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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포의 새벽
▲ 우포늪 우포의 새벽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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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 30분, 너무 이른 시간이지만 잠을 다시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숙소에서 나와 깜깜한 24번 국도를 더듬어 태고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다는 우포늪으로 달려갔습니다. 어둠은 전조등이 비추는 거리만큼만 보여주고, 어둠 속 풍경은 검은 천으로 가린듯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대구를 거쳐 해남 땅끝마을을 가던 어느 봄날, 순천만의 일몰을 담고 싶다는 생각에 우포늪이라는 이정표를 보고도 그냥 지나쳐 버렸습니다. 일몰을 거의 놓치다시피 가쁜 숨을 몰아쉬며 순천만에 도착해서야 우포늪을 천천히 거닐었다면 황홀한 우포늪의 일몰을 가슴에 담았을 터인데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우포의 새벽
▲ 우포늪 우포의 새벽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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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회를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아 낯선 길을 찾아온 것입니다. 우포늪에 도착을 해서도 채 가시지 않은 어둠 때문에 차안에서 음악을 들으며 날이 밝기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크린베리스의 'Dreams'가 자우림의 목소리로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Oh my life is changing everyday In every possible way
내 삶은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매일매일 변하고 있습니다.
And oh my dreams it's never quiet as it seems Never quiet as it seems
비록 꿈일지라도 절대로 보이는 것처럼 고요하지 않습니다. 절대로....

나는 어제와 또다른 모습일까, 이 새벽에 길을 더듬어 우포늪을 찾아온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생각해 봅니다.

우포의 새벽
▲ 우포늪 우포의 새벽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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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끄고 차창을 내리니 차가운 새벽공기가 몸으로 몰려들어오고, 산새소리와 찔레꽃 향기가 코와 귀에 가득하니 들어찹니다.

초행길이라 어느 쪽이 우포늪인지조차 알지 못하기에 날이 밝기까지는 조금 더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주차장 한 편에 연인들이 즐겨타는 2인용 자전거 대여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찾아오기는 잘 찾아온 것 같습니다.

산책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걷지 않아 우포늪이 보이기 시작했고 점차 어둠도 걷혀가고 있었습니다.

우포의 새벽
▲ 우포늪 우포의 새벽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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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사진으로 보았던 풍경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붉은 해가 떠주기를 기대하며 천천히 걸었습니다만 해는 구름에 가려 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아침이 되자 빗방울이 하나 둘 잔잔한 우포늪에 작은 파문들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풀이 무성한 곳에는 간밤에 내린 이슬이 송글송글 맺혀있고, 잠이 덜깬 곤충들이 이슬에 젖은 몸을 말리고 있습니다.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들만으로도 행복한 날입니다.

그러나 우포늪은 자주 오기에는 너무도 먼 곳이라 작은 세계에 심취하기보다는 조금이라도 넓게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부파인더에 잡힌 새벽의 빛을 보며 그 언젠가 제주바다에서 새벽에 만났던 그 빛을 떠올렸습니다.

푸른 빛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그리 길지 않은 빛이라 뱃사람들도 잘 모르는 그 빛이라고 곽재구 시인도 말한 적이 있는 그 빛이라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내 그 빛을 인식한 순간 그 빛은 저만치 내일을 기약하며 떠나바렸습니다.

우포의 새벽
▲ 우포늪 우포의 새벽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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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름다운 순간은 짧은 것입니다. 입 속에서 맴돌던 크린베리스의 노랫말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매일매일 변하는 내 삶처럼, 우포늪도 매일매일 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저리 고요하게 보여도 절대로 보이는 것처럼 고요하지 않습니다. 절대로...

그랬습니다. 정중동(靜中動)-조용한 가운데 어떠한 움직임이 있음-의 삶이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것을 보지 못하는 얄팍한 사람들에게 우포늪은 그저 쓸모없는 존재일지도 모르겠지요.

아침 산책을 마치고 다시 24번 국도를 거슬러 합천에 있는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낙동강 주변에는 강에서 퍼올린 토사가 높게 쌓여있고, 이른 아침인데도 트럭들이 분주하게 오갑니다. 길가에는 4대강을 홍보하는 낡은 깃발이 흩날리고 있습니다.

우포의 새벽
▲ 우포늪 우포의 새벽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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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포늪, 그곳은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곳이었습니다. 이슬 맺은 풀잎마다 갖가지 곤충들이 의지해 살고 있었고, 나무와 풀과 꽃이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숙소에 돌아와서도, 우포늪을 다녀온 지 이틀이 지나 집에 돌아온 뒤에도 여전히 그 새벽에 거닐었던 신비의 빛 가득한 우포늪의 새벽 산책이 잊혀지질 않습니다. 단 한 번의 산책으로 나는 우포늪을 짝사랑일지언정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우포의 새벽
▲ 우포늪 우포의 새벽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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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서 보았던 감동적인 사진을 담지는 못했습니다. 그곳을 걸어보고 나서야 사진이 줄 수 있는 감동도 있지만, 직접 걸어보지 않고서는 느낄 수 없는 감동을 얻었습니다.

하루 중에서도 어둠과 빛이 교차를 하는 그 순간의 신비한 빛을 바라보고, 느끼며 걸었다는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우포늪을 나올 때 조금씩 내리던 비는 이내 봄비라고 하기에는 무거운 장맛비처럼 이틀동안 계속 내렸습니다. 그러니, 일출을 그곳에서 만나진 못했지만 비가 오기 전에 산책을 했다는 것도 행운이지요.

우포의 새벽
▲ 우포늪 우포의 새벽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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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 빛 가득한 우포늪의 새벽, 그곳에서 나는 자연의 신비함과 위대함 앞에서 겸허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감히 우리가 그들을 지켜준다고 말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지켜줘야 할 것들을 지켜주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들의 마음이 위로받지 못하면 분노로 표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켜주지 못해 우리 곁을 떠난 그분의 1주기, 그 분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지는 오늘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카페 <달팽이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우포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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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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