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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12일 (토) 청계천 베를린 광장에서 퀴어문화축제가 열렸다.
 2010년 6월 12일 (토) 청계천 베를린 광장에서 퀴어문화축제가 열렸다.
ⓒ 김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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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퀴어문화축제가 열렸다. 이 행사를 취재하기 앞서 퀴어문화축제 홈페이지(http://www.kqcf.org/)에 들어가 사전 조사를 했다. 나름 동성애자에 대해 꽤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처음부터 모르는 용어와 맞닥뜨렸다. LGBT가 뭐지? 검색해보니 레즈비안(Lesbian),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성전환자(Transgender)를 집합해서 지칭하는 축약어란다.

예정보다 일찍 현장에 도착했다. 서울 청계천 베를린 광장에는 조그마한 부스 몇 개에 비만 주룩주룩 오고 있었다. 내 첫 현장 취재길은 험난하기만 했다.

게이 인권 운동 16년보다 드라마 하나가 더 효과적

한국 남성 동성애자 인권운동 단체 '친구사이'의 부스에 가 보았다. 커밍아웃을 한 세계 유명 인사들의 사진과 소개글을 전시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이제훈(가명)씨는 동성애자의 이야기를 대중매체에서 다루면서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이 조금 나아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인식이 부족하다고 했다. 사람들이 트랜스젠더와 게이를 같은 존재로 인식하지만 둘은 전혀 다른 존재라는 말도 했다. 그러면서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우리 '친구사이'가 생긴 지 16년이 되었어요. 지난 16년간 열심히 인권운동을 했는데, 그것보다 대중매체에서 한 번 드라마를 방송한 것이 훨씬 더 효과가 좋은 거 있죠. 우리는 벽장 속에 숨어 있는 게이가 양지로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청소년 동성애자 교육이나 교사 교육을 실시하고 교사용 지침서도 만들었습니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잠시 베를린 광장 앞에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세 명의 참 예쁘고 젊은 남자들을 만났다. 이들의 성정체성을 명확히 자신하지 못한 상태에서 인터뷰를 시도해 봤다. 참 고맙게도 이들은 초보 현장취재 기자의 인터뷰에 응해 주었다. 가명을 정해달라고 부탁했더니 한웅(가명) 이라고 말해 주었다.

축제와 관련된 다양한 물품 판매, 전시, 체험 등을 위해 마련한 공간이다.
▲ 퀴어문화축제 부스 축제와 관련된 다양한 물품 판매, 전시, 체험 등을 위해 마련한 공간이다.
ⓒ 김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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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다른 LGBT들을 보고 싶어서요. 만날 같은 사람들만 보는 게 좀 지겹더라고요."

- 이 행사에 처음 참가했나요?
"아니요. 두 번째요. 재작년 고3때 처음 와 보았어요. 그 때 참 신기하더라고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떳떳하게 스스로를 밝히는 것이 정말 놀라웠어요."

- 저, 참 조심스러운 질문인데요, 혹시 성정체성이 어떻게 되시는지.
"아, 저 게이에요. 얘네들도 다 그렇구요."

- 저, 게이(gay)라는 단어가 어떠신가요? 이 단어를 그냥 써도 되는 건가요? 비하하는 의미로 들리지 않을지 걱정이 됩니다. 혹시 좀 더 좋은 다른 용어가 있을까요?
"저는 사실 게이라는 단어를 안 좋아해요. 비하한다고 느껴지거든요. 저는 그래서 이반(二般)이라는 용어를 선호해요. 게이와 레즈비안 모두를 지칭하는 단어지만 저는 이 단어가 좀 더 마음에 들어요."

"얘가 여기 오면 가죽 팬티를 입은 남자를 볼 수 있다고 해서 왔어요."

갑자기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한웅의 친구가 끼어들었다. 한웅과 친구들 사이에 그렇다 안 그렇다 하며 귀여운 소동이 벌어졌다. 오히려 내가 잠시 당황을 했다. 이런 이야기를 기사에 쓰면 남성 동성애자들의 이미지가 나빠지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이 상황에서 나를 구해준 건 한웅의 또 다른 꽃미남 친구였다.

"동성애자가 아닌 일반인들도 대학교 축제나 공연 같은 때 아주 과감한 퍼포먼스를 보여주기도 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동성애자들도 이런 축제 기간에는 과감한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나쁘게 보이지도 않구요."

- 최근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동성애자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는데요.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드라마에서 잘 생기고 이미지도 좋은 배우들이 이반으로 등장하고, 맡은 역할도 코믹하지 않고 아주 진지해요. 그래서 우리 이반들에 대해서 아주 긍정적인 이미지를 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커밍아웃 10주년을 맞은 홍석천씨가 세 명의 사회자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 퀴어문화축제 무대에 오른 홍석천 커밍아웃 10주년을 맞은 홍석천씨가 세 명의 사회자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 김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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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여전히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해 보았다.

- 어제 일기예보부터 오늘 비가 많이 온다고 했는데요, 안 오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요?
"비가 와서 사실 안 오고 싶었어요. 하지만, 1년에 단 한 번 있는 우리들의 축제잖아요. 그래서 기를 쓰고 왔죠."

-퀴어문화축제 말고 퀴어영화제도 있다고 들었어요. 꼭 1년에 한 번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요?
"퀴어문화축제는 청계천처럼 열린 공간에서 하니까 혹시 누가 보더라도 구경 온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퀴어 영화제는 극장이라는 닫힌 공간으로 들어가야 해요. 참여하기가 좀 더 부담스럽죠."

그날 만난 참 예쁘고 잘생긴 친구 한웅은 미래의 어느날 성공을 하면 커밍아웃을 하겠다고 했다. 부디 그가 크게 성공해서 커밍아웃을 해도 이 사회의 편견이 절대로 상처를 줄 수 없을 만큼 강해지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이 3인과 인터뷰한 후 내게는 편견이 하나 자리 잡았다. 역시! 남성 이반은 참 잘 생겼구나! 라는.

꽃미남 3인과 한 인터뷰를 끝내고 베를린 광장으로 나오니 개막식 행사가 펼쳐지고 있었다. '붉은 나비 합창단'의 개막식 축하 공연 후, 여성 이반들로 구성된 '부치파탈'의 힘찬 무대가 펼쳐졌다. 그림의 떡인걸 뻔히 알면서도 주로 남성 이반들에게만 눈이 갔는데, 도도하면서도 중성적 매력을 물씬 풍기는 부치파탈의 공연은 이런 내 눈을 확실히 잡아끌었다.

취재를 하러 갔기 때문에, 나는 이반이 아니기에, 무대 앞에 모여 흥겹게 공연을 지켜보는 사람들처럼 환호하며 즐기기가 왠지 꺼려졌는데, 이들의 공연은 달랐다. 이성애자인 내 눈에도 언니들은 힘이 넘치고 섹시해 보였다.

여러분은 모두 다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홍석천씨가 무대에서 춤을 추고 있다.
 홍석천씨가 무대에서 춤을 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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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홍석천씨가 무대에 올랐다. 오늘 내가 이 자리에 온 이유기도 했다. 무대에 오른 홍석천씨는 커밍아웃한 후 좋아진 점이 있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두 가지가 있다며 이렇게 코믹하게 대답했다.

"맘에 드는 남자에게 전화를 할 수 있다는 점이 첫 번째 좋아진 점이고요, 이젠 게이바를 편하게 맘대로 갈 수 있다는 점이 두 번째 좋아진 점이에요."

두 번째 질문은 조금 진지했고, 그도 진지하게 대답했다. 두 번째 질문은 아직도 벽장 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 동성애자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꼭 커밍아웃을 해야 하는 건 아니에요. 안 해도 돼요. 하지만, 커밍아웃을 하건 안 하건 동성애자인 본인을 부끄럽게 생각해서는 안돼요. 여러분은 다 소중한 사람들이에요. 본인이 본인을 사랑해야 남에게도 사랑받을 수 있어요."

자신의 경험이 묻어나오는 말이라 가슴이 찡했고, 사람들에게도 큰 환호를 받았다. 홍석천씨도 이 퀴어문화축제를 소중하게 여기는 듯 했다. 한 번도 준비해 본 적이 없지만, 이번에는 준비했다며 윗옷까지 벗어던지고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의 여성스런 캐릭터만 기억하는 내게 그는 힘이 넘치게 춤을 추었다. 점심으로 삼겹살을 먹어 배가 나왔다고 말했지만, 그의 근육질 몸매는 매혹적이었다.

하지만, 이것보다 홍석천씨에게 쓰는 편지를 낭독한 열 여덟살 남성 이반 '찌나'의 이야기가 더 가슴에 와 닿았다. 그는 홍석천씨가 커밍아웃을 했을 때 자기는 여덟 살이었다고 말했다. 커가면서 성정체성에 고민을 느끼게 되었을 때 나도 형과 같구나 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이 세상의 많은 남성 이반들이 형을 떠올리며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커밍아웃 이후 홍석천씨는 많은 고생을 했다. 하지만, 동시에 벽장 속에서 웅크리고만 있었던 많은 이반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도 던져주었다. 그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기에 이런 퀴어문화축제가 가능했고, 많은 이반들이 떳떳하게 태양 아래에서 얼굴을 내밀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던 것이 아닐까?

무대 행사가 끝난 후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비는 여전히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우비를 입고 퍼레이드 차량을 따라갔다. 오늘 사회를 보고 퍼레이드 차에서 마이크를 잡은 김조광수씨는 이렇게 선창했다.

"우리는 게이다! 나는 게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잠시지만 서울 하늘 아래 청계천 변에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반인 듯한 이들이 정말 많이 모여서 퍼레이드에 참여하고 있었다. 변태라고, 정신병자라고, AIDS의 주범이라고, 신의 창조질서를 거스른다고 냉대를 받던 이반들이 주류가 되고 나처럼 프레스 표지를 목에 걸고 취재나 하는 일반들이 소수가 된 듯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게이인 내가 자랑스럽다고 외치는 이들의 모습이 멀어져 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부디 오늘 이 순간처럼 이반들이 대한민국의 하늘 아래에서 당당하게 활보하고, 차별받지 않는 사회가 빨리 오기를 진심으로 기원해 본다.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
ⓒ 김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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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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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
ⓒ 김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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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퀴어문화축제, #홍석천, #이반, #게이, #레즈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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