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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24일 오후 서울 서교동 김대중 도서관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중 이명박 대통령의 '전쟁기념관 대국민 담화'에서 밝힌 대북 봉쇄 조치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24일 오후 서울 서교동 김대중 도서관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중 이명박 대통령의 '전쟁기념관 대국민 담화'에서 밝힌 대북 봉쇄 조치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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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국내정치적 목적이 있다 해도 꼭 전쟁기념관에서 대국민 담화를 해야만 했나. 6·15 10년 만에 60년 전 6·25 상황으로 돌아간다는 메시지 아닌가."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이명박 대통령의 '전쟁기념관 대국민 담화'를 이렇게 비판했다. 2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 김대중 도서관에서 만난 그는 "전쟁이 난다는 말이 아니라, 6·25 이후 남북한에 자리 잡은 상호, 반목, 적대, 불신, 대결이 되살아난다는 것"이라며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또 남북 교류 중단, 북한 방문 불허 등의 대북 조치에 대해 "현 정부가 인수위 때 통일부를 없애겠다고 했었는데 오늘부로 사실상 통일부를 없앤 것"이라면서 "대북지원 카드는 모두 소진됐고, 남북 관계도 올스톱 됐기 때문에 통일부는 동면 상태에 들어갔다. 통일부 출신으로서 씁쓸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상대방을 아프게 하려면 자기 손도 아플 수밖에 없다"면서 대외 의존도가 높은 남쪽 경제에 미칠 영향을 걱정했다.

"대북확성기 방송 재개로 비무장지대 긴장 고조"

그는 이번 대북조치 중에서 특히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비무장 지대에서 북한의 총격도발 가능성을 높이는 폭발성이 있다"며 우려했다. "남측의 서해상 남북 함정간 교신 요구와 북측의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을 2004년에 맞바꿨던 것으로, 방송이 재개되면 비무장지대 긴장 고조는 불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인터뷰가 끝난 뒤, 북한의 전선중부지구 사령관이 "확성기와 같은 심리전 수단들을 새로 설치하는 경우 그것을 없애버리기 위한 직접 조준 격파사격이 개시될 것"이라고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정 전 장관은 북한 선박의 제주해협 통과 불허 조치에 대해서도 "통과 허용 이전인 2002년 무렵에 북한 상선이 '장군님 명령항로'라며 밀고 온 적이 있다"면서 "이번에도 그렇게 나올 경우 우리가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북한이 당하고 말지 거기가 발화점이 될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중장기적인 동북아 정세에 대해서는 "우다웨이 중국 한반도 사무 특별대표가 바로 움직여서 방한한다는 것은 '6자회담 국면을 시작하겠다', '천안함과 6자회담은 별개'라는 사인"이라면서 "(미국은) 한미동맹도 중요하지만, 미중관계가 갖는 전략적 우선순위와 정책적 중요도로 볼 때 중국이 6자회담 재개의 모멘텀을 살려내기 위해 푸시해오면 그렇게 갈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다이빙궈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을 만나고 (26일에) 오는 클린턴 장관이 무슨 말을 하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과 나눈 일문일답 전문.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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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대통령이 천안함 사건 대국민 담화를 전쟁기념관에서 했는데.
"장소와 시점 면에서 해도 너무 했다. 아무리 국내 정치적 목적이 있다고 해도 꼭 전쟁기념관에서 담화를 해야만 했나. 6·25 상황으로 돌아가도 된다는 식으로 메시지를 주는 것 아닌가. 담화 장소가 주는 메시지는 그것이다.  6·15 10년 만에 60년 전 6·25 상황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지. 6·25 같은 전쟁이 난다는 말이 아니라, 6·25 이후 남북한에 자리 잡은 상호, 반목, 적대, 불신, 대결이 되살아난다는 것이다.

통일원에 들어갔던 1977년 박정희 정부 때부터 노무현 정부까지 여러 정부를 거쳤는데, 중간에 버마 랑군 사건(아웅산 폭파사건)이나 KAL기 사건 등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크게 보면 남북 관계 긴장 완화의 흐름이었고, 국제 정세도 그걸 뒷받침하는 분위기였다.

6·15와 10·4 선언은 난데없이 불쑥 튀어나온 게 아니다. 이념 대결이 끝내면서 남북이 군사 측면에서의 무한경쟁을 중단하고, 상호 협력을 추구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국제적인 양해 속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이 정부 들어 이런 흐름을 국제 정세와는 무관하게 북한에 대한 환상이나 안보불감증을 가진 특정 세력의 잘못된 철학의 소산인 것처럼 매도하면서 남북 관계를 경색시켜왔다. 그러다 오늘부로 완전히 끊어버린 것이다."

"그동안 남북 관계· 경제 협력이 군사적 긴장 완화 견인해온 것"

- 정부의 이번 대북조치를 어떻게 평가하나.
"현 정부가 인수위 때 통일부를 없애겠다고 했는데 오늘부로 사실상 통일부를 없앤 것이나 다름 없다. 그동안 남북 관계는 경제 협력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앞서가면서 군사적 긴장 완화를 견인해 온 것이었다. 군사분계선 바로 뒤에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같은 상당히 큰 규모의 경제 협력이 진행돼 오지 않았나.

군사대결 지역을 경제 협력 지역으로 바뀔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게 사실은 6·15의 핵심이었다. 서해상에서의 남북 함정간의 교신도 이런 맥락에서 2004년부터 논의된 것이다. 이것은 남측이 한 요구였는데 이것을 북측이 요구한 비무장지대 확성기 방송 중단과 바꾼 것이다. 그런데 방송이 재개되면 비무장지대 긴장 고조는 불 보듯 뻔하다.

이런 상황에서 이 정부 임기 내에 통일부가 할 일이 있겠는가. 3·26 천안함 침몰로 국가안보가 두 동강 났다는 표현도 있지만 5·24 대북 조치로 통일부는 개점휴업 상태로 들어갔다. 다음 정부가 어떤 정부가 될지 모르지만, 이렇게까지는 안 할 것이고, 그때쯤 동면에서 깨어나게 될지 모르겠다. 통일부 출신으로서 씁쓸하다."

- 제주해협 통과 불허, PSI(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 훈련, 서해 한미 대잠수함 연합훈련 등은 남북간 물리적 충돌로 연결될 수도 있는데.
"잠수함 훈련은 기간 정해놓고 하는 거니까 북한이 안 오면 되는 것이다. PSI도 큰 실효성은 없을 것으로 본다. 그런데 제주해협 통과는 북한이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겠다. 통과 허용 이전인 2002년 무렵에 북한 상선이 '장군님 명령항로'라며 밀고 온 적이 있는데 이번에도 그렇게 나올 경우 우리가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북한이 당하고 말지, 거기가 발화점이 될지 모르겠다. 그리고 확성기 방송 재개가 비무장 지대에서 북한의 총격도발 가능성을 높이는 폭발성이 있다고 본다.

개성공단은 북한 대응에 따라 대응한다는 것인데, 체류 인원 최소화는 우리 기업들에게 피해를 주게 될 것이다.  디자인대로 되는지 물건이 제대로 만들어지는 것인지 보는 건데, 체류 인원이 최소화 되면 경쟁력 떨어지게 된다. 또 북한이 불만을 갖고 사소한 문제로 남측 인원을 억류하거나 할 경우, 군사대결 지역의 경제협력 지대화라는 6·15 정신은 완전히 끝나는 것이다."

- 이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다. 
"그나마 여지를 뒀다는 점에서 다행이다. 그런데 실무 조치들은 관계 복원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담화문에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남북이 어떻게 하자는 비전 제시는 없고, 원론적인 얘기만 있다. 피스 키핑(peace keeping)이 실패했다면 메이킹(making)을 어떻게 할지 방향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없다."

"북 선박 제주해협 통과, 남측 선박 북한 영해 이용과 바꾼 것"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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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북조치 발표 이후 주가는 별 변화가 없는 것 같다.
"(천안함 사건조사결과를 발표한) 5월 20일에 주가는 떨어지고 달러 가격은 올랐다. 오늘 조치가 영향이 없다는 것은 이미 예고된 조치이기 때문일 수 있다. 경제 분야에서 잘 살펴봐야 할 것이다. 정부의 요청에 따라 기관투자자들이 버텨주고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외국인 투자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하면 신용등급 문제까지 나올 수 있다.

이번에 통일부가 내놓은 조치는 북한에게 아픈 조치다. 그런데 상대방을 아프게 하려면 자기 손도 아플 수밖에 없다. 우리 경제는 대외 의존도가 매우 높고, 증시에서 외국인 투자 비율도 높다. 당분간 외국인투자가 관망세로 갈지 모르지만, 대북 확성기 방송을 시작하고 비무장지대에서 충돌 소식이 전해진다면 이들도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GDP 규모가 1조 달러인 우리 경제가 받는 타격이 (2000년대 후반기준으로) 150억 달러 규모인 북한이 받는 타격보다 훨씬 클 것이다.

오늘 대통령 담화를 보면서, 이번 조치가 6월 2일 지방선거를 위한 국내 정치용으로 끝나면 좋겠다, 안보 문제의 정치화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임기 내내 일관된 정책으로 굳어진다면,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특히 통일부가 밝힌 위탁가공 중단 조치의 대상은 대부분 소규모 영세업체들이다. 실업률이 몇 퍼센트(%) 증가했다고 연결시키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들을 희생시켜서라도 북한 버릇을 고치겠다는 것이 정부의 철학이라면 할 말 없지만, 비정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북한 선박의 제주해협 통과를 불허했는데, 제주해협은 국제해협이라 민간함정에 대한 무해항행권이 인정된다. 그런데 유엔사차원에서 북한의 경우에 대해 이를 실력으로 막아왔던 것을 2005년 8월 15일에 풀어줬는데, 우리 배들이 중국과 러시아 갈 때 북한 영해를 이용하는 것과 바꾼 것이다. 이번에 북한 선박 제주해협 통과를 불허했기 때문에, 우리 배들이 중국 다롄이나 러시아로 갈 때 북한 영해를 돌아가야 한다.

오늘 조치로 대북지원 카드는 모두 소진됐고, 남북 관계도 올스톱됐다. 남북 관계 지렛대도 없어졌다. 이는 6자회담이 열린다 해도 남한은 손님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 지렛대가 없는데 북한이 남한 말을 들으려 하겠나."

- 유엔 차원의 대북제재는 어떻게 전망하나.
"우선 중국의 반대 입장이 강한 것 같다. 러시아도 천안함 사건 조사 결과에 대한 남한 설명을 듣고, 북한 설명도 들었다고 병렬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건 우리 정부 손을 들어주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5개 상임이사국 합의가 나오기 어렵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외교부의 대북조치 발표문 보면 그렇게 자신 있어 보이지 않는다.

6자회담 중국 측 수석대표인 우다웨이 중국 한반도 사무 특별대표가 바로 움직여서 방한한다는 것은 '6자회담 국면을 시작하겠다', '천안함과 6자회담은 별개'라는 사인이다. 6자회담이 열리지 않는 상태에서 북한의 핵능력은 더 커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 북한은 어떻게 대응할까.
"북한은 굴복하지도 않을 것이고, 천안함 사건과의 관련성을 부인하고 있기 때문에 사과하지도 않을 것이다. 유엔 제재가 추진되면 검열단 파견 주장을 들고 나올 것이다. 

확성기 방송이 재개되면 사소한 실수인 것처럼  공격해서 군사적 긴장을 조성할 수도 있다. 개성공단이 중요한 데, 남측의 철수 움직임이 커지면, 지난번 류성진씨 같은 억류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 서로 먼저 폐쇄해주기를 바라는 떠넘기기의 시소게임으로 들어갈 것이다. 개성공단 사업은 김정일 위원장의 결단에 의한 것이라고 해왔기 때문에 북한이 먼저 폐쇄카드를 들고 나서기는 어려울 것이다. 남측에 책임을 떠넘길 수 있는 상황까지 기다릴 것이다."

- 북한이 거듭 검열단 파견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거부하고 있다.
"검열단 파견 요구는 정부의 천안함 사건의 유엔 안보리 회부나 국제사회 공조 외교에 대해 북한이 대응할 수 있는 폭발력이 높은 카드다. 김태영 국방장관은 살인범이 조사 결과를 검증하겠다고 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살인범도 현장에 데리고 가서 검증하는 것 아닌가. 둘 다 적절하지 않은 비유이긴 하다. 북한은 자신들은 관련 없다고 주장하겠다는 건데 우리 정부가 거부한 것이다. 북한은 우리보고 '자신이 없어서 저런다'고 하지 않겠나."

"정말 험악했던 아웅산 폭파사건도 넘어왔다"

- 남북 관계 일을 해오면서, 현재 상황과 비교되는 때가 있었다면?
"버마 랑군사건(아웅산 폭파사건) 때는 정말 험악했었다. 그런데 그때는 곧바로 실질조치 취해서 북한을 아프게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말로서는 격하게 사과 요구하고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지만, 그 뒤에 국제 정세가 바뀌면서 북한이 84년에 LA 올림픽 단일팀 제안해오고 남측도 응했다. 또 북한이 보낸 수해지원 물자도 받고 하면서 긴장 국면을 넘어갔다."

- 중장기적으로 동북아 정세를 전망한다면?
"미국은 한국 입장을 고려하겠지만, 일정 시점이 지나면 6자회담 쪽으로 방향을 잡게 될 것이다. 한미동맹도 중요하지만, 미중 관계가 갖는 전략적 우선순위와 정책적 중요도로 볼 때 중국이 6자회담 재개의 모멘텀을 살려내기 위해 푸시해오면 그렇게 갈 수밖에 없다.

시점이 언제냐가 문제인데, 지방선거가 끝나고 6월 중순 이후쯤에는 그렇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때까지 남북간에 결정적 충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명박 정부는 미국 핑계를 대거나 동북아 평화를 위한 대승적 결단을 내걸고 방향을 돌릴 수도 있다. 6자회담 국면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다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때문에 지금 천안함 문제로 너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나중에 스스로 입장을 어렵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6자회담이 재개돼도 동력을 살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남북 관계도 개성공단 정도가 근근이 유지하면서 축소 지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6자회담이 재개된다 해도 남북 당국간의 대화 복원은 어려울 것이다."

- 이후 긴장 상황을 풀 수 있는 대안은 없나?
"지방선거 국면이 끝나고 중국이 6자회담 재개에 앞장서고 미국이 따라가는 구도가 되면, 정부도 영유아 지원 등 인도적 사업은 살려두겠다고 공식적으로 얘기했으니 이걸 확대하는 사인을 보내면서 지금 국면을 풀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제3국에서의 민간 접촉도 완전히 막지 말아야 한다."

- 미국 정부는 이명박 정부를 적극 지지하고 있다.
"미국은 미일동맹으로 중국을 견제해왔는데, 후텐마 기지 갈등 등으로 일본이 파트터 역할을 못하고 있다. 그나마 미국의 대중 레버리지가 가능한 것이 북한카드다. 중국이 북한을 완충지대로 여기고 동북3성 발전을 위해 북한을 필요로 한다면, 오히려 북한 때리기로 중국의 양보를 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대중 협상의 카드일 수 있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말은 수사적 표현이 많다. 다이빙궈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을 만나고 (26일에) 오는 클린턴 장관이 무슨 말을 하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태그:#천안함 사건, #전쟁기념관, #개성공단, #통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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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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