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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전혁 한나라당 의원 발(發) 전교조 명단 공개의 파장이 학교 바깥에서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조전혁 의원은 명단을 내렸지만 정두언, 진수희 등 한나라당 의원들이 뒤를 이었고, 학교를사랑하는학부모모임(이하 학사모)라는 보수 단체를 중심으로도 지역 전교조 교사들의 명단을 공개하고 있는 모양이다.

 

한편에서는 명단이 공개된 교사들에 대한 '보이스 피싱' 이야기도 나오고, 또 한쪽에서는 욕설 비방 메시지도 받았다는 얘기가 있는 걸 보면 일부 혼란도 있나 보다. 그런데 고등학교 교사인 기자가 재직하고 있는 학교는 여전히 별일(?) 없이 잘 돌아가고 있다. 명단 공개 그 후 기자가 재직중인 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가감없이 전한다. 참고로 기자가 일하는 학교는 전교조 조합원이 18명, 교총 회원은 없다.

 

[비전교조교사] "조◯◯, 그 사람 정신 나간 거 아냐?"

 

조전혁 의원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전교조 명단을 공개한 다음 날. 한 교사가 이렇게 말했다. 

 

"전교조가 무슨 불법 단체야? 전교조 회원이 무슨 죄야? 조◯◯, 그 사람 정신 나간 거 아냐?"

 

언뜻 들으면 그 교사가 전교조 조합원이라 화가 나서 한 말 같지만 그 분은 어느 교원단체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굳이 분류하자면 굉장히 엄한, 전형적인 보수 이미지의 교사다. 하긴 보수 성향의 교총도 교원단체 소속 명단 공개를 반대하고 있으니 보수, 진보를 따질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전교조 교사] "어이, 뿔갱이 교사! 밥이나 먹으러 가자."

 

점심시간이 되자 한 교사가 다른 교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이, 뿔갱이 교사! 밥이나 먹으러 가자."

 

그는 전교조 교사다. 조중동 등 보수언론과 보수단체 사람들이 전교조 교사를 '빨갱이 교사'라고 하니까 그냥 웃자고 부르는 말이 '뿔갱이 교사'다.

 

"여기도 뿔갱이, 저기도 뿔갱이... 뿔갱이들이 왜 이렇게 많아? 뿔갱이 교사들끼리 밥이나 먹으러 가자."

 

전교조 교사든, 비 전교조 교사든 그냥 웃고 만다. 어느 누구도 이 말 때문에 화를 내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그렇게 속칭 '뿔갱이 교사'와 '안 뿔갱이 교사'들이 잘 어울려 산다. 그런데 조전혁과 한나라당 의원들은 학교에서 굳이 그들을 구분하고 싶은가 보다. 원래 권력자들은 국민을 어떤 기준을 만들어 분할하려고 한다던데, 그 말이 틀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교생 실습생] "전교조가 좀 더 힘 내야지요"

 

얼마 전 우리 학교에 교생 실습생 5명이 나왔다. 조전혁 의원의 전교조 명단 공개로 논란이 되던 바로 그 시기다. 어느 날 복도에서 마주친 한 교생 실습생이 나에게 말했다.

 

"선생님, 전교조가 좀 더 힘을 내야지요!"

"어! 내가 전교조인 걸 어떻게 알아?"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요? 다 알아요. 우리 교육에 전교조만큼 필요한 게 어디 있어요. 누가 뭐라고 해도 전교조가 힘내서 잘 하기를 바래요. 파이팅!"

 

이들 예비교사들은 아직 교육현장에서 전교조 교사를 경험해 보지 못했다. 그런 그들에게도 전교조는 우리 교육계에 꼭 필요한 존재로 보이나 보다.

 

[학생] "선생님 전교조인 거 난 이미 알고 있었는데"

 

전교조 명단이 공개된 후 수업을 하러 교실에 들어갔더니 한 학생이 대뜸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전교조던데요. 나는 이미 짐작으로 알고 있었는데......"

 

순간 조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곧 침착을 회복하고 "너 그런 걸 어떻게 알았니?"하고 물어봤다.

 

"엊그제 어느 국회의원이 명단 공개했잖아요. 찾아봤어요. 우리 학교에서 제가 생각한 사람들이랑 거의 일치하던데 몇 사람은 못 맞췄어요."

 

그 친구는 쉬는 시간에도 신문 사설을 오려와 읽는 친구다. "너 지금 수업하기 싫으니까 작전 쓰는 거지? 안 넘어간다 이 녀석아!"하면서 웃으면서 받아넘기고 수업을 시작했다.

 

며칠이 지나고 우연히 그 학생을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넌 전교조 명단을 왜 찾아봤니? 그게 학생들에게 중요하니?"

"그냥 재미로 찾아봤어요. 우리 학생들은 전교조 선생님, 아닌 선생님 그런 거 몰라요. 그냥 우리에게 잘해 주는 선생님과 안 그런 선생님만 관심 있어요. 그런데 주로 전교조 선생님들이 학생, 인권 이런 이야기 많이 해서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런 거 왜 공개하고 왜 싸우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전교조 같은 선생님들이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학부모] "우리 아이 담임, 전교조 선생님 맞아요?"

 

전체 학부모 모임을 하는 날이었다. 나는 뜻밖의 손님을 맞았다. 이런저런 사회단체에서 만난, 잘 알고 지내는 분이었는데 그 분 아이가 우리 학교 2학년 학생이란다.

 

"1학년 때에는 전교조 선생님이 아닌 분이 담임이셨더라고요. 지금 우리 애 담임 선생님은 전교조 선생님이신 것 같은데... 맞나요?"

 

확인해 보니 전교조 교사 맞다.

 

"네, 그 분 전교조 선생님 맞으세요. 전교조 선생님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무척 열성적이고 성실한 분이니 아이에게 잘 해주고,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그 분은 "가끔 우리 아이 공부하는 거 한 번씩만 챙겨 주세요"라는 말과 함께 얼굴 가득 미소를 띠고 돌아갔다.

 

정치권의 '생쇼'에도 학교는 멈추지 않고 돌아간다

 

정두언 의원은 수차례 이번 6·2 지방선거를 전교조에 대한 심판으로 삼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고, 전교조 교사가 많으면 수능 성적이 낮다는 희한한 통계도 발표한 적이 있다. 그리고 전교조 명단이 공개되기만 하면 여기저기서 학부모들과 학생들이 들고 일어나 전교조 거부 운동을 하고 전교조 탈퇴가 줄이을 것이라고 예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극소수의 학교에서 보수단체가 1인 시위를 하기도 했지만 이미 조직된 보수단체의 개별 행동으로 지적되지 못했고 다른 학교로 번지지 못한 일회성 쇼에 그치고 말았다. 전교조 담임 거부나 수업 거부는 일어나지도 않았다. 학교는 너무 조용하다. 아니 명단 공개에는 애초부터 관심도 없었다고 하는 게 더 적절할 것이다. 대신 "힘 내세요. 파이팅!"이라는 작은 울림만 있다. 그리고 그냥 웃고 넘어간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번 선거가 끝날 때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정치권에서 아무리 선거를 겨냥한 전교조 명단 공개 '생쇼'를 해도 학교는 돌아간다는 것이다. 조용히...


태그:#전교조, #명단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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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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