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강희락 경찰청장(자료사진).
 강희락 경찰청장(자료사진).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강희락 경찰청장, 날개꺾기가 뭐에요?"
"(머뭇머뭇) 뭐, 저도 기사 보고 처음 알았습니다."
"수사국장, 청장님 날개꺾기 한 번 해보시겠어요?"
"…… (침묵)"

22일 오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위원장 안경률)에 업무보고차 출석한 강희락 경찰청장은 '날개' 대신 고개가 꺾였다. 지난 16일 국가인권위 발표로 드러난 서울 양천경찰서 피의자 고문 사건을 질책하는 여야 의원들 앞에서 강 청장은 연방 머리를 숙여야 했다.

날카로운 추궁 앞에 강 청장은 "참담하다, 21세기에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거듭 사과했지만, 관련자 문책과 지휘책임에 대해서는 "정확한 진상규명이 우선"이라며 확답을 피했다.

피의자 고문 전 강력팀 경찰관들이 CCTV 각도를 조정했다는 의혹과 서울경찰청의 조직적 은폐 의혹에 대해서도 "더 조사해 보겠다"고만 말했다.

'고문 사건' 황당함 토로한 강희락, "도둑 맞으려면 개도 안 짖는다는데..."

강희락 경찰청장(자료사진).
 강희락 경찰청장(자료사진).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이날 회의에서 "수사국장이 나와서 경찰청장 날개꺾기 해보라"고 요구해 강 청장을 당혹스럽게 만든 이윤석 민주당 의원은 "이번 사건으로 서장, 계장, 팀원 등 8명 징계안을 올렸는데, 조현오 서울청장과 강 청장이 결단을 내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휘책임을 집중 추궁했다.

강 청장은 "내가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강력팀장과 팀원 처벌만 갖고 되겠느냐"는 이 의원의 거듭된 질책에 "진상규명을 먼저 하고, 그 뒤에 판단하겠다"는 애매한 답변만 내놨다.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해 답변서만 뒤적거린 그의 얼굴에는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장세환 민주당 의원은 CCTV 각도 조정 의혹을 비난하고 나섰다. 장 의원은 "고문도 중요한 범죄지만, CCTV 각도 조정은 더 중요한 범죄"라며 "인권위 조사 결과 (고문 당시) CCTV가 천정을 향해 있었는데, 나중에 정상 각도로 돌아왔다고 한다, 의도적이며 계획적인 범죄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 청장은 "(CCTV 영상이) 검찰에 압수돼 확인을 못했다"면서도 "사실 관계가 그렇다면, 그 자체로 워낙 죄질이 나쁜 것"이라고 고개를 떨궜다.

지난 4월부터 검찰이 고문 사건을 인지하고 5명의 형사를 소환조사 했음에도, 인권위 발표 전까지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점을 두고는 은폐 의혹이 제기됐다.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은 "검찰이 소환조사까지 했는데, 상부에 보고가 안 됐다는게 납득이 되겠느냐"며 "공식 보고가 없어서 몰랐다는 것은 국민을 바보로 여기는 짓"이라고 맹비난했다.

이에 대해 강 청장은 "저도 납득이 안 된다"면서 "고문 피의자들이 증거가 없다고 믿었는지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면서 불기소 되지 않겠느냐고 판단한 것으로 나중에야 보고 받았다"고 궁색한 해명을 했다. 그러나 조 의원은 "이번 사건은 검찰과 경찰의 해묵은 알력이 빚어낸 공동은폐 사건"이라고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여야 의원들의 질책이 점점 거세지자 강 청장은 "CCTV를 서장실, 상황실에서 다 본다, 왜 CCTV 방향이 틀어졌는지 모르겠다, 도둑 맞으려면 개도 안 짖는다는데…"라며 자신도 황당하다는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다.

한나라당 의원들 "고문 아닌 가혹행위로 불러야"... 경찰 감싸기

국가인권위원회가 직권조사에 앞서 5.11. 기초조사과정에서 확보한  양천서 상황실에 위치한 강력 5팀 내부가 촬영되는 CCTV화면. 화면의 절반이 천장과 벽을 비추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직권조사에 앞서 5.11. 기초조사과정에서 확보한 양천서 상황실에 위치한 강력 5팀 내부가 촬영되는 CCTV화면. 화면의 절반이 천장과 벽을 비추고 있다.
ⓒ 국가인권위

관련사진보기


대부분 의원들이 고문 사건을 매섭게 추궁했지만, 몇몇 여당 의원은 강 청장을 위로하기도 했다. 김정권 한나라당 의원은 "청장도 곤혹스럽겠다, 절대 다수의 경찰이 민중의 지팡이로 일하는데, 소수 경찰이 도저히 있어서 안 될 일을 저질렀다"고 격려의 말을 건넸다. "굉장히 감사하다, 경찰 사기 진작 방안에 계속 신경 써 주시기를 바란다"고 답한 강 청장의 얼굴에 한순간 화색이 돌았다.

안효대·유정현 한나라당 의원은 "경찰관의 고문 사건이 아니라 가혹행위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인권 후퇴' 비난에 따른 이명박 정부의 부담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안 의원은 "수사 용어에 고문이라는게 있느냐, 가혹행위라는 표현을 쓰는게 적절하다"고 주장했고, 유 의원도 "양천서 가혹행위 사건이다, 고문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서 조승수 의원은 경찰의 '참여연대 습격' 보수단체 비호를 비난하기도 했다. 그는 "참여연대가 청와대와 거리가 1km 밖에 안 되는데, 집회금지 구역에서 경찰이 비호했다, 형평성을 잃은 게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 청장은 "방치한게 아니다, 현장에서 1명을 검거하기도 했고, 주최측도 소환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기자회견이 불법 집회로 변질될 경우 세번 해산 경고한 뒤 검거하는데, 보수단체는 보통 두번 명령을 내리면 자진 해산하더라"는 해명도 덧붙였다.

강 청장은 또 "남아공 월드컵 '북한-포르투갈' 경기에서 어느 쪽을 응원했느냐"는 문학진 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북한을 응원했다"고 답했다가 허를 찔리기도 했다. 문 의원은 "경찰이 서울교육감 선거에서 전교조나 민주노총 등 좌파세력이 어떻게 (진보 후보를) 지원하는지 파악하라고 지시하는 등 우파 관권선거를 해놓고, 왜 좌파를 응원하느냐"고 따끔하게 꼬집었다.


태그:#경찰 고문, #CCTV, #행정안전위원회, #강희락 경찰청장, #양천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