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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금요일(11일)은 환갑(還甲)이었다. 십간(十干) 십이지(十二支)로 꼽는 육십갑자로 치면 태어난 해가 한 바퀴 돌았다고 해서 회갑(回甲)이라고도 하는데, 옛날 같으면 술도 빚고, 부침개와 떡도 했을 것이며, 축하객과 식객들로 집안이 왁자지껄했을 것이다.

시집간 딸들과 며느리가 같은 색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모습이나, 동네 꼬마들이 일하는 엄마를 따라다니며 음식을 얻어먹는 모습도 잔칫집 분위기를 한껏 돋웠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필자는 딸 하나여서 며느리는 남의 얘기일 뿐이고, 잔칫상은커녕 미역국도 못 먹고 설거지로 하루를 시작하였다.  

환갑날 아침에 눈을 뜨니까 곁에 아내가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설거지를 하려니까, 혼자라는 생각에 갑자기 외로움을 느끼면서 씁쓸한 미소가 지어졌다. 아내가 연거푸 이틀을 밤 근무하느라 퇴근도 못하고 병원에서 고생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이 허전했다.  

그렇다고 회갑을 '강아지 보름 쇠듯' 했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오후엔 시내에 나가 취재도 하고, 아내에게 데이트하고 싶다고 전화해서 물안개 자욱한 은파관광지의 아늑한 숲길을 거닐기도 하고, 사진도 찍으면서 추억여행도 하고, 외식도 했기 때문이다. 

동생이 차려준 환갑상과 앞당겨 마련한 저녁회식

지난 5월23일 동생이 소개한 은대구탕집에서 먹은 민어탕. “생선탕은 역시 군산이 최고여!” 외에는 설명할 문구가 떠오르지 않는군요.
 지난 5월23일 동생이 소개한 은대구탕집에서 먹은 민어탕. “생선탕은 역시 군산이 최고여!” 외에는 설명할 문구가 떠오르지 않는군요.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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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환갑상은 동생이 진즉에 차려주어 받아먹었다. 부산의 모 요양병원에 입원해있던 큰 누님 마지막 문병을 다녀오던 지난 5월 23일 동생이 새만금방조제 입구 비응항에 은대구탕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있는데 맛이 그만이라며 자랑했다. 

새벽에 출발해서 문병을 마치고 돌아오다 동생의 권유로 아내와 딸을 불러내 함께 갔는데 "형님! 조촐하지만, 오늘은 제가 드리는 환갑 상입니다. 앞으로 바쁠 것 같아서 미리 내는 것이니까, 그렇게 알고 드세요!"라고 해서 고맙다며 맛있게 먹었다. 

그날 자리에서 환갑날은 모두가 바쁜 금요일이니까, 첫 주말인 6월 5일(토요일)에 집에서 형제들과 저녁회식을 하기로 정했다. 그런데 5월 30일 큰 누님이 돌아가셨고, 장례를 치르느라 몸들이 피곤해서 그런지 빠진 조카들이 많았다. 셋째 누님 고희(古稀) 기념일이 7월에 들어 있고, 어머니 제사가 그때쯤인 것도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래도 나를 업어 키우느라 고생한 둘째 누님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와주어서 무척 반가웠다. 항상 바쁘다고 죽는 소리하던 딸은 하루 전에 내려오더니 "아빠!"하고 부르며 가슴으로 파고들어 전율을 느끼게 했다. 10여 년 만에 만져보고 느껴 보는 애틋함이기도 했다.

환갑을 며칠 앞당겨 마련한 저녁 회식자리. 형님, 매형, 누님들, 조카들과 즐겁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환갑을 며칠 앞당겨 마련한 저녁 회식자리. 형님, 매형, 누님들, 조카들과 즐겁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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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아빠를 따라온 꼬마손님들. 아이들은 맛있는 음식보다 논에서 우는 개구리들이 더 좋은 것 같았습니다.
 엄마·아빠를 따라온 꼬마손님들. 아이들은 맛있는 음식보다 논에서 우는 개구리들이 더 좋은 것 같았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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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회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조카들에게 죄송하다는 전화가 걸려왔는데, 그래도 조카와 조카사위, 조카며느리, 아이들까지 참석한 숫자가 18명이나 되었다. 어려서부터 집에 손님이 오는 것을 좋아했는데, 안방에서 노는 손님들을 하나둘 세다가 아버지에게 혼났던 기억이 시나브로 떠올라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조카가 바다낚시 나가서 잡아온 우럭과 광어회는 그날 회식자리를 더욱 푸짐하게 해주었는데, 형님과 매형, 누님들, 조카들과 조카사위가 둘러앉아 술과 음식을 권하면서 이야기와 웃음꽃을 피우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았고, 흐뭇했다.

밤 11시가 되어서야 자리가 끝났는데, 셋째 누님과 막내 누님이 찰밥이랑, 쑥 개떡이랑 쪄와서 맛있게 먹으며 즐겁고 의미 있는 하루를 보냈다. 조카들이 보내준 봉투가 의미를 더했는지도 모르겠다. 손님들이 돌아간 뒤 음식 준비에 들어간 금액을 제하고 나머지는 아내와 사이좋게 나눠 가졌으니까.
 
환갑날 잡채밥 사주겠다던 셋째누님, 지금까지 소식 없어 

저녁 자리가 끝나갈 무렵 셋째 누님이 "야야, 오늘은 내가 봉투를 못혔다. 대신 진짜 환갑날 저녁에 너 좋아허는 잡채밥 사주께!"하는 것이었다. 누님의 '잡채밥' 얘기에 "또 간짜장 먹으려고?"라고 놀리며 한바탕 웃음이 터졌는데, 몸이 짜릿할 정도로 고마웠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록 누님에게 소식이 없었다.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서 전화를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약속이 지켜질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내에게 전화해서 밤 근무 하느라고 피곤하겠지만, 어쨌든 환갑날이니 함께 시원한 숲길을 거닐고 싶고, 저녁도 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알았다며 이내 달려왔다.

오후 3시에 군산시장 당선자와 인터뷰가 잡혀 있었는데, 아내가 시청까지 태워다 주고 주차장에서 1시간 넘게 기다려주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인터뷰를 마치고 아내와 은파관광지로 향했다. 창문을 여니까, 며칠 전에 심은 어린 모들을 지르밟고 불어오는 들녘바람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시간은 자꾸 가는데, 셋째 누님은 꿩 구워 먹은 소식이었다. 답답해서 전화를 하려니까 아내가 말렸다. 혹시 잊었을 수도 있고, 누님의 가벼운 호주머니도 걱정하면서 둘만의 시간을 갖자는 것이었다. 아내 얘기를 듣고 보니까 나중에 더 맛있는 거 사달라는 핑곗거리가 될 것 같아 저축하는 마음으로 포기했다.  

기분이 '짱'이었던 아내와 데이트

은파관광지 입구 풍경. 식어가는 부부 애정을 더욱 도탑게 할 수 있는 산책길로 추천합니다.
 은파관광지 입구 풍경. 식어가는 부부 애정을 더욱 도탑게 할 수 있는 산책길로 추천합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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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파관광지는 갈 때마다 입구에서부터 여유와 풍요를 느낀다. 도로 양쪽에 늘어선 가로수들이 경쟁이라도 하듯 가지를 뻗으면서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창한 숲길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산과 물이 한눈에 들어오는 숲길을 아내와 걷는다는 상상만으로도 여유와 행복감이 스며들지 않는가.  
 
물빛다리 광장에 도착하니까 야외무대에서는 '시민화합 한마당 큰잔치' 공연을 준비하는 음악 리허설을 하고 있었다. 마침 리더가 옛날에 자주 다니던 맥주 홀에서 곡을 연주하던 아저씨여서 반갑게 인사를 했는데, 일흔다섯 살에 대학에 나간다고 해서 또 한 번 놀랐다.

환갑날 아내와의 데이트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사열식 하는 군인들 발걸음처럼 가볍고 경쾌했다. 기분도 짱이었는데, 잠시 나이를 잊는 시간이기도 했다. 시원한 그늘 벤치에서 숲이 품어내는 맑은 공기를 흠뻑 들여 마시며 얘기를 주고받으니까, 시간만 나면 산을 찾았던 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아서였다.  

부챗살 모양으로 퍼지다가 모여들기도 하고 물기둥을 만드는 분수를 감상하고, 사진도 찍으면서 얼마 남지 않은 미래의 공간에 집을 지었다 부수기도 하고, 지나온 일들을 얘기할 때는 28년을 살면서도 경험하지 못한 느끼한 감정에 빠져들기도 했다.

고소한 맛이 입에서 착착 감기는 녹두빈대떡, 아내와의 생활도 고소한 맛이 착착 감기듯 했으면 좋겠습니다.
 고소한 맛이 입에서 착착 감기는 녹두빈대떡, 아내와의 생활도 고소한 맛이 착착 감기듯 했으면 좋겠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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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만 해도 침이 넘어가는 시원한 냉메일국수. 고혈압, 당뇨 예방 및 소화도 잘되는 메밀국수는 언제 먹어도 부담이 없지요.
 보기만 해도 침이 넘어가는 시원한 냉메일국수. 고혈압, 당뇨 예방 및 소화도 잘되는 메밀국수는 언제 먹어도 부담이 없지요.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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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시를 넘어 일곱 시가 가까워지니까 배에서 '꼬르륵' 소리를 내며 신호를 보내왔다. 해서 시내로 나와 단골로 다니는 '대정칼국수'에서 시원한 메밀국수와 고소한 맛이 일품인 녹두 빈대떡으로 환갑 피날레를 장식했다. 그것도 스마일 모드로. 

음식을 맛있게 먹고 식당을 나오는데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로 화내는 나를 달래셨던 어머니 생전 모습이 떠올라 미소가 지어지면서 작은 행복감을 맛보기도 했다. 환갑날 아내와 데이트도 하고, 외식도 하면서 즐겼으면 족하지, 그 이상은 욕심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었다.


태그:#환갑, #저녁회식, #빈대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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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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