국적인 제주도 방언속에서 진짜 제주를 느끼게 된다.

섬사람들의 일상이 녹아있는 소박한 비관광지는 여행의 추억과 즐거움을 더해준다.
 섬사람들의 일상이 녹아있는 소박한 비관광지는 여행의 추억과 즐거움을 더해준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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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가르쳐주기 아까운 나만의 아지트

여행지에서 우연히도 혹은 길을 잘못 들었다가 마주치는 곳이 내 마음속에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장소를 잘 기억해두었다가 또 찾아오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몰랐으면 하는 나만의 아지트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더 알려주기 아까울 것이다. 왜냐하면 나 혼자 독차지하던 곳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면 곤란하니까.

"하지만 눈물까지 머금고 나만의 비밀스런 여행지를 공개하는 이유는 항상 혼차 찾던 그곳에서 동행이 있었으면 하고 바란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비경을 품은 멋진 곳에 가면 가슴이 뛰고, 이렇게 좋은 곳에 좋은 사람과 같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  "좋지 않냐?" 하면 "진짜 좋아"하고 고개를 끄덕여주는 사람이 곁에 있는 즐거움. 그 즐거움을 함께 느껴보고 싶기 때문이다."

당신도 반할 확률 100%라는 섬 속 나만의 아지트들이 여행을 가면 절대 놓치고 싶지 않게 한다. 핑크빛 솜사탕처럼 아름다운 왕 벚꽃이 피어나는 마을, 햇살과 바람이 통하는 어디에도 없는 파란 바다 앞 카페. 모든 감각이 되살아나는 관능의 길이라는 올레길 어느 코스도 물론 나만의 아지트 목록에 들어 있다.

<제주도 비밀코스 여행>은 부제인 '럭셔리 패키지보다 백배는 재미있다!'가 아니라 '백배는 맛있다!'가 더 적절할 정도로 제주 전역의 추천 맛집들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맛있는 것을 먹으면 유난히 행복해하는 여성 특유의 식감과 섬세함으로 사진은 물론 음식 품평, 가격, 장단점, 맛있게 먹는 방법까지 잘 묘사(?)되어 있다. 색다른 추억을 위한 색다른 일정안내도 참신하다. 예를 들면, '오랜 친구들과 수다가 즐거운 볼거리&맛집여행 코스', '선배와의 짧은 2박 3일 겨울 여행 코스', '남자친구와의 가을 하루 여행 코스' 등.

일반적인 여행책처럼 지도도 잘 그려져 있을 뿐 아니라 잡지사 기자 출신답게 유명 관광지들과 교통, 숙소, 축제 등이 꼼꼼하게 소개하고 있다. 제주도 여행을 갈 때 배낭 속에 넣고 다니면 유용할 것 같다. 올 휴가 때는 제주도에 가서 섬사람들의 일상도 가까이 접해보고, 저자가 추천한 비경 아니 비관광지가 주는 소박하고도 특별한 여행의 즐거움을 느껴보아야겠다.


제주도 비밀코스 여행 - 개정판

최상희 지음, 북노마드(2012)


태그:#제주도, #제주도비밀코스여행, #최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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