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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전혁 의원이 명단을 공개했다는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다. 어느 메뉴에 명단이 공개되었는지 알지 못해 우왕좌왕하다 드디어 발견했다. '열린마당'의 하위 메뉴에 '교원단체 및 교원노조 가입현황'이 있었다.

 

학교명과 교사명으로 검색이 가능했다. 복잡한 절차 생략하고 내 이름을 치고 검색 버튼을 눌렀다. 금방 검색 결과가 떠올랐다.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교사들 명단이 주루룩 떠올랐다. 이름 앞에는 지역과 학교명이 나타났고, 이름 뒤에는 담당교과와 가입단체가 떠올랐다. 동명이인이라 할지라고 어느 학교의 무슨 교과를 담당하는지 확실하게 드러나 있다. 강원 지역에서 역사를 담당하는 나는 전교조 교사로 분류되어 있다.

 

 

내가 전교조 교사란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숨기려 애쓴 적도 없고 숨기고 싶은 생각도 없다. 하지만 내 의사와 상관없이 국회의원의 홈페이지에 공개된 이름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불쾌한 감정을 숨길 수 없다. 조전혁 국회의원이 그토록 신봉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이런 일이 거리낌 없이 진행되어도 좋은 것인지, 국회의원이기 이전에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사실은 전혀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지, 법원의 결정조차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국회의원은 실정법을 초월하는 존재인지도 묻고 싶다.

 

내가 전교조에 가입한 지 어느새 21년 세월이 흘렀다. 전교조가 막 출범한 직후 교사 발령을 받았으니 내 교단 경력의 대부분을 전교조 회원으로 지내왔다. 첫 교사로 발령을 받았을 때 교총에 가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장실로 불려가 교총에 가입하라는 강요를 받았다. 교총이 무엇인지, 전교조가 무엇인지 판단도 되지 않던 신입 교사에 불과했던 내가 교총을 싫어했던 이유는 교장실에서 있었던 일 때문이었다. 그에 대한 반감이 전교조 가입의 동기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전교조 교사라는 이유로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던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편견과 달리 내가 몸으로 겪은 경험을 통해 느낀 게 있다. 학교 다닐 때 수업 열심히 해주었고, 학생들의 마음을 잘 헤아려주었던 선생님들보다 그렇지 않았던 선생님들이 일반적으로 더 빨리 승진했다. 반면 승진에 얽매이지 않고 학생과 동료 교사들에게 진심으로 다가서는 선생님들 중에 전교조 회원들이 더 많았다. 이것이 전교조를 탈퇴하지 않고 지금까지 남아있는 이유 중의 하나다.

 

전교조 교사라는 이유로 수업과 학교 업무를 소홀히 한 적 없으니 학부모들로부터 나태하고 무능한교사라 손가락질 받은 적 없다. 수업 받는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때로는 전교조 교사라는 게 불편할 때도 없지는 않았다. 교단 경력이 오래되면 젖어들 수 있는 타성과 관행이 몸에 배어 전교조에서 하는 일들을 피해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 적도 없지는 않다. 불필요한 갈등에 얽매이지 않고 편하게 살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내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바른 교육이 어떤 것인지 생각할 수 있도록 계기를 마련해준 건 대부분 전교조의 영향에서 비롯되었다.

 

'전교조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는 조전혁 의원과 마찬가지로 나도 전교조 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학생의 인권이 보장되고 교사들이 소신껏 교육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만 조성된다면 굳이 전교조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

 

하여, 조전혁 의원에게 제안한다. 진심으로 전교조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면, 마녀사냥 식의 명단 공개에 매달리지 말고 참교육이 실현될 수 있는 학교를 만들기 위한 진정한 방법을 찾아보라고. 획일적인 일제고사를 반대했다는 이유 하나로 교사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파면을 남발하는 교육 관료들의 횡포를 없앨 수 있는 방법이 무언지 심사숙고해보라고.


태그:#전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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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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