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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방문해 인권 현황을 조사한 프랑크 라 뤼 'UN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17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한국을 방문해 인권 현황을 조사한 프랑크 라 뤼 'UN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17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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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강 : 17일 오후 5시 10분]

"선거기간은 정치에 관한 토론이 가장 활발하게 이뤄져야 하는 기간인데 4대강 사업, 무상급식 등 선거 의제에 대해 어떠한 선전이나 집회도 못하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게다가 그것이 선거 시작 6개월 전부터라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프랑크 라 뤼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에 관한 특별보고관'은 한국에서 의사표현의 자유가 억눌리고 있는 상황을 자세히 진단했다. 그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4대강 사업 비판과 무상급식 운동에 대한 선관위의 제재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공직선거법의 관련조항(93조)을 삭제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라 뤼 보고관은 17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4일 입국 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라 뤼 보고관은 이 자리에서 "2008년 (광우병 위험 미국 쇠고기 관련) 촛불집회 이후 (한국에서) 전체적으로 의사표현의 자유가 위축되고 있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또한 라 뤼 보고관은 인터넷 실명제, 국가보안법, 전교조 교사들의 시국선언 문제 등을 비롯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의사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으로 지적됐던 사건에 대해 한국 정부의 개선을 요구했다.

그는 "한국 방문 중 수차례 말했지만 인권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뛰어넘는 모든 개인의 공통된 열망이다"라고 강조하며 "한국의 법원이 인권을 제약하는 사건에서 표현의 자유를 수호한 점은 잘 알지만 기소 건수가 늘어난 것은 표현의 자유 위축 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방통심의위는 사실상 검열기구... 민간이 아닌 정부가 역할을 해야 한다"

그는 우선 인터넷에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제재를 지적했다. 그는 2008년 미네르바 사건과 관련해 "허위사실 유포와 공익 저해는 법안에 위반 사항이 명확하게 정의돼 있지 않아, 단지 사실이 아니라고 해서 기소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한국 정부는 법안(전기통신기본법)의 관련조항을 삭제하라"고 권고했다.

또 보수 신문의 광고주를 대상으로 불매운동을 벌이며 광고 중단을 요구한 '언론소비자주권캠페인'과 중금속이 섞인 '쓰레기 시멘트'를 폭로한 최병성 목사의 관련 게시물을 삭제나 블라인드 처리한 것도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 사례로 봤다. 그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통심의위)가 사실상 검열기구로 활동하고 있다"며 "정부에 비판적인 게시물을 삭제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방통심의위가 민간기구라고 하는데 어떻게 방통심의위 위원장이 장관급 대우를 받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국가가 가지고 있는 책임을 민간 기구에 위임해서는 안 된다. 게시물의 삭제, 블라인드 처리는 독립된 국가기관에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터넷 실명제 또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제도라고 꼬집었다. 라 뤼 보고관은 "정부가 명예훼손이나 허위사실 유포에 대비해 실명제를 실시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게시물을 올리기 전에 실명을 확인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사후에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명예훼손, 형법에서 삭제해야... 국가와 공인은 비판에 대한 관용을 높여야"

라 뤼 보고관은 광우병 쇠고기의 위험성을 보도한 'PD수첩'의 PD와 작가가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는 것에 대해 "명예훼손으로 민·형사상 소송을 벌이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상당히 위축시킨다"며 "정부는 형법에서 명예훼손을 삭제하고 국가와 모든 공인은 비판에 대해 관용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정원의 사찰 의혹을 제기한 박원순 변호사를 정부가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것에 대해 "국가가 원고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명예훼손은 의도적으로 허위여야 하고 실제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했어야 (성립)한다"며 "미국에서는 공직을 수행하는 모든 사람과 국가가 명예훼손을 제기할 수 없다"고 밝혔다.

라 뤼 보고관은 집회와 시위를 통한 의사표현도 상당한 침해를 받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정부는 집회나 시위를 신고제로 운영하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상 허가제를 실시하고 있다"며 "특히 기자회견을 서울광장이나 광화문광장에서 열려면 서울시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해 9월 헌법재판소가 집시법의 야간집회 금지 조항에 헌법 불일치 결정을 내린 것을 언급하며 "관련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프랑크 라 뤼 UN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17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방한 조사를 마치기 전 출국하며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프랑크 라 뤼 UN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17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방한 조사를 마치기 전 출국하며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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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표현의 자유 침해... 미디어법, 독립성과 다양성 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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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뤼 보고관은 국가보안법 7조 찬양·고무 및 이적표현물 소지죄 조항에 대해 개정할 것을 권고했다. 그는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안보를 위한 법을 가질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국가 보안에 관련한 법안으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매우 구체적으로 명시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가보안법으로 기소되는 건수가 줄고 있는 것은 매우 환영할 일이지만 여전히 법안이 모호하다"며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권고한 것처럼 법안을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가보안법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지는 않지만 2008년 국방부가 23권의 책을 불온서적으로 지정한 것과, 이것에 대해 7명의 군 법무관이 헌법소원을 낸 것, 그 가운데 2명이 해직된 사건을 자세히 설명하며 "한 인간으로서 지위는 군인의 지위보다 앞선다. 비민주주의적인 처사"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한국의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미디어의 다양성, 독립성이 저해될 수 있는 조짐이 보인다"며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미디어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미디어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국회 절차를 무시하고 이뤄졌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대기업·신문사·외국 자본이 방송에 진입하게 됐는데 이것은 미디어의 다양성과 다원성 원칙을 침해한다"고 밝혔다.

그는 시국선언 등 교사와 공무원의 정치적 의사 표현의 자유에 대해 "모든 공직자는 시민과 마찬가지로 표현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특정 노동조합의 일원이라도 이것은 지켜져야 한다"며 "표현의 자유는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에도 주어진 자유"라고 강조했다.

"국정원 사찰, 정부의 의전 소홀"... 내년에 재방문

국정원이 보고관을 미행했다는 의혹에 대해 그는 "그것은 사실이다"라며 "사찰이 있다는 것을 외교부에 전했고 그런 일이 일어난 건 유감"이라고 밝혔다. 그는 "한국에서 조사하는 유엔의 모든 활동에 특별한 제재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정부의 의전과 관련해서도 불만을 표했다. 그는 "대통령, 국무총리, 문화부 장관, 국방부 장관, 행정안전부 장관, 국정원장, 경찰청장 등과 면담을 외교부에 요청했지만 전혀 성사되지 않았다"며 "다른 특별보고관이 정부의 고위관계자를 만날 수 없었다면 한국을 떠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라 뤼 보고관은 "손님을 우리 집으로 초대했다면 내가 그 손님과 대화를 하지, 주방장 보고 그 손님과 대화하라고 시키지는 않는다"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라 뤼 보고관은 "보고는 2011년 6월 유엔 인권위원회에 정식으로 보고될 것이며 지금 발표하는 것은 인권전문가로서 개인 견해다"라며 "결의문이 채택되면 유엔의 공식 입장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에 권고한 사항의 이행경과를 확인하기 위해 내년에도 방한할 예정이다.


태그:#유엔보고관, #시국선언, #국가보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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