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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가 '신(新) 관권선거'를 주도하고 있는데도, 방송3사와 조중동은 외면하거나 왜곡하고 있다.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4대강 사업 반대', '친환경 무상급식' 등 정부 여당에 불리한 정책 의제들이 떠오르자 선관위는 시민단체들의 관련 활동이 '선거법 위반'이라며 발목을 잡아왔다. 급기야 26일 중앙선관위는 '선거쟁점과 관련한 시민·종교단체, 정부 및 정당 활동의 허용·금지 사례'를 내놨다. 이에 따르면 4대강 사업, 무상급식에 대한 찬반 집회나 서명운동은 물론이고 교회나 사찰 외벽에 '4대강 사업 반대' 현수막을 내거는 것도 선거법 위반이 된다. '무상급식 실시' 배지를 제작해 배부해도 불법이다. "선거쟁점"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자의적인 근거를 들이대며 선거가 끝날 때까지 정책 의제에 입을 다물고 있으라는 얘기다.

 

반면 선관위는 정부에 대해 "선거가 임박한 시기에 4대강 사업과 관련없는 공무원을 대상으로 광범위하게 국정설명회를 개최하거나 광고나 홍보물 배포 등을 통해 광범위한 홍보활동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국토해양부에 4대강 홍보 부스의 잠정 폐쇄를 요청하며 '공정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선관위는 말 그대로 '광범위한 홍보활동만' 제한했을 뿐이다.

 

선관위는 "정부의 정책을 설명하는 인쇄물·시설물 등을 국가기관·지방자치단체 등 관련 기관의 청사나 민원실에 비치·게시"하는 등 "통상적인 방법으로 홍보하는 것은 무방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정부는 4대강 사업을 홍보하기 위해 16개 시․도에 정책자문단을 구성토록 지시한 사실이 드러났고, 선관위가 4대강 찬반 홍보를 모두 선거법 위반이라고 밝힌 바로 다음날 27일 이명박 대통령은 새만금 준공식에 참석해 4대강 사업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선관위가 외려 유권자의 정당한 의사표현과 토론을 막고 정책선거를 방해한다며 '불복종 운동'을 선언했다. 6.2지방선거 핵심공약으로 4대강 사업 반대, 무상급식을 채택한 야당들도 선관위를 향해 "여당 선거대책본부", "여당 선거도우미"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조중동, KBS의 '관권선거' 호도를 규탄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언론은 선관위의 유권자 운동 탄압과 '신(新) 관권선거' 행태를 외면했다.

4월 19일부터 29일까지의 방송3사 메인뉴스에서 선관위의 조치와 관련한 보도는 단3건(KBS2, MBC1)에 그쳤다. 그나마 이 보도들도 상황을 호도하는 '아니한만 못한 보도'였다.

 

KBS는 22일 <'유사 선거운동'에 옐로카드>에서 선관위가 정부와 시민단체에 "같은 잣대로 자제를 권고"했고, "정부는 수위 조절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관련 시민단체는 반발"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선관위는 이른바 유사 선거 운동 성격이 짙은 지방선거 쟁점 정책 홍보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규제해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28일 <"4대강 홍보·반대 선거법 위반"…야권 반발>에서도 "선관위가 4대강 사업을 홍보하는 것에도, 반대하는 것에도 제동을 걸었다"며 선관위가 정부와 시민단체를 '공정'하게 규제하는 것처럼 전했다.

 

MBC도 28일 <지방선거 앞두고 정치권·선관위·법원 '마찰'>이란 제목의 보도에서 '전교조 교사 명단 공개'를 둘러싼 한나라당과 법원의 갈등과 묶어 "정치권․선관위․법원 간의 마찰"이 벌어지고 있다며 선관위에 대한 야당의 반발을 짧게 전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조선․중앙일보는 선관위의 유권자운동 탄압 관련 보도를 전혀 하지 않았다. 동아일보도 22일 선관위의 트위터 규제를 '논란'으로 보도했을 뿐이다.

 

그러면서 조중동은 선관위가 정부에 대해서만 '4대강 사업 홍보'를 규제하는 듯이 보도했다. 28일과 29일 조중동은 <선관위, '4대강 홍보관' 잠정 폐쇄 요청>(조선, 28일), <선관위 "4대강 정부 홍보관 잠정 폐쇄하라">(중앙, 28일), <선관위 4대강 홍보관 폐쇄 요구 논란>(중앙, 29일), <"4대강 홍보관 선거에 영향… 잠정 폐쇄를" "국책사업조차 홍보말라니… 지나친 요구">(동아, 29일)를 실었다.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기사 내용은 '국토해양부의 4대강 사업 홍보관 및 홍보 부스를 잠정 폐쇄하라'는 선관위의 요청과 그에 대한 국토부의 반발만 다룬 것이다. 선관위가 정부의 '4대강 홍보'에만 매우 엄격하게 대응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 정도가 선관위의 이중잣대와 유권자운동 탄압 등 '신(新)관권선거'를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있을 뿐이다. (※첨부 표 참조)

 

유권자들의 선거참여 분위기를 띄우고, 정책선거를 위한 다양한 토론을 독려해야 할 선관위가 "선거쟁점에 대해 찬반을 말하지 말라"는 것은 한마디로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꼴이다. 2008년 10월, 선관위는 '자유롭고 선진화된 선거문화 정착'을 위해 "활발하고 적극적인 논쟁이 벌어지는 선거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래놓고 이제와 정권에 불리한 정책 의제를 죽이기 위해 시민단체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며 이들의 입을 틀어막는 데 열을 올리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하다.

 

한편 선관위의 행태를 외면하는 언론들은 자신의 역할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특히 선관위가 정부에 대해 엄정하게 규제하고 있는 듯 상황을 호도하는 조중동과 KBS는 '신(新)관권선거'의 공범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盧 때 "선관위원장 사표라도 쓰라"던 이들, 어디갔나

 

우리는 지난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 당시 조중동의 보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노 전 대통령은 총선을 앞두고 열린우리당의 예상 의석수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바란다"고 답했다는 이유로 헌정사상 초유의 탄핵을 당했다. 그 때 조중동이 선관위를 향해 어떤 주장을 폈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노 대통령의 발언이 '사전선거운동', '선거 개입'에 해당하는데도 선관위는 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느냐며 "선관위가 이런 식이라면 올 총선도 싹이 뻔해 보인다", "선관위원장은 사표로라도 항의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2004.2.26 사설).

 

동아일보도 "대통령과 여권의 관권선거 움직임에 손을 놓고 있는 모습"이라며 "'선관위장 탄핵' 소리가 나오는 것을 정치 공세로만 치부하지 말고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선관위를 질타했다(2004.3.1 사설).

 

중앙일보 역시 선관위가 "대통령의 명백한 선거개입에도 불구하고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은 잘못하는 일"이라며 "대통령의 불법 혐의를 애써 못본 체하는 비굴한 얼굴을 보인다면 이번 총선이 제대로 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2004.2.27 사설).

 

지금 선관위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며 독재정권 시절에나 있을법한 '관권선거' 행태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정부와 대통령은 선관위의 '자제 요청'을 아랑곳하지 않고 제 할 말을 다 하고 다닌다.

 

그런데도 조중동은 선관위를 질타하기는커녕 방조하고 있다. 여기에 KBS까지 가세했고 MBC와 SBS는 침묵하고 있다.

 

조중동이 선관위의 행태를 비판할 것이라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방송사들 내부에 양심적인 구성원, 비판 세력이 남아있다면 더 이상 관권선거를 방관해서는 안 된다. 최소한의 비판보도를 위해 나서 줄 것을 촉구한다. 이런 식의 '신(新)관권선거'를 방치한다면 이 정권의 방송장악 시도에 제동을 걸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민언련 홈페이지(www.ccdm.or.kr)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태그:#선거관리위원회, #유권자 운동 탄압, #관권선거, #지방선거, #2004년 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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