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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2008년 6월 9일 저녁 서울 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광우병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제33차 촛불문화제에서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전면 재협상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2008년 6월 9일 저녁 서울 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광우병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제33차 촛불문화제에서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전면 재협상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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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30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이하 한미FTA)이 공식 서명된 지 3년이 돼가는 가운데 한국 정부를 비롯해 미국 정치권에서도 한미FTA  비준에 대한 요구들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통상압력이 더욱 거세지는 속에서 한국 정부는 여전히 한미FTA  비준에 매달리고 있어 우려스러운 지점들도 커져가고 있다. 

미국 상원은 지난 5월 27일 본회의에서 재무위원장인 맥스 보커스 의원(민주, 몬태나주) 등 민주·공화당 의원 9명이 초당적으로 공동 발의한 '미국산 쇠고기 시장접근확대 지지안'을 통과시켰다.

결의안은 한국을 포함한 중국·일본·홍콩·대만·멕시코·베트남 등 7개국을 대상으로 쇠고기 수입국들에 모든 연령의 미국산 쇠고기와 부산물을 제한 없이 받아들이도록 시장개방을 요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제수역사무국이 미국을 광우병 통제국가로 분류하고 있음에도 수입국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제한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한국에 관해선 "30개월 미만 쇠고기와 부산물 시장을 개방하고 궁극적으로 모든 연령대 쇠고기와 부산물의 시장개방을 합의했으나 아직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국정부는 이 결의안이 법적 구속력이 없고, 1차 대상이 일본일 것이란 점(일본은 20개월 미만만 수입하고 있음)을 들어 문제를 과대평가하는 것을 경계하는 눈치다. 하지만 결의안이 초당적으로 발의되어 만장일치로 통과된 걸 보면 한국에도 향후 시장개방 압력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한국이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수입하고 있지 않은 것은 민간 자율에 의한 한시적 조치로 미국은 추가 시장개방 압력을 가할 명분을 가지고 있는 상태다. 물론 이같은 미국의 통상압력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미국의 경제위기 출구 찾기와 통상압력 

미국은 현재 자국 경제위기 탈출을 위해 수출에 열을 올리고 있다. 대공황 이후 최대의 경기침체가 여전히 진행중인 데다, 금융 중심 경제구조의 한계가 명백히 드러난 상황에서 자국 경제의 구원투수로 '수출확대'를 선택한 것이다.

3월 11일(현지시각) 오바마 미 대통령은 미국 수출입은행이 주최한 연례회의 연설에서 미국이 오랫동안 전세계 소비시장으로써 역할을 해왔다며 이제는 이를 바로잡아 "5년 안에 수출을 두 배로 늘려 새로운 일자리 200만 개를 창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수출위원회 설치 등 개발도상국들이 수출에 집중하며 경제를 성장시켜가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정책들을 내놓았다. 수출을 경제회복의 수단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중국 위안화 절상 문제에 집착하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달러에 고정되어 있는 위안화 가치를 절상해 수입을 줄이고 미국의 대중국 수출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겠다는 의도다. 수출은 늘리고 수입은 줄이려고 하니 곳곳에서 보호주의 논란도 커지고 무역마찰도 증가하고 있다.  

광우병 위험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2008년 5월 31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촛불문화제가 열리는 서울 시청 앞 광장까지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다.
 광우병 위험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2008년 5월 31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촛불문화제가 열리는 서울 시청 앞 광장까지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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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확대'라는 칼을 빼든 미국이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에게 통상압력의 수위를 높여갈 것임은 당연한 수순이다. 미국은 한미FTA가 논의되는 과정에서부터 줄곧 쇠고기 시장 전면 개방을 요구해 왔고, 오바마 행정부는 "한국산 자동차가 미국에서 70만 대 이상 팔리는데 비해 미국산 자동차는 한국에서 7000대 미만으로 팔리는 역조현상을 결코 옹호할 수는 없다"며 FTA 비준을 위해서는 자동차 분야에서 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수출촉진 정책 입안을 위해 미국 산업계에서 수출에 장애가 되는 각국 수출장벽 내용을 접수한 적이 있다. 그 결과 100여 건의 수출장벽 관련 내용이 접수됐는데 이 중 21개 수출 관련 협회가 한국의 시장 접근 장벽을 지적하기도 했다(매일경제, 2010.2.16). 향후 통상압력이 더욱 거세질 것임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일각에서는 한미FTA가 미국에게 불리한 협정이라 미국이 비준을 미루고 있다는 생각들이 존재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미국이 한미FTA 비준에 소극적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오바마 대통령은 직접 수출증진을 위해 한국과의 FTA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사를 밝혔다. 거의 모든 미국 수출협회들도 한미FTA의 조속한 비준을 요청하고 있다.

5월 14일(현지시간) 토마스 도너휴 미국 상공회의소 회장이 한미FTA의 비준을 촉구하기도 했고, 5월 7일(현지시간) 미 상원 외교위원회의 민주당 존 캐리 위원장과 공화당 간사인 리처드 루거 상원의원도 오바마 대통령에게 한미FTA  이행법안을 의회에 제출할 것을 촉구했다. 물론 한국 정부가 쇠고기와 자동차 분야에서 불합리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내용을 빠뜨리지 않았다. 6월 9일(현지시간)에는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 의장은 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해 한미FTA 비준을 촉구했다.  

한미FTA가 미국에 불리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더 많은 이득을 챙기려 하는 것이다. 자국 경제를 위해 통상압력을 강화하는 움직임인 것이다. 더군다나 현재 수출확대를 통해 경기회복의 돌파구를 찾고 있는 미국은 정치·외교적 힘을 앞세워 향후 더욱 유리하게 FTA 내용을 수정하기 위한 압력을 가해올 것이다. 

천안함 외교와 한미FTA

지난달 20일 천안함 조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국방부는 19일 오후 3시 10분경 평택2함대 사령부에서 내외신기자들을 대상으로 인양된 천안함을 30분동안 공개했다.
 지난달 20일 천안함 조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국방부는 19일 오후 3시 10분경 평택2함대 사령부에서 내외신기자들을 대상으로 인양된 천안함을 30분동안 공개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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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와 관련해 미국의 통상압력이 거세지는 속에서 최근 들어 우려를 더욱 가중시키는 문제가 등장했다. 천안함 사태가 그것이다. 천안함 사태를 계기로 이명박 정부는 북한을 제재하기 위해 한미동맹의 힘에 더욱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더군다나 한미동맹 강화의 수단으로 한미FTA를 이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상황이다. 심지어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어떻게든 한미FTA를 비준하고 보려는 모습까지 보인다. 미국 상원의 쇠고기 전면 개방 압력 결의안이 예사롭지 않게 들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6월 2일 한덕수 주미대사는 미국 뉴욕 코리아소사이어티의 한미FTA 포럼에서 최근 천안함 침몰 사건을 계기로 한미 양국간 굳건한 동맹의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며, 한미FTA는 광범위한 동맹 강화 전략의 중요한 근간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 스스로도 4월 11일(현지시각) 워싱턴 포스트와의 회견에서 한미FTA 비준이 단순한 경제협력 차원을 벗어난 미국의 대 아시아 전략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말을 했다. 미국에 한미FTA 비준을 촉구하기 위한 발언이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한국의 입장에서도 정치·외교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한미FTA가 큰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지금만큼 이명박 정부에게 미국의 힘이 필요할 때가 있을까?

미국 쪽에서도 한미동맹 강화를 위해 한미FTA가 체결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5월 28일 리처드 하스 미국외교협회(CFR) 회장은 천안함 사건 해결을 위해 미국 의회는 한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을 조속히 비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 두 찰스 하원의원, 부시 정부시정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스티븐 해들리 등도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한미동맹을 더욱 강화해야 하며 동맹 강화를 위해 한미FTA 비준안을 신속히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결국 한미동맹 강화라는 정치적 요구를 내세워 서민들에게 피해가 돌아올 한미FTA를 조속히 통과시키려는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천안함 사건 후속대책 논의를 위해 방한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과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별관 국제회의장에서 한·미 외교장관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악수를 나누고 있다.
 천안함 사건 후속대책 논의를 위해 방한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과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별관 국제회의장에서 한·미 외교장관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악수를 나누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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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군다나 이명박 정부는 천안함 외교에서 점점 고립되면서 미국의 통상압력에 더욱 취약해질 수밖에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근의 흐름들을 보면 천안함 외교에서 이명박 정부는 점점 고립되어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천안함 조사를 위해 방한했던 러시아전문가팀은 천안함 침몰을 북한의 소행으로 단정 지을 수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요미우리신문> <인테르팍스통신>등 주요 외신들이 전하고 있다. 

천안함 대응에 한국입장을 전폭 지지하던 미국도 최근 발을 빼는 모양새다. 8~11일로 계획되었던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연기했고,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유엔 안보리의 결과를 지켜보고 다음 조치를 생각하고 싶다는 의견을 밝혔다. 게이츠 국방장관은 대북 제재와 관련해서도 큰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이라는 언급하기도 했다. 중국은 여전히 천안함 사건을 북한의 소행으로 단정 지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중국을 설득하기 위해 방중했던 천영우 외교통상부 제2차관은 별다른 성과 없이 돌아왔다.

이명박 정부는 유엔 안보리에서 북한에 대한 새로운 추가 제재결의안을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최근의 흐름들은 '의장성명' 채택정도로 수위가 조절되고 있다. 게다가 의장성명에 정부가 원하는 수준의 규탄 내용을 담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종합해 보면 이명박 정부는 천안함 외교를 위해 미국의 힘이 절실한 상황이고, 한국 정부가 한미동맹에 집착하면 할수록 여유로운 것은 미국이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통상압력 앞에서 취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다. 미국은 천안함 사태에 한국의 입장을 지지한 것을 활용하여 그 대가로 다른 사안에 대해 한국에 압력을 행사할 여지가 커졌다. 통상 압력도 그 중 하나다. 만일 한미동맹의 수단으로 한미FTA를 이용하려 한다면 미국은 더 많은 것을 요구할 것이고 더욱 굴욕적인 협상이 될 것은 뻔하다. 이러하기에 최근 미 상원의 쇠고기 시장 개방 결의안과 같은 통상압력에 대한 체감 온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노컷뉴스> 5월 17일자 기사에 따르면 민주당 최문순 의원은 지난달 17일 "정부가 천안함 문제에 대한 미국의 전폭적인 협력을 이끌어내는 대가로 FTA에서 양보를 하려고 한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우려되는 한미FTA 역풍

결국 천안함 사태로 미국의 지지가 절실한 이명박 정부와 수출 확대로 경제 위기를 돌파해 나가려는 미국의 입장이 겹쳐지며 미국의 통상압력에 취약해질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미FTA가 더욱 개악될 가능성도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현재의 흐름을 가지고 미국의 요구대로 한미FTA가 재협상 될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현재 천안함 문제로 점점 외교적 입지가 좁아지는 이명박 정부로서는 수출확대의 칼을 빼든 미국의 통상압력과 재협상 요구에 대응할 수 있는 입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고, 그에 따른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특히 한미동맹 강화만을 내세워 그 수단으로 무분별하게 한미FTA에 집착하게 되면 미국의 요구에 더욱 취약해 질 수밖에 없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올 것이다. 기존의 한미FTA 협상만으로도 서민들이 받는 피해는 크다. 얼마만큼을 더 미국에 내어주어야 하는가? 우려가 현실이 되지 않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한국민권연구소에도 실었습니다.



태그:#한미FTA, #천안함, #통상압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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