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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갯소리로, 배낭여행객의 세계 3대 블랙홀이 있다. 태국의 방콕, 파키스탄의 훈자마을 그리고 이 곳, 다합. 다합은 비싸지 않은 물가에, 홍해바다를 느낄 수 있는 유명한 휴양지이다. 다합은 장기간 소위 '푹 퍼져 있는' 여행자도 많고, 스쿠버 다이빙 자격증을 따기 위해 오는 사람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 곳이다.

여행자들이 많은, 깨끗한 다합의 거리.
▲ 다합 여행자들이 많은, 깨끗한 다합의 거리.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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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난 몇 년 전에 혼자 호주를 여행하다가 경험한, 호주 동부에 위치한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때문에 어떤 바닷속에도 기대감 충족이 되지 않는 실정이었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거대한 산호 군락인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에서 경험했던, 그 총 천연색의 바닷속 때문에 그 이후로는 어떤 바닷속을 봐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었다.

그러나 홍해바다는 꽤 괜찮았다. 그러나 그 홍해 바닷속을 경험하기 위한 과정이 다른 바다에 비해 편한 편은 아니다. 자갈들과 돌때문에 맨발로 들어가 그 아름다움을 경험하기가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망시키지 않는 이 도도한 곳이, 바로 홍해바다다.

스쿠버다이빙이나 스노쿨링등의 액티비티를 즐기는 사람이 많다.
▲ 다합이 맞닿아 있는,홍해바다. 스쿠버다이빙이나 스노쿨링등의 액티비티를 즐기는 사람이 많다.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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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합에서 맘에 드는 숙소까지 구하고, 예정되어 있는 날짜를 지나 장기간 퍼졌던 나는 급기야 어느 슈퍼마켓이 좀 더 신선한 상품을 판매하는지, 어느 식당이 양이 많고 좀 더 저렴한지 알 수 있는 상태까지 이르렀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일주일이 좀 지난 어느 날, 난 나의 트래블 메이트로서 완벽했던 세 부산 아가씨들에게 안녕을 고했다. 늦은 밤, 카이로로 출발하던 봉고차 안. 난 안에 앉아있고 어슴푸레한 밤을 등지고 그녀들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손을 흔드는 그녀들을 보는데 갑자기 '아, 이제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눈은 빨갛게 상기되고 있었다.

그렇다. '이별의 연속'이 곧 시작인 것이다. 여행이 끝날 때까지, 내가 조금 더 많이 웃고, 조금 더 많이 행복하고, 조금 더 끈끈한 인간애를 느낄수록 이런 감정은 계속 될 것이다.

중동과 아프리카를 잇는 요충지 카이로.
▲ 카이로 시내. 중동과 아프리카를 잇는 요충지 카이로.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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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카이로에서 내린 나는 다음 숙박지를 어디로 해야 하나 잠깐 고민했다. 물론 여행 책자를 가지고 있었지만, 아침의 햇살에 눈이 부시고, 더구나 얼굴에 잔뜩 개기름이 낀 상태로 여행책자를 들고, 숙소를 찾아 헤매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대충 눈치껏 움직이기로 했다. 일단은 나와 같이 내린 한 커플에게 인사를 하고, 말을 건넸다.

"숙소 예약해놨니?"
"응 우리는 이미 예약했어."
"어딘데? "
"A 호스텔. 너 혹시 아직 안 정했으면 우리 같이 가자. 우린 이미 여기 묵어본 적이 있거든."
"그래, 그래, 그러자. 고맙다 얘들아."

난 내심 찾는 수고를 안 해도 되는 상황을 기뻐하며 쭐레쭐레 그들을 따라갔다. 커플을 따라간 호스텔은 생각보다 가격이 비쌌다.

"50파운드 입니다."
"15파운드요? "
"아뇨, 50 파운드요! "

'아, 생각보다 비싸다…' 하지만, 여기서 비싸다고 돌아 나가기는 살짝 부끄럽고, 또 짐을 들고 돌아다니긴 싫었기에 여장을 푸는 쪽을 선택했다. 카이로는 관광대국답게 많은 숙박업소가 있으며 그만큼 가격과 시설도 다양해서 입맛대로 선택이 가능하다. 단, 이렇게 게으름만 부리지 않는다면….

한 낮의 여유를 즐기고 있는 이집트 남자들
▲ 카이로 시내의 카페 한 낮의 여유를 즐기고 있는 이집트 남자들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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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이틀간은 카이로의 한량으로 군림했다. 해 없는 그늘만 찾아다니며 산책을 하고, 시장을 가서 어슬렁거렸다. 택시는 비싸니까 정말 먼 거리를 이용해야 하는 것 아니면, 기본 10킬로 정도는 걸어서 다니는 것이 몸에 밴 듯하다.

카이로에서 내가 꼭 하고 싶은 일은, 투탕카멘 왕의 마스크 만나기, 이집트의 명물 피라미드 보기였다. 그리고 늘 언제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구경하기, 시장 구경하기'도 빼놓을 수 없었다.

거르지 않고,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에게서 신실함을 느낄 수 있다.
▲ 라마단 때 기도하는 사람들 거르지 않고,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에게서 신실함을 느낄 수 있다.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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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나의 꿈은 고고학자였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뜻밖이라는 반응들이지만 어렸을 때부터 책을 보지 않고는 잠을 들 수가 없을 만큼 문학 소녀였다. 이 얼마나 낯간지러운 고백인가…. 흡사, 내가 곱디고운 자태의 문학소녀와는 매치가 안 된다는 걸 알지만 하는 고백….

난 책을 그만큼 좋아했다. 특히나 고고학적으로 접근하게 되는 일들, 잊혀진 문명이나 사라져버린 유적 등… 자연스럽게, 책들은 나로 하여금 고고학자를 꿈꾸게 했다. 어렸을 때 읽었던 '어린 투탕카멘 왕의 저주'라는 통속적인 소재에는 또 얼마나 열광했던가.

그런만큼 이집크 박물관 2층에 자리한, 특별관에선 난 진지할 수밖에 없었다. 번쩍이는 금색과 청색으로 어린 투탕카멘 왕의 얼굴이 보임직한 그 마스크와 조우하느라, 이십여 분은 그 앞에 가만히 서 있었다. 예전에는 가능했으나, 현재는 카메라 반입이 철저하게 금지되어 있는 관계로 내 마음 속에 투탕카멘 마스크의 스캐닝이 필요했다.

카이로에 위치한 고고학 박물관.
▲ 이집트 박물관 (Egyptian Museum) 카이로에 위치한 고고학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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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박물관은 일층에 들어서자마자 옆에 걸려있는 내부 지도를 보고, 갈 길을 머릿속에 이미지화 해 놓는 것이 나을 만큼 넓고 유물도 방대하다. 나올 때쯤 되면, 그까짓 미라가 잠자던 관은 식상해질 만큼 유물이 차고 넘친다. 오랜 시간의 흐름을 그대로 담고 있어서 면면히 느끼고 관찰한다면, 그만큼 시간여행이 가능 한 곳이 이 곳, 이집트 박물관이다.

이집트는 일명 '박시시'로 유명한 곳이다. 예전에 어떤 주위 분이, 박시시 때문에 분통을 터트리며 이집트를 가리켜 '전 국민 사기집단'으로 일컬어서 웃고 넘어간 적이 있는데, 그만큼 사람 분통을 터지게 하는 일이 종종 생기곤 한다. '박시시'란 일종의 팁으로 보면 되는데, 대놓고 박시시를 무리하게 요구하는 일이 많고 우리가 생각하는 기본적인 상도와 동떨어지는 상황들이 많아서 관광산업의 미래를 위해 문제점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주로 여행자들을 태우고 피라미드 근처를 돈 후, 돈을 받는다.
▲ 피라미드의 낙타 주로 여행자들을 태우고 피라미드 근처를 돈 후, 돈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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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례로,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방문했을 때였다. 마침 나처럼 혼자 온, 프랑스 여행자를 만났다. 여자 친구가 카이로에 산다는 그 여행자, 알렉스와는 사진으로 인해 서로 반가워하며 (혼자 다니면, 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 각자의 사진도 찍어주고 낙타도 공동 부담해서 함께 탔다. 그러다 같이 스핑크스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중이었다. 마침 물이 떨어졌기에, 생수를 파는 상인에게 내가 물었다.

"아저씨, 물 작은 것 얼마예요?"
"응, 3파운드야. "
"3파운드요? 그럼 하나만 주세요."

보통 가격보다 조금 비싸긴 했지만, 여기는 피라미드가 있는 사막 아닌가. 그 정도는 괜찮은 가격이었다. 10파운드를 낸 내 손에 이 아저씨가 떨어뜨린 동전은 5파운드였다. 난 2파운드를 더 떨어뜨리겠거니 손을 안 접고 가만히 있었다. 모든 동작을 끝낸 아저씨에게 의아해 하며 난 물었다.

"아저씨, 5파운드만 주셨는데요? 2파운드 더 주셔야죠…."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물 가격은 5파운드야."

대략 이런 식이다. 옆에 있던 알렉스가 답답해하며,

"당신이 분명히 3파운드라고 하지 않았느냐. 내가 옆에서 들었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소리 높여봤자 소 귀에 경 읽기다. 거래를 끝낸 아저씨는 태평했다.

"난 분명히 5파운드라고 말했어."

이런 상황이면 이 즈음에서 접는 것이 낫다. 그 상황이 화 난다고 같이 따지다가는 괜히 2파운드 때문에 분통만 터지고, 시간만 낭비하기 때문이다.

이집트의 아이콘 격인 피라미드.
▲ 피라미드 이집트의 아이콘 격인 피라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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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대부분 여행자들은 이집트에서 다닐 때에는 나름대로의 팁이 생기게 된다. 택시를 이용할 때에는 확실하게 가격을 흥정해놓고 탈 것, 내리기 전에 지갑을 뒤적거리는 것보다는 목적지에 내려서 흥정한 가격을 지불할 것, 버스를 탈 때에는 같은 승객들에게 미리 물어보거나 얼마를 내는지 관찰할 것 등.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는 내공이 좀 쌓이면 얼굴 붉어지지 않는 여정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 이 여행기는 지난 2009년 8월부터 2010년 1월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 영문의 경우, 소리나는 대로 발음하였습니다.



태그:#이집트,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 #피라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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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를 담은 사진에세이 [same same but Different]의 저자 박설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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