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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몸의 가장 밑바닥, 온 몸을 지탱하고 있는 발바닥은 걷기의 신(神)이다.

 

걷기의 神인 발바닥은 노래한다

"멈춰 섬 또한 좋은 일"이라고. - 나나오 사카키,<걷기의 신, 발바닥> 중에서

 

천천히 걸어도 오랜 시간이 지나자 발바닥이 뜨거워졌다.

신발을 벗어던지고 맑은 계곡물에 발을 담그자, 온 몸이 그 맑은 물을 빨아올리듯 맑아진다.

 

가만히 계곡바위에 앉아 신록의 이파리들을 바라보았다.

빛과 신록의 이파리들이 어루러져 신비한 빛의 축제를 열고 있는 중이다.

이런 축제의 숲길을 바쁘게 지나치는 것은 축제를 연 그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산의 가장 높은 곳에 서면 감히 산을 정복했다고 말하는 이들은 등산을 하고, 나는 산책을 한다. 나보다 한 시간은 늦게 숲길에 접어들었을 사람들이 이미 저 숲길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목적지를 정해놓고 A와 B를 오가는 일도 의미있는 일이겠지만, 난 그냥 숲길을 천천히 걸으며 이런저런 꽃들과 나무와 곤충과 길의 생김새와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좋아한다.

 

 

등산을 하는 사람들이 놓치고 갈수밖에 없는 것을 마음에 담는 일, 그것을 나는 산책이라고 부른다.

 

어느것이 더 옳고 그르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숲이 어떤 사람을 더 좋아하고, 어떤 사람에게 자기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두런두런 들려줄까?

 

 

간혹은 산 꼭대기가 목적지일 때도 있지만, 나는 10Km 정도의 산길을 6시간 정도에 걸쳐 걷는다. 산꼭대기에 올라가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숲에 안겨 있는 수 있는 시간의 절반만큼만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것이다.

 

샛길로 들어서기도 하고, 계곡물에 앉아 쉬기도 하고, 편히 앉아 쉴 곳이 있으면 잠시 글을 쓰기도 하고, 읽기도 한다. 그 곳에서 쓰고 읽는 한 구절은 마음 깊이 새겨진다.

 

청년기까지 많은 산을 올랐지만 마음에 남은 풍광들이 그리 많지 않다.

 

그때까지는 오로지 산꼭대기에 오르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주변 풍광이 들어올리가 없었으며, 단지 정상서 내려다보는 세상과 내가 서있는 곳보다 낮은 곳에 펼쳐진 산들과 구름, 그리고 산꼭대기에 올랐다는(그 당시는 감히 정복했다고 했다) 기쁨 그 정도가 전부였던 것 같다.

 

그러나 비로소 등산이 아닌 산책을 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더 많은 것들을 보게 되었고, 더 깊이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디 숲길, 산만 그렇겠는가?

사람살이도 그렇고, 누군가를 만나 이해하는 일도 그런 것이다.

 

조금 더 마음이 넓어져 더 많은 생각을 품게 되었다는 느낌, 여전히 부족하지만 간혹은 손해를 보고서도 허허로이 웃을 수 있게 된 것도 그들에게서 배운 삶의 단편들이다.

 

그들을 보기 시작하면서 나는 목적지가 정해진 등산보다는 산책을 즐겼다.

그러자 걷기의 신(神)인 발도 편안하다고 한다.

 

조금 천천히 느릿느릿 걷기 시작하면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수많은 것들을 만난다.

 

만나지 못했어도 될 일이라고 지나칠 수도 있지만, 그들을 만나는 것은 삶을 풍성하게 해준다. 대부분, 느릿느릿 걷다 만나는 것들은 가슴 아픈 일일지라도 궁극적으로는 아름다운 것이다.

 

4대강 주변을 천천히 걸어본 사람은 안다.

4대강 사업으로 어떤 것들이 사라지고 있으며, 그들이 절규하는 비명소리를 듣는 것이다.

측은지심, 거기에서 깊은 사랑이 시작되기도 하는 것이다.

 

어느 계절이든 숲은 자기의 이야기를 꼭꼭 숨겨두었다가 풀어놓는다.

 

겨울엔 가장 깊은 곳까지 자기의 속내를 보여주며 '텅 빈 충만'을 이야기하더니만, 봄이 되니 솟아오르는 '생명의 신비'를 말한다. 여름 깊은 숲은 그들만의 '은밀한 비밀회의'가 있어 사람의 출입을 금하고, 가을 숲은 '나눔', 그냥 내어줌이다.

 

 

숲은 이런 이야기들을 천천히 느릿느릿 걸어가는 이들에게 들려준다.

걷기의 신(神)인 발은 그냥, 등산만 하지 말고 산책을 하라고 권한다. 그래야 자신도 편하고, 자신이 지탱하고 있는 육신도 편하다고 말한다.

 

이런 산책이 회복되면 무자비하게 밟아버리는 군화같은 등산화가 아닌, 말랑말랑한 고무신 혹은 맨발로도 충분히 걸을 수 있다고 한다. 자기도 딱딱한 신발에 갇혀 걷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호흡하며 걷고 싶다고 한다.

 

걷기의 神 가라사대, "아직도 등산만 하십니까?" 우리에게 묻는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카페<달팽이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산책, #슬로 라이프, #등산, #달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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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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