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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아이들과 함께 순천시 낙안면과 보성군 벌교읍의 경계선에 조성되고 있는 우리천올레길의 송내교 아래에 오리 10마리를 방생했습니다
 지난 21일, 아이들과 함께 순천시 낙안면과 보성군 벌교읍의 경계선에 조성되고 있는 우리천올레길의 송내교 아래에 오리 10마리를 방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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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부처님오신 날 오리를 방생했습니다. 방생의 의미가 심오하고 뜻이 깊다고 하지만 우리는 그저 하천을 깨끗하게 하고 싶었고 오리가 물에서 노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이 이곳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정도였습니다.

순천시 낙안면과 보성군 벌교읍의 중간 지점인 송내교 아래에 10마리를 방생했습니다. 너무 어리다는 다소 걱정스러운 얘기가 있기는 했지만 주신분의 마음도 있고 별일 없겠지 하는 생각에서 그대로 놓아줬습니다. 신나게 물에서 노는 모습을 보면서 덩달아 우리도 행복해졌습니다.

오리 10마리가 하천에서 헤엄치자마자 아이들은 금세 하천이 깨끗해진 듯 느껴졌는가 봅니다. 그동안 하천에 손을 넣는 것을 주저하던 아이들이었는데 돌을 주워 탑을 쌓기도 하고 작은 물길을 막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이 하천에 있었다고 하면 쓰레기가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오리가 단숨에 우리의 마음을 바꿔놓았고 아이들은 물속에 손을 넣는 것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됐습니다.

몇 시간 되지 않아서 다시 가 보니 일곱마리로 줄었습니다. 일단 집으로 데리고 오려고 했지만 겁을 먹은 탓인지 다가가면 모두 물로 나가버려 어른 오리를 사서 이곳에 풀어주자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몇 시간 되지 않아서 다시 가 보니 일곱마리로 줄었습니다. 일단 집으로 데리고 오려고 했지만 겁을 먹은 탓인지 다가가면 모두 물로 나가버려 어른 오리를 사서 이곳에 풀어주자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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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점심을 먹기 위해 집으로 향했습니다. 점심을 먹으면서도 오리얘기, 먹고 나서도 오리얘기, 순전히 오리얘기뿐이었습니다. 아이들 눈치를 보니 하천가로 다시 나가고 싶어 하는 것이 역력히 보였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다시 나가 보았습니다. 들판을 지나 하천가를 따라서 오리가 있는 그곳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불과 5~6시간 만에 오리가 여섯 마리로 줄어들고 말았습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마음이 몹시 상하더군요. 아이들이야 더 말할 것도 없었겠지요.

그 여섯 마리도 자갈밭에 앉아 겁을 잔뜩 먹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우리는 근처를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오리가 내는 소리와 비슷한 휘파람을 불면서 나머지 오리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보이지도, 소리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보 뒤쪽에 숨어있던 오리 한 마리를 발견하게 됐습니다. 아무소리도 움직임도 없다가, 그렇게 한참을 있다가 다소 진정이 됐는지 작은 소리를 냈고 동료들을 발견하고 쏜살같이 헤엄쳐 와서 한 무리를 형성하게 됐습니다. 모두 일곱 마리입니다.

어른 오리를 사서 데리고 왔는데 이미 방생했던 오리들이 참사를 당한 뒤였습니다. 발견 된 오리를 묻어주고 십자가를 만들어놓았습니다. 아이들은 많이 속상해 했습니다
 어른 오리를 사서 데리고 왔는데 이미 방생했던 오리들이 참사를 당한 뒤였습니다. 발견 된 오리를 묻어주고 십자가를 만들어놓았습니다. 아이들은 많이 속상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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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마리 실종에 대해 아이들과 얘기를 나눴습니다. 동물이 해친 것 같으니 일단 남은 일곱 마리를 집으로 데려가자고... 하지만 의견은 분분했습니다. 그러다가 딸이 "아빠, 우리 어른 오리를 사서 이곳에 놔두면 좋겠어요"라고 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그것도 일리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비록 마음은 아프지만 몇 마리 희생됐다고 그냥 물러서면 이곳에는 더 이상 오리가 살게 되지 못할 것 같고 그렇게 되면 여전히 황폐화된 풍경 속에서 쓰레기만이 존재하는 그런 모습일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부랴부랴 인근 오리 농장에 전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그렇게 날을 저물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리를 집으로 데려오려고 다시 하천가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좀처럼 잡히지 않고 인기척이 나면 곧바로 물로 나가버렸습니다.

한편, 안쓰러운 마음도 들긴 했습니다. 얼마나 놀랐으면 소리만 나면 물로 나가 버릴까 하는...결국 오리를 잡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어서 날이 밝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고 오리 농장에서 빨리 어른 오리를 데려오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른 오리를 데려 와 하천에 풀어놓았습니다. 모두 죽었으리라 생각됐던 새끼 오리중에서 다행스럽게도 한 마리가 살아있었습니다. 어른 오리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수풀속에서 나왔습니다. 어른 오리들이 새끼 오리를 에워싸고 보호하고 있습니다
 어른 오리를 데려 와 하천에 풀어놓았습니다. 모두 죽었으리라 생각됐던 새끼 오리중에서 다행스럽게도 한 마리가 살아있었습니다. 어른 오리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수풀속에서 나왔습니다. 어른 오리들이 새끼 오리를 에워싸고 보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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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좀 앞서갔지만 사건의 전개는 이렇습니다. 날이 밝고 오리 농장과 통화를 해서 어른 오리 다섯 마리를 사서 차에 싣고 하천가로 왔는데 오리 일곱 마리가 온데간데없었습니다. 처음에 풀어놓았던 장소에도 그 근처를 뒤져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리가 무리를 지어 다니기에 다른 곳으로 갔나 싶어 아이들과 함께 하천가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했습니다. 일단, 싣고 왔던 어른 오리를 풀어놨습니다. 그러면서도 새끼 오리들을 찾는 작업은 계속했지요.

"꽥꽥" 어린 오리의 울음소리가 병아리 소리라면 이번에 하천에 데려 온 오리의 소리는 사뭇 달랐습니다. 그렇게 몇 차례 어른 오리들이 소리를 질러대면서 걸어 다니자 어디선가 새끼 오리 한 마리가 달려 나왔습니다.

그리고 어른 오리 무리 속으로 찰싹 달라붙었습니다. 우리는 이심전심 크게 기뻐하면서도 또 나머지 오리 여섯 마리 때문에 맘이 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마음상태는 갈피를 잡지 못했습니다. 한 마리라도 나타나서 좋기도 하고 나머지 오리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자연의 잔인함은 나머지 오리를 찾는 과정에서 발생했습니다. 내가 먼저 그 광경을 봤기에 망정이지 아이들이 먼저 봤다면 울음을 터트렸을 것입니다. 오리 한 마리의 시체인데 처참한 모습이었습니다. 나는 삽으로 땅을 파서 얼른 묻어주고 아이들을 불렀습니다. 십자가도 만들어줬습니다. 아이들은 기도를 하더군요.

10마리 방생했던 것 중에서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한 마리 새끼오리, 어른 오리들이 잘 보호해 이 하천에서 잘 살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10마리 방생했던 것 중에서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한 마리 새끼오리, 어른 오리들이 잘 보호해 이 하천에서 잘 살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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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오리 다섯 마리는 새끼 오리를 데리고 물로 향했습니다. "꽥 꽥" 소리를 지릅니다. 남은 새끼 오리를 다섯 마리 어른 오리가 에워쌉니다. 소리를 더 지릅니다. 누구든 다가오지 못하도록...'제발, 제발 어른 오리 다섯 마리와 그 어려움 속에서도 남은 새끼 오리 한 마리가 이 하천에서 잘 자라기만을 바랍니다'. 우리가 시간날때마다 올 거야. 우리도 지켜줄게...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순천시 낙안면의 낙안천과 보성군 벌교읍 벌교천의 쓰레기를 치우고 철쭉을 심어 낙안읍성에서 태백산맥문학관까지 잇는 우리천올레길을 만드는데 힘쓰고 있습니다. (남도TV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순천시, #보성군, #우리천올레길, #오리방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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