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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지방선거는 교두보에 불과하다. 목표는 2012년 총-대선 권력교체기다."

 

지난해 가을 서울 정동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시민운동가의 말이다. 그는 수백만 촛불의 열패감을 씻기 위해서라도 2010년 지방선거는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이겨야 2012년 권력교체기에 '진보정치의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 지면 다음에도 기회는 없다고 강조했다. 국민 의사와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MB정권의 무한질주에 제동을 걸려면 '푯불로 승부'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범야권이 6.2 지방선거에서 승리함에 따라 야권재편 논의가 탄력을 받고 있다. 2007년 대선패배 이후 '진보의 재구성' 논의가 간헐적으로 제기되기는 했지만 별다른 진전은 없었다. 그러나 야권연대를 통해 선거를 진행한 이후 '진보의 재구성'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범야권 연대로 한나라당과 MB정권을 꺾었기 때문에 이 기세를 몰아 2012년 권력교체기까지 새로운 야권연대 논의를 시작하자는 것이다.  

 

야권재편, 민주당이 가장 적극적인 이유

 

야권재편에 가장 적극적인 정당은 민주당이다. 국민참여당과는 통합을, 민노-진보신당 등 진보양당과는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지난 4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김대중 전 대통령 묘소를 찾아 "야권이 연대하고 단결하면 국민이 도와줄 것이라는 김 전 대통령의 말씀대로 국민이 도와주셨다"며 "선거에 이겼다고 흩어지는 연대가 아니고 계속 이길 수 있는 연대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민주당의 입장에 국민참여당은 반대 입장이다. 연대에는 찬성하지만 민주당과의 통합에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유시민 보건복지부 전 장관은 연합논의가 한창 무르익던 지난 겨울 "시즌이 돌아오면 단풍놀이 가듯 각 정당이 선거철이 돌아오면 선거연합을 하는 방식으로 연대하면 된다"는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통합과 연대 논의에서 각각 다른 입장이다. 민주노동당은 민주당 등과 함께 연합정치를 적극 펴면서 연합론을, 진보신당은 '5+4회의'를 깨고 나가면서 '진보우선론'을 각각 주장했고 지금까지 입장변화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거 시기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양당의 통합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현실화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이 같은 정당의 입장이 대중적 지지를 받게 될지는 의문이다. 범야권이 이번 선거에서 선거연합으로 국민적 지지를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배경에 야당에 대한 전폭적 지지가 포함돼 있다고 평가하는 전문가는 드물다. 이번 선거는 'MB 심판론'이 무엇보다 주요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특히 선거연합으로 큰 승리를 거둔 민주당이 다른 정당들을 흡수하는 방식으로 연합논의를 편다면 2012년 권력교체기를 앞둔 '진보의 재구성' 논의가 힘을 얻지 못할 게 불보듯 뻔하다.

 

비민주당 지지 16.45%의 힘

 

<분노한 대중의 사회> 저자 김헌태씨는 이번 선거결과에서 '비민주당 지지 16.46%의 힘'을 주목했다.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시도별 광역의원 정당득표율을 보면 한나라당 39.59%, 민주당 34.57%, 민노당 7.26%, 진보신당 2.94%, 국민참여당 6.26%다. 야권에서 민주당을 뺀 '비민주 개혁진보 야권 지지율'이 16%가 넘는다는 점은 '진보의 바닥 표'가 형성돼 있다는 증거라는 주장이다.

 

김씨는 "이번 선거에서 진보의 밑바닥이 좁아졌다고 볼 수는 없다"며 "범야권 승리 못지않게 중요하게 봐야 할 흐름이 '비민주 개혁진보' 정당들에 대한 응집"이라고 밝혔다.

 

그는 "서울시장 선거 결과를 보면 노회찬 대표와 한명숙 전 총리가 합쳤다면 이길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수치가 나왔다"며 "개혁진보가 힘을 합치면 다음 대선에서도 얼마든지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번 선거에서 진보진영은 반MB정서에서 대오를 형성해봤고 그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는 설명이다.

 

무엇보다 김헌태씨는 "이번 선거를 통해 민주당이 스스로 대안세력으로 부상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다만 "개혁진보진영 전체가 공유한 이번 선거연합 경험이 2012년 총대선 국면까지 긍정적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예측했다.

 

그러나 민주당을 비롯한 개혁진보 정당들은 이명박정부의 '문제적 정책들'에 대해 더 날카롭게 칼을 벼리고 정책승부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헌태씨는 "개혁진보진영에도 변화가 불가피하다"며 "양극화, 폭압정치, 승자독식 사회에 대한 진보의 대안을 내놔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진보의 재구성' 논의와 관련해 "민주당이 새로운 노선을 확보"해야 하고, "자유주의와 중도, 노동조직들이 포함되는 통합진보정당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노동과 중도, 자유주의로 정당이 분화돼 있으면 항상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측면이 있기 때문에 '통합진보정당'으로 하나의 정당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당부터 진보 정치인까지 포괄하는 진보정당?

 

이와는 별개의 흐름으로 진보신당 내부에서도 야권재편 논의가 촉발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협소한 '진보신당 중심주의' 대신 '기득권에 집착하지 않는 진보의 재구성'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김현우 진보신당 정책위원은 인터넷신문 <참세상>에 쓴 기고문을 통해 "진보신당이 민주노총 등 대중조직은 물론 좁은 의미의 시민사회에서도 연합군을 찾기 어려워진 상황은 당분간 진보신당의 독자생존을 불가피하게 할 듯하다"며 "독자생존을 위한 독자생존이 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에 진보의 재구성, 진보진영의 정계개편이 본격화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은 "사회당부터 사회주의 정치조직 지향 조직까지, 시민사회와 지명도 있는 진보적 정치인까지 미리 배제할 집단이나 개인은 하나도 없다"며 "이들 집단 모두에게 정중하고 끈기 있게 동참을 권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들도 충분히 어렵고 답답한 상황에 처해있으며, 진보의 재구성을 요구받고 있다는 게다.

 

또한 김 위원은 "심상정 후보의 사퇴에 반대하고, 당을 지키자는 이들이 협소한 진보신당 중심주의를 주장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는 듯하다"며 "민주노동당 분당을 감행한 이들과 촛불을 통해 만난 이들이 주로 진보신당의 기득권에 집착하지 않는 진보의 재구성을 촉구했던 이들이었고, 상황의 불확실성을 이유로 재창당에 미온적이었던 것이 노 대표와 심 전 대표였는데 지금은 입장이 정반대인 것처럼 보인다"고 썼다.

 

그는 "지난 일에 대한 평가는 분명해야 하지만 이제는 누가 진의를 가지고 있느냐를 따지기 보다는 재창당 논의를 본격화함으로써 진도를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2년 권력교체기까지 새로운 정치패러다임은?

 

김기식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은 최근 <프레시안> 좌담에 참석해 "연합이 혁신과 맞물리기 위해선 (정당간) 실질적 경쟁이 가능한 구조가 돼야 한다"며 "미국 민주당처럼 자유주의부터 사민주의까지 하나의 연합정당 구조 하에서 헤게모니 경쟁을 하는, 각자가 정치적 주장과 대중적 기반을 확장해 가며 새로움을 창출하고 변화를 강제해 가는 구조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한국 민주당도 그런 동력 없이는 집권에 성공하기 어렵다"며 "민노당도 이번 선거에서 실리를 챙겼다고는 하지만 민주당에 붙어서 간 것일 뿐이고 야권 전체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민노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은 각자의 존재 이유와 그 이후의 전략에 대해 근본적 의문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기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도 자기 틀을 깨는 혁신방식을 택해야 한다"며 "합당 하느냐 아니냐의 문제를 넘어 범진보개혁 세력이 철학적, 정책적 공감대의 폭을 조금 더 넓게 짜면서 그 안에서 경쟁하는 구도로 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충고했다.

 

김 위원장은 상상이라는 가정을 달고 "노회찬, 심상정 같은 정치인들은 대선주자로서의 지지율이 지금보다 굉장히 업그레이드 될 것"이라며 "유시민 전 장관도 네거티브 한 저항세력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며 정동영, 손학규 전 대표는 '마의 30%'를 넘을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치열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연합의 정신을 살리면서 혁신과 대안의 요구를 함께 만들어 낼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번 선거결과에 대해 "무상급식 등 진보적 이슈가 제기됐지만 정책쟁점이 두드러진 것은 아니었다"며 "정권심판론이 유효했던 선거"라고 평가했다. 따라서 야권에서는 여전히 이명박정부와 차별화 되는 비전과 정책을 제시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일갈했다.

 

무엇보다 김호기 교수는 이번 선거결과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미국발 금융위기를 통해 미국식 발전모델은 우리의 대안이 아닐 수 있다고 자각한 국민들이 김대중-노무현 민주정부 10년간의 중도진보적 노선에 대해 새로운 평가를 하게 됐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2004년 탄핵 이후 열린우리당에 보냈던 국민의 지지와 성원은 결국 '무능한 진보' 심판론으로 돌아왔다. 2006년 지방선거와 2007년 대선에서 연거푸 패배의 쓴잔을 마셔야 했던 진보개혁진영은 2010년 지방선거를 발판으로 새로운 정치패러다임을 조직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진보개혁진영의 정치세력이 2012년 권력교체기까지 국민의 신뢰에 기반한 새 판을 짜게 될 지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태그:#진보의 재구성, #지방선거 그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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