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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를 병풍처럼 둘러선 명당 좋은 산 북악산이 시민들 곁으로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이젠 유명한 걷기 코스가 된 북악산 하늘길과 서울 성곽길이 생기더니 서울 속 비무장 지대라는 '김신조 루트'가 조성되었다. 지난 5월에는 북악산 DMZ 길에서 북한산 형제봉까지 가는 정식 길이 생겼다니 산행을 별로 즐기지 않은 나도 가보고 싶게 하는 소식이다.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무척이나 반갑게 들릴 이 소식은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삼청공원에 놀러 갔다가 안내 게시판을 보고 알게 되었다. 북악산 자락 밑에 다소곳이 자리한 삼청공원 산책로를 걷다 보면 서울 성곽길도 연결되어 있고 '김신조 루트'는 물론 북한산까지 갈 수 있다니 본인의 체력과 취향에 맞춰 실컷 걸으며 북악산을 온몸으로 느껴볼 수 있겠다.  

 

북악산 성곽 길과 DMZ길로 가는 산행의 들머리는 삼청공원 외에도 수도권 4호선 전철 한성대역(6번 출구), 3호선 안국역(2번 출구) 앞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10분 정도 가는 와룡공원에서 걸어 가거나 혜화동 성균관 대학교 후문에서 올라가는 길도 있다.

 

북악산 들머리 삼청공원 가는 '즐거운 길'

 

북악산 길로 오르는 들머리로 삼은 삼청공원 가는 길은 늘 즐겁다. 이 공원에 갈 때는 수도권 전철 3호선 경복궁역 (4번 출구)으로 나오는데 지도에도 표시가 안 된 한갓진 청와대 앞 길을 지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경찰관들이 키크고 늘씬한 말들을 타고 순찰을 도는 이채로운 풍경을 만났다. 관광버스를 타고 찾아오는 내·외국인들이 많아지니 이런 것을 생각했나보다. 관광객들이 말을 탄 경찰관들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데 좀 웃어줘도 좋으련만 우리의 경찰관들은 아직 타인과 카메라 앞에선 경직되고 쑥스러워한다.

 

사복을 입고 있어도 티가 나는 경찰관 아저씨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자전거를 타고 여유로이 청와대 앞 길을 지나면 바로 삼청동이다. 동네의 언덕배기 위엔 정겨운 한옥마을이 들어서 있고 언덕배기 밑에는 도회적이고 예쁜 카페, 갤러리들이 있어 많은 외지인들이 찾아온다. 한옥마을은 외국인들에게도 명소로 알려졌는지 흔한(?) 일본사람들 외에 다른 나라 사람들도 관광을 온다. 길에서 지도를 보며 헤매는 외국인들에게 한옥마을을 알려주고 사진도 찍어주었는데 말레이시아에서 여기까지 여행을 왔단다.       

 

삼청공원 정문 입구 거치대에 애마 잔차(자전거의 경상도 사투리)를 묶어두고 산책로를 따라 약수터를 찾아간다. 이 공원은 북악산 자락에 있어서 그런지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있는 약수터가 다 있다. 오래된 나무들이 우거져 녹음이 짙게 드리운 산책로 벤치와 흙길 위에 사람들도 고양이도 눕다시피 편안하게 쉬고 있다. 공원입구의 안내판에도 잘 그려져 있는 '말바위 쉼터' 표지판을 따라가면 서울 성곽 길, DMZ 길, 북한산까지 길이 이어진다.      

 

북악산 성곽 지키는 군인이 알려준 DMZ길 '김신조 루트'

 

산책로를 따라 정말 말을 닮은 것 같이 재미있고 정감 가게 생긴 말바위 쉼터에 가뿐하게 올랐다. 그곳에 전망대가 있었다. '키가 342m인 북악산의 중턱도 안올라 왔는데 벌써 웬 전망대?' 하고 서보니 나도, 같이 간 친구도 짧은 탄성이 나올 정도의 서울 남산 방면 전망이 눈앞에 펼쳐진다. 얼마 안되는 높이에 올라왔는데도 이렇게 전망이 시원하게 펼쳐지다니 이 산이 명당이긴 명당이구나 싶다.

 

이 말바위 쉼터에서 북악산 성곽 길이 시작된다. 산아래 주변을 둘러보며 숙정문, 창의문 방면의 성곽 길을 슬슬 걸어간다. 급한 경사의 언덕 길도 없고 옆엔 성곽이 계속 나 있어 지겹지도 않고 초여름의 뜨거운 햇살이 비추지만 치렁치렁한 나무 그늘 덕분에 무더위도 피할 수 있으니 이건 뭐 룰루랄라 휘파람을 다 불게 되는 길이다.    

 

산행 초입부터 너무 행복에 겨웠는지 숙정문 방향의 성곽길 안내소에서 첫 시련을 만난다. 보안상 오후 3시 이후엔 이 성곽 길을 더 나아갈 수 없단다. 실망스런 마음에 청와대 앞 길과 삼청동 한옥마을에서 너무 여유를 부렸다고 괜히 친구와 말다툼을 벌인다. 서로 네 잘못이라며 애들처럼 투닥거리는 아저씨들의 모습이 안되었는지 안내소의 군인이 "혹시 김신조 루트 가보셨어요?" 한다. 여행의 묘미는 행운과 불운이 교차하는 이런 불확실성에 있는 것 같다.       

 

 

앳된 얼굴의 친절한 군인이 알려준 대로 성곽 밖의 산길로 나와 정겨운 오솔길을 걷다 보니 복장이며 표정이 동네 주민분들인 중장년의 사람들이 산책 삼아 많이 오가는 게 보였다.김신조 루트를 물어보다 얘기를 나누게 된 어느 동네 아저씨는 북악산 성곽에 대한 역사적인 설명은 물론, 1968년 31명의 김신조 외 북한 공작원들의 청와대 습격 시도 사건에 대해서 문화해설사 못지않게 사실적이고 열정적으로 말해 주신다.  

 

1968년 이후 41년간 민간인 통제구역이었던 이 길은 수십 년간 사람들의 발길이 닫지 않은 금단의 땅으로 생태적 가치가 높고 자연경관이 수려해 일명 '서울 속의 비무장지대(DMZ)'라고 불릴 정도로 천혜의 자연이 그대로 살아 숨 쉬고 있단다. 기대에 부풀어 힘든 줄도 모르고 걷게 된다. 

 

성곽을 따라 난 작은 산길은 김신조 루트로 이어지는 나무데크 길로 바뀐다. 이 나무데크 위로만 가면 되니 산속에서 길을 잃을 염려도 없고 자연보호도 되는 것 같아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옆에 손으로 잡을 데도 있고 푹신하기도 한 나무계단이지만 고개를 들어 저 앞을 보니 이런 길이 오르락 내리락 하며 북악산 꼭대기까지 까마득히 이어져 있다.

       

도심속의 오아시스 북악산 그리고 옹달샘

 

성곽 길처럼 이 길에도 안내소가 있고 나이 지긋한 문화해설사님도 활동하고 계신다. (문화해설사님은) 안내소에서 물을 마시며 팻말의 지도를 유심히 보는 내가 초보 산행자인게 티가 났는지, 지도의 이곳 저곳을 가리키며 김신조 루트를 포함한 북악산 길의 여러 코스와 북한산 형제봉 가는 길 등을 친절하게 알려 주신다.    

 

2년 전에 조성했다는 북악산 깊은 산중의 이 길은 나무데크 계단과 예전부터 군인들이 순찰하며 다녔던 돌계단길이 교대로 나타나며 길을 내준다. 주홍빛 때깔이 참 고운 털중나리꽃이 초록의 숲 속에서 예쁘게 눈에 띈다. 무엇보다 소나무들이 참 많다. 나무계단과 돌계단을 에워싸며 호위하듯 하는 소나무들의 굽고 휘고 뻗은 모습이 신명 나면 저절로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던 시골 할머니들의 모습 같고 농악대의 흥겨운 춤판 같다. 그 땅에 사는 사람을 닮은 소나무의 이런 모습 때문에 예로부터 지금까지도 한국인들의 사랑을 받는구나 싶다.      

 

중간 중간에 나무 벤치가 놓여져 있어 쉬어가긴 했지만 김신조 루트의 경사진 오르막 돌계단을 오르다가 친구 다리에 쥐가 나고 말았다. 김신조 아저씨는 이 길을 날아다녔다는데 넌 그게 뭐냐며 친구를 놀려댔지만 사실 자전거를 애용한다는 내게도 장딴지가 뻐근해지는 루트다.    

 

북한산 등산로보다는 덜 가파르지만 반복되는 오르막과 내리막길에 지쳐 이제 그만 하산할까 생각할 때마다 산행의 고통을 잊게 해주는 것이 있는데, 중간 중간에 놓여 있는 전망대들이 그것이다. 이름도 정감 가게 지은 서마루-계곡 마루-남마루-하늘 마루 등이 여행자의 아픈 다리를 풀어주기라도 하듯 전망대마다 다른 서울 주변의 경치를 눈이 시원하게 보여준다.  

 

'솔바람교'라는 나무데크 다리에 옹달샘 표지판이 있어서 가까이 가보니 정말 오래전부터 있었던 작은 옹달샘을 소박한 약수터로 꾸며 놓은 것이 보였다. 북악산이 주는 꿀물 같은 샘물을 시원하게 마시고 깊은 산 속 옹달샘 가의 쉼터에 앉아 있자니, 귀에 익은 동요가 흥얼거려지는데 정말 새벽의 토끼가 눈비비며 일어나 세수하러 올 것만 같다.

 

수십 년간 금단의 땅으로 일반인들이 드나들 수 없었던 산중에선 가재가 물장구치며 논다는 성북천의 맑고 깨끗한 발원지도 만나게 된다. 1968년 당시 김신조와 총격 끝에 사살된 서른 명의 북한 공작원들도 저 옹달샘이나 이 성북천 발원지 물가에서 샘물을 마셨으리라. 힘든 가운데도 의미가 있고 재미도 있는 산행길이다.

 

이 물가를 지나면 '김신조 제2 루트'로, 산허리를 돌아서 하늘 전망대에 오르고 '여래사'라는 절을 지나면 북한산 가는 길도 이어져 있다. 다리를 쩔뚝이며 걷는 친구에게 차마 북한산 형제봉까지 가자고는 못 하고 다음 주 재도전을 기약하며 다시 삼청공원으로 돌아갔다. 평소에 운동은 잘 안 하지만 체력은 자신 있다며 342m의 북악산쯤이야 하던 친구는 요즘 저녁마다 동네 산책길을 열심히 걷고 뛰고 있다.

덧붙이는 글 | - 6월 20일에 다녀왔습니다.
- 위치 및 산행코스 관련 문의는 성북구청 (02)920-3796
- 삼청공원은 수도권 전철 1,2호선 시청역 (4번 출구) 서울 신문사 앞 11번 마을버스 종점하차


태그:#북악산 , #김신조 루트 , #삼청공원, #삼청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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