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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 실험에 관한 리포트인 이 책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글쓰기가 돋보인다.
▲ <인체재활용>의 표지 시체 실험에 관한 리포트인 이 책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글쓰기가 돋보인다.
ⓒ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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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요. 지금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유일한 즐거움이자 삶의 방편으로 알고 살지만, 한때 저는 하얀 가운을 입고 실험용 나이프를 손에 쥐고 살던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되는 어느 날이었습니다. 40명의 동기들과 해부용 칼을 손에서 잠시 내려놓고 죽음을 앞둔 커다란 개들과 눈을 마주친 날이었습니다.

그날은 본격적인 해부학 수업이 시작되는 날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설레는 날이었지만, 그 개들에게는 인위적인 죽음이 선고되는 날이었지요. 우리는 주로 군견으로 충성을 다하고 퇴출된 셰퍼드를 해부용으로 기증받았습니다.

동기들 누구나 그 죽음 앞에서 안쓰러움에 대해 한 두 마디 말은 꺼내놓은 터였는데, 어느 여자 동기가 엉엉 울기 시작하더니 이내 대성통곡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녀의 울음 앞에서 모두가 숙연해졌지요.

그 이후 죽음에 대해 종종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죽은 뒤에는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그 생각을 이어가기란 좀처럼 쉽지 않지요. 우리 모두가 죽음을 경험해보지 않은 까닭이겠지요. 메리 로치가 쓰고, 권루시안이 옮긴 <인체재활용: 당신이 몰랐던 사체 실험 리포트>는 제가 좀 전에 말한 실험용 개처럼 의학 실험을 위해 사용되는 사체에 대한 책입니다.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글쓰기

죽음만큼 고결한 것도 없을지 모릅니다. 죽음 앞에서 모두가 숙연해지는 까닭도 그런 이유겠지요. 또 누구나 한번쯤은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 상상을 해보지요. <인체재활용>은 죽음 이후의 삶이라는 말조차도 이상하게 여겨지는 그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죽음, 여전히 그것은 숙연한 주제입니다만 이 책의 저자는 단순히 죽음에 대한 애도 혹은 시신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죽을 때 인체를 어떻게 처리한다 해도 궁극적으로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게 된다는 점이다. 자신의 시체를 과학에 기증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해부라든가 절단 같은 것이 주는 느낌 때문에 기가 죽어서는 안 된다. 내가 볼 때는 그냥 부패하는 것이나, 관을 개방하고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턱과 콧구멍을 꿰매 입을 만드는 것에 비해 끔찍한 정도가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다."(93쪽)

이 책을 읽는 내내 저자에게 한 가지 배우고 싶은 바는 숙연한 주제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결코 그의 글쓰기가 음울한 구석으로 내몰리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때론 살아있는 자의 입장, 또 때론 죽어간 자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저자의 문체는 톡톡 튑니다. '경쾌'라는 말이 풍기는 선입견을 제외한다면, 그의 글쓰기는 경쾌하기까지 합니다. 그렇다고 의학용으로 시신을 기증한 이들의 죽음을 조롱하고 있다는 뜻은 전혀 아닙니다.

예컨대 위에 인용한 부분을 같이 볼까요? 여기에서는 시신을 본 느낌에 대해 말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시신 기증에 대한 저자의 생각도 조금 엿보입니다만, 무엇보다 저자를 높이 평가하고 싶은 바는 죽음에 대한 솔직한 생각들을 털어놓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자신이 본 시신의 활용에 대해 전해주고, 또 죽은 자의 입장을 자주 취하기 때문에 그의 글쓰기는 정말 재미있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글쓰기라 부를 수 있겠지요.

사체 실험의 역사와 실제

한국에서도 의학 드라마가 종종 방영된 탓에 이제 '커대버'(cadaver)라는 용어를 한 번쯤은 접해보셨을 것입니다. 본래 '시체'라는 뜻이고, 의학용어로는 의학 교육과 연구에 쓰이는 시체를 뜻합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이 커대버라는 존재가 생겼을까요.

"연구용 시체는 지난 2000년간 자발적으로, 혹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과학이 대담한 한 발짝을 뗐을 때도, 더 없이 기괴한 실험에 참여해왔다. 프랑스가 교수형보다 '인간적인' 방법을 찾다 만든 단두대를 처음 시험할 때도 시체가 도움을 주었다. 그들은 레닌의 시신을 방부 처리한 실험실 사람들에게 최신 기법을 시험할 기회를 주었다."(7쪽)

최초의 사체 실험을 지적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저자는 우리가 생각지 못했던 '긴 역사'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위에서 말하고 있는 단두대와 사체 실험의 관계도 흥미로운 지적입니다.

또 우주왕복선에 시신 토막을 싣고 갔다(?)는 일화 등은 상당히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이처럼 <인체재활용>은 역사 속 실험과 오늘날 다양한 사체 실험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접하기 어려운 오늘날의 매우 다양한 실험 현장들은 정말 낯설기까지 합니다.

죽음, 그 삶 너머의 삶

종교가 없는 저는 죽음 그 너머에 무엇이 있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죽음'이라는 이름이 존재하듯 죽음조차도 삶의 또 다른 시간으로 인식할 수는 있겠지요. 이 책의 저자는 사체에 대해 말함으로써 죽음이라는 그 긴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이렇게 밝혀두고 있기도 하지요.

"나는 나를 해부할 학생들이 볼 수 있도록 약력을 첨부할 것이다(신체 기증자는 이렇게 할 수 있다). 그러면 학생들은 못 쓰게 된 내 껍질을 바라보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야, 이것 좀 봐. 이 여자는 시체에 관한 책을 한 권 썼어.' 그리고 가능하다면 어떻게든 내 시체가 윙크하는 것처럼 보이게 할 것이다."(343쪽)

저 마지막 문장을 읽으며 독자의 입장에서 무릎을 탁 칠만큼,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기발한 상상을 하고 있는 저자라 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죽음에 관한 독서의 끝에서 얻은 소득이 '삶에 대한 욕구'라면 아이러니한 것일까요? 저자의 의도가 어떻든 간에 '죽음'에 대한 오래된 우리의 관심들은 여전히 삶에 주어지고 있는 까닭일 것입니다.


인체재활용 - 당신이 몰랐던 사체 실험 리포트, <스티프> 개정판

메리 로취 지음, 권 루시안 옮김, 세계사(2010)


태그:#인체재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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