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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은 여러 면에서 닮은 점이 적지 않다. '경영인'의 길을 걸은 점, 텍사스 주지사와 서울 시장을 지낸 점, 거짓말 등으로 인한 신뢰의 붕괴, 종교적 편협함, 부자 감세와 정부 지출 증대로 인한 국가 부채 급증, 네오콘 등과 같은 강경 우파의 득세, 주변 인사들의 오만 방자, 집권 여당의 의회 다수 지배, 대북 강경론, 정권 친화적 언론의 토양, 심지어 자기 나라 말을 제대로 사용 또는 표기하지 못하는 점까지 닮았다.

정치 사회의 구조와 문화적 토양이 다르기 때문에 한국과 미국의 경우를 평면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무모한 일반화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부시의 인간됨과 각종 정책, 그가 걸었던 길을 되돌아보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지난 2년과 앞으로 남은 임기를 되짚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여겨진다. 타산지석과 경고의 의미에서.

역대 최악의 대통령, 조지 부시

2008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인 버락 오바마가 승리하여 백악관의 주인이 되었다는 것은 단순한 '정권 교체'의 의미를 넘어, 미국 보수주의 물결에 일대 타격을 가한 역사적 사건으로 해석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조지 부시 대통령의 8년 집권기간 동안 드러난 독선과 오만, 일방주의, 대내외 정책의 실패 등으로 인해 1980년 로날드 레이건 대통령 당선 이후 미국 사회에서 지속되어 온 '보수주의 상승세'가 결정적으로 꺾이는 큰 흐름의 전환이 있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션 윌런츠 역사학 교수와 미국 콜럼비아 대학의 에릭 포너 역사학 교수다.

미국의 음악잡지 <롤링스톤> 표지기사. 미국 프린스톤 대학의 션 윌렌츠 역사학 교수는 부시의 몰락 과정과 그것이 미국 보수주의 물결에 가한 치명적 타격을 예리하게 분석했다.
▲ '부시가 어떻게 공화당을 망쳐버렸는가' 미국의 음악잡지 <롤링스톤> 표지기사. 미국 프린스톤 대학의 션 윌렌츠 역사학 교수는 부시의 몰락 과정과 그것이 미국 보수주의 물결에 가한 치명적 타격을 예리하게 분석했다.
ⓒ 정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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션 윌런츠 교수는 '부시, 최악의 미국 대통령?'(2006. 3), '부시는 어떻게 공화당을 망쳐버렸는가'(2008. 9)라는 글(미국 음악잡지 <롤링 스톤> 게재)에서 부시의 몰락 과정과 그것이 미국 보수주의에 어떤 타격을 가했는지를 예리하게 분석했다.

에릭 포너 교수는 2006년 12월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부시를 '최악의 대통령'으로 지목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부시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법의 무시, 인권 침해, 권력 남용, 정치적 리더십의 실종, 잘못된 정책 등으로 '최악의 대통령'이 되었다고 단언했다.

포너 교수는 부시의 권력 남용과 실정이, 스스로 법 위에 있다고 자만했던 워터게이트 스캔들의 주인공 리처드 닉슨 대통령보다 더 심했다고 지적하면서, "부시를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자리매김할 수밖에 없다"고 결론지었다.

이런 평가는 부시 8년 재임 중 있었던 지지율 변화와 의회 의석의 변화 등에서 구체적으로 확인된다. 2000년 대선에서 부시는 민주당의 알 고어 후보에게 득표에서는 54만 표를 뒤졌으나, 선거인단 투표에서 271 대 266으로 앞서 힘겨운 승리를 거뒀다. 특히 선거인단 수가 25개나 되는 플로리다 주에서 537표라는 아슬아슬한 표차로 부시가 이기기는 했지만, 만약 앨 고어 후보에게 유리한 팜 비치 지역의 1만9천표가 무효 처리되지 않거나, 재검표가 되었다면 역사는 완전히 달라졌을 수 있었다.

어쨌거나 그렇게 아슬아슬한 승리를 한 부시는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할 때까지 60% 안팎의 지지율을 유지했다. 그러다 9·11 이후 그는 미국 역사에서 가장 높은 90% 안팎의 지지율을 즐겼다. 뿐만 아니라 1994년 중간 선거에서 공화당이 압승을 거둔 후 미국 상원과 하원은 모두 공화당의 수중에 들어가 있었다. 여소야대의 의회 구성으로 인해 탄핵소추까지 받았던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는 달리 부시 대통령은 행정부와 의회 모두 장악했다. 공화당 지배의 의회는 부시의 일방주의에 거의 아무런 제동도 걸지 않았다.

9·11 이후 90%까지 치솟았던 그의 인기는 2004년 선거를 전후로 50% 근방으로 내려갔고, 이라크 전쟁의 장기화와 허리케인 카르리나 사태에 대한 무능한 대응, 이라크 침공과 관련된 여러 가지 거짓말과 이로 인한 신뢰의 추락, 부시 주변 인사와 공화당 상층부의 부패 스캔들 등이 잇따라 터지면서 지지율이 지속적으로 떨어져 2006년 11월 중간 선거를 전후하여 지지율이 40%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40% 아래로 떨어지면 대통령으로서 원활한 국정 수행이 어려운 상태가 된다.

2006년 11월에 있었던 중간 선거에서 민주당이 상원과 하원의 다수를 다시 탈환한 사실은 단순히 부시의 몰락 뿐 아니라 94년 이후 유지해온 공화당 의회 지배와 보수주의 물결의 상승세가 일대 전환기에 이르렀음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임기 말 부시의 지지율은 30% 아래로 떨어졌다. 미국 역사학 교수들이 2006년에 이미 예언한 대로 부시는 '최악의 대통령'이 되어 있었다.

개신교 근본주의의 편협함, '선과 악'의 이분법

젊은 시절, 조지 부시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이로 인해 로라 부시와의 결혼 생활도 평탄치가 않았다. 그런 그가 마흔 살 되던 해 빌리 그래함 목사에 감화를 받아 '거듭 태어난 크리스천'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1987년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서 아버지 부시의 대선 지원을 할 때 그는 당시 미국 사회에서 영향력을 키워나가던 '기독교 우파'와 긴밀한 관계를 맺게 되었고, 이러한 관계는 그가 대통령 후보로 된 이후 매우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동맹관계로 들어갔다. 

대통령 후보로 나서기 전 텍사스 주지사 시절인 1999년, 그는 한 무리의 목사들을 주지사 공관에 불러 함께 한 자리에서 "나는 더 높은 자리(대통령)에 가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하나님이 내게 기름을 부으시어, 미국을 인도하라 하셨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대통령 시절, 부시는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으로부터 조언을 구한 적이 있는가 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내가 의지하는 더 높은 아버지 하나님이 계신다"라고.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부시가 '거듭 태어난 크리스천'이 되는 과정과 그의 신앙이 미국의 국내외 정책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반영되었는지 자세하게 분석했다.
▲ '부시와 하나님'을 카버스토리로 다룬 <뉴스위크>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부시가 '거듭 태어난 크리스천'이 되는 과정과 그의 신앙이 미국의 국내외 정책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반영되었는지 자세하게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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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2003년 3월 10일자 표지 기사로 '부시와 하나님'이라는 내용을 다뤘다. 부시가 어떤 과정을 거쳐 '거듭 태어난 크리스천'이 되었고, 그의 정치 행로에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자세하게 기록했다. 이 기사는 부시의 구체적 발언들을 통해 그가 어떻게 '기독교 복음을 전하는지'를 전했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자유는 미국이 전 세계에 베푼 선물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내린 선물이다"(2003. 1. 29 새해 연두교서)

"우리는 지금 선과 악의 대결 속에 있다. 미국은 악의 세력을 구체적으로 지목하여 징벌할 것이다"(2002. 6. 1 미국 육군사관학교 졸업식 축사)

부시는 특히 9·11 이후 '선과 악의 대결'이라는 표현을 자주 썼으며, 그것은 사담 후세인의 제거, 아프칸과 이라크 침공 등에서 구체적 현실로 나타났다. 이처럼 세상을 '선과 악의 대결'로 보는 견해는 위험한 단순 이분법으로 세상을 보고, 그 결과 종교적 대립과 분쟁을 야기시키고, 조직과 사회, 세상을 '적과 동지'로 양분하는 결과를 낳기 마련이다. 다양성, 평화적 공존과는 거리가 멀다.

일방주의와 독선, 오만

부시의 이러한 이분법적 세상 보기는 2001년 9월 20일 미국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행한 "우리 편, 아니면 테러리스트 편"이라는 연설에서 극단적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극단적 이분법에다, "미국은 하나님이 선택한 나라"라는 선민의식, 그리고 "미국의 군사력과 도덕적 가치가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는 미국 지상주의는 대외정책에서 독선적인 일방주의로 치닫게 했다.

자기 성찰, 겸허, 상대방 인정의 덕목은 사라지고, 적을 '악마시'하는 독선과 오만이 가득했다. '부시와 하나님'을 커버 스토리로 다룬 <뉴스위크>도 '오만의 죄'라는 기사에서 "부시의 진지한 믿음을 의심하는 이는 거의 없다. 문제는 그가 하나님의 뜻을 이행하고 있다는 확신에 있다"며 그의 독선을 비판했다.

부시의 종교적 편향과 '선과 악', '내 편 아니면 적의 편'이라는 이분법은 미국내 현실 정치에서 두 가지 형태로 구체화되었다. 하나는 기독교 근본주의적 성향의 '기독교 우파'(Christian right) 인사들을 주요 직위에 중용을 한 '인사 정책'이었고, 다른 하나는 '기독교 우파적 정책들'을 대내외 정책으로 구체화한 것이다. 그의 각료들 뿐 아니라 대통령이 임명하는 판사들까지 기독교 우파인사들이 차지했고, 백악관은 기독교 복음주의자들로 넘치고 있었다고 미국 언론들이 전했다.

기독교 근본주의의 가치와 철학이 담긴 국내 정책들도 구체적으로 시행되었다. 낙태를 반대하는 보수적 인사들이 판사직에 임용되었고, 연방 교부금이 기독교 기관들에 풍성하게 지원되었으며, 줄기세포 연구 지원이 금지되었다. 교회 등이 사회복지 사업을 할 경우 폭넓은 재정지원을 해주었으며, 환경청과 농림부 등에서 나온 연구 결과가 보수적 가치에 일치하지 않으면 이를 발표하지 못하게 검열까지 했다.

그래서 49명의 노벨 수상자를 포함한 과학자 모임에서는 "당파적 목적으로 과학 지식까지 왜곡하는 대통령"이라고 신랄하게 비판까지 했다. 그랬기에 공화당 전략가인 케빈 필립스조차도 부시 대통령 치하의 공화당이 "미국 역사상 최초의 종교당이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미국 대통령은 국가가 위기에 처하거나 중요한 고비 때 종교적 고백을 하거나 절대자의 도움을 청하는 발언을 하기는 해왔다. 그러나 부시처럼 그렇게 공개적으로, 적극적으로, 그리고 인사와 정책을 통해 구체적으로 '기독교의 하나님'에 의존한 예는 없었다는 게 정설이다. '국가와 교회의 분리'는 부시에게는 그다지 중요한 의제가 아니었다.

부시의 덫, MB의 덫

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 7월 9일 오전 일본 도야코  윈저호텔에서 열린 G-8 확대정상 기후변화회의에 참석하기 앞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얘기를 나누며 환하게 웃고 있다.
▲ 부시 만나 활짝 웃는 이명박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 7월 9일 오전 일본 도야코 윈저호텔에서 열린 G-8 확대정상 기후변화회의에 참석하기 앞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얘기를 나누며 환하게 웃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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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의 강렬한 종교적 성향과 그것이 내포한 편향과 편협함 그리고 세상을 '선과 악'으로 나누어 보는 단순 이분법의 측면에서 보면, '악의 세력'을 제거하는 것은 하늘의 뜻이었다. 사담 후세인과 테러리스트들을 '악'으로 규정하고 이를 제거하기 위해 '어떤 것'도 가능하다고 여기게 되었다. 심지어 이라크가 대량 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포함한 갖가지 거짓말과 테러 용의자에 대한 인권 침해도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라크 침공은 끝내 부시에게 몰락의 덫이 되고 말았다.

막강한 힘을 가진 대통령이 균형과 중심을 잃고 한 종교에 편향되는 것은 이처럼 위험하다. 더군다가 세계 유일 초강대국의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미국 대통령인 경우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 측면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그동안 보여 온 종교적 편향(아래 발언 참조), 고위인사 임명에서 '고소영'이라는 말이 보여주는 특정 종교와 교파에 편향된 '사람 쓰기', 수구 우파 인사들의 각종 자리 점령과 우파 단체에 대한 각종 지원 등은 부시 행정부의 행태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이런 행태는 결국 이명박 대통령 자신에게도 독이 되고 덫이 될 수밖에 없다. 부시 운명처럼.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거룩한 도시이며, 서울의 시민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다. 서울의 회복과 부흥을 꿈꾸고 기도하는 서울 기독청년들의 마음과 정성을 담아 수도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한다."(2004년 5월 30일).

"서울 소망교회 이명박 장로입니다. 이번 집회에는 참석을 못하지만 영상으로나마 인사를 드리게 돼 기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부산을 축복합니다" (2007년 8월 23일. 부산서 열린 '모든 사찰이 무너지게 하소서' 모임에서 한 동영상 축사)

"한나라당이 정권을 잃은 지 10년이 돼도 한나라당 이름으로 뭉쳐있는 것을 보면 하나님이 한나라당을 사랑하는 것 같다…. 결국 10년 동안 정권을 못 잡게 한 것도 하나님의 뜻이다"(2007. 9. 20)


태그:#이명박, #정연주, #조지 부시, #독선과 오만, #종교적 편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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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동아일보 기자,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 논설주간, kbs 사장. 기록으로 역사에 증언하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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