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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여름의 그날을 잊지 못합니다.

저는 당시 23사단 철벽부대에 배치되어 동해안 경계 근무를 섰습니다. 늘 매일 같이 반복해 바다 위에 떠 있는 이상 물체를 감시하고, 상황을 보고하며 적의 침투에 대비한 훈련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TOD(열영상장비)가 해안 전역을 감시하는 상태에서 군인의 육안이 얼마나 도움이 되겠느냐는 푸념을 하면서도, 할 일은 하는 이 땅의 일반적인 군인으로서의 의무를 다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당시 1군 사령관이던 장관께서 일선 초소를 방문한다는 상급부대의 연락으로 저희 연대, 대대는 긴장 상태에 돌입해 각 초소에 특별경계지시가 떨어졌습니다. 저는 초소 브리핑을 하기 위한 병사로 뽑혀 온갖 작업에서 배제되는 특혜를 누리고 초소에서 장관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군의 경계사단의 역할과 임무를 알리는 홍보
▲ 23사단 창설 32주년 광고 1군의 경계사단의 역할과 임무를 알리는 홍보

당시 작대기가 세 개밖에 없는 초병의 초소를 방문한 장관님의 어깨에서 처음으로 군인에게서 오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느꼈습니다. 한 초소 안에 들어와 있는 별이 대략 21개 정도 되던 것 같았습니다. 숨막히던 브리핑 속에서도 조그마한 실수 하나 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한 초병이 그야말로 장관님께 '뻑' 가버린 것은 이곳 일선 초소의 상황을 무척이나 잘 알고 있고, 동해안 경비가 얼마나 소중한지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섬세함과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한 치도 용납하지 않을 것 같은 단단한 눈빛이었습니다.

이후 장관님이 어떤 분인지 중대장에게 물어봤더니 "언젠간 반드시 대한민국 국군을 이끌어갈 국방부 장관이 되실 분"이라고 이야기 해주었고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큰 공감과 동시에 김태영 1군 사령관을 기억에서 지우지 않았습니다.

전역을 하고 1년이 지난 후 발표된 새 내각에 김태영 장군이 장관으로 내정이 되자 저는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안보에 대한 어떠한 로드맵과 구체적 경험이 전혀 없는 정부 각료 구성에 있어서 누구보다 군인다운 김태영 국방장관의 영전으로 안보에 대한 중심을 확실히 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다소 혼란스러운 상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천안함 사건으로 시작된 김태영 장관의 수모는 끊이질 않습니다. 국방에 대해 누구보다도 섬세히 알던 장군의 모습이 초조하고, 중심을 못 잡아 흔들리는 일이 자주 발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초기만 하더라도 단호한 모습으로 사건을 해결하려던 모습이 마치 중심을 잃고 좌초하는 모습으로 가고 있습니다. 천안함 사건에 대해 군부가 상황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정치적 프로그램에 의해 장관이 말려 들어가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저는 김태영 국방장관을 존경하는 한 명의 시민으로서 장관이 자칫 한국의 역사에서 수치스러운 이름으로 기억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비록 이번 천안함 사건의 실체가 정부당국이 발표한 것처럼 북한의 소행이라 할지라도 장관께서 혹시나 모를 정치적 프로그램에 의해 과도한 움직임을 취하게 될 경우, 그에 대한 책임론은 장관에게 집중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민간 정치인에게는 군인만큼 커다란 책임이 뒤따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국방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에 의해 농락당하는 것을 저는 참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지금 세간에서는 천안함과 관련한 의혹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정부 당국의 발표를 그대로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또 믿는다고 해서 당장의 급격한 조치를 얼마나 지지하는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국민의 여론이 통합되어 있지 않아서 무리한 시도는 장관님을 위해서도 좋지 않습니다.

점점 자기 확신이 강해지는 보수일각의 위험한 행동을 최소한 '신중론'으로 전환할 수 있는 사람은 장관님밖에 없습니다. 이때야말로 소신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회입니다. 천안함과 관련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구체적 실증이 아직 없다면 장관께서 나서서 다시 현 사태를 바로잡기 위한 행동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존경하는 군인을 잃고 싶지는 않습니다.


태그:#김태영, #천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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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가 생기면 항상 펜을 잡는 자유기고가. 시민단체 흥사단에서 이사로 활동했으며, 최근까지 국회 정무위원장 비서관으로 일했습니다. '근거있는' 소통의 공간을 열기 위해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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