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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천안함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그 어떤 말로도 희생자들의 원통함을 달랠 수 없고, 유가족들에게 위로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또 천안함에 관해 말을 하면 할수록 유가족들의 슬픔은 더욱 커질 것이다. 그래서 더욱 애통할 뿐이다.

지난달 18일 40여 명의 피붙이 겨레붙이 친지들에게 오랜만에 '가족메일'을 쓰면서 초두에 이런 말을 적었다.

엊그제는 '천안함'의 함미 인양 기사를 접하고 오열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며 눈물을 많이 흘렸네. '내가 만일 저런 처지라면…' 하는 그 '대입법'은 내가 오랜 세월 숙명처럼 끌어안고 사는 '관성'이지만, 또 한번의 그 절절한 대입 속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네. 나도 곧 군대 입영을 하게 될 아들을 두고 사는 처지에서 그것은 결코 '남의 일'일 수 없다는 생각이 어떤 불안과 두려움마저 안겨 주어서 더욱 처절한 심정이었네.

지난달 29일 오후 국립 대전현충원에서 거행된 '46 용사' 안장식에서 천주교 사제가 기도하고 있다.
▲ 희생자 안장식 지난달 29일 오후 국립 대전현충원에서 거행된 '46 용사' 안장식에서 천주교 사제가 기도하고 있다.
ⓒ 배봉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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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천안함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들의 슬픔에 함께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너무도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난마와도 같고, 커다란 수수께끼가 숨어 있는 첩첩산중 같아서 아예 글을 쓸 의욕이 나지 않지만, 뜨겁게 진실을 소원하면서 베트남 참전 용사의 견해를 적어 보기로 한다.

작전 중 현장 체포되어 군법회의에 회부된 지휘관들

베트남 전장에서의 오인 사격이나 오폭, 그에 따른 전사는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일이었다. 또 안전사고도 있었다. 모든 병사에게는 항시 실탄이 지급되었고, 소총중대 병사들은 늘 수류탄과 수타식 조명탄과 크레모어를 끼고 살았다.

크레모어를 분해해서 백무리떡 같은 화약을 꺼내 그것으로 라면을 끓여먹는 일도 흔했고, 탄피를 고국에 갖고 가서 팔아먹을 욕심으로 귀국을 앞둔 병사들이 탄약 상자들을 차에 싣고 적당한 곳에 가서 마구 사격을 해대는 일도 종종 있었다. 대대본부나 연대본부 같은 데서도 실탄이 길바닥에 나뒹굴다가 발길에 채이곤 했다.

안전사고로 목숨을 잃어도, 또 흔한 일은 아니지만 '고의적' 사고로 목숨을 잃어도 모두 '전사'로 처리되었다. 사고 유발자는 처벌 받지 않았다. 그를 처벌하려면 상급자와 지휘관 문책이 따라야 하고, 또 미국으로부터 목숨 값을 받는데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었다. 전사로 처리하면 목숨 값도 제대로 받고 지휘관도 문책 당하지 않고 사고 유발자도 무사하게 되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지휘관들이 지휘책임과 관련하여 응분의 처벌을 받은 일도 있었다. 1971년 11월이었다. 작전 중이던 어느 날밤 야산 위에 설치한 지휘본부에서 처참한 일이 발생했다. 한 개 중대가 대대본부를 빙 둘러싼 형태로 매복 경계 근무를 했는데, 베트콩 특공대에 한쪽이 뚫리고 말았다. 올빼미 근무를 하던 병사가 그만 잠이 든 탓이었다.

그 구멍으로 침입한 베트콩들은 막사와 벙커들로 살쾡이처럼 기어가서 안에다 수류탄을 까 넣었다. 깜깜한 밤중에 아비규환이 벌어졌다. 아무도 피아를 구분할 수 없었다. 내가 살려면 움직이는 물체는 무조건 쏘아야 했다. 아군끼리 쏘아대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었다.

맨몸에 방탄조끼만을 걸치고 포탄을 나르거나 벙커 짓는 일을 하고 잠을 자기도 했다. 그때 고엽제에 노출되지 않았나 싶다.
▲ 1970년 베트남 작전지(망망계곡)에서 맨몸에 방탄조끼만을 걸치고 포탄을 나르거나 벙커 짓는 일을 하고 잠을 자기도 했다. 그때 고엽제에 노출되지 않았나 싶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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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가까스로 사태가 수습된 후, 작전지에다 침실을 짓고 잠옷 차림으로 잠을 잤던 대대장은 즉각 구속되었고, 연대장도 고국으로 송환되어 군법회의에 회부되었다.

작전 중에 벌어진 일이므로 목숨을 잃은 병사들은 모두 당연히 '전사'로 처리되었지만, 너무도 큰 지휘책임 문제여서 대대장과 연대장에 대한 특단의 조치가 병행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단장에게도 징계가 미쳤을 것이라는 얘기가 있었는데, 그것 역시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사건이 고국에 알려지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일이었다. 보도통제 역시 당연이고 필연이었다. 그 상황을 직접 겪었거나 부대 안에서 소상히 알게 된 병사들에게는 특별 정훈교육이 행해졌다.   

베트남 전장에서 돌아오는 모든 병사들은 수송선 함상에서부터 또 부산의 모 부대에 머무르는 사나흘 동안 집중적인 정훈교육을 받아야 했다. 베트남에서 보고 듣고 겪었던 일들을 발설하지 말라는 것이 그 교육의 요체였다. 함부로 발설하지 않는 것이 국익을 위한 일이고, 파월장병의 명예에도 부합한다는 것이었다.   

진정한 군인, 군인정신이 없다

천안함 사고를 보면서 나는 과거 베트남 전장에서 보고 듣고 겪었던 수많은 일들, 그중에서도 영현실 풍경이 자꾸 떠올라 이상한 통증에 시달려야 했다. 연대본부 옆 209이동외과병원 영현실 안이 넘쳐서 너른 마당에 길게 놓여져 있던 시신들 모습이 눈에 어른거리곤 했다. 앉은뱅이 야전침대 위에 눕혀진 채 이마에까지 덮인 하얀 시트 밖으로 바람에 나풀거리던 머리칼들….  

숨이 막히는 듯했던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나면서 그때 그곳에서 살아 돌아온 것은 분명 '행운'이지만 행운을 의식하는 것 또한 죄악일지 모른다는 생각마저 하게 되는 것이었다.

지난날 29일 오전 경기도 평택 해군2함대 사령부에서 '해군장'으로 엄수된 천안함 순국 '46용사'들에 대한 영결식 관련 보도를 TV에서 여러 번 보았다. 특히 해군참모총장의 '조사' 내용이 너무도 과감하고 결연해서 내 뇌리에 아프게 엉겨 붙는 느낌이었다.  

그는 "백령도에서의 일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우리는 이를 절대 용서할 수 없으며 용서해서도 안 되며 잊어서도 안 된다"라고 했고, "우리에게 큰 고통을 준 세력들이 그 누구든지 우리는 결코 좌시하지 않고, 끝까지 찾아내어 그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말이야 결연했지만 내 눈에는 군인다운 기백이 없어 보였다. 이명박 대통령 내외가 지켜보는 앞에서 충성 서약을 하는 것만 같았고, '정략'의 그림자 안에 꼼짝없이 갇혀 있다는 측은한 생각마저 들었다. 그에게 군인의 참 가치 기준은 무엇이고, 그가 과연 '군인정신'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2008년 전방부대 시찰에 나선 이명박 대통령이 M60 경기관총을 잡고 사격 자세를 취하고 있다.
▲ 사격자세 2008년 전방부대 시찰에 나선 이명박 대통령이 M60 경기관총을 잡고 사격 자세를 취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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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공격에 의한 것이라는 '단정'에 결코 동의하지 않지만, 어설프면서도 자못 기세등등한 그 단정 분위기와 관련하여 베트남 참전 용사로서 굳이 베트남 전장에서 있었던 한 가지 사례를 위에 소개했다.  

정말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공격에 의한 것이라면 해군의 수장인 참모총장은 그 자리에 설 면목도 자격도 없다. 대한민국 해군은 무참하게 패배를 당한 셈이다. 최첨단 장비들을 갖춘 수많은 함정과 핵잠수함과 공중의 정찰기까지 동원하여 한국 제2함대와 합동해상훈련을 전개했던 미국 제7함대도 일거에 허수아비가 되고 만 꼴이다.

'전투에서 패한 장군은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서 패한 장군은 용서할 수 없다'는 금언이 있다. 군인들에게는 반드시 적용되어야 할 철칙이다. 그런 철칙이 살아 있어야 강군이다. 그런데 경계에서부터 무참히 녹다운된 패장이 보복과 응징 의지를 천명하는 것은, 말이 아무리 결연하더라도 공허한 느낌을 줄뿐이다.

천안함 침몰이 정녕 북한의 소행이라면 북한은 참으로 놀라운 기술력과 신통력을 지녔다. 그날의 높은 파도와 급한 해류 등 불리한 기상 조건 때문에 한국 해군과 미국 해군의 초계 능력이 제약을 받았다고 한다면,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소리소문 없이 천안함에 접근하여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1200톤급 초계함을 단 한 방으로 두 동강 낼 수 있는 북한의 비결은 도대체 뭘까?

사고 후 한 달이 지나도록 양국 해군과 정보기관들은 그것을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북한은 귀신이 곡할 정도의 기술력을 발휘한 것 외로도 한 달이 지나도록 양국 해군이 북한 공격의 흔적조차 찾지 못하도록 하는 신통력마저 발휘했다. 한 달이 지나서야 겨우 천안함과 재질이 다른 알루미늄 조각 하나를 건져 올리게 할 정도로(그것이 과연 확실한 물증이 될 수 있을까?) 북한은 도깨비 방망이 같은 신통력을 발휘한 것이다(내가 여기에서 굳이 '양국 해군'이라고 적는 것은, 천안함 침몰 사고에는 해상훈련을 함께 한 미군도 깊이 관여되어 있다고 믿는 심증 때문이다).

경계에서부터 무참히 패배한 한국 해군이 그런 놀라운 기술력과 신통력을 겸비한 북한을 상대로 무슨 보복을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하자면 할 수 있을 것이다. 해군참모총장뿐만 아니라 국방부장관도 응징 의지를 공언했다. 그런 공언은 우선 두 가지 성격을 지닌다. 하나는 북한의 놀라운 기술력과 신통력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또 하나는 실제적으로는 보복을 할 수 없는 상황임을 잘 알기에 가능할 것이다.

'6·2 지방선거'와 관련하여 이른바 '북풍' 효과를 기대하면서 전쟁 분위기를 확산시키려는 세력은 한국군이 미군으로부터 '전시작전권'을 넘겨받는 것을 결사적으로 반대한다. 전시작전권 환수를 결사적으로 반대하면서 전쟁을 부추기는 사람들의 그 괴이한 '모순'을 해군총장이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결코 독자적으로는 보복 공격을 할 수 없는 그 한계를 명확히 인식함으로써 그는 결연하면서도 공허한 공언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수장된 진실은 영원히 감추어질 수 없다

진정한 군인이라면 어깨에서 번쩍이는 계급장에 어울리는 정정당당함을 지녀야 한다. 정정당당함이 군인의 생명이다. 정치적 역학관계 속에서 독불장군처럼 정정당당함을 곧추세우지는 못하더라도, 비겁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초라하고 측은하게도 보이는 군인들이 4일 매우 색다른 그림을 하나 만들게 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전군 주요지휘관회의를 직접 주재하면서 국가안보 태세와 관련한 당부와 주문을 내놓을 예정이라고 한다. 육해공군 중장급 이상이 모두 참석하는데, 현직 대통령이 전군 주요지휘관회의를 직접 주재하는 것은 건군 62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3월말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백령도를 방문했다.
▲ 거수경례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3월말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백령도를 방문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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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은 '처음'이라는 것에 많이 집착하는 것 같다. 청와대 대변인은 '처음'이라는 말을 유난히 강조하곤 한다. 지난번 백령도 방문 때도 그랬다. 그런데 건군 이래 처음인 현직 대통령의 전군 주요지휘관회의 주재에는 또 하나의 '처음'이 따라붙는다. 무슨 사유인지는 모르나 병역의무를 면제 받아서 군대 경험이 전혀 없는 최고 군통수권자가 최초로 전군 주요지휘관회의를 주재한다는 사실이다.

국민의 기본 의무인 병역에서 비켜났던 군대 경험이 전혀 없는 대통령이 주재하는 전군 주요지휘관회의 자리에 앉은 육해공 고위 장성들의 심정이 어떨지 궁금하다. 좀 더 초라하게 보이는 건 아닐지 모르겠다. 대통령이 그 자리에서 군인들을 문책하지는 않을 것 같다. 청와대 관계자는 "천안함 관련 책임자 문책은 시기상조"라는 말도 흘린다.

책임자 관련 문책이 아예 없거나 미뤄진다고 해서 군의 실추된 명예가 회복되지는 않을 것이다. 군의 실추된 명예에는 국민의 군에 대한 '불신'이 너무도 무겁게 자리해 있다. 그 불신이 해소되지 않는 한 군의 명예는 여전히 미로를 헤매게 될 것이다.

불신을 해소하고 명예를 회복시키는 길은 군인의 정정당당함을 스스로 살려내고, 정략에서 놓여나 수장된 진실을 밝히는 것뿐일 터이다. 나는 천안함 침몰에는 수장된(수장시키려는) 진실이 있다고 굳게 믿는다. 진실을 수장시키려는 집요한 노력의 이면도 헤아리고 있다. 이면을 헤아릴 수 있는 근거들은 너무도 많다.

진실이 온전히 수장되지는 않을 것이다. 일시적으로는 수장이 가능할지 몰라도, 영원히 감추어질 수는 없다. 그것은 시간이 말해줄 수 있는 일이다. 끊임없이 흐르는 해류와 스스로 바다를 생동시키는 파도는 무엇을 감추기만 하는 게 아니라 토해내기도 한다. 생동하는 바다는 인간 삶의 변화를 상징한다.


태그:#천안함 침몰, #베트남 전쟁, #군인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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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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