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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학기술부가 민주노동당 가입 혐의로 기소된 현직교사 134명에 대해 파면 및 해임하기로 한 가운데 28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후문에서 정진후 전교조 위원장,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 양성윤 전국공무원노조 위원장을 비롯한 전교조 조합원들이 전교조 지키기를 위한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민주노동당 가입 혐의로 기소된 현직교사 134명에 대해 파면 및 해임하기로 한 가운데 28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후문에서 정진후 전교조 위원장,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 양성윤 전국공무원노조 위원장을 비롯한 전교조 조합원들이 전교조 지키기를 위한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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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지난 26일 서울 모 중학교의 A교사가 아는 척을 해왔다. 학교에 있을 때는 메신저에 접속 하는 일도 거의 없고, 간혹 로그인한 상태를 보고 반가워 말을 걸어도 답이 없을 때가 대부분인 그가 먼저 말 걸어온 것은 의외였다.

"생각해보니 오늘 들어간 ◯반 수업이 마지막이 될 것 같아서… 심란하네."

그는 묻지도 않은 말을 하고 있었다.

A교사는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가 선거를 앞두고 대량 파면·해임을 공언하고 나선 민주노동당(이하 민노당) 후원 관련 징계 대상자이다. 지난해 시국선언 관련 징계도 받았으니 저들의 기준대로라면 징계 수위는 '파면'이 될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이 파면·해임을 예고한 '2008 서울교육감 선거' 관련 교사 13명에 속해 있기도 하다.

징계 내역을 나열하고 보니 중징계 대상에 세 번이나 이름이 오르내린 그를 교과부 표현대로 '헌법과 법률을 고의적으로 위반하고 기본적인 교사의 책무성을 망각한 위법행위를 한 교사'로 혹은 보수 세력들이 이름붙인 '아이들을 세뇌시키는 정치 교사'라고 오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학교에서 그는 주당 24시간 수업을 하며 이번 징계 방침으로 인한 수업 결손을 걱정하는 사회 교사일 뿐이다.

"애들한테 인사도 못 하고 쫓겨나면 어떡하지?"

"그냥 28일 징계위원회 출석 안 할까 봐. 징계 결과야 뻔하고. 그 시간에 애들 수업 한 시간이라도 더 해 주는 게 나을 거 같은데. 애들한테 인사도 못 하고 쫓겨나야 하면 어떡하지?"

28일로 예정되어 있었던 서울시 교육감 선거 관련 징계위 출석 여부를 고민하던 그는 답을 기다리지 않는 '혼잣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교육감 선거 관련 징계 연기됐다네."

다음 날인 27일 A교사는 다시 한 번 메신저로 말을 걸어왔다.

"징계위 가느라 수업 빼먹으면 안 될 것 같아 오늘로 수업 죄다 당겨놨거든. 나 오늘 수업이 6시간이나 있다."

망설이는 듯 잠시 시간이 흐르고 그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당 후원 관련 직위해제는 어떻게 한대요?"

당장 애들을 만나지 말라는데, 생계 수단을 뺏겠다는데 의연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그는 속내를 들킨 것이 민망한 듯 덧붙였다.

"참… 교사 목숨이 파리 목숨인가? 어제까진 마지막 수업 준비했는데 오늘은 방학 전까진 수업할 수 있겠구나 가슴 쓸어내리고. 내가 수업 들어가는 반 아이가 '선생님 잘리는 거예요? 정답은 선거에서 ◯◯◯ 찍는 거죠? 엄마한테 말 할게요' 그러는데 그냥 웃었어요."

징계 대상 교사에 대한 교과부의 직위해제 방침이 발표되면 알려주겠다는 내 답을 들은 뒤 그는 다시 수업에 들어갔다.

"파면이라니... 당장 수업이 제일 걱정입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민주노동당 가입 혐의로 기소된 현직교사 134명에 대해 파면 및 해임하기로 한 가운데 28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후문에서 정진후 전교조 위원장,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 양성윤 전국공무원노조 위원장을 비롯한 전교조 조합원들이 전교조 지키기를 위한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민주노동당 가입 혐의로 기소된 현직교사 134명에 대해 파면 및 해임하기로 한 가운데 28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후문에서 정진후 전교조 위원장,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 양성윤 전국공무원노조 위원장을 비롯한 전교조 조합원들이 전교조 지키기를 위한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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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부의 민노당 후원 관련 교사들에 대한 파면·해임 방침을 들은 해당 교사들의 '분노'를 넘은 '수업 결손'에 대한 염려가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서울의 B교사 역시 전교조 홈페이지에 "직위해제 한다는데 분노하고 어떻게 투쟁할까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수행 평가 마무리, 수련회 지원 학생, 월말 통계는 언제 하나, 짐은 완전히 떠날 걸로 생각하고 싸야하나, 며칠 쉰다고 생각하고 싸야하나, 컴퓨터 하드도 좀 정리해야겠네. 아이고 이번 주말에 혼자 나와 일해야 겠네. 헐… 이런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라는 글을 올려 보는 이들을 울컥하게 했다.

시국선언 관련 정직 처분을 받은 뒤 몇 달 전 학교로 복직한 울산의 C교사도 교과부 기준대로라면 민노당 후원 관련 '파면' 대상자다.

상식을 초월한 징계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그는 "정부라면 국정 운영의 기본 원칙이 있어야 할 텐데 시국선언부터 정당 후원 관련 징계까지 이 정권은 논리가 없는 무원칙의 연속"이라고 답했다.

결정적인 '한 마디'를 들을 수 있을까 하는 욕심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요구하자 불편해 하던 그는 말했다.

"올해 초부터 민노당 후원 관련으로 시끄러웠던 터라 징계는 예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 수업 피해는 최소화 하겠다는 생각으로 교장 선생님께 징계를 받을 수도 있으니 '교과 전담'을 맡게 해달라고 말씀드렸어요. 몇 달 학교를 떠나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파면이라니… 당장 수업이 제일 걱정입니다."

그 역시 눈 앞에 놓인 감정은 '분노'가 아닌 '아이들에 대한 걱정'이었다. 몇몇 교사에게 더 전화를 걸어봤지만 부당한 징계에 대한 항변이나 생계에 대한 막막함이 아닌 본인이 담임을 맡은 학급에 대한 걱정, 수업 진도에 대한 고민을 들어야 했다.

학기중 200여 명 징계하겠다는 교과부, 대단하다

교과부는 "해당 교사 전원을 6월 1일까지 직위해제한 뒤 중징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학습권, 수업 결손에 대한 우려를 내세워 "직위해제 방침은 시도 자율적으로 정하겠다"며 한 발 물러선 자세를 보였다.

교과부의 이번 징계 방침을 두고 사회 곳곳에서는 정부 여당의 지방 선거 전략인 '전교조 죽이기'에 교과부가 편승하는 꼴이라는 비판을 쏟아냈다. 비난 여론으로 역풍을 맞은 교과부는 선심 쓰듯 직위해제를 말하지만 이 같은 자세야 말로 이미 자신들이 여당의 눈치를 보며 '정치 징계'를 강행했음을 방증하는 꼴이 됐다.

교과부가 진심으로 수업결손과 학습권을 걱정했다면 학기중 200여 명에 가까운 현장 교사를 징계하겠다는 발상은 도저히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정권 눈치를 보며 '직위해제'를 하느니 마느니를 고심하는 교과부를 보면 이들의 학습권 운운 역시 공허한 울림으로 들린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교육희망>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전교조, #민노당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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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에서 발행하는 주간지 <교육희망>의 강성란 기자입니다.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 싶은 교육 소식을 기사화 해서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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