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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가 오셨다. 남편은 주말에 어디를 갈까, 고민하더니 부여를 가잔다. 아침 일찍부터 부산하게 서둘러 출발한 시간은 8시 40분. 그런데 출발부터 심상치 않았다. 일기예보가 주말에 날씨가 화창, 봄놀이 하기에 좋을 거라며 부추기더니…,  대한민국의 차들이 몽땅 고속도로로 몰려 나온 것. 가다서다를 반복하던 우리 차 휴게소로 들어섰다. 차에서 내리려는데 마침 생각나는 게 있었다.

"어머니, 이름표 하고 오셨어요."
"아니, 이래 같이 가니까 그냥 집에 두고 왔지."

나는 급한대로 책 뒷면 하얀 부분을 오려내어 우리집 주소와 남편과 내 핸드폰 번호를 적어 드렸다.

"어머니 이거 꼭 바지 주머니에 넣으세요. 요새 왜, 아들 며느리가 낯선 곳에 모시고 가서 노인을 버리고도 온다잖아요. 그러니까 이거 꼭 가지고 계시다가 우리 안 보이면 아무나 붙잡고 전화 좀 걸어달라고 하세요."
"엉."

정체가 심한데다 노인을 모시고 가니 휴게소를 세 군데나 들러 도착한 시간은 1시 10분 꼭 점심시간이었다. 평소보다 배가 더 걸린 것이다. 효자 아들이 점찍어 놓은 식당은 돌솥 쌈밥집. 겨우 빈 자리를 찾아들어가 메뉴판을 받아들었는데, 옆자리에서 '주물럭 돌쌈밥 둘이요'를 외친다. 잠잠히 앉아 계시던 어머니 무심하게 한 말씀 하신다.

"난 그 돌솥밥 실트라."

누룽지 때문에 돌솥밥을 좋아하는 효자 아들, 메뉴판에서 눈을 들었는데 당황한 기색이 영력하다. 막 주물럭 돌솥을 외치려던 참이었는지. 그러나 엄마가 싫다니까, 힘없이….

"여기 주물럭 쌈밥 셋이요."

고란사 나루터에서 어머니가 기다리셨다. 1시간 넘게...
▲ 고란사 나루터 고란사 나루터에서 어머니가 기다리셨다. 1시간 넘게...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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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땐 4명이면 둘씩 시키면 되는데, 모든 메뉴가 2인 이상이니까, 어쩔 수 없다. 엄마 뜻에 따를 수밖에. 점심을 먹고 구뜨레 나루터로 유람선을 타러 갔다. 1인에 5500원, 셋이 16500원이다. 유람선은 거창한 황포 돛배. 토요일이라 체험학습 나온 어린이들로 북새통이다. 그런데 강 아랫 쪽까지 갈 줄 알았던 배가 위로 거슬러 올라가더니 고란사 산착장에 서면서 안내 방송이 나온다.

"여기서 내려 고란사와 부소산을 구경하시고 내려와서 다른 유람선을 타십시요. 그러면 한 바퀴 돌아서 구뜨레 선착장으로 갑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내리자 우리 어머니 약간 화가 난 기색이다.

"아니, 왜 바알써 내리나?"

어머니는 배 타는 걸 아주 좋아 하신단다. 예전에 남해안에서 어선이 배를 오래 태워 주었는데 아직도 가끔 그때를 말씀하신다.

"어머니 그게 아니라여. 여기 내려서 절이랑 산이랑 구경하고 나서 다른 배를 타래요."

그래도 어머니 표정은 흐림. 이유인즉슨 절이랑 산은 관심 없고 배나 오래 타고 싶으셨단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는 절이랑 산을 다 돌아야 한다는 거였다. 아들은 어떻게라도 엄마를 끌고 절까지라도 가야 한다고 성화인데 내가 보기에는 틀렸다. 계단이 많고 가팔라 어머니가 가시기에는 부적합이다.

토요일이라 사람들로 붐볐지만.
▲ 고란사 토요일이라 사람들로 붐볐지만.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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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여, 못간다니께. 놔둬, 여기서 기다릴테야."

막무가내로 끌어당기는 아들과 막무가내로 버티는 어머니 사이에서 나는 어머니 편을 든다.

"계단이구 가팔라서 못가셔, 글쎄. 그냥 여기 계시라구 해."

어머니는 5년 전 눈길에서 넘어져 엉치뼈를 다치셨다. 그렇지 않더라도 85세의 노인이 올라가기에는 힘든데, 효자 아들은 어머니에게 좀 더 많은 걸 보여드리고 싶은 거다. 선착장 매점 옆 의자에 자리를 잡아드리고 '시간이 오래 걸려도 기다리실 수 있지요?' 다짐을 한 다음, 나는 뛰다시피 남편을 따라갔다.

"오래 걸리니까, 절에 계시라고 할려고 했지."

남편이 민망한지 변명을 한다.

부소산에서 부여읍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반월루...
▲ 반월루 부소산에서 부여읍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반월루...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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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란사에서 백화정, 그리고 사자루, 수혈 병영지, 군창지에서 돌아오다가 반월루로 올라갔는데 남편 휴대전화가 울린다.

"네네, 지금 금방 내려갑니다. 아마 한 10분이면 될 겁니다. 고맙습니다."

어머니 때문에 온 전화다. 우리가 너무 오래 걸려 그러나보다 걱정이 되어 급하게 뛰어 내려갔는데 어머니는 태연히 의자에 앉아 생강차를 드시고 계셨다. 전화를 거신 분은 다름아닌 매점 사장님이셨다.

"노인이 오래 앉아계셔서 이상해서 여쭈었더니 아드님을 기다린다고 하시더라구요. 전화번호가 있다고 하시길래 전화를 했지요. 이래 오래 계실 거면 부탁을 하고 가시지, 그러면 편히 앉을 자리라도 봐 드릴 텐데."

우리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음료수를 샀다. 음료수를 마시고 다시 인사를 하려는데 학생들이 몰려와 금방 부산해졌다. 정신없이 바쁜 사장님을 돌아보고 우리는 그냥 걸음을 재촉했다. 어째 뒤통수가 근질거리는 것 같았다. 유람선에서 내려 우리 차로 걸어가는데 어머니가 우리 앞에 무언가를 내미신다.

"이거 먹어."
"아니 웬 떡이에요."
"거기서 줬어. 그 남자가 먹으라고."

에그, 이런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못했는데…. 고란사 나루터 매점 사장님 고맙습니다. 우리 어머니께 대접을 잘 해 주셨는데, 인사도 제대로 못했지요.

충화면 가화리 가화저수지 주변에 있는 서동요 드라마 촬영지...
▲ 서동요 테마파크 충화면 가화리 가화저수지 주변에 있는 서동요 드라마 촬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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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서동요 드라마 촬영지엘 갔다. 가화저수지를 둘러싸고 있는 드라마 세트장은 아주 멋있었다. 산은 온통 꽃구름 연두구름으로 찬란하고 호수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낚시꾼들조차 한 폭의 그림으로 어우러진다. 여태껏 보아온 드라마 촬영지 중에 단연 으뜸이라할 만 한데 입장료도 다른 데에 비해 저렴했다(1인 이천원). 평지인 데다 경치가 좋아 어머니도 천천히 걸어 산책을 하셨다.

"아유우, 봄빛이 아주 아름답다, 야."

장 구경 나선 우리 어머니, 처음 만난 시장 아주머니와 말씀 중...
▲ 부여 오일장 장 구경 나선 우리 어머니, 처음 만난 시장 아주머니와 말씀 중...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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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으러 읍내로 들어오니 오늘이 오일장이란다. 오일장을 그냥 지나칠 수 있나. 점심을 먹고 오일장에 들렀다. 역시나 보따리 보따리 앞에 놓고 앉은 할머니들이 발길을 붙잡는다. 쌈으로 먹을 머위 잎을 사고, 알타리를 사려는데 어머니는 머위나물이 탐이 나시는지 머위 나물 파는 아주머니와 흥정을 하신다. 내친김에 머위 나물도 샀다. 2천원어치가 얼마나 많은지 한 보따리였다.

그 다음은 무량사다. 무량사는 들어가는 길도 아름다웠다. 어머니도 지팡이를 짚고 걸으셨다. 우리는 앞서 걸으면서 속도를 조절하고 어머니는 천천히 따라 오신다. 절에 들어선 어머니 앉을 자리부터 찾으신다, 약간 비탈진 길이라 숨이 차신단다. 우리가 다 둘러보고 돌아오니 약간 앞쪽으로 옮겨 앉으셨을 뿐 법당이나 다른 곳을 둘러볼 마음은 없는 것 같다.

무량사는 극락전, 석등, 5층 석탑 등 많은 문화재가 있는 전통사찰이다.
▲ 무량사 무량사는 극락전, 석등, 5층 석탑 등 많은 문화재가 있는 전통사찰이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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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바라보며 약수를 마시던 남편 어머니를 바라보며 손짓을 한다. 어머니는 끄떡도 안 하고 지켜 보시기만 하고.

"안 돼. 어머니는 여기 못 오셔."
"가까운데 왜 못 오셔."
"자기 생각에는 가깝지만 어머니는 아냐. 마음으로 느끼는 거리감이라는 게 있는 거거든."

무량사에 들어서자 앉을 바리부터 찾아 앉으신 우리 어머니.
▲ 무량사 경내 무량사에 들어서자 앉을 바리부터 찾아 앉으신 우리 어머니.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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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영 이해를 못하는 눈치여서 그냥 바가지로 물을 떠다 드렸다. 남편이 생각하는 어머니는 아무래도 자신의 어린시절에 머물러 있는 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여전히 잘 걸으실 거라 생각하고 재촉하고 요구하고, 그러면 어머니는 고개를 젓고 거부하면서 어떤 때는 소리까지 지르신다. 어머니는 아들을 답답해 하고 아들은 어머니를 답답해 하면서.

무량사에서 나오자 이번엔 대천 해수욕장이란다. 서해 바다를 보여드려야 한다면서.

"바다는 맨날 보시는데 무슨(어머니는 강릉에 사신다)."
"동해바다야 맨날 보시지만 서해 바다는 다르잖아."

아들의 마음은 아무래도 며느리와는 다른 것 같다. 나는 어머니를 이해하려고만 했지, 이런 이벤트까지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어머니도 이번에는 마음에 들었는지 흐뭇한 표정이셨다.


태그:#부여, #세 식구, #효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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