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5년 전 날씨가 몹시 추운 겨운 어느 날이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함께 공주 갑사 여관에서 일박을 하고 계룡산을 넘어 대전 동학사로 넘어가고 있었다. 아들과 함께 도란도란 학교 이야기며 사는 이야기를 하는 도중 십여 미터 앞에 친하게 지내는 친구 부인이 동학사를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광주에 사는 친구 부인을 여기서 만나다니 반가웠다. 아래 대화는 뱉지 못하고 입속에서만 맴돌았던 대화 내용이다.

 

'x여사 웬일이세요? 대전까지 놀러오셨네. 관광차 오셨…나…요? 친구는?…!'

 

그 친구는 2대 독자다. 때문에 어른들의 독촉으로 가까이 지내는 친구 중 제일 먼저 결혼해 알콩달콩 살았다. 친구들은 사람을 좋아하고 서슴없이 잘 대해주는 친구 부인 때문에 모일 기회가 생기면 그 친구 집을 모임장소로 택했다. 탁구와 당구 모임 그 밖에 일년에 네 번 있는 모임에도 항상 빠지지 않고 친구들의 짓궂은 농담도 잘 받아주는 친구 부인인 x여사.

 

그런데 그 부인이 다른 젊은 남자와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웃으며 올라오고 있었다. 말을 막 뱉으려는 찰나 내 입을 틀어막았다. 잡고 있던 아들 손을 놓고 흐려진 안경을 다시 고쳐 썼다. 다시 한번 정신을 가다듬고 살펴봐도 틀림없이 친구 부인 x여사다.

 

내가 자랑하는 장기 중 하나는 사람 기억하는 것이다. 틀릴 리가 없다. 하지만 세상에는 닮은 사람도 많다. 말도 못하고 지나친 그 여자를 자꾸 뒤돌아보느라 아들과의 대화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잘못 봤겠지, 닮은 사람이겠지' 충격과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건성으로 대답하고 있는 나를 아들이 깨운다.

 

"아빠 내말 들려요? 왜 내말에 대꾸를 안해요?"

"응? 으응! 그래 뭐라고? 뭐라고 그랬냐?"

 

광주에서 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은 대전에 사는 친구가 하나도 없었다. 친구 부인도 성장지가 광주다. 물론 그 여자의 친인척 관계는 잘 모르지만 대전에는 없는 걸로 알고 있었다.

 

어린 아들에게 말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아내를 불러 자초지종을 말하고 의견을 구했다. 아내는 "남의 사생활이고 잘못 볼 수가 있으니 절대 전화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우리는 변함 없이 일년에 네 번씩 모임을 가졌고 일년에 한 번은 부부 동반으로 모임을 가졌다. 모임에서 내가 하는 일은 친구를 가만히 지켜보고 "내가 오류였나?"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친구가 모임에 빠지고 전화만 한다. 그 친구는 모임에 가장 적극적이고 모임을 갖자고 주장한 친구다. 아파트단지에서 제법 큰 수퍼를 운영하는 친구는 항상 바빴다. 친구들은 바빠서 그러려니 하고 이해를 했다.

 

십 년이 지난 어느 날 친구들은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그렇게 사이좋던 친구가 이혼했다는 것이다. 친구들은 다들 걱정을 하며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지만 웬만하면 아이들을 생각해서 합치라고 종용했다. 술이 한 잔 들어간 친구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다 잊어버리고 용서해줄 수 있다. 아이들을 위해서 같이 살자. 내가 울면서 사정했었다. 그런데 한 번 돌아선 마음이 되돌아오지 않더라. 심지어 대학생 두 딸들이 엄마를 따라가지 않고 나하고 살겠다고 한다."

 

몇 년이 지난 후 친구들은 재혼하라고 재촉했지만 요지부동이다. 허긴 어린애도 아닌 대학생 딸들이 옆에서 바라보고 판단했으니 누가 잘못했는지는 추측이 가능하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는 모르지만  이제 여자라면 생각하기도 싫다. 나 혼자 살란다. 근데 바쁠 때 잘 도와주던 딸들도 요사이는 회사일이 바쁜지 애인이 생겼는지 잘 도와주지 않아 힘들다. 그러려니 하고 이해하려고 해도 섭섭할 때가 많고 힘들다. 수퍼를 운영하니 먹고 사는데는 지장없지만…."

 

우리가 더 이상 얘기를 하면  친구가 힘들어 할까봐 화제를 다른 데로 돌렸다. 빈 술잔은 많아지고 담배꽁초가 늘어만 가는데 가슴 한켠이 휑하다. 가슴이 먹먹하다. 내 가슴이 이렇게 휑한데 친구 가슴은 말해 무엇하랴. 또 다른 친구가 혀가 꼬부라졌다.

 

"야 인마! 세상에 절반은 여자여. 떠난 사람 잊어버리고 네 인생 찾아라."

"아니야! 나 혼자 사니 간섭 받는 일도 없고 편하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는 모르지만 이제 여자라면 생각하기도 싫다."

 

각자에게는 각자의 인생이 있다. 저마다 짊어지고 갈 짐이 한 짐이다. 잘 사는 사람은 잘 산대로. 못 사는 사람은 못 산대로. 인생의 길동무를 잃어버린 친구. 가로등 아래로 저멀리 멀어져가는 친구의 어깨가 오늘따라 축 쳐져있다.

 

내가 잘못했었나. 그 때 전화했어야 했나. 인생. 모두가 한 짐이다.

친구야! 힘내라.

덧붙이는 글 | 희망제작소와 여수신문에도 송고합니다


태그:#이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교육과 인권, 여행에 관심이 많다. 가진자들의 횡포에 놀랐을까? 인권을 무시하는 자들을 보면 속이 뒤틀린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