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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시인의 특별기고문
 정호승 시인의 특별기고문
ⓒ 인터넷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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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이제 피는 꽃이 아니라 지는 꽃이다. 지는 꽃이 욕심을 부린다면 추하다. 지는 꽃이 피는 꽃처럼 아름다워지길 바란다면 그 또한 욕심이다. 지는 꽃은 지는 꽃대로의 아름다움이 있다. 그것 또한 욕심이 없을 때만 가능하다." - 정호승 '나는 시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 <작가세계> 2009년 가을호에서 인용

시인 정호승씨가 한 방 멋지게 사고(?)를 쳤다. 지난달 28일 <동아일보>에 '특별기고'한 "절망마라, 눈물 흘리지도 마라"라는 글을 통해서다.

정씨는 이 글에서 천안함 침몰과 관련해 "북한이 기습 공격한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북한의 소행일지도 모른다고 짐작만 하기에는 오늘 조국을 위해 전사한 천안함 장병의 슬픔은 너무 크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햇볕정책의 결과가 바로 이것인가. 그동안 남한이 북한에 보낸 '화해의 햇빛'은 지금 '기습공격의 그늘'이 되어 우리 아들들을 수장시키고 말았다. …(중략)…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천안함 사건만이라도 북한 소행이 아니라는 주장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논리 찾아볼 수 없는 정호승 시인의 글

여전히 슬픔이 가라앉지 않은 데다, 천안함 침몰의 원인을 두고 아직 여러 가지 가설만 난무할 뿐 북한의 소행이라고 확정지을 만한 구체적 증거는 드러나지 않은 상황이다. 더 신중하게 조사하고 따져봐야 할 일이 남아있다. 그런데 다짜고짜 "북한 소행이 아니라는 주장은 하지 말아야 한다"니.

"인생의 찬밥 한 그릇 얻어먹은"('서울의 예수') 인간 예수의 모습을 통해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슬픔을 위안의 시어로 갈무리하던 정호승 시인이 바라본 천안함 사건의 실체가 그런 것이었다니 놀랍다.

정호승 시인
 정호승 시인
ⓒ 임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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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에는 어떠한 논리적 추론의 근거도 물증도 없다. 시적 비유나 상징의 장치도 없다. "적에게 기습 공격을 당해도 물증을 찾아야만 항의할 수 있는 시대에 사는 나는 우울하다"고까지 한 시인의 직설법만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글에서 논리는 찾아볼 수 없다. 날 것 그대로의 주장만 있고 논거는 없다. 이성적 사고에 근거한 판단 대신 시가 되기 이전의 감상과 선동만 있다.

스스로를 '지는 꽃'이라 말하고 "지는 꽃이 욕심을 부린다면 추하다"라고까지 한 정호승 시인은 왜 이처럼 추한 욕심을 부렸을까. '햇볕정책'의 '햇볕(기운)'과 '햇빛(광선)'도 구분 못한 채 흥분해서 오로지 북한이 적이라고만 휘갈겨놓은 이 욕심을 어떻게 읽어야할까.

다독거리듯 차분하게 감성과 이성을 파고들던 시어들은 어디에 버려두고 저잣거리의 패설이나 주워섬기며 선동에 나서게 된 것일까.

좀 더 충분히 사건의 앞뒤를 살피고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실체든 사실이든 무언가가 분명해졌을 때 붓을 잡았어도 늦지 않았을 텐데, 무엇이 그로 하여금 이토록 설익은 글을 배설하게 한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를 아끼는 많은 독자들을 생각해서라도 그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말았다.

"생활은 시보다 더 진실하고 / 시는 삶보다 더 진하다는데 / 밥이 될 수 없는 거짓말의 시를 쓰면서 / 어떻게 살아 있기를 바라며 / 어떻게 한 사람의 / 희망이길 바랄 수 있을까"('거짓말의 시를 쓰면서' 중에서)

이제 정호승 시인이 후배들에게 대답할 차례

'저항의 글쓰기'란
'저항의 글쓰기'는 지난 2월 20일 한국작가회의 총회에서 결의한 것이다. 작가회의는 문화예술위원회가 문예진흥기금 3400만원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시위 불참 확인서'를 요구하자, 확인서 제출을 거부하고, 정부의 비민주적 정책에 대한 '저항의 글쓰기 운동'을 펼치기로 했다.

현재 작가회의 소속 작가들은 '저항의 글쓰기 실천위원회(위원장 도종환 시인)'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도종환 시인은 3일 오후 통화에서 "정호승 시인의 글을 읽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저항의 글쓰기 실천위원회 블로그 바로가기
김근 작가회의 사무처장은 전화 통화에서 사견임을 전제로 했으나 공적·사적 발언의 경계를 넘나들며 입장을 밝혔다.
그는 "서로 합의된 게 아니고 정호승 개인이 쓴 것이라 작가회의의 입장을 밝히기는 곤란하다"면서도 "추후 작가들이 협의나 논의를 하게 되면 공식 입장이 나올 수도 있다"고 여운을 남겼다.

이어 "정호승 시인이 작가회의를 대표하는 시인도 아니고 개인의견을 타진한 것일 뿐 작가회의의 방향을 담고 있는 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작가회의가 진행 중인 "저항의 글쓰기와 방향이 다른 건 사실이다, 한숨이 나온다"라고 덧붙였다.

후배 시인으로서 안타까움과 씁쓸함이 교차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저항의 글쓰기'가 '투항의 글쓰기'로 비쳐질까를 염려하는 속내도 느껴졌다.

이쯤 되면 정호승 시인이 나서야 하지 않을까. 독자들과 '저항의 글쓰기'에 나선 선후배 동료 시인 작가들 앞에 변명이든 해명이든 이제 그가 대답할 차례다. "그것 또한 욕심이 없을 때만 가능하다."

덧붙이는 글 | 본문에 인용한 시들은 모두 정호승 시인의 작품입니다.



태그:#초계함침몰, #천안함, #정호승, #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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