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나라당의 '책사'로 불리는 지방선거전략기획위원장 정두언 의원이 또 교육계에 폭탄을 던졌다.

 

정두언 의원실은 지난 5일, "2009년 수능성적을 분석했다"며 "교사들의 전교조 가입률이 높으면 수능성적이 낮다"는 실증적인 결과가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덧붙여 전교조 가입률 5% 미만인 학교와 40% 이상인 학교의 수능 1·2등급 비율 차이를 분석했다고 밝혔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조중동 등 보수 언론들은 이 발표를 그대로 받아쓰면서 전교조 공격에 나선 상태다. 하지만, 이번에 정두언 의원실에서 발표한 이 수치는  분석결과를 뒷받침할 만한 표본이나 근거 데이터가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 일각에서 '허술한 통계'라고 말하는 이유다. 

 

그럼, 정 의원이 내놓은 이번 분석결과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것인지 몇 가지 비교를 통해 알아보자. 우선, 2010년 현재 한나라당 국회 의석 분포비율과 2010년 수능 성적 결과를 비교해보고 두 번째로는 2007년 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얻은 득표율과 2009년 시도별 수능상위 분포를 비교해본다.

 

한나라당 의석 하나도 없는 제주도, 수능평균 성적 1등

 

정두언 의원실은 전교조 비율이 5% 미만인 학교들의 수능 1, 2등급 비율이 전교조 비율이 40% 이상인 학교보다 높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2010년 현재 시도별 국회 의석수(전국구 제외)를 2010년 수능 시도별 평균(언어, 수리, 외국어 합계 평균)과 비교해 보면 재미있는 결과가 나온다.

 

한나라당 지역구 의석이 하나도 없는 광주와 제주도의 시도별 수능 성적이 전국에서 가장 높게 나온다. 이에 반해 한나라당 의석수가 매우 높은 경남, 인천, 경북 등은 수능성적이 최하위권이다. 한나라당의 의석수가 하나도 없는 충남, 전남, 전북이 뒤에서 1등, 4등, 5등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는 정두언 의원실이 주장한 것처럼 "예외적으로 설명 불가"라고 해버리면 얼마든지 해명이 가능하다. 정 의원실은 전교조 가입 비율이 높을수록 수능 성적이 높게 나온 "강원, 충북, 경북 등 소규모학교가 많은 농산어촌지역의 경우 성적 비교가 곤란"하다고 어물쩍 넘어갔다. 이와 똑같은 방식으로 "한나라당 의석 비율이 낮은 충남, 전북, 전남의 수능 성적이 낮게 나온 것은 소규모 학교가 많으므로 비교가 곤란"하다고 하면 된다.

 

물론 통계학적으로 이 분석은 말도 안 된다. 실질적으로 한나라당 의석수와 수능 성적 사이에는 아무런 인과관계 또는 상관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두언식 억지를 부리자면 '광주와 제주도에서 보듯, 수능 성적이 가장 높은 최상위 지역은 한나라당의 의석 비율이 낮다'라고 주장할 수 있다. 과연 정두언 의원과 한나라당은 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엉뚱한 비교를 하나 더 해보자. 이명박 대통령 지지율과 수능 성적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물론 아무 관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정두언식으로 견강부회 한 번 해보자. 이 대통령 지지율은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의 이명박 후보의 득표율로 하고, 수능 성적은 이번에 정 의원이 원자료(raw-data)로 사용한 2009년 수능 상위 1~2등급을 기준으로 해서 둘의 상관관계를 '억지로' 추론해 보자.

 

이 비교 자료에 의하면, 이명박 대통령의 득표율이 가장 낮았던 광주가 2009년 수능 상위 1~2등급 비율은 전국 최고다. 제주와 대전 역시 득표율이 낮은데 수능 성적은 3위와 7위를 기록하여 상대적으로 매우 높았다. 이에 비해 이명박 대통령 득표율이 가장 높았던 경북은 수능 성적이 16개 시도 중 11위를 기록하여 하위권이었다. 득표율이 높았던 경남과 울산은 이보다 더 낮아 전국 15위와 13위로 최하위권이었다.

 

물론 예외적으로 전북과 전남의 경우 득표율도 매우 낮았고 수능 등급 비율도 10위와 12위로 중하위권이었다. 그런데 이도 정두언식으로 "농어촌소규모 학교가 많아서 비교가 불가능하다"고 하면 되지 않겠나.

 

정두언 의원이 분석했다는 전교조 조합원 40% 이상의 학교들이 어디인지 정말 궁금하다. 그리고 5% 이하의 학교들에 특목고나 비평준화 지역, 자립형 사립고 등이 얼마나 있는지도 궁금하다. 이런 것이 제대로 공개되지 않는다면 정두언 의원실이 내놓은 자료는 아무 쓸모가 없는 휴지 조각이나 다름없다.

 

대한민국 교육은, 정부와 여당이 망쳐놓은 것

 

조전혁, 정두언, 진수희, 김효재… 이들을 비롯해 한나라당 대부분 의원들이 전교조와 교육철학이 다르고, 전교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문가지이고 그것을 뭐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감정을 말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A라는 한 아이가 B라는 아이를 괴롭히다가 선생님에게 들켜 징계위원회에 회부돼 징계를 받았다. 그런데 A와 친한 또 다른 아이 C, D, E, F 등이 또 B를 괴롭힌다. 이를 옆에서 말리자 그 아이들이 "괴롭히지 말라고 징계를 먹은 것은 A이지 우리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징계위원회에서 못하게 할 때까지 계속 B를 괴롭혀도 된다"고 우긴다면 뭐라고 해야 할까?

 

지금 정두언 의원을 비롯한 한나라당 의원들이 의리를 내세우며(변호사 출신 강용석 의원은 이를 "법리가 아니라 의리의 문제다"라고 <한겨레>에 썼다) 앞 다투어 자기 홈페이지에 명단을 공개하는 것은 철부지 아이들의 행동과 다름이 없다. 초등학생들도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물며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 그것도 우리 아이들의 교육을 다루는 교육상임위원들이 이러면 안 된다.

 

정부와 여당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망쳐 놓은 대한민국 교육을 전교조 탓으로 돌리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단 한번이라도 전교조가 우리 교육의 주류였던 적이 있었던가? 자신들은 지난 수십 년간 교육과 권력의 주류였고, 지금도 (경기도를 제외한) 모든 시도교육감이 그들과 교육관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우리나라 학생들의 학업 스트레스는 세계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우리나라만큼 공부를 많이 하는 나라도 없는데, 그들은 "요즘 아이들 공부 안 해서 큰 일"이라고 혀를 찬다.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에 시달리는 대한민국 노동자에게 "요즘 노동자들 일 안 해서 큰 일"이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다.

 

공정택 전 서울교육감의 구속 사태, 매관매직으로 대표되는 교육 비리에 대해서 가장 많이 반성해야 할 이들이 바로 청와대와 한나라당이다. 이건 아마 대부분의 국민들의 생각일 것이다. "한나라당 의원 비율 높으면 수능 성적 낮다"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을 요량이면 한나라당과 청와대는 전교조 흔들기를 그만두는 것이 옳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민중의소리>에도 게재됐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기사에 한해 중복송고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한나라당, #정두언, #수능, #전교조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