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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수정: 12일 오후 3시 5분]

"나에게 도전한다."

청소년들이 여드레 동안 110km 걷기에 나섰다. 경남 마산 태봉고등학교(교장 여태전) 1학년생 45명이 교사(10명)의 지원을 받아 '제주도 이동학습'을 벌이고 있다. 태봉고는 공립 대안학교로 올해 3월 개교했다.

제주도 해안도로 위주로 걷는다. 넷쨋날 한라산 등반을 빼고 하루 20~25km씩 걷는다. 이들이 걸으면서 던진 화두는 '나에게 도전한다'다. 무엇에 도전하는지는 학생마다 다르다.

공립 대안학교인 경남 태봉고등학교는 5월 1일부터 1주일 동안 제주도를 걷는 '이동학습'을 벌이고 있다.
 공립 대안학교인 경남 태봉고등학교는 5월 1일부터 1주일 동안 제주도를 걷는 '이동학습'을 벌이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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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지난 1일 오후 학교에서 버스로 부산연안여객터미널까지 이동했다. 몇몇 부모들은 여객터미널까지 나와 '장도'에 나서는 아이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학생들은 이날 오후 7시 여객선(코지아일랜드)을 타고 다음 날 오전 6시 제주항에 도착했다. 그 후 걷기가 시작되었다.

첫날부터 '사고' 연발이었다. 마산에서 부산으로 이동하던 도중 한 학생이 손전화(휴대전화)를 버스 안에서 창문 밖으로 떨어뜨려 박살이 나고 말았다. 둘쨋날에는 용두암을 지나 이호해수욕장에 도착했는데, 대여섯 명이 옷을 입은 해 물에 뛰어들었다. 나중에 나와서 보니 손전화가 주머니에 들어 있었던 것.

제주도 걷기 첫날, 아이들은 걸으면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힘들었던 것. 자연스럽게 "기숙사에 있는 게 훨씬 좋다"는 말이 아이들 입에서 나왔다. 여태전 교장은 "아이들이 평소 기숙사에 대해 불평을 하는데, 밖에 나와서 고생해 봐야 학교나 기숙사가 얼마나 좋은지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관덕정을 지나 제주시내를 빠져나왔다. 여태전 교장이 학생들을 불러 세웠다.

"걷는 연습을 하지 않고 와서 그런지 주의가 필요하다. 가만히 보니 주머니에 손을 넣거나 장난치며 걷는데, 그러면 위험하다. 앞 사람과 3보 이상 떨어지면 안 된다. 두 사람씩 나란히 걷는데, 작은 인도를 그렇게 하고 걷다보면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준다. 다른 사람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이내 학생들은 한 줄로 서서 일정한 간격을 두고 걸었다. 용두암에서 중국·일본 관광객 무리와 뒤엉켰다. 학생들은 외국 관광객과 짧게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얼굴을 비추면 거울처럼 드러날 것 같은 맑은 바닷물을 보며 걷기는 계속되었다.

학생들에게 물었다... "무엇에 도전하고 있나요?"

공립 대안학교인 경남 태봉고등학교는 5월 1일부터 1주일 동안 제주도를 걷는 '이동학습'을 벌이고 있다.
 공립 대안학교인 경남 태봉고등학교는 5월 1일부터 1주일 동안 제주도를 걷는 '이동학습'을 벌이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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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면서 물었다. 학생들에게 '무엇에 도전하느냐'고.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이 나오기도 했다. 한 여학생은 "담배 끊을 겁니다"고 말했다. 그 여학생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담배를 피웠는데, 요즘은 하루 1갑 정도 피운다고 털어놓았다.

그 여학생은 어릴 때부터 피운 담배를 끊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제 몸을 위해서도 끊어야죠. 어제 학교를 출발하면서부터 담배를 갖고 오지 않았고 하루가 지난 지금까지 피우지 않고 있어요. 이번에 걸으면서 담배를 끊을 거예요."

걷는 중간에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사탕을 많이 나눠주었다. 처음에는 그 영문을 몰랐다. 교사와 학생들이 사탕을 많이 차지하려고 실랑이를 벌이는 광경도 벌어졌다. 그러면서 한 학생이 교사한테 말했다. "'쌤'은 담배도 안 피우잖아요. 사탕도 많이 필요 없잖아요"라고. 학생들은 담배가 생각날 때 먹기 위해 사탕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또 한 남학생은 "중1 때부터 담배를 피웠다. 제주도에 오면서 담배를 피우지 않고 있다. 지금 생각 같아서는 이겨낼 것 같다. 담배를 가지고 오지 않아서 그런지 걸으면서 아직 피우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술을 끊겠다는 학생도 있었다. 첫날 밤을 배에서 보낼 때 교사들은 혹시 일반인과 섞여 술을 먹는 학생이 있을까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학생들은 다행히 술과 담배를 멀리하며 하룻밤을 보냈다. 오래 걷기에 도전하는 학생들도 있다. 많은 학생들은 오래 걷기 경험이 없었다.

강시내(1년)양은 "생각 나는 게 많다"면서 "제주도에 처음 왔는데, 좋다. 초등학교 5학년 때 5시간을 걸어 지리산 등산을 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그때보다 더 힘들 것 같다. 오래 걸으며 이겨내고 싶다"고 말했다.

정혜영(1년)양은 "인내심과 집중력에 도전한다. 오래 걷기는 처음인데 끝까지 걷고 싶다"고, 윤준영(1년)군은 "차를 타지 않고 먼 길을 걸어서 가기는 처음이다. 걸으면서 제주도의 세밀한 부분까지 보고 싶다. 차를 타고 지나가면 보지 못하는, 아름다운 장소가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립 대안학교인 경남 태봉고등학교는 5월 1일부터 1주일 동안 제주도를 걷는 '이동학습'을 벌이고 있다.
 공립 대안학교인 경남 태봉고등학교는 5월 1일부터 1주일 동안 제주도를 걷는 '이동학습'을 벌이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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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인(1년)양은 "중3 때 지리산에 다녀온 뒤부터 동네에 있는 산을 오르기도 쉬웠다. 많이 힘들지만 걸으면서 자기 성찰의 기회로 삼고자 한다"면서 "이번에 걷기를 하고 나면 제 자신이 훌쩍 커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제법 몸집이 있어 보이는 학생들도 있었다. 김미지(1년)양은 "살 빼려고 한다"면서 "평소에는 식이요법을 하는데 살이 잘 빠지지 않는다. 이번에 걸으면서 살을 좀 뺐으면 한다"고, 백선흠(1년)군은 "80kg 넘게 나가는데 이번에 걸으면서 5~6kg 빼는 게 목표다"고 말했다.

남태욱(1년)군은 "중학교 때 15km를 걸어본 적이 있는데, 이번과 같이 오래 걷기는 처음이다. 제 자신한테 도전하는 것을 목표로 정했는데, 좀더 적극적인 자세를 갖고 싶다"고 말했다.

김덕영(1년)군은 "인내심에 도전한다. 많이 걷기는 처음인데, 걷고 난 뒤 내 자신이 많이 달라져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학생회장을 맡고 있는 김경환(1년)군은 "친구들이 더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학년 초기에 사건사고가 많았는데, 이번 걷기가 서로 이해하고 믿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제주도 서귀포에서 '대안학교'를 하고 있는 변진현씨가 첫날 밤 학생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변씨는 "학교에 있다 보면 울타리 안에만 있게 되고, 그러면 밖을 내다보지 못하게 된다"면서 "걷기를 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주도는 걷기에 좋은 곳"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낮에 보았던 제주도의 풍경에 대해 질문하기도 했다. 돌담으로 쌓아 놓은 노천탕에 대해, 변씨는 "해녀들은 지금도 그곳에서 샤워한다"면서 "한라산에 빗물이 떨어지면 해안가까지 오는데 18년이 걸린다고 한다. 그만큼 제주도 물은 전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물이다"고 말했다.

몸으로 배우는 '느림의 미학', 제주처럼 아름답게 성장할 학생들

여태전 교장은 "지루하고, 답답하고, 깝깝하다며 투덜대는 친구들이 있다"며 '걷기'의 매력을 강조했다. "걷기를 왜 하느냐"는 질문에, 여 교장은 "자기 건강부터 챙기려는 것이다. 좀 더 건강해지려고 한다. 건강해야 행복하다. 걷기는 행복찾기다. 건강을 통한 행복찾기"라고 말했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다. 한 걸음이 얼마나 소중한 지 모른다. 거창한 일도 한 걸음에서 시작된다. 세상에서 가장 긴 여행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여행이다'는 말이 있다. 머리에서 생각해서 가슴까지 내리는 것은 잘되는데, 손과 발로 가는 것은 잘되지 않는다. 손발로 가지 않으면 행동하지 않는다. 발이 가면 몸 전체가 따라간다.

걷기는 느림의 미학을 배우는 것이다. 하루 동안 25km가량 걸었다. 8시간 정도 걸렸다. 이 거리를 자가용으로 가면 30분도 안 걸릴 것이다. 그런데 8시간이나 걸려 걸었으니 얼마나 미련한 거냐. 빨리 이루려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것이 느림의 미학이며, 정말 느리게 걸어야 한다. 걷기는 자기와 대화를 통해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다. '함께 가자 우리'라는 말이다. 느린 사람은 앞세우면서 함께 가는 것이다. 그것이 공동체다.

또 침묵하며 걸어야 한다. 정말 걷기를 잘하는 사람은 걷는 동안 말하지 않는다. 조용히 걷고 난 뒤 밥 먹을 때만 말한다. 하루 8시간을 걷는데 절반 정도는 말하지 않고 걷기를 해보자. 수다 떨면서 가다보면 남는 게 없다. 자기 발자국 소리가 들릴 때가 있고, 친구 발자국 소리가 들릴 때가 있다. 우리는 오늘 소풍 나온 거 아니다. 남다른 방식으로 공부하러, 이동학습하러 온 것이다.

45명은 모두 친구다. 걸으면서 끼리끼리만 노는 모습을 보니 안타깝다. 그동안 말을 잘 해보지 않았던 친구한테 사탕도 하나 주면서, 손도 한번 잡아 주면서 걷자. 커플끼리만 놀면 배움이 적다. 두 친구만 손잡고 수다 떨면 다른 친구를 잃어버린다. 다함께 같이 걷는 게 필요하다."

그러면서 여태전 교장은 "투덜대지 말자. 지금 우리는 도전하는 것인데, 지루하다거나 깝깝하다고 말하면 더 힘들어진다. 불평할 일이 있으면 침묵하라"고 강조했다.

태봉고 학생들은 오는 8일 다시 배를 타고 학교로 돌아온다. 안내책자에는 "극기를 통해 한 단계 자신을 성장시킨다"거나 "다른 사람과 내가 하나라는 깨달음을 얻는다"고 걷기 목적을 설명해 놓았다. 기자는 학생들과 지난 2일 하루 동안 걸었다. 돌아올 때 이 학생들은 제주도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부쩍 성장해 있을 것이라 기대해 보았다.




태그:#태봉고등학교, #공립대안학교, #이동학습,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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