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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5.18 민중항쟁 제30주년 서울 행사 기념식'이 18일 오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열리고 있다.
 '5.18 민중항쟁 제30주년 서울 행사 기념식'이 18일 오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열리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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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 라 뤼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의 말대로 이명박 정부 들어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는 위축"되고 있다. 그가 12일 동안 한국에 머물며 느낀 그대로다.

심지어 정부 주최로 18일 오전 광주 망월동 묘역에서 열린 5.18 광주민주화운동 30주년 기념식에서도 <임을 위한 행진곡>은 불허됐다. 2004년부터 정부의 공식 5.18기념식에서 불린 이후 처음으로 불허된 것이다.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팀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노래도, 집회와 시위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참 더러운 세상"이다.

광주 망월동의 기념식과 비슷한 시각에 서울광장에서 열린 '5.18 민중항쟁 30주년 서울행사 기념식'은 그래서 더욱 눈길을 끌었다. 5.18민중항쟁 서울기념사업회 주최로 열린 이 행사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예정돼 있었다.

게다가 이 자리에는 오세훈(한나라당)·한명숙(민주당)·지상욱(자유선진당) 서울시장 후보, 유시민 국민참여당 경기도지사 후보, 송영길 민주당 인천시장 후보 등이 비가 쏟아지는데도 흰색 우비를 입고 참석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 순서 다가오자 약속이라도 한 듯 자리 뜬 후보들

 18일 오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5.18 민중항쟁 제30주년 서울 행사 기념식'에서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후보와 김상곤 경기도교육감 후보, 박명기 서울시교육감 후보가 참석하고 있다.
 18일 오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5.18 민중항쟁 제30주년 서울 행사 기념식'에서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후보와 김상곤 경기도교육감 후보, 박명기 서울시교육감 후보가 참석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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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이들은 정부가 금지한 노래를 행사장에서 부를까? 많은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그 관심과 흥미는 오래가지 못했다.

먼저 여당의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가 행사 도중, 그러니까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이 시작되기 직전 자리를 떴다. 이어 한명숙·지상욱 후보가 현장을 차례로 떠났다. 이들은 모두 "다른 일정이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유시민·송영길 후보도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약 5분 후면 이젠 '민감한 노래'가 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질 시간이었다. 결국 여당은 물론이고 수도권 야당 광역단체장 후보자들도 절묘한 순간에 자리를 뜬 것이다.

이날 행사 사회를 맡은 연기자 권해효씨는 무대에서 "민주화 운동의 아리랑,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를 시간이다, 광주에서는 이 노래가 제외되었는데 이곳 수도 서울에서는 부르겠다"며 "전 세계 끝까지 울려 퍼지도록 부르자"고 외쳤다. 

 18일 오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5.18 민중항쟁 제30주년 서울 행사 기념식'에서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참석자들이 헌화와 분향을 하고 있다.
 18일 오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5.18 민중항쟁 제30주년 서울 행사 기념식'에서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참석자들이 헌화와 분향을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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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과 함께 노래는 시작됐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김근태 전 의원, 오충일 목사, 그리고 이병구 서울지방보훈청장 등과 시민 300여 명이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현장에는 '5.18민중항쟁 제30주년 기념 제6회 서울청소년대회' 수상자 학생들도 여럿 있었다.

또한 김상곤 경기도교육감 후보, 곽노현·박명기 서울시교육감 후보들도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이들과 함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진보개혁 진영으로 분류되는 이들 후보자들은 보수우익 진영으로부터 "좌파 교육감", "친전교조", "사회주의 정책을 들고 나왔다"는 등의 색깔 공격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이들에게 이날 행사는 여러모로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특히 보수우익 진영은 김상곤 후보가 지난 2004년 사이버노동대학 졸업식에서 민중의례에 참석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른 동영상을 근거로 "좌빨 교육감"이라고 공격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김 후보는 개의치 않고 이날 기념식 자리를 끝까지 지켰다. 행사가 끝난 뒤 김 후보 쪽은 이런 말을 했다.

"기독교 예배 현장에 가서 불경을 욀 수는 없는 것 아니냐. 5.18 기념식장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건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

서울에서는 유명 정치권 인사들이 "다른 일정이 있다"는 이유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직전에 자리를 떴지만, 광주에서는 정반대 상황이 벌어졌다. 5.18 민주화운동 유가족 100여 명이 경찰의 저지를 뚫고 망월동 묘역 기념식장 안으로 들어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기어코 목청껏 불렀다. 

노래를 불허한 정부에 대한 일종의 항의 표시였다. 또 이들은 "이명박 정부는 각성하라"는 구호도 외쳤다. 이들의 행동은, 6.2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권 심판론을 들고 나왔지만 정부가 불허한 노래조차 시원스럽게 부르지 못한 야당 광역단체장 후보들과 확연히 다른 것이다.

물론 야당 후보자들이 의도적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회피한 것은 아닐 것이다. 6.2지방선거가 2주 앞으로 다가온 만큼 후보자들은 분초를 나눠가며 숨가쁘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 실제 한명숙 후보는 이날 오후 3시와 밤에 이화여대 초청 행사와 MBC TV 토론이 각각 예정돼 있었다. 유시민 후보 역시 19일 라디오 인터뷰 두 개가 예정돼 있는 등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우선, 바쁜 일정을 보내고 일분일초가 아쉬운 건 교육감 후보자들도 마찬가지다. 김상곤 후보는 오후 2시 수원에서, 곽노현 후보는 오후 1시 여의도에서 행사가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또한 5.18 광주민주화운동 30주년 공식 행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정부가 불허한 건 표현의 자유 제한이자 민주주의 후퇴로 볼 수 있다. 야당 역시 이명박 정부의 이런 일방주의와 독선에 제동을 걸기 위해 정권 심판론을 들고 나온 것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만약 야당 후보자들이 약 5분 정도만 더 시간을 내 보란듯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시민들과 함께 불렀으면 어땠을까. "노래도 마음대로 못하는 더러운 세상"에 분노하고 있는 시민들과 5.18 민주화운동 유가족들에게 적지 않은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선명한 구호 "정권 심판"과는 차이가 나는 야당 후보자들의 무딘(?) 행보가 아쉽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5.18이어서 더욱 그렇다.

 18일 오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5.18 민중항쟁 제30주년 서울 행사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18일 오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5.18 민중항쟁 제30주년 서울 행사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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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