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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어렵사리 사과했다. 지난 11일 이른바 '스폰서 파동' 결과 발표 직후다. 김준규 검찰총장이 "검찰이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사과하기에 이르렀다. 김 총장은 잘못된 관행과 사고 방식을 모두 버리겠다며, 앞으로 제도를 고쳐서 검찰권 행사는 국민의 통제를 받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새출발하겠다는 검찰, 믿어도 될까?

 

검찰이 대국민 사과와 함께 발표한 검찰개혁방안에는 "국민이 직접 검사의 권한을 통제"한다는 파격적인 표현까지 들어있다. 이제 새 출발하겠다는 검찰을 믿어도 되는 것일까.

 

골자를 보자. ▲ 검사의 범죄를 특임검사가 독립 수사하는 등 감찰 강화 ▲ 검찰시민위원회, 기소배심제 도입으로 국민이 검사의 권한 통제 ▲ 검찰이 앞장서서 접대문화 근절 등이 개혁안의 내용이다.

 

그동안 수사권과 관련하여 공식적으로 '외부'의 참여나 통제를 언급한 적이 없던 검찰의 입장을 감안하면, 이번 발표안은 진일보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검찰 입장에서 선의로 해석해보자면 국민에게 권력을 돌려주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여론은 검찰에 우호적이기는커녕 의심의 눈초리만 보내고 있다. 단순히 '스폰서 검사'의 여운이 너무 컸다고 볼 수만은 없다. 검찰이 자기 살을 깎는 심정으로 발표했을 개혁안이 지지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수처 신설, 검경 수사권 분산엔 모르쇠 하더니...

 

첫째, 시기의 문제이다. 이른바 '스폰서 검사' 문제가 불거진 이후 검찰은 어떤 방식으로든 이 사태를 정리하고 달라진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그래서 진상규명위의 징계권고가 나온 이후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개혁방안이 발표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스폰서 검사 문제와 검찰의 개혁안(국민의 수사권 통제 등)은 직접 관련이 있다고 보기 힘든데도 같은 시기에 발표되었다. 이것은 검찰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의도가 숨어있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그동안 시민단체와 학계·정치권 등 외부에서는 공직자비리 수사처 신설, 검·경 수사권의 분산, 검찰의 문민통제 방안 등을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그때마다 모르쇠로 일관하던 검찰이 이제 와서 떠밀리듯이 자체 개혁안을 내놓는 것에 대하여 국민들의 시선이 고울 리 없다.

 

둘째, 이번 개혁안은 급조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검찰은 '검찰시민위원회'를 통해 수사·기소권을 국민에게 돌려주고, 미국식 기소배심 제도를 입법추진하여 기소단계에서 국민 참여를 보장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검찰 내부에서 얼마나 진지하게, 구체적으로 논의가 되었는지는 의문이다. 실례로 검찰시민위원회가 어떻게 구성되고 어떤 권한을 갖게 될지, 국민을 대표하여 검찰을 통제할 수 있을지 대표성과 실효성에 의심을 품는 사람들이 많다.

 

검찰시민위·미국식 기소배심?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법원의 예를 들어보자. 법원은 국민참여재판을 하기 위해서 수년간 사전준비와 입법과정을 거쳤다. 현재는 일종의 시범실시 단계를 거쳐 시행착오를 줄여나가는 등 제도의 정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 몇 년 더 걸려야 국민참여재판의 모델이 자리잡히게 될 것이다. 반면 검찰이 제시한 미국식 기소배심은 아직까지 아이디어 차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그나마도 입법이 되지 않는다면 사장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강력한 감찰시스템을 위해 감찰본부를 강화하고 외부인사를 감찰위원회에 참여시키겠다는 것이 검찰의 입장이다. 검찰은 감찰위원회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겠다"는 것이지만, 이번 '스폰서 검사' 조사결과에서도 드러나듯이 아무런 권한이 없는 민간인의 참여는 국민여론과 동떨어진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번 발표에는 검사의 범죄는 특임검사가 독립적으로 수사·기소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이보다는 검사를 포함한 고위 공직자들의 수사를 위한 별도의 독립기구를 설립하는 것이 훨씬 실효성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그동안 경찰에게 수사권을 부여하는 방안이나 공직자비리를 수사하는 별도의 기구를 만드는 방식 등에는 별다른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검찰이 진정 개혁 의지가 있다면 개혁안 마련에서부터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외부 인사의 참여를 보장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스폰서 검사부터 철저하게 책임 물어야

 

마지막으로 실현가능성과 진정성이다. 검찰의 개혁안 대부분은 국회의 입법 과정을 거쳐야 한다. 쉽게 말해 검찰이 하고 싶어도 법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이고, 검찰이 거부해도 입법이 되면 해야 한다는 말이다. 검찰로서는 안을 던져놓고 정치권에 공을 넘겨버리면 책임을 면하게 될 수도 있다.  

 

검찰은 검찰문화를 바꾸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정직·성실·청렴·소신을 새로운 검찰의 기본 덕목으로 제시하고 '과거의 잘못된 모습에 젖어있는 검사는 단호하게 퇴출'하겠다는 입장이다. 검찰의 발표자료에는 '앞으로'라는 표현이 3번이나 나온다. 하지만 정작 '스폰서 검사'로 거론되었던 검사들은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언급이 없다.

 

검찰의 개혁방안이 진정성 있게 다가가려면 앞으로 잘하겠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지금부터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이번 사건 관련자들부터 철저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앞으로가 아니라 바로 지금부터다.

 

검찰의 개혁안을 폄하할 의도는 전혀 없다. 하지만, 검찰이 수세로 몰린 상황에서 자체적으로 급조한 안은 진정한 개혁안이 될 수 없고 또한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도 없다는 사실을 검찰이 잘 알았으면 좋겠다. 


태그:#스폰서, #검찰,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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