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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선비들은 향촌에 머물면서 학문을 닦으며 지역사회의 정신적 지주로서의 역할을 했습니다. 마을에 한 두 선비가 대를 이으면서 선비집안을 이루는 것이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사회상이었던 것이죠. 하지만 전주는 좀 달랐어요. 선비들이 모여 집단촌을 이루고 있었던 일은 그리 흔한 현상이 아닙니다. 이들이 일제시기에 교동과 옥류동에 모여서 살기 시작한 것은 분명 특이한 현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전주를 잘 아는 사람들은 지금도 이곳을 선비촌 또는 학자촌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승 열 명이 왕비 한 사람만 못하고, 왕비 열 명이 산촌의 선비 한 사람만 못하다'는 속담이 있듯이, 예로부터 선비는 각별한 존재였다. 그래서 우리 역사적 자아의 원형을 선비의 정신에서 찾는 이가 많다. 그러나 '도덕'에 뜻을 둔 고귀한 정신의 선비는 그리 흔치 않았다. 그 선비들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살아있는 전주한옥마을을 재조명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함한희 교수가 전주한옥마을 선비의 길 조성의 당위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함한희 교수가 전주한옥마을 선비의 길 조성의 당위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김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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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한옥마을을 무대로 활동했던 선비들의 발자취를 더듬는 '선비의 길 조성을 위한 학술대회'가 23일 오후 2시부터 한옥마을 내 전통문화센터에서 열렸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선비로 추앙받을 만한 인물로 금재 최병심, 고재 이병은, 유재 송기면 등의 삼재와 함께 이기경, 김경암, 박인규, 이종림, 이주필 등이 언급됐다.

금재 최병심의 옥류정사는 한옥마을이 선비촌을 이루는데 중추적 역할을 한 곳이다. 당시 이 지역 유학교육의 산실 역할을 담당했던 것. 고재 이병은은 고향인 두방마을에 칩거하다가 나이 60세인 1936년 전주로 옮겨온다. 일제로부터 향교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유재 송기면은 김제에 살고 있었으나 고재와 사돈을 맺었고 금재와도 왕래가 잦았으며, 특히 그의 아들 강암 송성용이 한옥마을에 자리를 잡는다.

2년 후면 탄생 400주년이 되는 전라감사 목산 이기경은 한옥마을 정체성의 뿌리라 볼 수 있다. 그 후손들이 바로 몇 년 전까지도 은행나무길가에서 '삼백년가'라는 가게를 운영하는 등 대대로 오목대 아래 살면서 선비집안을 지켜오고 있는 것. 그밖에 김경암, 박인규, 이종림, 이주필 등이 선비에 이름을 올렸으며, 그들을 따르는 제자들이 무수히 많았다는 점을 볼 때 발굴해야 할 더 많은 학자들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대부분은 나라가 어지러울 때 일찍이 벼슬길을 접고 충효와 의리, 절개를 지키는 일을 했으며, 뒤에서 항일운동을 지원하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공통점도 지니고 있다.

발표를 맡은 함한희 전북대 교수는 "당시 이 많은 선비들이 전주라는 특정지역에 모이게 된 것은 일제에 의한 나라의 위기와 함께 개화 및 신교육의 영향으로 유학에 대한 위기의식이 결합된 결과"로 해석했다.

또한 "선비들은 말이나 생각보다도 남을 배려하고, 이웃을 위하고, 근검절약하며, 청렴하게 살고, 의리와 기개를 지키는 일을 몸소 실천했던 이들을 가리키는 것"이라며 "당시 선비들이 마지막 선비로서의 실천정신을 유지하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하려 한 이곳 한옥마을에서 그들의 정신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발표자인 이경진 문화연구 창 이사는 "선비의 길은 집터, 비석, 유택, 글씨 등 중요한 경관요소를 점으로 해서, 한옥마을에서 살아온 선비들의 이야기가 선으로 이어져 생동하는 경관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했다.

월당공이 만든 한벽루를 기점으로 창암의 글씨가 새겨진 바위, 금재가 후학을 양성했던 옥류정사와 염수당터, 성당이 살았던 구강재, 고재의 학문과 실천이 담긴 남안재와 남양사, 바둑명인을 길렀던 오산의 집, 강암의 묵향을 느낄 수 있는 아석재, 수원백씨의 영화를 보여주는 학인당과 목산의 후손이 사는 삼백년가에 이르기까지 '선비의 길'은 한옥마을을 촘촘히 엮어내는 이야기길이 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현재 이런 중요한 경관요소들이 방치되고 훼손되고 있으며, 한옥마을 선비들이 남긴 이야기와 자취 또한 사라지고 있어 안타까움을 자아냅니다. 제대로만 살려낸다면 선비의 길은 관광객들에게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줄 수 있고, 또한 새로운 장소성을 창출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전주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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