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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습관처럼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나 사회가 언제나 그랬을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의 기후에 적응해 살다가 중동 열사지대에서 느꼈을 당혹감이며, 중국의 대자연을 보고 느꼈을 경이로움 등이 그러한 예일 것이다.

 

 우리가 해외여행을 통해 느끼는 신선함도 이 같은 유쾌한 일탈에서 얻는 기쁨일 것이다. 만약 우리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시행하고 있는 모범적인 제도나 정책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해 본다면 그 느낌은 어떠한 것일까? 말로만 들었던 싱가포르의 공공임대주택 정책이나 프랑스의 대학평준화 정책이 한국에서 시행된다면 얼마나 우리들의 삶이 윤택해 질 것인가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싱가포르의 공공임대주택 정책이나 프랑스의 대학평준화 정책은 극단적인 사적 영역이 판치고 있는 한국 현실과는 너무 다르다. 그동안 이런 외국의 정책들은 적지 않게 언급되기는 했으나 막상 그 내용 소개는 빈약했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사회적 갈등의 프리즘을 타고 걸러지거나 굴절되어 알려지기도 했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대학평준화 정책에는 단순히 교육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68혁명 당시 서방 청년세대의 고민과 역사의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따라서 프랑스의 대학평준화 정책에 대한 소개는 정책이 시행될 수밖에 없었던 상상력과 함께 그에 담긴 시대정신도 빼놓아서는 안 된다.

 

 우리가 세계 여러 나라의 정책과 제도를 알아야 하는 진정한 이유는 지식과 정보를 쌓기 위해서가 아니다. 각 나라에서 왜 그 정책이 입안되어 어떤 과정을 거쳐 누구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고 있는가를 알기 위해서이다. 이를 통해 세계 각국의 모범적인 정책의 고갱이를 배워 한국사회에 시행하여 많은 국민들에게 그 혜택을 나눠보자는 데 있다.

 

 그런 면에서 조성주씨를 비롯한 여섯 명의 저자들이 펴낸 <세상을 바꾼 놀라운 정책들>은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이 책을 통해 필자들은 다양한 사례를 소개하면서 그것이 갖는 사회역사적 맥락과 한국사회에 갖는 실천적인 함의를 담고 있다.

 

 총 6장으로 구성된 <세상을 바꾼 놀라운 정책들>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장에서는 싱가포르의 공공주택정책, 프랑스의 대학평준화정책과 핀란드의 교육정책, 영국의 의료정책, 벨기에의 고용정책 등이 소개되어 있다. 이러한 사례들에는 모두 해당 국가의 절실한 고민과 진취적인 해법이 녹아 있다. 한국의 경우 주택, 교육, 의료, 고용 등의 문제는 어설픈 대증적 요법으로는 해결되기 어려울 만큼 하나하나의 사안이 난마처럼 얽혀 있다. 복잡한 문제일수록 해답은 간단한 경우가 적지 않다. 난마와 같이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푸는 것은 실오라기 하나하나 풀기보다는 이를 끊어 버리는 것이 정답일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위 사례는 한국현실을 해결하는데 필요한 상상력을 제공한다.

 

 2장에서는 방글라데시의 서민금융인 그라민은행, 쿠바의 무상의료, 베네수엘라의 문화예술정책인 엘 시스테마를 소개하고 있다. 미개한 나라처럼 분류되어 있는 방글라데시에서 서민 금융의 모범이 나온 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약탈적인 대출에 시달리는 한국사회에 경종을 울릴 만한 참고 사례이다.

 

쿠바나 베네수엘라의 사례는 한국과 사회체제가 다른 나라로 잘 알려져 제대로 소개되지 않거나 심한 이데올로기적 윤색에 의해 굴절되어 전해져 왔다. 세계 최고수준의 의료강국 쿠바의 무상의료와 석유 포퓰리즘의 나라 정도로 가볍게 소개되어 있는 베네수엘라의 문화예술 정책은 예상치 못했던 충격을 준다. 우리는 이러한 사례를 통해 한국의 국제적 안목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3장에서는 토빈세, 외화가변예치제 등은 1997년 IMF 외환위기를 통해 우리들에게 단편적으로 알려졌던 문제들을 소개하고 있다. 필자는 이들 문제들을 진지하게 다시 꺼내야 하는 이유에 대해 2008년 10월 이후 금융자유화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런 면에서 경제서적에 빠짐없이 등장하면서도 정작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투기자본의 이동을 통제하는 일련의 정책들은 음미해 볼 가치가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6장에 소개된 정책들이다. 유럽에서 신자유주의가 확산될 무렵 유럽의 좌파들이 어떤 고민을 했는가는 앤서니 기든스의 '제3의 길'을 통해 비교적 소상히 알려져 있다. 그러나 같은 시기 유럽의 정통좌파들이 '사회화'에 관심을 갖고 제기했던 시도들은 우리들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70-80년대 유럽의 정통좌파들이 시도했던 사례들을 통해 현재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단초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을 바꾼 놀라운 정책들』을 읽다보면 세상은 그냥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된다. 그래서 저자들은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불가능한 정책이란 없다. 오직 변치 않는 것이 있다면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고 향유하는 좋은 정부, 좋은 정치, 그리고 좋은 시민들이 있을 뿐"이라고…."

 

 저자의 말을 해석하자면 세상을 바꾼 모든 정책과 제도들은 특정한 사회경제적 환경에서 인간다운 삶을 위해 분투했던 사람들의 피와 땀의 응결체이다. 따라서 『세상을 바꾼 놀라운 정책들』이 오늘의 한국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정책과 제도의 논리적 완결성이 아니라 용기 있는 도전정신과 미래에 대한 상상력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조성주 외 지음 | '열다섯의 공감' 기획 | 도서출판 유니스토리, 246쪽 값 12,500원

이기사는 민중의소리에도 송고하였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바꾼 놀라운 정책들

조성주 외 지음, 유니스토리(2010)


태그:#세상을 , #사회과학, #서평,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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