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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아름다워의 동성애커플 태섭(송창의)과 경수(이상우)
 인생은 아름다워의 동성애커플 태섭(송창의)과 경수(이상우)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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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유명 토크쇼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했던 한 출연자가 이렇게 말했었던 것을 기억한다.

"아들이 남자친구를 데려와 결혼할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일만 아니라면 뭐든 이해할 수 있어요."

물론 웃자고 한 이야기였지만 그들의 대화 속에서 개방적이라는 미국에서도 동성애에 대한 편견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개방적인 사회라 할지라도 내 아들 혹은 내 딸이 성적 소수자에 속한다면, 이를 쉽게 이해하거나 수긍할 수 있는 부모가 얼마나 될까.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식의 동성애와 남의 동성애를 구분지어 이해하는 이중적 시선이 존재하고 있음을 우리는 부인 할 수 없다.

내 자식의 동성애와 남의 자식 동성애, 그 이중적 시선
  

아들의 커밍아웃을 사랑으로 받아주는 태섭부모
 아들의 커밍아웃을 사랑으로 받아주는 태섭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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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방송된 SBS 주말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태섭(송창의)이 드디어 '커밍아웃'을 선언했다. 

첫 회부터 동성애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인생은 아름다워>. 솔직히 시청자 입장에서도 애가타서 죽을 지경이었다. 회를 거듭하면서 매회 언제 들킬까, 누구에게 들통이 날까, 저러다 걸리고 말지 하며 태섭과 함께 가슴을 졸여왔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뒤에 더 큰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언정 태섭의 커밍아웃을 바라보는 시청자의 심정은 맞을 매를 맞은 것처럼 차라리 시원하고 후련하기까지 했다.

'그래 차라리 말하길 잘했어. 언제까지 숨기고 갈 거야. 속이다 후련하다.'

눈물샘을 자극하리만큼 감동적이었던 태섭의 커밍아웃 장면. 사실 스토리에 동화되어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눈물, 콧물을 흘리고는 있었지만 아들의 커밍아웃을 대하는 태섭 엄마(김혜숙분)의 지나치리만큼 성숙한, 모범 답안식 반응은 다분히 현실감이 부족했다는 평이다.

만약 내 아들이 커밍아웃을 선언했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극중 태섭 엄마처럼 "얼마나 외로웠니? 얼마나 힘들었니? 어떻게 할 수 없는 거 안다.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며 지극히 교양있고, 이성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차분하게 위로해 줄 수 있었을까.

아들과 같이 잠든 친구, '혹시?'

질풍노도의 시기를 유난하게 치른 두 아들을 가진 내가 아들들에게 청소년기부터 "이것만은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 두 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혼전임신이며 또 하나는 마약이었다.

혼전임신과 마약에 대한 경고는 어찌 보면 얼마간의 가능성이 있기에 할 수 있는 걱정이며 부탁이었다. 하지만 그런 나조차 아들들에게 동성애자는 안 된다는 주의는 주지 않았다. 이는 내 아들들이 동성애자가 될 가능성에 대해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일이 없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최근 들어 내 아들은 100% 이성애자라는 나의 확신이 혹시 틀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마도 그것은 그동안 알게 모르게 친숙해진 우리 사회 속 동성애 문화와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커피프린스>, <개인의 취향>, <인생은 아름다워> 등 동성애를 긍정적으로 다룬 드라마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주 토요일이었다. 밖에서 친구를 만나 늦게 들어온다던 아들의 방문을 열어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언제 들어왔는지 침대 위에서 골아 떨어져 있는 아들. 그런데 발치에 친구로 보이는 또 하나의 머리가 보이는 것이 아닌가. 아마도 지난밤에 술에 취해 친구와 함께 들어와 잠이 든 모양이었다.

자주 있는 일이라 그러려니하고 문을 닫으려다가 문득 "혹시?" 하는 불길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자나 깨나 아들 조심, 자는 아들 다시보자'

녀석들의 자는 모습을 잠시 지켜보았다. 게걸스러운 모양으로 잠든 두 남자의 모습에서는 전혀 이상한(?) 감을 찾을 수 없었다. 적어도 영화나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동성연인들이 잠든 모습은 아니었던 것이다.

아들과 아들 친구를 상대로 잠시라도 이상한 상상을 한 내가 기가 막혀 "푹" 하고 웃음이 터졌다. 드라마 중독증에 걸린 아줌마들이 종종 현실과 드라마를 구분하지 못해 현실의 남편과 아이들을 잡는다더니, 내가 바로 그런 한심한 아줌마일 줄이야.

내 아들이 며느리감으로 인사를 간다면, 오 하늘이시여
SBS 주말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SBS 주말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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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저녁. 아들과 함께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다행히도 아들은 남자보다는 여자를 좋아한단다. 여자를 너무 좋아해 때때로 이성문제로 심각한 고민에 빠지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엄마로서는 그래도 동성이 아닌 이성 때문에 고민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노릇인지 그런 아들의 엉덩이를 두드려주고 싶은 충동을 참느라 무진 애를 써야했다.

사실 나는 동성애자들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지 않다. 개인의 성적결정권은 존중되고 인정받아야하며 남들과 다른 성적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 때문에 차별당하거나 외면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평소 나의 생각이다. 하지만 그것이 내 아들의 경우라도 마찬가지였을까? 라고 물어오면 자신이 없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나 가슴에서는 끝까지 부인하고 싶은. 나 역시 아들의 성적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겉으로라도 보통사람처럼 살아주길 바라며 끝까지 아들의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는 경수엄마처럼, 지독하게 아들을 괴롭히는 엄마가 되지 않을 거라 자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부모들의 마음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랑하지 않아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하기 때문에 자식들이 남들과 다른 삶을 사는 것에 대해 절대 인정하거나 받아들여주고 싶지 않은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동성애는 다 이해 할 수 있어도 내 자식만큼은 절대로 이해 할 수 없는 것에 이보다 더 현실적인 이유가 또 있을까. 

엄마의 이런 걱정을 알길 없는 아들은 태섭의 커밍아웃 장면에서도 아무런 공감이나 감동도 느끼지 못하는 듯 심드렁한 표정이다.

"드라마를 보다가 쓸데없는 걱정을 했잖니. 네가 어떤 남자를 데려와서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결혼을 허락해 주세요"라고 할까봐 말이야. 남자를 데려와서 며느리 감이라고 인사를 시키면 얼마나 식겁하겠어. 아마 엄마는 거품 물고 쓰러질 것 같아."

나름 심사숙고해서 던진 조크에 아들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받아친다.

"엄마 아들이 어느 집에 며느리 감으로 인사를 가는 그런 생각은 안 해 봤나봐. 우하하하."


태그:#인생은 아름다워, #커밍아웃, #동성애, #김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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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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