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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폭탄을 아무런 대책 없이 그대로 사회에 내보낸 것이다."

미성년자였던 친딸을 성폭행해 7년간 복역했던 A씨가 출소 20여일만에 이혼했던 전 부인 B씨를 찾아가 재판 때 거짓 진술을 하지 않았다며 승용차로 치고 달아나는 사건이 벌어졌다. 전 부인은 이 사고로 사망했다.

여성단체들은 "아버지가 지난 4월 개정된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에 따라 '전자 팔찌'를 착용해야 하는 대상이지만 이루어지지 않았고, 성폭력 피해자와 가족들에 대한 보호 대책이 세워지지 않았던 것이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여성단체들은 성폭행 가해자에 대해 안전대책 없이 사회에 내보내는 것은 '인간폭탄'을 내보내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친딸을 성폭행하고 구속되었다가 출소했던 전 남편이 모는 승용차에 치어 사망한 40대 여성의 빈소가 경남의 어느 병원 영안실에 마련되어 있다.
 친딸을 성폭행하고 구속되었다가 출소했던 전 남편이 모는 승용차에 치어 사망한 40대 여성의 빈소가 경남의 어느 병원 영안실에 마련되어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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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10일 오전 7시30분경 경남 소재 한 도시의 이면도로에서 벌어졌다. A(47)씨가 전 부인 B(43)씨를 승용차로 친 뒤 달아난 것이다. A씨는 B씨를 승용차에 태우려고 했지만 B씨가 타려하지 않자 실랑이를 벌였고, 그 과정에서 B씨가 넘어지자 A씨는 차를 몰아 B씨 몸 위를 지나갔다.

B씨는 곧바로 119응급차량으로 병원에 옮겨졌으나 치료 도중 숨지고 말았다. 경찰은 이날 저녁 사건이 벌어진 도시와 같은 지역에서 A씨의 승용차를 발견했다. 현재 경찰은 A씨의 연고지에 인력을 배치하는 등 행방을 쫓고 있다.

A씨는 7년 전 학생이었던 친딸을 성폭행한 죄로 7년형을 살고 지난 5월 중순에 출소했다. 재판 때 A씨는 가족들이 '거짓 진술'하기를 바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A씨가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을 때 면회를 가기도 했으며, 중간에 이혼했다. 그 뒤 A씨는 B씨한테 협박했던 것으로 알려졌고, 가족들은 불안에 떨었다.

출소하기 전 A씨는 B씨에게 '반성하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전 부인은 그래도 두려워했고, 경찰에 '신변보호 요청'을 해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B씨 가족은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못해 이사도 가지 못했다. B씨는 이날 아침 A씨로부터 '아들이 보고 싶다'는 전화를 받고 나갔다가 참변을 당한 것이다.

B씨의 직장동료는 "전 남편이 출소한다는 사실을 알고 두려워했다"면서 "이미 경찰에 보호요청을 해놓았기에 연락만 했더라도 괜찮았을 것인데, 그냥 나갔다가 저렇게 되고 말았다"고 말했다.

B씨 남동생은 "명절 때 가족들이 모이면 불안하다고 했다, 출소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했다, 출소하기 전에 보호요청을 했는데 지켜지지 않았던 것이다"라며 "누나 시신을 보니 가슴에 바퀴 자국이 나 있었다, 당시 출근시간이라 옆에 사람들도 많았을 것인데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성폭력 피해자 보호 대책 시급"

이날 저녁 B씨의 빈소에는 여러 여성단체에서 나와 있었다. 성폭력상담소 한 관계자는 "우리 사회에는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보호 대책이 전혀 없고, (피해자들이)보복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면서 "피해자 보호대책은 법적, 제도적으로 마련되어야 하고, 무엇보다 생계까지 책임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인숙 경남아동여성인권연대 회장은 "성폭력 피해 아동은 국가가 지켜주어야 한다, 생계까지 국가가 책임져야 하고, 심리 치료는 꼭 필요하다"면서 "경찰을 비롯한 국가기관은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데 이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과연 그 의무를 다하고 있는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A씨는 전자팔찌 착용 대상이었지만, 착용하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월 개정된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에 의하면, 성폭행 피해자가 아동이고, 출소한지 3년 이내인 범죄자일 경우 전자발찌를 착용해야 한다.

조현순 경남여성SOS솔루션위원회 위원장은 "친아버지가 아동성폭력의 가해자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친족의 성폭력에 대한 경각심은 적다"며 "아동이 성폭력 피해를 입으면 두 번 세 번 피해를 당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교도소에서 성범죄자에 대한 교화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성범죄자는 심리 치료를 병행해야 한다"며 "아무런 대책 없이 형을 마쳤다고 해서 사회에 내놓으면 안된다, 인간폭탄을 사회에 그대로 내보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보호대책이 없으면 보복의 악순환은 일어날 수밖에 없고, 죽고 죽이는 사건은 계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찰은 "B씨가 사건이 일어날 무렵 경찰에 신변보호 요청을 하지 않았다"면서 "A씨는 개정된 법률에 따라 전자팔찌 대상이었지만 착용하지 않았고, 전자팔찌 착용 문제를 법무부에서 어떻게 했는지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말했다. 또 경찰은 "A씨의 행방을 계속 추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태그:#성폭행, #성폭력, #보복폭행, #성폭력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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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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