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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가 마당을 하도 좋아하니까 남편이 쉼터를 만들어 줬습니다. 평상에 돗자리를 깔고 그도 모자라 모기장 텐트까지 동원했군요. 그동안 평상에 누워 책도 읽고, 꽃도 보고, 하늘도 쳐다보고... 혼자 있는 즐거움을 만끽했는데 아뿔싸, 모기란 놈이 어찌나 헌혈을 강요하는지 팔, 다리 성한 데가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철수했더니 남편이 아이디어를 동원했구먼요. 며칠 전 아낙들 앞에서 남편 흉 뒤지게 본 것 반성해야겠습니다. 나름, 마누라 위한답시고 저렇게 동분서주하는데 상은 못 줄망정 만인 앞에서 물어뜯어야 되겠습니까?

 

하늘은 무겁게 내려앉았는데 안개꽃이 그 역할을 대신합니다. 이래도 안 웃을래? 찌푸린 하늘 대신 저를 보고 웃으라고 아양이 한창입니다. 처녀 적에 안개꽃을 정말 좋아했습니다. 스무 살 그 언저리, 생활고가 고달파 내 나이가 마흔쯤 되는 줄 알았던 때입니다.

 

어느 날 작은어머니의 올케, 그러니까 내게는 사돈뻘인 아주머니가 인사하는 나를 보고 "참 곱다... 어쩌면 저렇게 활짝 폈을까?"라며 뜬금없는 덕담을 해주셨던 적이 있었지요. 그 말을 듣고 처음에는 당황했고 믿지도 않았습니다. 한 번도 내가 고운 아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 없는데 그 무슨 말씀을.

 

순백의 미소처럼 알뜰한 안개꽃을 보니 40년 저쪽 세월이 떠오릅니다. 다시 생각하니 사돈의 말씀이 빈말을 아니었을 거란 생각이 문득 듭니다. 그때 그 사돈의 연세를 훌쩍 넘어선 지금, 사돈처럼 스무 살 이쪽저쪽의 청춘들이 너무나 아름다워 보이기 때문입니다.

 

 

 

 

 

빛의 향연... 오묘한 자연의 빛깔을 숨 고르고 찬찬히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만날 저 잘났다고 뻐기는 인간의 잔재주가 얼마나 하찮은지 오늘 양귀비 꽃 색깔의 향연으로 다시 깨닫습니다.

 

빛의 향연이 너무나 눈부셔 문득 민수 생각이 났습니다. 민수. 올 해 서른이 된 남편 선배의 막내입니다. 선천적인 맹아로 태어난 민수는 빛을 모릅니다. 빛 대신 소리로 모든 것을 감지하는 민수는 들리는 대로 건반을 누를 수 있는 절대음감을 가졌습니다.

 

눈도 못 보는 데다 자폐까지 겹쳐 통제가 불가능한 민수를 보고 어쩔 줄 몰라 하는 내게 선배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저 놈이 아마 제일 효자일거야. 다른 자식들은 크면 다 우리 곁을 떠날 거지만 나 죽을 때까지 곁에 있을 놈은 민수뿐이지 않겠어? 하하하~~"

 

그때 선배가 하신 말씀을 '자기 위로'쯤으로 재해석했습니다. 절망을 빠져나오는 보호본능 없이 선배 부부가 무슨 수로 버틸까? 그런 생각도 들었고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선배 말씀이 맞는 것 습니다.

 

정년 후 집에 들어앉은 선배, 한가할 새가 없습니다. 민수 매니저로 전국을 누비기 때문입니다. 선교를 목적으로 하는 교회 오케스트라에 입단한 민수. 장애우만으로 구성된 그 악단에서 민수는 피아노면 피아노, 플롯이면 플롯, 어디 그뿐인가요? 바이올린까지 연주하는 전천후 뮤지션입니다.

 

게다가 성량까지 풍부해 재즈, 팝, 클래식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성악가로서도 발군의 실력을 뽐내는 인재지요. 민수에게 이 꽃 색깔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마음의 눈으로 보는 민수에게 자연의 색이 주는 경이로움을 전해주는 방법은 없을까요?

 

메꽃. 내가 좋아하는 꽃입니다. 얼마나 좋아하냐고요? 예전에 도심에 살 때 '꿩 대신 닭'이라고 그림으로라도 보려고 메꽃 그림을 사고 싶어 안달했을 만큼 좋아합니다. 너무 흔해 사랑을 받지 못하는 메꽃이지만 애잔하면서도 순박한 모습 하나만으로도 만인의 가슴을 촉촉이 적실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핏대를 올릴 정도였으니 오죽했겠습니까.

 

고고하고 희귀한 나팔꽃 젖혀두고 메꽃을 모셔왔습니다. 어디서냐고요? 개천가 쓰레기 더미에서요~~.

 

상추, 쑥갓, 아욱. 부부 둘만 먹다 보니 채소가 없어지질 않습니다. 기다리다 못해 급기야 성질 급한 쑥갓이 꽃대를 밀어 올렸습니다. 맛난 음식에 취한 미식가의 행복 못잖게 나는 쑥갓 꽃을 감상하며 행복해하고 있습니다.

 

누가 뭐래도 지금 이 순간, "너 입 호강 할래? 눈 호강할래?" 물으신다면 주저 없이 '눈 호강'을 취하겠습니다.

 

석류꽃이 피었네요. 다홍치마 색깔이 아마 저렇지 않을까요. 석류는 자손이 번창하는 나무라고 정 깊은 지인이 두 그루씩이나 우리 마당에 심어줬습니다. 자경 나무, 인장 나무 등등 지인의 축복대로 두 놈이 제 길 잘 찾아가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인터넷 한겨레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양귀비 꽃밭, #빛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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