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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말, 서울 종로, 중구 걷기모임은 혜화동과 성북동을 걸어서 돌았다. 그 출발점을 어디로 잡을까 하다가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가까운 동성(東星)중고등학교 정문 앞에 집결하는 것으로 약속을 잡았다.

김수환 추기경의 모교이다
▲ 동성중고 김수환 추기경의 모교이다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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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서울교구에서 운영하고 있는 사립학교인 동성중고는 104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 강북의 명문학교다. 원래 1907년 서울 서소문 밖 조개골에서 지역주민들의 힘으로 설립된 4년제 초등학교인 '소의학교'에서 출발을 한다. 이후 1918년 만리동으로 이전하였으며 1920년 '소의상업학교'로 개칭하였다.

다시 1922년 천주교에서 인수하고 '남대문상업학교'로 개칭하였다가 1929년 혜화동으로 이전하여 1931년 '동성상업학교'로 개칭하였다. 이후 1950년 현재의 '동성중고'로 편제되었다. 아침저녁으로 학교 앞을 버스로 지나는 나는 작년에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의 모교인 구 동성상업학교에서 느끼는 감동이 남다르다.

선종하신 성자 김수환 추기경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내 친구가 이곳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는데, 올해부터 학교가 자사고로 바뀌어 가르치기 힘들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또 돈 없는 나는 아들 연우를 이곳에 보낼 수 없을 것 같아 마음이 더 아프다.
     
동성고 옆에 있다
▲ 4. 19 기념비 동성고 옆에 있다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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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고 담장 옆에는 오늘 보니 4·19 기념비석이 보인다. 그 옆에는 대한주권수호기념비가 서 있다. 일제에 의해 강제 징병된 어린 학생들의 넋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늘 이곳을 지나면서도 무관심하게 스치다 보니 오늘에야 두 개의 비석을 발견하고 짧은 목례를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옆에는 작년 봄에 완공된 대학로 실개천 시작점의 분수가 보인다. 작은 분수가 아름답기는 하지만, 왠지 인공적인 맛이 너무 강해 나에게는 거부감이 더 큰 것 같다. 실제로 대학로에 조성된 인공개울은 위험천만한 것이, 없는 것만 못한 곳이 너무 많아 예산낭비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대학로 인공개울의 시작점에 있는 분수
▲ 분수 대학로 인공개울의 시작점에 있는 분수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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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를 끼고 우측으로 돌면 바로 혜화동성당(惠化洞聖堂)이다. 김수환 추기경이 말년에 머물던 곳으로 1927년에 설립되었으며, 현재의 건물은 1960년 본당이 있던 자리에 건축가 이희태(李喜泰) 선생이 설계해 새로 건립한 강당형 건물이다.

직사각형의 화강암 석재로 외벽을 마감했으며 입구 앞에 넓은 홀을 설치했다. 성당 정면 현관 위에는, 광화문의 이순신 장군 동상을 조각하기도 한 서울대 교수를 지낸 조각가 김세중 선생의 작품인 화강석 부조 '최후의 심판도'가 있다. 또 제대 앞 오른쪽 벽면에는 문학진 선생이 그린 '103위 순교 성인화'가 103위 성인 각각의 표정을 특색 있게 그린 작품이다.

김수환 추기경이 말년에 머물던 곳
▲ 혜화동성당 김수환 추기경이 말년에 머물던 곳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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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벽돌로 쌓은 종탑의 대비를 통한 균형미, 비대칭의 구성 등은 당시 고딕양식의 가톨릭 성당 건축의 정형화된 틀을 깬 양식으로 이후 근대적 성당 건축의 모형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종교사와 건축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건축물이다. 안쪽에는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이 보인다.

동성중고의 뒤 담장과 혜화동성당의 뒤편에 있는 가톨릭대학의 담장은 서울성곽의 동편에 해당하는 곳으로 성곽답사 시에도 둘러볼 수 있는 곳이다. 

혜화동성당을 나오는 바로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 혜화동로타리다. 2년 전까지만 해도 고가도로가 있어 앞을 가로 막고 있어 교통의 흐름을 방해하는 측면이 있었지만, 현재는 고가도로가 철거되어 시원한 느낌이 든다.

사실 혜화동로타리는 역사적으로 상당히 의미가 있는 곳이다. 1947년 7월 19일 해방정국에서 중도파로 좌우합작을 위해 일하다가 암살된 몽양(夢陽) 여운형(呂運亨) 선생이 서거한 곳이기 때문이다.

몽양 여운형 선생이 암살된 곳
▲ 혜화동로타리 몽양 여운형 선생이 암살된 곳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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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양은 경기도 양평 출신으로 1907년 고향집에 '광동학교'를 세우고, 1908년 그리스도교에 입교하였다. 강릉에 '초당의숙'을 세워 민족교육을 주도했으며 일제의 침탈로 학교가 폐쇄되자 평양신학교에 입학했다가 간도의 신흥무관학교를 견학하며 독립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학교를 중퇴한 뒤 1913년 중국으로 건너갔다.

1918년 상하이에서 '신한청년당'을 발기하였으며 1919년 상하이 임시정부 의정원(議政院)의원이 되었다. 1920년 고려공산당에 가입 활동하다가 1929년 제령(制令)위반죄로 3년간 복역하고, 1933년 출옥 이후, 조선중앙일보사 사장에 취임하기도 했다. 1944년에는 비밀결사인 조선건국동맹을 조직했다.

8·15광복을 맞아 안재홍 등과 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 9월 조선인민공화국을 선포하였으나 우익진영의 반대와 미군정의 불인정으로 실패했다. 12월 조선인민당을 창당, 1946년 29개의 좌익단체를 규합하여 민주주의민족전선을 결성하였으나 반대하여 탈퇴했다. 또, 근로인민당을 조직하였으나 극좌 극우 양측으로부터 소외당한 채 좌우합작운동을 추진하던 중 극우파 한지근에 의해 혜화동로타리에서 암살되었다.

그는 광복 직후 대한체육회의 전신인 조선체육회 제11대(1946∼1947)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2005년 3·1절에 건국훈장 대통령장(2등급)이 추서된 데 이어 2008년 2월 21일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등급)이 추서되었다.

혜화동로타리에서 잠시 여운형 선생을 생각하다가 길을 돌아 혜화동 초입으로 들어갔다. '임금의 은혜를 넓힌다'는 의미의 혜화동(惠化洞)은 원래 서울성곽의 동북쪽 끝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성균관이 있어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학생들을 위해 일하던 백성들이 주로 거주하던 곳이다. 

최초의 한옥 동사무소다
▲ 혜화동주민센터 최초의 한옥 동사무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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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동이라는 이름은 서울 성곽 8문의 하나인 혜화문(惠化門)의 명칭을 따서 지은 것이다. 우리 일행은 혜화동 초입 우측에 있는 '혜화동주민센터' 앞에 섰다. 국내 최초의 한옥주민센터로 유명한 곳으로 토요일이라 문이 잠겨있었지만, 가끔 화장실이 급한 경우 몇 차례 방문한 적이 있는 나는 이곳이 정말 운치 있고 좋다. 이런 특색 있는 주민센터가 늘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이어 길을 좀 더 가면 생각보다 많은 외국인들을 위한 게스트 하우스를 발견하게 된다. 인사동과 북촌, 성북동에 이어 혜화동에도 성균관대에 외국인 유학생들과 대학로 등지를 찾는 관광객들이 많아서인지 외국인 전용 게스트 하우스가 작지만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그리고 골목 안에 한 동짜리 작은 '건양 하늘터 아파트'가 보인다. 작년에 서거한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직전에 살던 빌라를 중심으로 재건축이 이루어져 '최상의 자리인 청와대의 대통령에 올랐다'는 의미에서 '하늘터'라는 이름을 달아 인기리에 분양된 아파트다.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 전 거주하던 빌라를 중심으로 재건축한 아파트다
▲ 하늘터 아파트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 전 거주하던 빌라를 중심으로 재건축한 아파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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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파트지만 햇살을 잘 받는 남동향이라 터가 무척 좋아 보였다. 역시 대통령을 배출한 곳이라 남다른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는 좋은 감이 드는 곳이다. 비록 노무현 대통령은 세상을 버렸지만, 그 집터만은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하늘터로 오랫동안 남길 바란다.

개량한복을 만드는 기업
▲ 한복 돌실나이 개량한복을 만드는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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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길을 돌아서 나오면 개량한복 전문점인 '돌실나이'의 본사와 본점이다. 이런 곳에 한복을 만드는 회사의 본사가 있을 것을 예상도 못했는데, 작은 건물이 아름답다. 그리고 바로 옆에 '경주이씨 중앙종친회' 건물이 있고 우측 입구에 삼성그룹의 고 이병철 회장의 작은 흉상이 보인다. 이병철 회장이 경주이씨라는 사실을 이번에 알게 되어 기쁘다.

이병철 회장의 흉상이 우측에 있다
▲ 경주이씨 종친회관 이병철 회장의 흉상이 우측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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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측에 '혜화초등학교'다 학교 보다는 학교 앞에 조성된 꽃과 나무, 화초들의 식물 터널이 남다른 곳이다. 아직 봄이라 볼품이 없지만, 녹음이 넘치는 여름이 되면 참 아름답다. 작년 여름 이곳을 지나면서 나는 가족과 이곳으로 산책을 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식물 터널
▲ 혜화초등학교 앞 식물 터널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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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왼쪽 길을 따라 오르면 제2대 국무총리를 지낸 운석(雲石) 장면(張勉) 박사의 가옥이다. 1937년에 건립된 대지 403.3㎡에 단층 건물 4개 동으로 구성된 이집은 안채, 사랑채, 경호원실, 수행원실로 사용되던 건물들이 한식과 일식 그리고 서양식의 건축양식이 혼합된 독특한 형식으로 지어져 있다.  

대한민국 건국에 일익을 담당하였던 장면 총리의 발자취가 남아 있을 뿐 아니라 1930년대의 주거양식을 보여주는 보기 드문 건축물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원래 개인 소유였으나 서울시에서 매입하였다. 2007년 등록문화재 제357호로 지정되었다.

덧붙이는 글 | 역사, 문화와 함께 하는 서울시 종로/중구 걷기 모임

네이버 카페 http://cafe.naver.com/daipapa



태그:#혜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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